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시) 박경리(朴景利) !?
1926년 10월 28일(음) 경남 통영시 명정리에서 박수영 씨의 장녀로 출생, 본명은 박금이.
1945년 진주여고 17회로 졸업
1946년 1월 김행도 씨와 결혼, 딸 김영주, 아들 김철수 출생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 졸업,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
6.25사변으로 남편과 사별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으로 등단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에 이어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9년 6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 25년 만인 1994년에 완성.
현대문학 신인상,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인촌상 등을 수상.
시집으로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 등이 있고,
“까치설” “어머니” “옛날의 그집” 등을 현대문학에 발표.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 간행
나의 출생
-박경리-
나의 생년월일은
1926년 음력 10월 28일이다
한국 나이로 하자면
아버지가 18세 어머니는 22세에
나를 낳았다
가난했던 외가였지만
혼인한 지 사오 년이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는 딸자식을 근심하여
이웃에 사는 도사
그러니까 축지법을 쓴다는
황당한 소문이 있는 도사에게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외할머니가 부탁하여
덤불山祭를 올렸다는 것인데
그것이 영험으로 나타났던지
바람 잡아 나간 아버지가
섣달 그믐날 난데없이 나타났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두 눈이 눈깔사탕같이 파아랗고
몸이 하얀 용이 나타난 꿈
그것이 태몽이었다는 것이다
하여 어머니도 주위사람도
아들이 태어날 것을 믿었다고 했다
고된 시집살이였던 그때
어머니는
어른들 저녁 차림을 하고 있던 참에
갑자기 산기가 있어
마침 그날 도정해다 놓은 쌀가마에서
쌀을 퍼 담고
친정으로 오자마자 나를 순산했으며
술시라던가 해시라던가
아무튼 초저녁이었다는 것이다
계집아이의 띠가
호랑이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대낮도 아니고 새벽녘도 아니고
한참 호랑이가 용을 쓰는
초저녁이라
그 팔자가 셀 것을 말해 뭐하냐
어릴 적에 나는
그 말을 종종 듣기도 했고
점쟁이는 팔자가 세니
후취로 시집보내라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라 섭섭해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나를 낳고 젖몸살을 앓은 어머니가
젖꼭지를 아이에게 물릴 때마다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본
나이 어린 신랑이
신통하게도
젖꼭지랑 젖병을 사들고 왔더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아버지로부터 받은 애정인 셈이다
그러저러한 사연을 지니고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나는 세상에 떨어졌던 것이다
하나 사족을 달자면
용을 본 것이 태몽인데
공요롭게도
어머니의 이름이 용수(龍守)였다
본명은 선이라 했으나
어릴 적에 죽은 바로 위의 오빠
그의 이름이 용수였고
어떻게 된 일인지
호적상으로 어머니가
물려받게 된 것이라 했다
땅문서 집문서의 소유주 이름ㅇ른 물론
문패에도 어머니의 이름은
김용수(金龍守)였다
2008년 5월 5일 별세.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 안장됨.
금관문화훈장 추서.
2014. 08. 05.(화) 11:02 scrap作 / 미, MD 게이더스버그에서 -李 學 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