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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수필가 월산 윤항중
33년 직업군인의 길을 청산하게 되면서 틈틈이 모아온 글을 ‘수상록’으로 출간한 것이 영광스럽게도 국방 진중문고(351호. 아들아! 나는 청춘을 군인으로 살았다!)로 선정되었는데 그 책에 수록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제목의 내용을 읽으신 이성원 회장께서 내게 보내주신 격려의 글이 오랜만에 눈에 띄기에 여기 참고적으로 소개하고져 한다.
윤항중 장군님 앞 !
‘사랑할때와 죽을때’는 原作의 比가 아닙니다. 苦惱하는 少年 將校의 모습이 너무 리얼합니다.
그랬었군요. 派越 將兵의 苦痛이 그렇게 까지 무서웠으리라는 것을 처음 느낍니다.
或間 國立墓地에 들르는 일이 있으면 , 내 나이또래로 6.25때 희생된 이들, 그리고 越南에서 散花한 이들을 보며 마음에 未安함을 느낍니다.
지금 살아남은 우리가 아무리 自己犧牲하는 일을 해도 못 따라간다는 自愧心을 느낍니다.
南侵 보도가 있은 2.3일 후, 人民軍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中央廳에 나가보았더니 옥상에 人共旗가 꽂혀 있더군요.
아아! 내 인생은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가방을 챙겨서 忠北 고향집으로 내려가면서 이제 우리식구는 영낙없는 白系 로서아人이 되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外國人이라고는 우리나라에는 解放 때 진주한 美軍 빼놓고는 忠武路에서 조그맣게 가게하는 白系 로서아 人밖에 없었고, 그들이 共産革命으로 로서아에서 쫓겨나 世界各地에 流浪하는 옛 帝政 로서아 貴族이란 얘기를 들었섰습니다.
韓信 장군같은 분을 참 軍人이라 하더니 윤장군 님도 타고난 軍人같습니다.
氣絶하고도 끝까지 버티는 축구시합이며 스스로 死地에 뛰어드는 無怯, 어떤 危機 狀況에도 泰然한 沈着. 將軍같은 분이 계셔서 우리가 이렇게 平和속에 살아가나 봅니다.
高三시절 꽁트를 보면 平和시절 태어났더라면 文人으로 大成 하셨을찌도 모릅니다.
外祖께선 윤장군 님의 氣魄에 따님을 주셨겠지만 師母님은 文章에 惑하셨는지도요.
이제 나라위해 할 道理를 다 하였고, 賢明하신 師母님 덕분에 남이 부러워 할 家庭을 이룩하셨고, 주위 모든이에게 힘 닿는데 까지 도움되기를 힘쓰셨으니 무슨 未盡함이 마음에 있겠습니까?
다만 少年시절 부터의 악바리 根性에 밝은 人情機미, 일 꾸미기를 좋아하는 活動性, 남을 돕고자 하는 人情, 어떤 難關에나 挫折할줄 모르는 不屈의 氣像. 나라가 윤장군 님을 손놓은 것은 모두를 위해 큰 損失이나 사람의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더 큰 쓰임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年富力强의 人生 第三期(Third Age)를 맞아 더욱 알찬 結實 있으시기를 祈願합니다.
自傳에세이 “아들아! 나는 청춘을 군인으로 살았다!” 의 出版을 祝賀드립니다.
윤장군 님을 도와 國家防衛의 內助를 다 하신 師母님께도 感謝의 말씀을 두립니다.
一九九五年 六月 二十六日
한국 청소년 도서재단 이사장 李 星 遠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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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 베트콩과 최초의 접전(사랑할 때 와 죽을 때)
1967년 초겨울의 어느 날 오후. 나는 몹시 우울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서울 명동의 극장가를 찾았다. 시무룩한 나를 위로하고자 찾아온 그녀(지금의 아내)와 함께 『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영화는 레마르크의 소설을 영화한 것으로, 2차 세계대전중 전쟁의 포연과 주검으로 뒤덮인 러시아 전선에서 전쟁과 전쟁의미래에 대해 절망에 빠진 어느 독일병사의 고뇌와 사랑, 삶과 죽음은 보는이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진한 연민과 전쟁의 비참함을 밀도 있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주인공 그래버가 순수한 인간애의 발로로 처형 직전 도망시켜 준 바로 그 러시아인 포로의 총탄에 맞아 어이없이 쓰러져 가는 마지막 장면은 나의 뇌리 깊숙이 잠재해 있던 월남 정글에서의 참담했던 기억을 재현시켰기 때문이다.
“윤 소위! 자네는 오늘도 예비소대로 중대의 맨뒤에서 따라오게.”라는 중대장의 명을 받고 중대의 맨 후미에 따라 붙어서 정글을 통과하던 중 첨병 소대장 조채옥 중위(ROTC # 1기)의 실수로 또다시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다.
“윤소위! 앞으로!” 중대장의 나지막하나 힘이 실린 목소리. 이번에도 새로운 첨병 소대장의 임무가 나에게 떨어졌다. 첨병 소대장으로 지난 번 처녀작전시의 긴장감이 되살아나 덜컥 겁이나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한 현위치와 진로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중대장께 허락받은 후 이윽고 소대병력을 정지시키고나서 분대장 3명을 불렀다. “우리 넷이서 각각 동서남북으로 50 여 미터 이내 지형을 살펴본후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자.” 시행착오끝에 가까스로 정확한 현위치를 표정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하여 새로운 진로로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그마한 개울위에 걸쳐진 외나무다리를 건너가자마자 방금 지나간 듯 물기가 아직 마르지않은 두명의 맨발자국 흔적을 발견하였다. 새삼스럽게 양구지역 무장간첩 추적장면이 떠오르면서 바짝 긴장되어 마른침을 삼키며 한 걸음 한 걸음 은밀히 추적하던중 저멀리 논에서 벼이삭을 자르는 민간인 복장을 한 몇 사람을 발견하였다. (발자국의 주인공과는 별개의 인원이었던 것 같았다.)숨을 죽이고 조용히 살펴보노라니 반드시 한 명씩 교대로 일어서서 망을 보고있음을 목격하고 처음엔 추수하는 민간인인 것으로 안일하게 생각했었는데 이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수상한 생각이 들어 1분대를 우회시켜 그들의 퇴로를 차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시에 협공작전을 전개하려던 생각으로 은밀히 접근하려는데 갑자기 전방에서 “따이한!” 비명소리와 함께 “따르륵!” 베트콩의 AK 소총사격이 퇴로를 차단하려고 우회하던 1분대를 먼저 발견하고 선제기습 사격을 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 본대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게 천만 다행이었다.
“소대 공격앞으로! 사격개시! ”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응사하자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그 긴박한 상황하에서 왜 하필 고국에서의 무장간첩과의 교전장면이 또다시 오버랩되어 생생하게 떠올랐을까? 다시금 공포와 전율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잠시 엉뚱한 생각에 잠겼었다. “이것이 전쟁인가? 그리고 나는 이제 드디어 죽는가? 내가 죽으면 부모님과 그녀는 ? 내가 왜 파월 전투부대에 자원했지?.”공포와 긴장 속에 벼라별 생각을 다하면서도 정글전투를 소재로한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할 만큼 “1조 앞으로! 2조 앞으로!...” 과감한 공격을 감행했다.
우리의 막강한 화력앞에 저항을 포기한채 논밭을 지나 광활한 개활지로 이리 저리 달아나는 10 여 명의 베트콩을 향해 우회하던 1분대와 협공으로 소대의 전화력을 집중했다. 엠원 소총, 자동소총, 기관총, M79 유탄발사기 등 각종 화기가 저마다 위력을 과시했다.“탕 탕 타당 탕! 슉! 따르륵 쾅! 쾅!” 매캐한 화약연기와 피비린내속. 드디어 총성이 멎었다. 두손에 소총을 움켜쥐고 어깨로 콧등의 식은 땀을 훔치며 전황을 살피니 천우신조로 아군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고 통쾌한 승리였다. 엉겁결에 적 사살 3명과 다수의 소총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음을 알았다. 1소대장 한 장희 중위가 맨먼저 달려오더니 “윤 소위! 첫전과 정말 축하합니다. 이건 정말 큰 훈장감이요! 오늘의 전과는 윤 소위 앞으로 보고되니 그리알고 미안하지만 나에게 이 시체를 양보해 주세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스러운 생각으로 고개를 갸웃해 보이면서 마지못해 수락했더니 시체를 알몸으로 발가벗기게 한 후 신체 부위를 몇 군데 볼펜으로 O, X , ⃞ 로 구분하여 직접 표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의 소대원중 전입신병 6명을 불러내더니 담력을 키우겠다며 볼펜으로 표시된 부분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도록 한 사람씩 차례로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만류해 보아도 그를 제지할 수가 없었기에 그냥 참고 지켜보노라니 역겨움에 참다못해 심하게 구토를 거듭해야만 했었고 한 중위가 월남전선에서 적자생존의 냉엄한 현실앞에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며 자기의 정당성을 끈질기게 설득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렇게 엉겁결에 치른 첫전투는 아군의 완벽하고도 통쾌한 승리로 끝났으나 난생처음 교전을 통한 살육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나는 울먹이는 가슴을 부여잡은채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아 한참동안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윽고 중대작전이 끝나고 소대 기지로 귀환하면서 일주일 전의 일이 불현듯 생각났다.
파괴된 교량복구 작업중이던 맹호 공병 3중대의 외곽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우리 소대에게 00지역 일대를 급히 수색하라는 중대장의 명령이 하달되었었다. 나는 3개분대를 이끌고 소대기지에서 6Km쯤 떨어진 외딴 지역의 독립가옥을 수색하여 사망한지 꽤 오래된 여자 시체 1구를 발견했고 그 인접지역 독립가옥에서 80대 노 부부가 거주하는 것을 확인했으나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그냥 소대기지로 복귀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오늘, 갑작스레 베트콩과의 조우로 교전이 있고 보니 그날 보고왔던 그 노파부부가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석연치않은 그 무엇이 있을듯 싶었기에 조금전 전과를 획득한 승리의 기쁨을 뒤로한 채 소대원을 이끌고 다시 그 집을 수색했다. 이번에는 전에 없던 젊은이들의 옷이 말끔히 세탁된 채 개어져 있었고 우유빛 진액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망고 열매 한 광주리 가 또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 주위 어느 곳에도 망고 나무를 발견할 수 없었기에 결국 노부부는 젊은 베트콩과 내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은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다. 다시금 내가 죽지않으려면 적을 반드시 죽일 수 밖에 없는 적자생존이라는 정글지역 전쟁터의 냉엄한 현실윤리 앞에 나는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냥 놔 둔다면 그 후의 결과는? 분대장들을 모아 각자의 의견을 물었다. 이 충렬 하사와 김 수정 하사는 처형을 주장했고 입을 다물고 있던 김 영수 하사는 죄없는 노인네들을 차마 그럴 수는 없으니 그냥 두고 가자며 고향에 계신 노부모님을 생각해서인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심한 고뇌를 맛볼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가부간 결심을 해야만 되는 고독한 순간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노인네들의 초췌한 모습과 가슴을 조이며 소대장의 얼굴을 응시하는 수십 명 소대원의 눈길을 피하듯 고개를 숙이고 두 눈을 감은 채 나는 좀체 입을 열지 못했다. 5분, 10분, 15분..., 조금 전에 겪었던 베트콩과의 교전, 그때의 경악과 분노, ‘죽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일 수밖에 없노라’는 이율배반적인 착잡한 생각 등이 사정없이 가슴을 짓눌렀다.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에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내가 왜 군인이 되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지? 왜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해야만 하지? 내가 그토록 잔인하고 비정한 인간이었나? 제발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하나님! 어찌해야 좋습니까?’ 어쩔 수 없는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내마음 한구석에 나는 결코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기 변명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상황에 내가 취할 수밖에 없는 행위에 대한 그럴듯한 명분을 열심히 찾는 가운데 문득 육사 2학년 생도시절 하기휴가 때의 일이 떠올랐다. 고향에 내려가 친구 강 영석 군의 집을 찾아가 대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마루밑에서 튀어나온 개 한 마리가 컹 컹 요란하게 짖어대더니만 느닷없이 달려들면서 나의 왼쪽 허벅지를 무작정 물더니 놓을줄 모르고 마구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짖는 개는 물지않는다.(The barking dog seldom bites)"라는 속담도 모르는 무식한놈의 개였던가 싶었다. 엉겁결에 기습을 당한 나는 위기를 모면키 위해 순간적으로 오른쪽 구두발로 있는 힘을 다하여 개의 복부를 냅다 걷어차려던 일촉즉발의 순간에 나도모르게 번개같이 내뻗던 발길을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미개는 곧 새끼를 낳게 될 만삭의 몸이었음을 곧 깨달았던 것이다. 담배사러 나갔던 친구가 뒤늦게 나타나 “야 삐꾸! 너는 내 친구도 모르고 물면 어떻게해 이놈아! 너 이 군인한테 잘못보이면 즉각 총살깜이야 인마!” 호들갑을 떨기에 “저놈의 똥개 한번만 나한테 걸리면 즉각 보신탕집으로 끌고갈거야!”라며 사태가 수습되었고 나는 ‘개한테 물린 군인’이란 불명예를 감수하는 수 밖에 없었지만 하마터면 벌어졌을 끔찍한 불상사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했다는 게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부대복귀 후 한달동안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느라고 톡톡히 고생을 하였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래 그걸 보면 나는 적어도 잔인한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지나친 동정은 금물이다. 지금은 전쟁중, 나는 다만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나와 부하들을 지키려는 자기 방어적 행위를 하려는 것일 뿐이야. 죽여야 해! 죽일 수밖에 없어!’ 생도 때 읽었던 소설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원어로 집대성된 작품집『Modern Mind 』에 수록된 「 Coup de Grace 」란 제목의 영문 소설이었다. 절친한 두 전우가 전쟁에서 치열한 격전을 치르고 나니 한 명은 무사하였지만 다른 한 명은 치명상을 입고 극심한 고통에 처절히 울부짖는다.
“제발 나를 죽여다오!”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며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전우의 애절한 절규, 마침내 죽어가는 전우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은 그의 고통을 일초라도 빨리 줄이는 것(안락사)이라 생각한 동료는 권총을 빼어 들고 전우의 심장을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긴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실탄이 다 떨어졌음을 확인한 친구, 급기야는 전우의 대검을 뽑아 그의 관자놀이 깊숙히 꽂으며 오열하는 것이다.
왜 하필 이 괴로운 순간에 개에 물렸던 기억과 「 Coup de Grace 」가 생각이 났을까?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도 선택의 여지도 없다’
‘나는 군인이고 여기는 전쟁터, 나는 당신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시금 뇌까리면서 처형에 찬성한 두 명의 분대장에게 총살을 명령했다.
“탄알 장전!” 두정의 엠원 소총에 각각 8발의 실탄이 장전되었다.
“준비됐나?”
“네!”
“거총.”
“자물쇠 풀어.”
“사격 개시!”
“탕. 탕!”
“어이쿠!”
노파는 첫발에 심장을 관통당해 비명과 함께 쓰러졌으나 영감은 첫발이 심장을 빗겨나 무릎에 맞고 넘어져 사립문 안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더니 고개를 돌려 쓰러진 노파를 보고는 다시 되돌아 나오다가 두 번째 총탄에 머리를 맞고 노파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처참한 광경이었다(목격자의 말).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처음부터 뒤돌아 서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사격명령만을 하달했던 나!
노파의 “어이쿠!” 소리가 벼락치듯 내고막을 울려오는 바람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은 채 있는 힘을 다해 두 눈을 질끈 감고 서 있었다. 드디어 총성이 멎었다. 이윽고 처형 현장을 확인하고 사태수습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돌아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병상에 누워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때 그랬다듯이 “하나! 둘! 셋!” 죽을 힘을 다하여 기합과 함께 홱 돌아서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노파의 가슴위에 쓰러져 엎드린채 이미 숨을 거둔 영감은 미동도 하지 않았으나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이가 다 빠진 입으로 흐물흐물 누군가를 저주하며 버르적거리는 노파의 마지막 발악하던 모습을 지켜보다가 더 이상은 못 견디게 괴로운 나머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야! 전 소대원 사격 개시!”
“탕탕 타당탕, 슉! 따르륵 쾅!”
콩 볶듯이 퍼부어대는 빗발 같은 총탄이 주검에 쏟아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견디기 힘든 극심한 공포와 전율을 느꼈다.
“사격 그마안!” 사격이 멎자마자 다시금 정적이 흘렀고 시체는 이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꼴보기 싫다. 김 하사! 처치해!”
“네! 알겠습니다.”
“모두 엎드려!”
“쾅! 쾅!”
곧이어 현장은 두 발의 수류탄으로 흔적도 없이 폭파되었다. 엄청난 살륙장면이 끝나고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움직임을 멈춘 듯한 고요와 적막함이 있을 뿐이었다. 소대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핏발어린 눈동자에 광기를 발하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은 네 차례다’라고 금방이라도 나에게 총구가 집중될 것 같은 환각을 느꼈다. 두려움과 심한 혐오감이 다시금 전신에 몰려왔다.
새삼스럽게 양구지역 무장간첩과의 교전장면이 생생히 떠오르면서 다시금 전율을 느꼈으나 두 눈을 부릅뜨고 넋이 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말없이 소대원들을 바라보던 나는 몹시도 겁에 질린 채 이내 가슴속 깊숙히 북받치는 후회와 까닭 모를 서러움에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의 울음이 신호탄이 되어 병사들은 모두 땅바닥에 주저앉아 서로를 부등켜 안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목놓아 통곡하는 것이었다.
“동작 그만! 이젠 울음을 그치자. 우린 이 땅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 없다. 자, 가자!”
눈물을 거둔 채 장비를 가다듬었다. 그때 갑자기 중대장의 무전이 날아왔다. 몇 시간 전의 전과로 들뜬 기분에 중대의 잔여 병력이 개울에서 목욕을 하던 중 요란한 집중사격 소리에 놀라 우리 소대가 기습당한 줄만 알고 비상을 걸어 대기중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간략히 상황보고를 하자
“윤소위, 자네가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던가.” 라는 심한 질책에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면서 중대장마저 나를 나무랄 때는 정말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서둘러 소대기지로 복귀하고서도 착잡하기만 했으며 흥분과 긴장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복귀도중 휴식시간에 누군가 철모를 벗어 바닥에 가만히 놓는 소리에도 마치 수류탄이라도 터지는 듯 흠칫 놀라 저마다 번개같이 소총을 움켜잡고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초긴장 상태에서 나는 꼬박 하루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시금 교전중의 아비규환, 단말마적인 비명, 시체들에서 나는 피비린내의 역겨움 그리고 소대기지로 복귀 도중 벌어진 처형장면의 처참한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렸고 가슴은 월남 참전에 대한 깊은 후회와 ‘나는 살인자’라는 죄책감으로 갈기갈기 찢기우고 있었다. 이튿날 저녁 중대장으로부터 뜻밖의 무전이 날아왔다.
“윤소위, 자넨 정말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구먼.” 하며 들려준 내용은 실로 엄청났다. 오늘 오후 빈케 군청에 베트콩 지휘관 한 명이 자수해 왔는데 그는 바로 우리 소대 작전지역의 책임자였다하며 그가 자백한 바로는 그동안 베트콩들은 처형된 그 노부부를 연락원으로 하여 우리 소대의 동태를 살피고 기지 내의 상황을 정탐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소대기지로부터 13Km 떨어진 지역에 본거지를 둔 그들 베트콩 부대원 70여 명이 내일 저녁 야간 기습공격으로 우리 소대를 전멸시킴과 동시에 맹호 공병 3중대가 복구중인 교량을 폭파할 예정이었는데 어제 낮에 노부부가 사살되자 모든 것이 탄로난 것으로 짐작하고 자기만 몰래 귀순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증거물로 공격 계획서 및 소대장 천막 위치를 비롯한 기지의 공용화기 배치도 등을 내놓았단다. 빈케 군청 연락장교로 파견중인 선배(김 서환 대위)로부터 전해져온 상세한 정보였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오싹 소름이 끼쳐왔다. 만일 내가 노부부를 살려주었다면 오히려 나와 우리 소대원들이 월남 정글의 고혼이 됐을 것이 아닌가.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무릎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동안 돈이 없으면 “쌍마이 오케이?” 라는 의사소통으로 외상거래가 성행할 만큼 친숙한 사이로 까지 발전하여 별다른 경계심 없이 자유스럽게 접촉을 허용해왔던 민간인 이동주보와의 접촉을 즉각 엄금했었다.
이튿날 새벽 다량의 포사격과 건쉽을 통한 무차별 사격에 이어 그지역에 공중기동작전을 전개했던 우리 중대는 그들이 이미 도주하고 난 뒤라서 아무런 성과없이 복귀하고 말았다.
다시 영화의 한 장면이 나의 기억 속에 겹쳐진다. 끝없는 전투와 죽음의 공포,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독일 병사들이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혀 포로로 잡힌 러시아 민간인들을 눈구덩이 속에 몰아넣고 총살시킨다. 이를 보고 미칠 듯이 괴로워하는 주인공 그래버, 그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것이 이적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포로들을 극적으로 탈출시켜 주지만 결국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극한 상황들,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가장 원초적 신뢰마저 의심받는 많은 사건들, 몸소 체험해 보지 않은 자라면 결코 상상할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는 고뇌와 갈등이 거기 있었고 월남전은 내게 그걸 가르쳐 주었다.
작가 레마르크가 그토록 리얼하고 실감나게 전장 속의 인간의 고뇌를 표출할 수 있었던, 『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의 화면 속에 깊숙이 빨려들 때 살며시 내 손을 잡아 어루만져 주었기에 그때의 여인이 지금은 내 아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