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초입에서 내 마음같은 벽화를 만났다
ㅡ즐겨 보세요 대학가 주변의 특징이 보일 거예요
여기가 경희대 주변 골목인 건 아시지요?
기억해주세요
인생이 굴러가는 과정을 그렸어요.
꽃섬에서 온 아기는 꽃물들어 태어나지요.
벽화 앞에 자전거 보관대가 있어요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지요. .
바퀴는 타는 게 아니라 굴리는 걸 인지하는 시기예요.
유치원 갈 때가 큰 변수인가 봐요
엄마 무릎을 떠나는 시기니까요
일차 성장이지요
이 즈음이면 무엇이든 어렴풋이 알아채요
온통 무지개빛으로 채색되지는 않아요
어둡고 아프기도 하거든요.
세상이 은근히 맵더라고요. 그러나 뭐 맷집이 생기는 초기니까 견뎌내야지요.
처음으로 성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시기이고요.
사회성이 자라는 시기라서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극에 달하지요
친구가 엄청 중요하고 이성 친구도 진지하게 사귀는 편이지요.
결혼도 약속해요. 반지도 나누어 끼고요. 엄마보다 이성친구에게 더 진하게 반응하지요.
엄마가 서운해지는 시기거든요.
꽃섬을 등지고
검은 사각모를 쓰기 위해
시간의 바퀴를 굴려야 해요
아직은 사춘기
반은 성인 반은 어린이로 혼란스럽지요
앳된 티를 안 벗어도 대학생을 바라보아야 하거든요
세발자전거나 보조바퀴는 진작 졸업했고 사이클로 달리고 싶어요
쾌속을 즐기고 싶고 어디론가 마구마구 가고 싶어지지요
어른들의 사랑이라는 잔소리와 깊은 관심 속에서 사각모를 쓸 때까지
페달을 밟아야 해요. 바퀴에 불이 나던가 말던가요.
마음에 잡초가 무성할 때이지요
그래도 거쳐야 하는 길이니까 마음이 조금 검지요
뭐 우울하다고만 말할 수 없어요
모든 능력이 씨앗 맺어 나로 살아야 하니까 흐리므리해서는 곤란해요
다시 분해되어서 야무지게 어른으로 펼치면서 살아야 하거든요
골목의 벽화를 감상하며 점심시간을 기다려서
치과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약을 타야 해요
병원에 간 게 아니라 신선한 변화를 즐기러 온 것 같지요
* * *
입 벌리기가 힘들어서 병을 키우지 말고 초전에 잡자고 마음먹고
대학병원 치과로 갔다. 진단 결과, 턱 디스크라고 한다. 음식을 한쪽으로 씹은 결과다
치료법을 정하기 전에 정밀검사를 마쳐야 했기에 뼈 검사와 mri ct 등 100여만 원이 들기는 하지만
특정한 장기의 병이 아니라 위로를 받고 치료에 임하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여행 가듯 느긋하게 마음먹고 경희대 주변의 골목을 샅샅이 뒤지며
글감을 찍고 꼬미 꼬미 음식점을 알아두었다.
첫날은 등꽃이 핀 캠퍼스에 앉아 한가롭게 꽃 멍을 즐기고
돌솥 비빔밥을 맛나게 먹었다.
둘째 날은 젊은이들 속에서 부대찌개를 먹으며 창 밖을 감상하였다
모두가 대학생들이다. 즐겁다. 주인아주머니도 즐긴다.
아침이면 유치원의 산책 프로그램이 있는데
창 밖으로 원아들이 무리 지어 걷는 것을 보는 게 즐겁다고 하였다
그 여인은 기다릴 것 같아 보였다.
그런 말 자체가 나는 행복하였다.
노인들은 잘 웃지 않고 불평 걱정이 많아서 재미가 적다.
찻집에서 아포가토와 라테를 시켰다
노천카페의 나무 아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엿듣는 것도 즐겁다.
계산을 하자 두 개의 도장을 찍은 쿠폰 카드를 주기에 옆 테이블에 주었다.
우리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고 했더니 일행이 일제히 일어나 합창하듯 감사하다고 한다
갑자기 행복해졌다. 그런 정도로 이렇게 감사를 받아도 되나 할 정도로 격하게 피드백해 주었다
지나가는 학생들 보기도 재미나고 다양한 옷차림 보는 것도 즐겁다.
병원에 다녀온 것 같지 않고
이태리 여행길에 오래된 골목길 투어하고 온 것 같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남편도 그렇다고 한다.
아프지 않아도 다음번에는 홍대와 그 일대를 즐겨보자고 하였다.
죽을병도 아니고 보약 먹은 셈 치자고 했다.
치료도 마음먹기에 따라 여행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