저만치 튤립이 피어 있다
전기철
봄은 뚝, 뚜둑, 끊어진다.
니글거리고 메스껍고, 그렇지만 황홀하게
까마득히 들리는 문소리, 어슬렁거리는 하얀 가운을 입은 메뚜기와 거미 들이 또 한 번의 생일을 챙긴다.
나프탈렌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입을 앙다물어도 여섯 개의 귀와 일곱 개의 눈이 뒤죽이 박죽이 엉키면서 얼굴들을 키운다.
나이테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웃음들, 야–근–머–근–거–양, 뱃속에서 파란 알약들이 굵은 이빨을 드러내며 데굴데굴 구른다.
입에서 나온 커다란 이파리들이 뭉그적거리는 유령인 양 병실 벽을 떠다닌다.
피 같은 선율이 줄기를 뻗는다, 어디선가 쇠공이 치는 소리가 들리고
내 안에서 두 개의 달이 떠요, 날아오르는 쉼표들, 병실은 중력을 잃고 우주로 떠오른다.
하얀 메뚜기 떼의 얼굴들이 흘러내린다, 거미가 옷 속으로 청진기를 집어넣는다, 흐으, 으응, 콧소리가 구부러진다.
거미줄에 걸린 말들이 비척거린다, 핏줄이 뜨겁게 차오른다, 지금병원놀이하고있는거죵! 메뚜기들이 블랙홀로 빨려나가자
수건에 묻은 바삭한 웃음의 입자들이 포롱포롱 난다
전기철
전남 장흥 출생. 1989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나비의 침묵』 『풍경의 위독』 『아인슈타인의 달팽이』 『로캉탱의 일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