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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교 2명 등 서한 발표
산타페 대교구의 존 웨스터 대주교(왼쪽), 렉싱턴 교구의 존 스토우 주교. (사진 출처 = NCR)
미국에서 주교 2명과 여러 가톨릭 단체가 인권단체인 ‘인권운동’(HRC)과 더불어, 성전환자(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며 그들의 존엄을 옹호하는 서한을 발표했다.
이 서한에서 이들은 “인간 존엄의 옹호는 우리의 세례에 따른 최고의 소명들 가운데 하나”라며, “또한 우리는 차별과 폭력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하도록 성령에 의해 힘을 얻는다”고 밝혔다.
이 서한은 <NCR>에서 처음으로 공개됐으며, 서한이 발표된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다.
서명자에는 존 웨스터 대주교(산타페 대교구), 존 스토우 주교(렉싱턴 교구)와 예수회 대학협의회 회장인 마이클 개런지니 신부를 비롯해 미국 가톨릭사제회와 예수회 자원봉사단의 지도자들이 참여했다. 가톨릭사제회와 예수회 자원봉사단은 단체로도 서명했다.
서한은 HRC가 수집한 2020년 자료를 인용해, 미국에서 성전환자와 본인이 가지고 태어난 성에 동의하지 않는 자(Gender-nonconforming)에 대한 살인 사건이 44건이 넘었고, 피해자 대부분은 흑인 또는 라틴계 성전환 여성이라고 서한은 밝혔다.
HRC에 따르면, 유색인 성전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성전환 혐오, 동성애 혐오가 교차 작용한다. 즉 이들은 안전, 주거, 일자리, 보건을 비롯한 여러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서한은 “가톨릭 지도자이자 평신도로서 다시금 차별이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는 더 많은 가톨릭 지도자가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의 인간성을 강조함으로써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톨릭 교회에는 성전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과 행위의 역사가 있다. 2019년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은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라는 문서를 발표했다. (역자 주: 창세기 5장 2절의 문구다. 번역본은 https://cbck.or.kr/Documents/Curia/Read?doc=20190180&doctype=1&org=G0009&gb=T)
이 문서에서 가톨릭교육성은 성전환자들의 의도를 공격하면서 성정체성이라는 범주 구분은 “‘본성’(다시 말해,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와 행동에 앞서는 토대로서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이라는 개념을 무효화하려는”(목적)이라고 했다. (역자 주: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은 여성, 남성, 성전환 여성, 성전환 남성, 제3의 성(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 본인이 가지고 태어난 성에 동의하지 않는 상태(Gender-nonconforming) 등으로 나뉜다. 이와 달리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은 이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남성 동성애자, 여성 동성애자 등으로 나뉜다.)
이 문서는 간성(intersex)과 성전환자 정체성을 잘못 뒤섞으면서, 둘 다 “남녀를 구성하는 성적 차이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이며, “남성성과 여성성의 모호함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역자 주: 간성(間性)은 염색체, 성호르몬, 성기 등에서 남성과 여성을 같이 가지고 있거나 둘 다 아닌 경우를 말한다.)
가톨릭계의 성소수자 지지 단체인 “새로운 길 사목”은 이 문서를 “성전환자뿐 아니라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등도 억압하고 해치는 데 쓰일 수 있는 해로운 도구”라고 규정했다.
2018년 뉴욕에서 한 사람이 성전환자 깃발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NCR)
한편, 미국 주교회의는 2021년 초반 바이든 행정부가 행정명령을 내려 성전환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을 주거와 고용 차별로부터 보호한 것을 반대했다. 또한 연방정부 자금을 지원받는 각종 사업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반차별 보호조치를 확대하고, 이에 반해 종교자유 감면조항들을 없애는 평등법안을 반대했다.
인디애나폴리스 교구와 같은 몇몇 교구는 성전환자 학생이 가톨릭 학교에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성전환자이며 가톨릭 신자인 이들은 <NCR>에 자신들이 교회 공간 안에서 차별과 거부를 당하는 경우가 잦다고 말해 왔다.
그럼에도 이번 서한에서 웨스터 대주교, 스토우 주교를 비롯한 여러 가톨릭 서명자들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성소수자에 대해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한 부분을 강조했다. 이들은 편지에서 가톨릭 신자는 “모든 개인의 온전한 존엄과 인간성을 존중할 사명”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개인의 경험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그들을 차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그들이 견뎌내고 있을지 모르는 그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용인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우리는 성경에서도 성전에서도, 그 누구도 차별하라는 명령을 절대 받지 않았으며, 정의와 자비의 청지기가 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서한은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이의 고통에 무심하지 말라고 촉구한 것도 인용했다.
"우리는 누구도 버려진 이로 살아가도록 그냥 놔둘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는 (그것을 보고) 분노를, 우리의 편안한 고립에서 벗어나 인간적 고통과 접촉함으로써 변화되라는 도전을 받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존엄의 의미입니다."(68항)
이번 서한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HRC의 알폰소 데이비드 회장은 성전환자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의 위험에 처한 때에 가톨릭 교회의 윤리적 지도력이 “우리 성전환자 형제자매의 안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의 신앙에 힘을 받아서, 우리가 하나로 뭉치며 성전환자의 권리가 인권이며 이들이 보호받아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또렷이 말할 아주 중요한 때다.”
이 서한은 또한 성 보나벤투라가 모든 피조물 안에 계신 “하느님을 관상”하라고 한 것도 인용하며, 성전환자들도 이 피조물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성전환자들은 늘 우리 본당 신자들의 일부였으며 자신들의 삶을 증거해 왔다.... 우리 신앙의 신비와 하느님을 더 잘 관상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우리의 성전환 형제자매들이여, 하느님의 모상이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들이 늘 알고 있기를 바랍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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