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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10월11일 주일[(녹) 연중 제28주일]
[수도회] 절대적 부를 찾아 떠나는 지혜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지혜 7,7-11
○ 제2독서 히브 4,12-13
+ 복음 마르 10,17-30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오늘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합시다.
◈ 오늘의 묵상
세례성사로 하느님께 축성된 모든 신자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부르심을 받았다는 현대의 교회
문헌들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성직자, 특히 수도자의 봉헌 생활의 고유한
특징은 과연 무엇인지 자문해 봅니다.
이에 관한 이론이나 학설을 논하기보다는 수도자로 살아가는 제가 그저
이해하는 바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의 삶 안에는 이런저런 많은
요소가 함께 있는데, 그 안에 하느님께 속해 있는 봉헌 생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몸과 마음과 가진 것 전부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 소유가 되어야 하는 삶, 곧 ‘하느님께 축성됨’이 저의 삶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어야 수도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혜에 비하면 재산도 건강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솔로몬이,
무엇보다 앞서 지혜를 추구하였듯이, 부르심에 응답하려고 다른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몸집이 커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낙타처럼 이것저것을 동시에 붙잡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마음 안에 오로지 하느님께서 자리하시고 다스리시도록 그분의 섭리에
내어 맡겨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라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고백을 하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화답송 시편처럼 우리의 날수를 헤아리면서 저마다 고유한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주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자세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께
어떤 자리를 내어드리고 있는지,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2015년 나해 10월11일 연중 제28주일
제1독서
<나는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7,7-11
제2독서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2-13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30<또는 10,17-27>
어제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8층쯤에서 아파트 청소를
해주시는 자매님이 타셨습니다. 저는 곧바로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세요.”라고 웃으며 인사를 했지요. 전에부터 먼저 인사하자고 다짐을
하고 실천하고 있었기에 이분을 볼 때마다 이렇게 인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세요.
“전에부터 느꼈지만, 목소리가 너무 좋으세요.”
처음에 먼저 인사를 했을 때는 ‘나한테 왜 이러지?’라는 표정을
지으셨는데, 자주 뵙고 또 인사를 계속 나누다보니 어제는 오히려 제게
칭찬을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만약 인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칭찬을 받을 수도 없었을 테고 기분이 좋아질 일도
없었겠지요. 그러나 인사 한 번으로 이렇게 여러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께서 승강기에서 내리는 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장님, 앞으로도 그 좋은 목소리 많이 들려주세요.”
이분의 칭찬을 들으며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납니다.
누군가의 좋은 행동을 보게 되면 즉시 칭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칭찬은 구체적이 되어야지만 상대방이 기분 좋을 수가 있답니다. 하긴
영혼 없는 목소리로 내뱉는 소리에 누가 감동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계속 잘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책에서는 말합니다.
승강기에서 만난 자매님의 모습을 통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칭찬해주고, 계속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모습에 우리의
모습도 이렇게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청년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지요. 그가 율법의 내용을 철저히 잘 지켜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만하면 충분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명령을 내리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이 부자청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으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많은
재물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따르지 못하고 울상이 되어 떠나게 됩니다.
칭찬의 말에도 구체성이 있어야 힘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에도
이러한 구체적인 실천이 있어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입으로만 말하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랑해야
한다.’, ‘사랑할 것이다.’라는 말로만 내뱉는 사랑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요?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세상의 법을 잘 지키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님께서 좋아하실 행동이 담긴 사랑이 될 때
주님을 진심으로 따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나 조건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서 나와 똑같은 영혼을 알아보았기에 사랑하는 것이다(톨스토이).
진짜 가을인가봐요. 예쁘게 단풍이 들었습니다.
칭찬에 대해
아이가 떼를 쓰거나 실수를 했을 때, 많은 어른들은 이를 고치려고 합니다.
하지 못하게 하거나, 실수가 틀렸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하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관심을 갖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가 잘하고
있을 때이지요. 알아서 척척 하는 모습을 보고서, ‘내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되겠군.’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이가 성장할 때는 바로
잘해낼 때마다 긍정적이고 상세한 피드백을 받을 때라는 것입니다. 즉,
잘 되고 있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말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이든, 학교이든, 교회
안에서든 상관없이 모든 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말하는데 익숙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세요. 누군가 내게 부정적인 말을 했을 때, ‘맞다.
지금이 바로 내가 성장할 순간이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곧바로 안색이 바뀌지요. 나 역시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성장이
가능할까요?
틀린 것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인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연히 보게 된 길거리 공연. 뜻밖의 행운입니다.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0월11일 연중 제28주일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마르 10,23)
여러분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으시죠?
만약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우리의 인생살이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십계명을 잘 실천하기만 하면 될까요?
십일조만 잘 바치면 될까요? 주일만 잘 지키면 될까요?
봉사만 잘 하면 될까요?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잘 지켜 온 젊은이에게
예수님은 다 좋은데 딱 한 가지가 부족하다 하시네요.
정작 중요한 것은 비움이라네요. 하느님 나라는 모든 것을 비우고나서
빈 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지론입니다.
그러니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가 유리합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집착이 많고
하느님 나라보다는 이 세속의 나라가 더 중요하지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시자 하느님 나라로 홀가분하게 떠나신
저의 모친을 보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뭘 그리 집착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봅시다.
부자가 아닌 것을 슬퍼하지 말고 가진 것 없음이 축복임을
기뻐하는 오늘 되십시오.
- 구속주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0월11일연중 제28주일.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17-30)
허기진 마음을 메울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참된 믿음입니다.
주님을 따른다 함은 가진 것을 내려놓는 믿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려놓음과 믿음은 결국 하나입니다.
그 누구도 내려놓는 것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내려놓지 않고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더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제대로 가기위해서는 먼저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욕망의 악순환을 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않은 일입니다.
우리 힘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생명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맞추어 잎들을 물들이고 떨어뜨리는 자연의 순리앞에서
기쁘게 내려놓고 기쁘게 나누는 생명의 질서를 다시 배웁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자신부터
내려놓는 은총의 주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절대적 부를 찾아 떠나는 지혜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나해 10월11일 연중 제28주일 마르 10,17-30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절대적 부를 찾아 떠나는 지혜
우리 삶에 재물은 필수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재물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전 세계의 1%의 부자들이 50% 이상의 부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화의 거센 바람을 타고 자본의 힘은 이제 정치권력
위에서 군림하고 있습니다. 물신(物神)주의, 자본의 우상화와 권력화
앞에 인간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참 행복, 영원한
생명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제 1독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 있었다.”
(지혜 7,11) 지혜는 곧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지혜이신 하느님 안에
머물고 그분을 차지할 때에 모든 좋은 것이 다 주어집니다. 우리가 찾는
참 행복은 재물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을 아는 지혜를 지니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담은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곧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을 지니고 있으며
능력을 발휘하는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행복해지지만, 말씀을 거절하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신명 32,47).
오늘 복음에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10,17) 하고 묻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왔다’
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열심하고 반듯했습니다. 그가 ‘달려와’ ‘무릎을
꿇고’ 질문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열망과 절박함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왔다는 부자 청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10,21) 하고 이르십니다.
부자 청년에게 부족한 한 가지는 가진 재산, 곧 자신이 의지해 왔던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으로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재물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거기에 집착하고 매이면
하느님과의 관계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곧장 불행으로 치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려면 세상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자 청년은 아마도 자신의 부가 하느님의 축복이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생각이 딴데 가 있었고 지혜롭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이 소유한 많은 재물을 포기하라는 말씀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간”(10,22)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목표는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물의 노예가 되어 진정한 자유, 참 행복을 놓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물질의 풍요 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부자 청년의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입니다.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10,29)
재물로부터 떠나 자유로워지고 가난한 이와 나누는 가난한 사람이
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본가들과 권력가들의 갑(甲)질과 공공연한 횡포,
재벌들의 볼썽사나운 상속 싸움, 재물의 소유 정도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 부유한 교회와 교회의 상업화 등이 만연해 있습니다. 재물을
절대 가치로 섬기고 거기에 애착을 둠으로써 ‘맘몬’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기는 우상에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있다가도 사라져버리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느님을 소유한 행복한 존재가 되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청주] 주는만큼 부유해진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0월11일 연중 제28주일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 10,17-30<또는 10,17-27>
주는만큼 부유해진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당신께서 허락하신 각자의 달란트를 잘 사용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중에서 재화를 어떻게 써야
할지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와 “성하신 선생님,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시며 십계명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보시며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재물이
장해물이었습니다. 재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쓸 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따랐는데 이 청년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똑같은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기쁨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슬픔이 되기도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하늘의 복을 차지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구원을 거부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사실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채우면 전체를 얻게 되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모두를 놓치고 마는 어리석음도 있습니다. 재산이
많든 적든 재산에 끌려 다니는 삶을 포기하지 못하면 근심할 수밖에 없고
또 주님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마태6,24)고 하셨습니다.
오래 전(1988년)의 일입니다만 미국 조지아주의 자동차 수리공
‘풀 쿠니’라는 청년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복권이 당첨 되었는데 우리
돈으로 240억원의 당첨금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불행 끝’, ‘행복시작’
이라며 부러움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저는
여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하고 성실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돈은 쿠니를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1년 후 자신이 일하던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고 아내가 일하는 도너츠 가게도 인수하여 사장이 되었습니다.
돈을 물 쓰듯이 하며 즐기다가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고 부부는 이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빚을 지고 옛날보다 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쿠니 뿐만 아니라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90%이상이 실패한 삶을 산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일확천금이 복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화를 몰고 왔습니다.
한국에는 ‘졸부’가 많다고 합니다. 졸지에 부자 된 사람들입니다.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가 보상을 받은 사람,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그야말로 횡재한
사람들이 있는 데 결국은 가정파탄이 일어나고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없던 돈이 생겼으면 더 행복해야 하는데 더 불행해
졌습니다. 그것은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부자간, 부부간, 친지, 이웃간의
관계를 다 잃고 만 경우가 허다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참으로 물질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잠시 관리하는 것뿐입니다. 잠언 30장 8절에서 9절을 보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십시오. 먹고 살 만큼만
주십시오. 배부른 김에 야훼가 다 뭐냐? 하며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하여 하느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은 물질에 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돈이 있다고 말하지만 돈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물질적으로
갖지 못한 것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고향에는 두개의 큰 호수가 있는데 북쪽에는
갈릴래아 호수가 있고 남쪽에는 사해가 있습니다. 두 호수는 요르단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계속 요르단강 쪽으로 물을
흘려보냅니다. 따라서 물이 항상 맑고 깨끗합니다. 그러나 사해는 계속
받기만 하고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나누어 줄 때 새로운 축복이 밀려들어 오는 것입니다.
신비롭게도 주면 줄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주는 만큼
부유해집니다. 그러나 쌓아 놓으면 쌓아놓을수록 줄 것이 없습니다.
"똥은 뿌려지면 거름이 되지만 쌓아 놓으면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쌓아놓으면 썩게 마련입니다. 먼저 많이 받고 그 다음
주겠다고 생각하면 평생 주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아홉을 가지고 있어도 부족하고 열을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루카6,38).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 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이 세상에
부자로 사는 사람에게 명령하시오. 교만해 지지 말며 믿을 수 없는
부귀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이르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셔서 즐기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1티모6,7-10.17)라고 말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주 만물을 창조 하시고 인간이
그것을 부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실히 일해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모두 부자 되시고 물질의 풍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만 미련한 부자는
되지 마십시오. 루가 복음 12장 13절 이하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많은 소출을 얻어 창고에 잔뜩
쌓아놓고는 말합니다. “내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눔, 베품에
익숙해지기를 바랍니다.
영국 런던의 한 신문사에서 '돈은 무엇인가?' 에 대해 현상공모를 했는데
신문 파는 소년이 당선되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돈은 천국 외에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계적인 여행권입니다. 또 돈은 복을 제외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공급자 입니다”. 돈으로 천국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은총을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돈을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마르10,21)하신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재물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잡아두는 것, 우리의 집착일 수도 있고 권력이나 명예, 취미나
활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아 주님께 나아가는 데
장해물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부족한 한 가지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부자가 되데 현명한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부를
소유하는 자가 되지 말고 관리하는 사람이 되시고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시는 현명한 부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현명한
부자가 받게 되는 상급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여자들이 보는 남자랍니다
1.착하고 돈 없는 남자는 ; 불쌍하데요.
성질머리 더럽고 돈 많은 남자는 ; 사업가 기질이 있군!
2.똑똑하고 돈 없는 남자는 ; 재수 없대요. 짜증난답니다.
머리가 나쁜데 돈이 많은 남자는 ; 역시 돈 버는 머리는 따로 있어!
3.검소하고 돈 없는 남자는 ; 멍청하다
허영 덩어리고 돈 많은 남자는 ; 허영에 동참해야지!
돈에 눈멀지 마십시오! 재물에 지배당하지 말고 재물을 부리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늘 행복하니 죄송할 뿐입니다.
가톨릭의 수도생활(수녀 수사)은 복음삼덕 생활을 서약해야 됩니다.
복음삼덕은 정결 순명 가난이며 성직자(신부)는 정결과 순명만 합니다.
성직자는 가난을 서약하진 않아도 권고사항으로 이를 순명하며 삽니다.
하느님 사랑으로 정결 이기고 부족한 인간이기에 순명하며 삽니다.
먹고 자고 약간의 용돈으로 기본생활하고 그 이상은 나누면 됩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주셨고 모든 사람을 형제로 주셨으니 늘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르코 19,21)”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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