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 여인 룻
룻기 1:19-22(1-22)
룻기서는 소설 같은 이야기 같지만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과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소돔성이 유황불로 멸망 당할 때 여호와께서 두 천사를 보내셔서 롯과 롯의 아내와 두 딸을 이끌려 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었음으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대를 이어갈 후손이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두 딸은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큰딸이 아버지 롯과 동침하여 낳은 아들 모압은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작은딸이 낳은 아들 벤암미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창19:37,38).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엘리멜렉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은 요단 동쪽에는 물이 풍부한 초원이었습니다.
모압에 들어간 엘리멜렉은 죽고 아내 나오미는 모압 여자 오르바와 룻을 아들 말론과 기룐의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십 년쯤에 두 아들이 죽고 나오미와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 남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말을 듣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며느리들에게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하며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두 며느리는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다’라고 소리 내어 울며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딸들아 돌아가라’(11,12)고 말했으나 며느리들은 돌아가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13)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는 말을 듣고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그의 시어머니를 붙좇았습니다(14). 두 며느리의 대조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두 가지 말을 했습니다.
첫째는 나는 늙었으니 너희의 남편 될 아들을 낳을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늙은 시어머니와 함께 가는 것은 희망도 없을 뿐 아니라 불행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여호와께서 나를 치셨다는 신앙적인 고난을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치셨다’고 말한 것은 며느리들의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시험하고자 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모압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은 죄악 세상에서 여호와의를 섬기는 신앙의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신앙의 공동체는 견디기 어려울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13)는 말을 듣고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붙좇다’는 말은 ‘붙잡고 늘어지다’는 뜻입니다. 룻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친밀함을 의미합니다.
나오미는 붙좇는 룻에게 ‘오르바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으니 너도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15).
나오미가 말한 ‘오르바는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의 신으로 돌아갔다’는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라고 말한 것을 시어머니가 진정으로 오르바처럼 룻에게도 돌아가기를 바랬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룻의 태도가 단순히 시어머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니면 여호와를 향한 신앙 때문인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가 오르바를 떼 내어 보내려고 했다는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와 오르바의 고부간의 관계에서 볼 때 오르바는 나름대로 시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가 오르바가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간 것을 말하며 룻의 신앙을 시험해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어머니의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룻은 신앙적인 고백을 말하며 돌아가지 않을 것을 말했습니다.
16-17절까지 룻의 신앙고백입니다.
시어머니를 향한 룻의 뜨거운 애정과 여호와를 향한 룻의 확고한 신앙의 엄숙한 고백이었습니다.
룻은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다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어머니가 유숙하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유숙하다’란 말은 불편한 상태로 밤을 지낸다는 의미입니다.
룻은 어떤 위험과 고난도 어머니와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말한 것입니다.
더욱 감명 깊은 말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룻의 신앙고백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이 같은 신앙고백을 함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룻이 결심한 신앙고백은 첫째, 시어머니와 함께 가려고 한 결심이었으며, 둘째, 나오미와 함께 기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셋째,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될 것을 결심했으며, 넷째, 룻은 아오미의 신앙을 따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섯째, 롯은 나오미와 같은 무덤에 장사되어 묻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16,17). 룻의 엄숙한 고백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룻의 더욱 강력한 호소는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7)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은 히브리인들의 가장 강력한 호소인 동시에 가장 무서운 맹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한 룻의 신앙은 후에 베들레헴의 유력한 보아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2:12)라고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10년 전에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였던 엘리멜렉 가문의 귀향은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금의환향이 아니라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남편과 두 아들까지 잃은 채 이방 여인 룻을 데리고 돌아온 나오미의 모습을 보고 ‘이이가 나오미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들에게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20)라고 말했습니다.
‘나오미’란 ‘감미로운’이란 뜻의 이름입니다. 반면에 ‘마라’는 ‘괴로움’, ‘쓰라림’이란 뜻입니다.
나오미는 이전에 이스라엘을 떠났던 동기를 회상하면서 새로운 이름으로 ‘마라’라고 불려지기를 자청했습니다.
나오미의 과거 생활은 행복하였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름조차도 마라(괴로움)라고 말할 만큼이나 큰 슬픔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20).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혔다’는 말은 나오미의 고난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고난도 주님께서 나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풍족하게 나갔다가 비어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21).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고 비어 돌아왔지만 ‘모압 여인 룻’을 데리고 왔습니다.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곧 바로 보리 이삭을 줍기 위해서 밭으로 갔습니다. 룻이 가서 이삭을 줍는 그 밭이 베들레헴의 가장 유력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성경은 ‘우연히’(2:3)라고 말했지만 ‘우연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룻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마침 보아스가 이삭 줍는 룻을 보았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아들을 낳고 이름을 오벳이라 불렀습니다.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습니다(4:13,17).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4:22)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벧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1: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압 여인 룻’의 이름이 다윗 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려졌다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압 여인 룻’은 우리 모두를 상징합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의 ‘모압 여인 룻’입니다.
룻이 이삭을 줍던 보아스의 밭은 오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것을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지켜보십니다.
죄중에 버려진 우리를 최고의 유력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찾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다윗 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려진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나라 생명책에 올려져 있습니다. 무한한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려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오시는 그날에 모압 여인 룻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삽시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삶에도 여백의 공간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삶에 여백이 클수록 사랑과 행복을
넉넉히 채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