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면!”
보통의 하루에 감칠맛 한 스푼 더하는 슬기로운 식탁 생활
우리가 가장 자주 하는 인사말 중 하나가 아마 “밥 먹었어?”일 것이다. 헤어질 때나 전화를 끊을 때도 “다음에 밥 한번 먹자”가 마지막 인사가 되곤 한다. 혹여 상대가 ‘입맛이 없다’고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이렇게 밥에 진심인 민족이 또 있을까? 우리에게 먹는 일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의 척도가 된다. 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떻게 먹는지만큼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제각각 나름의 먹부심으로 무장한 열두 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요즘 사는 맛’에 대해 들려주는 이 책은 이처럼 중요한 ‘먹는 일’에 담긴 의미를 다양한 시선에서 맛보여준다. 토마토와 치즈, 요거트 등 좋아하는 식재료에 대한 찬가부터 어린 시절을 장식해준 맛있는 한 그릇,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따뜻한 한 끼, 힘겨운 시절을 지나며 더욱 그리워지는 오붓한 식탁까지……. 때로는 힘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추억이 되고 때로는 다짐이 되는, 한 끼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읽는 이들에게 유쾌한 공감과 즐거운 허기를 선물한다.
“우리, 같이 먹을까요?”
배달의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가 전한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한 끼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쌓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배달의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가 연재를 시작한 푸드에세이 ‘요즘 사는 맛’은 다양한 분야의 여러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맛깔스러운 음식 이야기를 전한다. 기꺼이 자신들의 먹고 사는 일상을 공유해준 여러 작가들 가운데 특별히 김겨울, 김현민, 김혼비, 디에디트, 박서련, 박정민, 손현, 요조, 임진아, 천선란, 최민석, 핫펠트 작가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김겨울 작가의 딸기와 김현민 작가의 바나나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 김혼비 작가의 사리곰탕면과 디에디트 에디터의 카나페에 담긴 따스한 추억, 박서련 작가의 철원 오대미와 박정민 작가의 아침밥에 대한 자부심, 손현 작가의 오믈렛과 요조 작가의 컵라면 이야기가 선사하는 나눔의 기쁨, 임진아 작가의 초코 타르트와 천선란 작가의 르뱅쿠키로 만나는 요즘 시절의 맛, 최민석 작가의 팟타이와 핫펠트 작가의 푸팟퐁커리로 엿보는 방구석 세계여행의 설렘……. 이 외에도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맛을 뽐내는 12인 12색의 미식 라이프를 읽노라면 매일같이 마주하는 한 끼의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되새기게 된다. 어쩌면 행복은 우리 앞의 작은 요거트볼 안에. 달달한 밤식빵 안에, 따뜻한 수프 그릇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은 한 끼에 어떤 이야기를 쌓고 있을까요? 먹고 사는 일에 언제나 진심인 열두 작가님들이 들려주는 가장 평범한 일상이면서 가장 특별한 식탁 위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책을 덮고 마주하는 여러분의 첫 식사가 조금은 달리 보이길, 대충 때우는 한 끼가 아닌 나를 챙기는 따뜻함으로 자리하길 빕니다. 결국 모든 건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니까요..”
_ 〈들어가는 글〉 중에서
토마토의 멋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여름날 숭숭 썰어 설탕을 뿌려 먹는 토마토 말고도, 다이어트 할 때 고생고생하며 먹는 방울토마토 말고도, 새콤달콤해 호불호가 갈리는 토마토 주스 말고도, 토마토가 얼마나 멋진 일들을 할 수 있는지 말하고 싶다. 세상에 이렇게 축복 같은 식재료가 있을까. 지금 나는 진심이고, 토마토만 있으면 무적이다. 그 이름은 토마토, 거꾸로 해도 토마토.
--- 김겨울, 「그 이름은 토마토, 거꾸로 해도 토마토」 중에서
내가 컨디션 난조를 보일 때면 정화는 물었다. “지금 뭐 먹고 싶어?” 그럴 때면 이상하게 단순한 유부초밥이 떠올랐다. 새콤달콤한 탄수화물 덩어리. 속 재료는 볶은 애호박이나 당근과 같이 요란하지 않은 것으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으면 정화가 투덕투덕 밥을 뭉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돌려 보면 어느덧 밥상에는 유부초밥 산이 솟아 있었다.
--- 김현민, 「남이 해준 밥의 힘」 중에서
사는 게 지나치게 복잡하고 고단하게 느껴져 유치함에서 흘러나오는 천진한 힘이 필요한 날이면 우유에 시리얼을 붓는다. 그 한 그릇 속에는 나의 유년이 담겨 있다. 이제는 원한다면 언제든 과자를 먹을 수 있는 성인이지만 시리얼을 먹을 때만큼은 어린애의 마음으로 돌아가 “우와! 아침부터 과자 먹어!”를 외치고는 신나서 현관을 나서는 것이다. 그런 날은 대개 괜찮고 괜찮다.
--- 김혼비, 「어쩌면 이건 나의 소울푸드」 중에서
관광객으로 가득한 유서 깊은 노천카페에서 15유로쯤 주고 어니언 수프를 주문했다. 내가 프랑스 사람이라면 매일 이것만 먹겠다 싶을 만큼 감동적인 맛이었다. 재밌는 건 그 뒤로도 여러 번 프랑스에 갔지만 파리의 젊은이들이 어니언 수프를 먹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 카페 드 플로르에서 어니언 수프를 먹던 건, 한국으로 치면 하동관에서 곰탕을 먹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 디에디트, 「 첫 양파 수프의 맛」 중에서
나는 돌잡이 때 명주실과 연필을 잡았다고 한다. 오래 살라고 둔 명주실과 공부 많이 하라고 둔 연필을 잡고도 잔병치레 많고 편식이 심하고 공부보다는 공상에 더 관심이 많은 나를 양친은 매우 오랫동안 걱정하셨는데, 어쩌면 나는 오래 살며 공부를 많이 하려는 게 아니라 명주실 같은 흰 소면을 연필 같은 젓가락으로 건져 먹는 국수 러버가 되려고 그 둘을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 박서련, 「면식의 흐름」 중에서
엄마는 늘 말한다. 아침 안 먹고 야식 먹으니까 그렇게 배가 나오는 거라고. 하지만, ‘엄마, 모르는 소리 하지 마요. 난 지금 아침도 먹고 야식도 먹어요. 이따가는 떡볶이 시켜 먹을 거예요. 새벽 1시에요. 그리고 엄마가 그랬잖아요. 우리 정민이 살만 찌면 참 좋겠다고.’
그렇다. 난 지금 효도 중이다. 서른다섯 살 먹고 이제야 효도다운 효도를 한다.
--- 박정민, 「아침밥」 중에서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를 방랑하며 한때 극한의 자유를 누렸던 자유주의자는 요즘도 오믈렛을 만든다. 이제는 우리 집 부엌에서. 아내와 다툰 다음 날에는 화해의 제스처를 건네기 위해, 가끔 집에 놀러 오는 손님을 위해, 오믈렛 만들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요리한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완벽한 오믈렛을 만들 수 있을까’에 집착했다면, 이제는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잠시나마 좋은 기분을 느끼길 바랄 뿐이다.
--- 손현, 「오믈렛 프리덤」 중에서
며칠 동안 한라산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주변에 열심히 말하고 다녔다. 자랑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무척 괴이했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마다 왜 그러냐고 걱정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해야만 했다. 내 말을 들은 사람 중에도
한라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한결같이 다음과 같은 말로 그때를 회상했다.
“거기서 먹은 컵라면이 진짜 끝내줬었지…….”
--- 요조, 「가장 중요한 등산 장비」 중에서
얼마 전 SNS에 ‘아침에 먹은 빵’이라는 짧은 글과 함께 빵 사진을 여러 개 게시했다. 후딱 차려낸 한 그릇의 빵 아침들은 작업물을 게시할 때보다 ‘좋아요’도 많이 눌리고 댓글도 꽤 많이 달린다. 그중 웃음이 번진 댓글 하나.
“역시 음식에 진심인 좋은 분.”
최근 먹은 아침 사진을 게시한 것뿐인데 좋은 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나 먹는 것에 진심인 건 맞다.
--- 임진아, 「먹는 기쁨이 자리하는 순간」 중에서
르뱅쿠키를 먹으며 내가 다시 뉴욕에 온 이유를 상기했다.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맛이었다. 힘든 것도, 아픈 것도, 길을 잃어서 조금 서러운 것도. 그 쿠키가 위로해준 거였다.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은 전부 특별하겠지만 유독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음식이 있다. 그때 르뱅쿠키는 내게 뉴욕 그 자체였다. 요즘 나는 힘들 때마다 센트럴파크에서 르뱅쿠키를 먹던 때를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보다는 힘들지 않다는 생각으로. 또 하나는 지금 고생해야 또 뉴욕에 가서 르뱅쿠키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 천선란, 「 뉴욕에서 르뱅쿠키 먹을 날을 기다리며」 중에서
지금도 볶음밥을 자주 먹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의 언덕에 숟가락을 푹 찔러 넣은 다음, 그 수북한 숟가락을 입안에 바삐 털어 넣는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춥고 매몰찬 세상에 적어도 볶음밥의 열기만큼은 여전히 나를 달래주는구나, 하고 느낀다. 그럴 때면 몸에는 탄수화물이, 마음에는 안도감이 공급된다. 그리고 대개의 인간이 그러하듯, 시험 범위조차 헷갈려서 헤맸던 때의 감정도 함께 들어온다.
--- 최민석, 「 적어도 볶음밥의 열기만큼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