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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64회>
씬 그 산길 (밤)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협소한 산 중턱길을 왕건과 그 군대가 가고 있다. 부장들이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다.
부장1 길이 좁다. 모두들 조심하라. 질서를 지켜라. 대오를 갖추어라.
왕건 옆에 바싹 붙어 가던 무가 주변을 보며 말한다.
무 폐하, 길이 너무도 험하옵니다.
왕건 조금만 더 가면 큰 길이 나올 것이다.
무 정말로 호족들은 폐하의 영을 받들지 않는 것 같사옵니다. 지금쯤 벌써 나와 있어야 했사옵니다. 이상하옵니다.
왕건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무 병부령이 전령을 띄웠사옵니다. 그것도 폐하의 영으로 말이옵니다. 폐하께서 오시는 줄 알면서도 나와서 맞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항명이 아니옵니까?
왕건 글쎄다... 한동안 이곳의 사정을 알지 못했으니 무어라 말할 수가 없구나. 허나 저들이 우리를 배신이야 하겠느냐? 무언가 사정들이 있겠지.
부장들의 소리는 계속된다.
부장1 길이 몹시 험하다. 군사들은 대오를 갖추어라. 질서를 지켜라. 신속히 이동하라.
계속해 함께 따라가던 최지몽이 다시 말한다.
최지몽 폐하, 신 최지몽 다시 아뢰옵니다. 더 나아가지 마시오소서.
왕건 대체 무슨 말을 그리 하는 게야? 이미 앞으로 나아가기로 하지 않았느냐? 보기보다 최지몽이가 겁이 많구나. 하긴 전장터에 처음 따라 왔으니 그럴 만도 할게다.
최지몽 그것이 아니옵니다, 폐하. 신의 점괘는 빗나간 적이 없사옵니다. 하늘이 앞일을 알려주었는데도 강행하심은 옳지 않으시옵니다.
왕건 하하하... 되었다. 너는 너의 할 일을 다했다. 이것으로써 너의 소임은 끝난 것이다. 이후의 결정은 황제인 내가 내리는 것이야. 알겠느냐?
최지몽 하오나 폐하..
왕건 점괘가 불길하다 하여 돌아간다는 것은 황제가 할 일이 아니니라. 황제가 아니더라도 전장터에 나와있는 장수가 일진이 불길하다 하여 길을 돌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지. 특히나 우리가 돌아간다면 삼년산성을 협공하기로 한 유금필 장군은 어찌하라는 말이냐? 계속 가자. 서둘러라, 무야. 갈 길이 멀다.
무 예, 폐하. 행군도감은 무얼하는가? 폐하께서 서둘랍신다. 행군을 재촉하라.
부장1 예, 정윤마마. 군사들은 서둘러라. 갈 길이 바쁘다. 서둘러라.
부장 서둘러라.. 서둘러라..
군사들은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는 초조한 무와 최지몽의 모습에서....
씬 그 산 속 어느 곳
어둠 속에서 신검이 종훈과 최필, 김총, 신덕, 애술, 양검, 용검들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 어느 쯤에 이르러 신검이 손을 들어 행군을 멈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본다. 끄덕인다.
신검 이 계곡 일대가 매복을 치기에 아주 좋게 생겼소이다.
종훈 그렇사옵니다. 길이 휘어져있는데다가 경사가 급하니 오고있는 고려군을 치기에는 아주 그만이옵니다.
신검 우리는 여기서 매복을 치고 군사를 다시 반으로 나누어 삼년산성으로 가야 할 것이오. 고려의 유금필이라는 장수가 그 성의 후미를 노리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종훈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그쪽도 막아야 할 것이옵니다.
신검 여기는 종훈군사와 최필, 김총, 신덕 장군이 남고 양검이와 용검이는 애술장군과 함께 삼년산성으로 가 유금필을 막으라.
그들 예, 총사.
신검 새벽녘이 되면 고려의 왕이 이곳에 이를 것이오. 그 이전에 매복을 끝내야 합니다. 신덕 장군, 그리고 최필, 김총 장군. 들 서둘러 주시구려.
신덕 예, 태자마마. 부장들은 서둘러라. 좌우로 매복지에 군사들을 숨겨라.
최필 돌과 화살을 준비하라. 장애물을 설치하라.
군사들이 다시 부산하게 어둠 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신검이 양검형제에게 다시 말한다.
신검 여기서 삼년산성은 불과 이십여 리도 채 아니된다. 속히 가거라. 가서 유금필이란 장수를 잡도록 해라.
두 형제 예, 총사.
신검 애술 장군, 잘 해주시구려. 아마도 오늘밤은 평생 잊기 어려운 좋은 날이 될 것 같소이다.
애술 그러게 말이옵니다, 태자마마. 꼭 고려왕을 잡으시오소서.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옵니다.
신검 하하하... 그리 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리 될 것입니다. 장군도 꼭 그 유금필이라는 장수를 잡으시구려.
애술 예, 태자마마. 아직 한번도 마주 싸워 본 적은 없었으나 그 유금필이라는 장수의 이름은 대단하다고 들었사옵니다. 얼마나 대단한지 이번에 소장이 직접 부딪혀 목을 가져오겠나이다.
신검 그렇게 하시구려. 우리 모두 함께 공을 세워보십시다. 그럼 출발하시오.
애술 예, 총사. 자 두분 태자마마, 가시지요?
두 형제 예, 장군
애술 나를 따르라. 우리는 삼년산성으로 간다. 가자...
그렇게 일단의 군사들이 애술을 따라 길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보고있던 신검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신검 아아.. 오늘은 달빛조차 없구나. 참으로 기가 막힌 밤인데...
신덕 그렇사옵니다. 이번에야말로 고려왕의 그 운명이 다한 것 같사옵니다. 사실 대구 공산전투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도망을
쳤었사옵니다.
신검 하하하.. 이야기 들었습니다. 오죽 급했으면 군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홀홀단신 도망을 쳤겠습니까?
신덕 이번에는 어려울 것이옵니다. 이 산길은 도망치기가 용이치 않사옵니다. 더구나 태자마마께서 총사로 오시어 기다리고 계시온데 어디로 도망을 칠 수 있겠사옵니까?
신검 암요, 이것이 어떤 기회인데 놓칠 수가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요. 이번 전투의 기본 임무인 상주 공략의 지휘권마저 금강아우에게 넘겨주고 왔습니다. 실패를 해서는 아니 되지요. 암요.
씬 어느 길
어둠 속으로 금강이 박영규, 상귀, 부달, 소달들과 함께 천천히 행군하여 가고 있다. 금강은 혼자 까닭을 모를 미소를 짓는다. 박영규가 보다가 묻는다.
박영규 왜 웃으시옵니까, 태자마마?
금강 형님 말입니다. 신검 형님 말이에요.
박영규 예..
금강 제가 생각해도 여러 가지로 참 답답하실 겝니다.
박영규 뭐가 말이옵니까?
금강 형님의 나이 사십이십니다. 헌데도 아바마마께서는 아직까지 다음 후사에 관한 말씀이 없으십니다. 얼마나 초조하시겠습니까? 그러니 저를 이곳으로 보내고 형님께서 고려왕을 잡으러 가시는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박영규 허허허... 그리 너그럽게 생각하시니 형제분의 우애가 좋아 보이옵니다.
금강 우애라구요?
박영규 그렇지 않사옵니까?
금강 글쎄올습니다.... 우리 형제들의 우애가 사라진지는 사실 오래되었습니다. 그것은 매부도 아시지 않습니까?
박영규 하긴 그렇사옵니다. 잘들 지내셔야 할 터인데...
금강 남들이 뭐라 하든 저는 그 옥좌를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한숨) 아버님이 참 답답하십니다. 저는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신검형님께서 옥좌에 오르시든 안 오르시든 저에 대한 미움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박영규 오래야 가겠사옵니까? 금강태자마마께서 이처럼 형님들을 생각하고 계시는데 그분들도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금강 글쎄올습니다.
그렇게 한숨처럼 중얼거리는데 멀리서 불빛들이 살아 오르며 보여진다. 이들 흠칫하며 본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여러 필의 말이 급히 달려와 멈추어 선다. 전령과 호족들이다.
상귀 너는 앞서 나간 첨병이 아니냐? 이자들은 누구인가?
첨병 우리에게 투항하는 호족들이옵니다. 이 일대의 작은 읍성들은 수십 리 밖까지 모두 우리 백제군에 항복을 표시해 왔사옵니다.
부달 태자마마, 항복하는 호족들이라 하옵니다.
첨병 이 일대뿐만 아니라 상주 지역의 곳곳에서 호족들이 다투어 성문을 열고 있사옵니다, 태자마마.
금강 일전에 신검형님께서 보신 장계의 내용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상당히 많은 호족들이 우리 백제에 귀부하는 것 같습니다.
박영규 그런 것 같사옵니다. (호족들에게) 그대들은 진정으로 우리 백제군에 투항할 의사가 있는 것인가? 혹시 불순한 마음으로 온 것은
아닌가?
호족1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장군? 이 일대는 백제와 고려가 경계한 곳이옵니다. 저희들은 오래 전부터 전선의 소식을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
호족2 그러하옵니다. 고려의 왕이 조물성과 공산에서 대패하고 수많은 군사를 잃은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고려에는 희망이 없사옵니다. 저희들을 거두어 주시오소서.
금강 그래도 너희들은 오랫동안 고려의 녹을 먹지 않았느냐?
호족1 이 전국시대는 강한 나라만이 저희들의 주인이 될 수 있사옵니다. 살펴주시오소서.
박영규 태자마마, 이번 상주전투는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성과를 올릴 것 같사옵니다. 역시 소문이란 무서운 것 같사옵니다. 이미 고려가 우리에게 거듭 혼이 난 것이 천하에 알려진 것 같사옵니다.
금강 그러게 말입니다.
박영규 그대들의 투항을 기꺼이 받을 것이다. 앞들 서라.
호족들이 대답하고 앞을 선다. 소달이 계속 행군을 명한다.
소달 행군을 계속한다... 대열을 갖추어라. 행군을 계속한다...
금강 (가면서 묻는다) 지금 고려군이 오고 있다는데 어디쯤 와 있는가?
호족1 죽령 쪽으로 오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오어곡성(군위)과 숭선군, 청호현, 도안현의 호족들도 이미 백제에 투항하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오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금강 하하하... 이번 전투는 너무 싱거울 것 같습니다, 상주를 둘러싼 읍성들이 모조리 투항하는 것이 아닙니까, 매부?
박영규 그러게 말이옵니다. 하하하... 큰 전투도 없이 죽령 쪽에 길이 막혔다니 이보다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어서 가시지요.
금강 예.. 허허허... 고려의 박술희가 맥이 빠지겠구먼. 상주 쪽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길이 막혔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들 그렇게 웃으며 간다.
씬 죽령 근처
박술희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다. 그러다가 그들은 어느 만치 서서 먼 산 쪽을 보고 있다. 불야성 같은 불빛들이 산 능선을 타고 뻗어 있다.
박술희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입니까? 오어곡성과 화령군, 청호현, 숭선군들이 모두 백제군에게 넘어갔다구요?
염상 그렇다고 하오이다, 장군. 특히나 전령의 보고에 의하면 오어곡성의 장군 양지와 명식이 일천 군사를 대동하고 백제에 내응하여 이미 그쪽으로 성문을 열었다 하오이다. 오어곡성이 어디오이까? 그곳은 특별히 중요하다 하여 우리 고려에서 장수들을 파견해 놓았던 곳이 아닙니까?
왕충 이야말로 생각도 못했던 배신이올시다. 우리가 내려보낸 장군들이 백제군에 성문을 열어주다니요?
염상 오어곡성은 우리 고려가 상주로 가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길목이올시다. 반드시 다시 열어야 합니다.
박술희 많은 읍성들이 이미 백제의 수중에 넘어갔다면 우리는 무리해서 죽령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오어곡성까지는 길이 너무도 멉니다. 경계지역 상당부분이 다 백제에게 넘어갔다고 봐야 합니다. 공격은 무리입니다.
왕충 그렇다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박술희 상주로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폐하께서 더 염려스럽습니다. 주변이 이처럼 모두 백제로 돌아섰다면 폐하께서 가신 삼년산성 쪽은 백제에 붙어 있어서 특히 더 위험합니다. 여기서 길을 바꿉시다. 폐하께로 가야 합니다.
염상 언제 그곳까지 간다는 말입니까? 만 하룻길이 넘을 터인데...
박술희 서둘러야지요. 이토록 깜깜하게 모를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한두 곳도 아니고 그 많은 성들이 다 등을 돌렸다는 말인고...? 이런... 자, 어서 서두릅시다. 삼년산성 쪽으로 가십시다.
왕충 허면 군을 돌리겠습니다, 장군. 부장들은 서둘러라. 길을 바꿀 것이다. 행군을 돌려라... 행군을 돌려라...
박술희 오, 이런.. 이런... 폐하께서 어찌 되셨을꼬..? 그리고 금필이 형님은..?
씬 삼년산성 후문 강변 뚝
어둠 속을 유금필과 그 군대가 가고 있다. 윤신달이 말한다.
윤신달 장군, 시간이 꽤 되었소이다. 이제 얼마 아니 가면 삼년산성이 나오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유금필 우리가 뒤를 공격하고 폐하께서는 정면을 치시기로 하셨소이다. 서로 신호를 하기로 하였으니 곧 무언가 알 수 있겠지요. 삼년산성은 작은 성입니다. 별 일이야 있겠소이까?
윤신달 그렇기는 하지만 작건 크건 간에 백제의 성입니다. 저들이 그렇게 소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금필 작은 성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가 있습니다. 백제군은 지금 우리가 모두 상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오. 적을 속이면서 기습을 하자는 것이 목적이올시다. 잘 되겠지요. 지금쯤 폐하께서도 성 정문 가까이로 이르고 계실 것이올시다. 우리도 가까이 이르러 기회를 보도록 하십시다.
씬 삼년산성 외경
씬 동 성루
애술과 양검, 용검이 성루에서 먼 곳을 보고 있다.
애술 이번 전투는 뭔가 너무 쉽게 풀리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태자마마. 고려왕이 스스로 올가미에 걸려든다는 것이 그렇고, 또한 일선의 그 많은 호족들이 우리 백제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도 그러하옵니다.
양검 그러게 말이올시다. 이제야 비로소 신검형님께서 운이 트이시려는 모양입니다. 사실 그 동안 얼마나 아버님께 핀잔을 많이 들었습니까?
용검 그러하옵니다, 형님. 사실 너무 운이 없었습니다.
양검 그러게 말이다. 이번에 정말로 고려왕의 목을 벨 수 있다면 모근 걸 한꺼번에 만회하실 수 있을 게다. 잘 되어야 할텐데..
애술 하온데 태자마마...? 지금 고려의 장수 유금필이 일천 군사를 이끌고 이리로 오고 있다 하옵니다. 사실 이 성은 너무 작고 좁아서 적을 제대로 맞기가 어렵사옵니다.
용검 그건 그러하옵니다. 본래 이 성은 그리 큰 성이 아닙니다. 차라리 나가서 신검 형님처럼 매복하였다가 적을 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애술 매복이라기 보다도 일단 적을 맞아 싸우는데는 성 후문 밖이 더 유리하옵니다. 그리하시오소서, 태자마마.
양검 옳은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군사를 후문 밖 강뚝에 매복 시키십시다. 그리고 적이 오면 해치우십시다.
애술 예, 태자마마.
용검 고려군이 또 한번 기억에 남는 날이 되겠습니다, 형님.
양검 그러게 말이다. 허허허... 자, 군사를 이동시키십시다, 애술장군?
애술 예, 태자마마. 부장들은 군사들을 이동시켜라. 성 밖으로 나가 매복한다. 정문 쪽은 신검 태자마마께서 매복 중이시니 걱정할 것 없다. 그저 그렇게 놓아두고 모두 후문 밖으로 나간다. 속히 시행하라.
부장들 예, 장군.
애술 허허허... 재미있는 전투가 될 것이야. 아주 재미있게 되었어. 지금쯤 고려왕이 가까이 왔을 것인데...
그렇게 웃고 있는 애술의 표정에서....
씬 산길
신검군이 매복해 있다. 모두들 숨소리를 죽이며 보고 있다. 종훈, 신덕도 그렇게 보고 있다.
신덕 태자마마, 벌써 전령이 두번이나 왔다가 갔사옵니다. 고려왕이 틀림없이 오고있다 하옵니다.
신검 그러게 말입니다. 꼭 잡아야 하는데... 제발 그 목을 베어야 하는데... 너무 초조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신덕 잘 되지 않겠사옵니까? 겹겹이 군사를 배치해 놓았사옵니다. 앞으로 나아가자면 우리 삼년산성이 있고 뒤로 돌아가자면 우리가 풀어놓은 군대에 막힐 것이옵니다.
신검 그렇겠지요...
신덕 일단은 군대가 모두 지나가도록 놓아두었다가 후미를 막아버리면 끝나는 것이옵니다.
신검 알겠소이다..
신덕 이미 입구 초입에 최필 장군이 나가 있사옵니다. 저들이 퇴로를 끊고 불화살을 올리면 전투가 시작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성 쪽에는 김총 장군이 기마대를 이끌고 길을 막고 있사옵니다.
신검 알고 있소이다. 제발, 제발 이번에는 잡아야 하는데...
씬 그 산길
굽이진 험한 길을 왕건과 정윤 무가 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최지몽이 두려운 듯 자꾸 주변을 살핀다.
최지몽 폐하, 신은 비록 전투에는 참가를 못해 보았사오나 제가 적이라면 바로 이런 곳에 매복을 칠 것 같사옵니다.
왕건 허허, 그래..? 하긴 지형이 몹시 험하고 계곡이 깊구나. 지난번 공산 전투 때에도 바로 이런 곳에서 낭패를 보았지.
무 이제 삼년산성이 거의 다 오지 않았사옵니까?
왕건 그럴 것이다. 한 이십 여리 더 가면 성이 나올 것이야. 모두 공격준비를 단단히 갖추고 재빨리 행동해야 할 것이다. 지금쯤 유금필 장군도 성 후문 쪽으로 도착을 하고 있을 것이야.
무 예, 아바마마.
그들 그렇게 계속 가고 있다. 산은 깊고 비탈은 높다.
씬 그곳
비탈 위에서 백제군이 가득히 숨어 있다. 최필이 부장과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왕건의 군대는 그렇게 길게 계곡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얼마큼 시간이 흘렀을까? 이미 왕건의 모습은 계곡 안으로 사라지고 없다. 군사들이 뒷부분이 계속 지나쳐 간다. 거의 끝이 날 무렵 최필이 다시 끄덕인다.
부장 완벽하게 안으로 들어온 것 같사옵니다. 장군, 신호를 올려야지 않겠사옵니까?
최필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후미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렇게 고려군은 백제군을 알지 못하고 계속 가고 있다.
씬 신검이 있는 곳
신검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고려군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밑으로 지나쳐 간다. 신검이 숨을 삼키며 종훈을 본다. 종훈도 끄덕인다.
신검 적군이 들어오고 있소이다. 헌데 왜 아직 신호가 오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신덕 완벽하게 몰아 넣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 같사옵니다.
신검 이거야 원, 간이 조려서...
종훈 보시오소서, 태자마마. 저기 앞에서 세 번째쯤 백마를 타고 오는 자가 고려의 왕 같사옵니다.
신덕 그렇사옵니다, 태자마마. 고려의 왕이 틀림없사옵니다. 공산에서도 보았사옵니다. 고려의 왕이옵니다.
신검 어둡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 같소이다. 나도 예전에 본 적이 있지를 않습니까? 맞아요. 제발, 제발 여기서 잡아야 하는데..
제발...
그떄다. 어둠 속에서 불화살이 하늘로 치솟는다. 한대, 그리고 두대, 세대째에 함성이 얼어난다.
씬 그곳 길
왕건과 무, 그리고 최지몽들이 그 불화살을 보았다. 그리고 순간 당황한다.
무 아바마마, 적병이옵니다. 매복같사옵니다.
왕건 그렇구나... 매복이다. 백제군이 여기까지 와 있다니... 호족들이 저들과 연합한 것 같다. 군사들을 정비하라.. 정비하라.
씬 신검이 있는 곳
신검이 칼을 들고 소리치고 있다.
신검 공격하라.. 고려왕을 잡아라.. 쏘아라..
신덕 돌을 내려 굴려라. 궁병은 활을 계속 쏘아라. 저쪽이 고려왕이 있는 곳이다. 군사들은 저쪽으로 퍼부어라...
어둠 속에서 화살이 비오듯 날기 시작한다. 통나무가 구르고 돌이 구르고 곳곳에 불덩어리가 굴러 내린다.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된다. 왕건과 무는 어쩔 줄을 모른다. 부장들이 소리친다.
부장1 폐하를 뫼시어라. 정윤마마를 뫼시어라... 방패부대는 무얼 하는가? 폐하를 뫼시어라.
공산전투와 비슷한 전경이 벌어지고 있다. 고려군이 일방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왕건이 칼을 빼어들고 소리치고 있다.
왕건 당황하지 마라. 물러나지 마라. 그대로 앞으로 달려라. 부장들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라.
무 폐하께서 앞으로 나아가라신다. 어서 앞길을 뚫어라. 내의성령도 나를 따르게.
최지몽 예, 정윤마마.
왕건 조금 더 가면 삼년산성이다. 그곳에 유금필 장군이 있다. 당황하지 마라. 앞으로 나아가라. 길은 그것뿐이다.
그들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장애물들은 계속해 굴러 내리지만 이들은 용케도 그 험지를 벗어나고 있다. 그들 좌우로 부장들과 군사들이 수도 없이 죽어 넘어지고 있다. 화살 하나가 날아와 왕건의 투구를 날려버린다. 그리고 또 한대가 팔뚝에 박힌다. 무가 놀라서 왕건을 본다.
무 아바마마...
왕건 (화살을 꺾어 버리며) 나는 괜찮다. 그대로 달려라. 이 협곡을 벗어나야 한다. 어서...
무 예, 아바마마.
씬 신검이 있는 곳
신검이 보다가 안타까워 소리친다.
신검 저러다가 놓치겠소이다. 뒤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만 가고 있지 않소이까?
종훈 아마도 배후로 오고 있는 유금필 군을 생각하고 그런 것 같사옵니다. 하오나 성안에는 우리 애술 장군이 있사옵니다.
신검 아니 되오. 저러다가 도중에 또 놓칠 수가 있소이다. 공산에서도 그렇게 놓쳤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신호를 보내시오. 전방의 기마대에게 신호를 보내 저들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시오.
신덕 알겠사옵니다, 태자마마. 소라를 불어라. 기마대는 길을 막으라 해라.
부장 예, 장군. 소라를 불어라... 기마대는 길을 막으라 하라.
소라병이 소라를 불기 시작한다. 그 소라소리는 계속된다. 비명소리와 돌과 불덩어리들 그리고 나무토막들이 구르는 소리는 계속된다.
신검 이러다가... 아니 되겠소이다. 저들이 아주 필사적이올시다. 이제 모두 고려군을 덮치라고 하시오.
신덕 예, 태자마마. 부장들은 들어라. 전군, 모두 공격에 나서라 하라. 모두 공격하라.. 공격하라...
그 소리와 동시에 신검군이 벌떼처럼 내려덮기 시작한다. 백병전이다.
씬 그곳
최필과 부장들도 후미 쪽에서 달려와 싸우고 있다. 고려군은 필사적이다. 어둠 속에서 전투는 계속된다.
씬 그 근처
신검과 신덕군이 말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신검 고려왕을 잡아라. 고려왕을 잡아야 한다. 도대체 고려왕이 어디로 간 것이냐? 길을 철통같이 막아야 한다. 절대로 길을 열어주어서는 아니 된다.
신덕 고려왕을 잡아라. 기마대는 어찌되었느냐?
그들 그렇게 앞으로 달려 나아간다. 점차 계곡에서 넓은 분지가 나오고 있다.
씬 그 계곡 분지
왕건과 무가 최지몽, 그리고 부장들과 함께 달려오고 있다.
왕건 어떻게든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무조건 베며 앞으로 나아가라. 그대로 돌진하라.
보고있던 김총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김총 고려의 왕이다. 고려의 왕이 온다. 공격하라.
그러자 지축을 울리며 백제의 기마대가 일제히 전면으로 달려들기 시작한다. 무도 또 왕건도 그리고 최지몽도 부장들과 함께 그들과 맞붙었다. 어지럽게 검무가 난무한다. 무서운 괴력이다. 왕건의 무예가 어둠 속의 섬광처럼 번뜩인다. 백제의 장졸들이 무수히 베어져 나간다. 그러면서 길이 뚫린다. 김총이 보고 있다가 혀를 찬다.
김총 과연, 헛소문은 아니구나. 고려왕의 무예가 저토록 높다니? 고려왕은 게 섰거라. 내가 김총이니라.
왕건 오냐, 어서 오너라. 네 이놈... 감히 고려의 황제에게 버릇이 없구나.
그렇게 서로 달려든다. 왕건이 한번 미소 짓더니 그대로 몇 합을 날린다. 그러다가 투구가 반쪽으로 갈라지며 그대로 왕건의 칼에 맞고 말에서 거꾸로 떨어진다. 그러자 백제의 기마병들이 좌우로 물러난다. 신검도 쫓아오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만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한다.
신검 김총 장군이..... 당했소이다.
신덕 무서운 실력이옵니다, 태자마마. 대단한 무예이옵니다. 하지만 고려왕은 이미 포위되었사옵니다.
신검 아니오. 지금 우리 기마병이 모두 겁이나 길을 열어주고 있지 않소이까? 저런, 저런... 길을 열어주면 아니 되는데... 저런...
그들 부자 그렇게 달려간다. 그러다가 무가 뒤쳐진다.
무 폐하... 폐하...
왕건 기다려라...
왕건이 다시 되돌아온다. 그리고 무 주변을 베어 넘어뜨리며 길을 열어준다.
왕건 어서 가자. 어서...
최지몽이 뒤를 열심히 따른다. 그 뒤에서는 여전히 어지러운 백병전이 이어지고 있다. 왕건과 무의 모습은 서서히 사람들 속에 묻혀 버린다. 신검이 발을 계속 구른다. 갈래야 갈 수도 없다. 군사들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신검 장군... 고려왕이 가고 있소이다. 고려왕이 사라지고 있어요. 아이고... 고려왕이... 아이구....
씬 그 어둠 속의 길
맹렬히 도망치는 세 사람. 한참 사이를 두고 뒤에서 백제군이 쫓아오고 있다. 길이 굽이진 곳에서 왕건이 소리친다.
왕건 가다가 모두 말에서 뛰어 내려라. 이대로는 얼마 못 간다. 뛰어 내려라.
그렇게 말들은 산 굽이길을 되돌아간다. 그리고 하나, 둘 그 말에서 뛰어내린다. 말들은 계속 달려간다. 백제의 기마대는 그렇게 말들만 쫓아 사라진다. 왕건들이 어둠 속에서 보고 있다.
왕건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모두가 백제군들이다. 아, 형편없이 당했구나. 너무 어이없이 당했어.
무 우리 고려군은 전멸한 것 같사옵니다.
왕건 그런 것 같구나. 호족들이 배신을 했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들이 어떻게 매복을 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겠느냐? 아아.. 금필아우는 어찌되었을꼬? 지금쯤 성 후문에 도착을 했을 것인데..? 금필아우도 위험하겠구나. 아아..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이게 대체...
무 어서 이곳을 피하셔야 하옵니다. 어서요, 아바마마.
왕건 그리하자꾸나. 자, 이리로...
그들 그렇게 어둠 속으로 스며들면서...
씬 성 밖 후문 강뚝 (이른 아침)
유금필 군이 오고 있다. 이미 날이 뿌옇게 밝고 있다. 그들은 어느 쯤에 이르러 군을 멈춘다. 멀리 성이 보인다.
윤신달 장군, 이상하지 않소이까? 약속한 새벽이 지나고 있는데도 폐하께서는 아무 신호가 없으십니다.
유금필 그러게 말이올시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호족들이 우리를 도울 것이라 하였는데 호족은 커녕 그림자도 아니 보입니다.
윤신달 그렇소이다. 병부령은 호족들의 도움이 없을 경우 속히 회군하라 하였습니다. 그건 즉 호족들의 배신을 염려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금필 물론 그때문이겠지요. 헌데... 저 성은 왜 저리 조용한고..?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강뚝에서 사람들이 솟아오른다. 애술이 말을 타고 웃고 있다.
애술 하하하.. 어서 오너라. 유금필이라 하였느냐? 나는 백제의 애술이다. 기다린지 오래니라.
유금필 들어본 이름이로구나. 순순히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너희 백제군은 이미 포위되었다.
애술 핫하하하.. 그 무슨 소리? 너희 고려왕은 이미 우리 신검태자마마께 목이 달아났느니라.
유금필 무엇이라...?
애술 너희 많은 호족들이 다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느니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너희가 오는 것을 알고 있겠느냐? 항복을 하겠느냐, 싸워 보겠느냐?
용검 하하하하.. 불쌍하게 되었구나. 어찌할 것이냐? 항복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 일대는 모두가 우리 백제의 영토이니라.
윤신달 무슨 일이 생긴 것은 틀림없소이다. 어찌하시겠소이까?
유금필 어찌하다니요? 폐하께서 곤경에 처하신 모양인데..? 성으로 밀고 들어가야지요. 가십시다.
양검 왜 말이없는고...? 어서 항복하라.
유금필 하하하... 항복이라니? 네 이놈, 네가 백제의 태자이냐? 한번 겨루어 보겠느냐?
애술 내가 너를 기다린지 오래이다. 우선 나를 넘어가 보거라.
유금필 그거 반가운 소리로구나. 나오너라.
유금필이 달려나간다. 애술도 달려나온다. 양군이 보고 있다. 드디어 두 사람이 보다가 접전이 붙는다.
애술 한번 겨루어 보고 싶었다, 유금필... 내 검을 받아라.
유금필 어서 오너라.
치열한 접전이다.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점차 애술이 몰리기 시작한다. 점점 더.. 점점 더 갈수록 애술은 표정이 바뀐다. 유금필이 저승사자처럼 달려든다. 결국에 애술이 몸을 피하기 시작한다. 식은땀을 흘리며 막기에 급급하다가 돌아선다. 보고있던 양검과 용검의 표정이 창백해진다.
애술 오늘은 몸이 좀 좋지가 않구나. 다음에 보자꾸나.
유금필 나는 다음이라는 말을 싫어하느니라. 오늘 네 목을 가져야겠다.
애술 다음에 보자고 하지 않느냐?
유금필 아니 되겠다고 하였다.
그들 그렇게 쫓고 쫓기기 시작한다. 양군이 보고 있다. 양검이 보다 못해 소리친다.
씬 그곳 (양검군)
양검 무엇하느냐? 애술 장군이 위급하다. 부장들은 나가서 도와라.
부장들이 대답하며 달려나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삽시간에 네 부장이 모두 목이 날아가 버린다. 양검 형제는 그만 경악하고 만다. 보고 있던 윤신달이 드디어 신호를 내린다.
씬 그곳 (윤신달)
윤신달 기회는 이때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윤신달 군이 쫓기 시작한다. 유금필은 그렇게 앞서 달려가고 있다.
씬 그곳 (양검군 진영)
애술은 다급했다. 백제군 진영에 가까이 이르자 소리친다.
애술 무엇들 하느냐? 화살을 쏘아라. 저건 괴물이다. 사람이 아니야.
병사들이 화살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미 유금필은 적진으로 파고들어 무인지경으로 베고 있다. 군사들이 물결처럼 도망치고 갈라진다. 보고있던 양검과 용검도 급히 달아난다.
용검 형님, 성으로 가십시다. 어서요...
양검 오냐, 알았다. 모두 성으로 들어가라... 성으로 들어가라...
유금필 백제의 태자들은 거기 섰거라. 목들을 내어놓아라.
그 뒤로 윤신달군이 이미 지쳐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백제군과 섞여버린다. 백제군은 전의를 잃었다. 그저 성안으로 도망치기 바쁘다.
유금필 기회를 놓치지 마라. 그대로 성안으로 밀고 들어가라.
씬 동 성 근처
백제군들이 성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미 반수 이상이 죽거나 항복해 버렸다.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든 자들이 부지기수다.
씬 동 성안
성으로 들어간 양검과 용검, 애술들이 소리친다.
애술 성문을 닫아라. 성문을 닫고 전열을 재정비하라.
양검 성문을 닫아라.
부장 이미 늦었사옵니다. 적군이 들어서고 있사옵니다.
용검 형님, 이 성은 우리가 버티기에 너무도 좁사옵니다. 적군이 보기보다 너무나 강하고 많사옵니다.
양검 그럼 어찌하면 좋다는 말이냐?
용검 성밖 산 속에 신검형님께서 계시지 않사옵니까? 그리로 가시지요?
양검 이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냐? 눈으로 다 보았으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가 않는구나?
그들 도망치면서 뒤를 보니 이미 성안으로 고려군이 가득히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쫓아오는 유금필이 보인다.
유금필 게들 섰거라. 어디로 가느냐?
양검형제 쪽으로 가까이 온 애술이 소리친다.
애술 태자마마, 소장이 전투에 나선이래 저런 괴물은 처음 보옵니다. 이 성은 버려야겠사옵니다. 완전히 첫 전투에 기선을 빼았겼사옵니다. 어서 가시오소서. 어서요.
용검 형님, 가십시다. 어서요.
양검 알겠다. 어서 형님께로 가자.
그들 그렇게 도망쳐 간다. 성의 본문이 열리고 그들은 그렇게 멀리 장졸들과 함께 달아난다.
씬 그 성안
쫓아오던 유금필이 잠시 말을 멈춘다. 윤신달이 군사들을 이끌고 이미 성안으로 들어와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윤신달 유장군, 백제의 장수 애술이가 어이없이 무너졌습니다. 역시 장군의 무예는 신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단 한번의 전투에 저들이 성을 내어주었습니다.
유금필 이 성은 작은 산성이올시다. 성이 문제가 아니라 폐하께서 걱정이올시다. 지금 어찌되셨는지 말이오. 쉴 짬이 없을 것 같소이다. 경계병만 몇 명 남겨놓고 내쳐 가도록 하십시다.
윤신달 알겠소이다. 부장들은 들어라. 경계병만 남겨놓고 모두 군사를 재차 정비하라. 그대로 내처 갈 것이다. 군사를 빨리 정비하라.
부장들이 윤신달의 소리를 복창하고 있다. 그 어지러움과 소란을 보는 유금필의 표정에서....
씬 어느 야산 길
옷 모습이 말이 아닌 왕건 일행들이 오고 있다. 공산 때와 마찬가지다. 숲에서 이리저리 낙엽을 헤치며 오고 있다.
왕건 아아... 모두들 어찌되었을꼬? 모두들.... 어쩌다가 다시 또 이런 낭패를 본다는 말인가? 어쩌다가...
무 고정하시오소서. 호족들의 배신 때문이옵니다.
왕건 호족이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적을 너무 쉽게 보았던 이 아비의 탓이니라. 아하... 이게 벌써 몇 번째라는 말인가, 이게 벌써..? 하늘이 정말로 나를 버린 것인가? 어찌 이리도 참담하게 하실 수가 있을꼬..? 아아.. 금필아우는 어찌 되었을까? 그 많은 우리 군사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들의 먼 시야로 애술과 양검형제들이 군사들과 함께 바쁘게 지나쳐 가는 것이 보인다. 이들 몸을 숨긴다. 그리고 곧 그곳을 빠져나간다.
왕건 사방이 적이로구나. 저들은 백제의 태자들과 애술이라는 장수다. 그렇다면 성은 어찌 되었을꼬...?
씬 그 산야 신검이 있는 곳
신검이 열을 받아 어쩔 줄 모르며 서 있다. 신덕과 김총, 최필들도 아쉬움이 가득하다.
신검 이럴 수가 있습니까? 눈앞에 뻔히 가두어 놓고도 이럴 수가 있습니까? 고려왕을 놓치다니요?
신덕 추격군이 이미 나아가 일대를 이잡듯 뒤지고 있사옵니다.
최필 결코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좀더 기다려 보시오소서.
신검 (김총 보며) 김총 장군이 중상을 입었지만 이번 우리 전략은 그런 대로 완벽했소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서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이오? 무엇이 잘못 되어서....?
신덕 고려왕의 명이 참으로 질긴 것 같사옵니다. 이번에도 또 살아 나가다니요..? 하지만 태자마마, 우리는 고려왕이 이끌고 온 군대를 전멸시켰사옵니다. 폐하께오서 필히 큰 칭찬이 있으실 것이옵니다.
신검 글쎄올시다. 칭찬은 커녕 꾸중이나 또 안들었으면 좋겠소이다.
그때, 양검형제들과 애술이 일단의 군대를 이끌고 달려온다. 신검이 보다가 의아해서 묻는다.
신검 아니.. 양검이와 용검이는 어쩐 일이냐? 애술 장군은 어찌 오신 게요?
애술 송구하옵니다. 소장의 실수로 성을 잃었사옵니다.
신검 뭐요..? 그럼, 유금필 군에게 당했다는 말이오?
용검 예, 형님. 어서 피하시오소서. 그렇게 무용이 뛰어난 장수는 처음 보옵니다. 애술 장군도 당하지 못하였사옵고 우리 부장 넷도 순식간에 목이 달아났사옵니다. 피하시오소서. 저들이 곧 이곳에 이를 것이옵니다.
신검 뭐라..? 애술 장군이 그리 쉽게 당했다는 말씀이오? 세상에 그런 장수도 있다는 말이오?
애술 부끄럽사옵니다, 태자마마. 유금필이라는 장수는 생전 처음 보는 괴물이었사옵니다.
용검 어서 피하시오소서, 형님... 어서요.
신검이 보다가 눈에 불이 나더니 그대로 등채로 얼굴을 올려붙인다. 모두들 놀라서 본다.
신검 이놈아... 아무리 한번쯤 혼이 났기로서니 도망이라니..? 우리는 여기서 고려왕의 군대를 모두 전멸시켰다. 헌데, 도망이라니..? 그러고도 네가 백제의 태자라고 할 수 있느냐? 성도 잃어버리고 도망까지 가자고..? 옛끼 이놈... 이놈.... 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이놈, 이놈.... 양검이 너 이놈.. 용검이 이놈....
양검과 용검이 무수히 등채로 얻어맞는다. 애술이 어쩔 줄 모른다.
종훈 태자마마, 고정하시오소서. 사정이 이미 그리된 것을 어찌하겠사옵니까? 고정하시오소서.
신검 도대체 이곳에 와서 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고려왕은 도망쳐버렸고 삼년산성은 잃어버렸고.. 이 한심한 놈들은 도망이나 치자하고 있고... 이보시오, 신덕장군?
신덕 예, 태자마마.
신검 유금필이라는 장수가 온다고 합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자의 목이라도 취해 가지고 가십시다. 전열을 재정비하시오.
신덕 예, 태자마마.
신검 못난 놈들 같으니라고... 빨리 군사를 정비들 해. 어서...
두 형제 예, 총사.
신검 어이구.. 어이구... 다잡은 고려왕을 놓치다니.. 어이구..
씬 길가 숲속
왕건들이 숲가 밭 뚝을 숨어서 오고 있다.
무 아바마마, 백제의 태자들과 애술이라는 자가 신검 태자가 있는 쪽으로 갔다면 성 쪽에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옵니다.
왕건 글쎄다.. 사정을 알 수가 없으니 어이할꼬..?
최지몽 폐하, 저기... 저기 군사들이 오고 있사옵니다. 고려군이옵니다.
모두들 최지몽이 가리키는 쪽을 본다. 유금필과 윤신달이 기를 앞세우고 오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다..
씬 그 길
그렇게 오고 있는 유금필들이다. 어느 만큼 오다가 그들은 말을 멈춘다. 유금필은 그만 입이 딱 벌어진다. 길가로 나서는 세 사람, 최지몽이 유금필의 군대를 서라고 손짓하고 있다. 불쌍한 모습의 왕건부자가 그렇게 서 있다.
유금필 폐하.....?
왕건 .............?
유금필 (말에서 내려선다) 형님 폐하...? 무사하셨사옵니까? 신 유금필, 폐하께서 곤경에 처하셨음을 알고 급히 가고 있는 중이었사옵니다. 무사하셨사옵니다, 폐하... 폐하....
왕건 ............? 면목이 없네, 아우... 면목이 없어.
유금필 형님폐하...
<164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