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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을 위한 고난
출 1: 1--22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와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내고 평안하고 안전 할 때에 바로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다른 측면에서의 이해는 이 고난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출애굽하게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에게 갈데아 우루를 떠나라고 하셨다.
모세는 사람을 죽이고 애굽을 탈출하였다.
지금 당한 고난가운데 하나님의 큰 뜻이 있음을 찾아 보아야 한다.
1, 애굽에 내려간 칠십인
창35:22-26장의 근거로 출생의 순서가 아닌 어머니 지위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
레아의 소생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 잇사갈과 스불론과
라헬이 소생 (2)베냐민
레아의 종 빌하의 소생 (4) 단과 납달리와
라헬의 종 실바의 소생 (4) 갓과 아셀이요
2, 애굽에서 번창하는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의 번성은 하나님의 약속(창12:2;13:16;22:17;26:4;28:14;46:3)과 축복인데 그 출발지가 가나안이 아닌 애굽에서 시작되었다.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중다하고 - 건강한 나무처럼 '풍성하게 결실하다'
번식하고 - 물고기처럼 '꿈틀거리며 우글거린다' 꾸준하게 '번성하는 것'
창성하고 - 기하급수적으로 '늘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창대의 언약(창 13:14-16;15:5)
심히 강대하여 - '측량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란 뜻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9,10) 강성해진 것이다.
3, 번창하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애굽 왕
애굽 사람들은 요셉에 관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9--10)
새 왕이 요셉의 공적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박해정책을 선택하였다.
나타난 새 왕은
요셉이 활동하던 시기의 힉소스(Hyksos)왕조가 붕괴되고 18왕조의 두 번째 왕인 아멘호텁 1세(1560-1539). 혹은 세 번째 왕인 투트모세 1세(1539-1514 )로 본다.
바로의 박해 정책
1) 강력한 노동 -- 번식억제를 위하여 채택한 방법
(11)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14)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가지 일이라
2) 히브리 산파 십브라 부아와에게 남자는 죽이라는 명을 내린다.
노동정책이 실패하자 산파에게 남아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으나 산파들 이 왕의 명을 어기고 남아를 살려 두었다.
(16)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십부라와 부아의 거짓말(18-19)
(19)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이스라엘의 번성을 위하여 협력한 산파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내리셨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21)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3) 남자는 하수에 던져라.
(22)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남자가 나거든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왜 인생에게 행복이 없는가?
출애굽기 1: 1-22
하나님은 당신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출애굽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를 너무도 정확하게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내려간 것처럼 예수님도 출생시 헤롯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지나면서 구름과 물
사이에서 세례를 받은 것처럼 주님도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영적으로 훈련받은 것처럼
주님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면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팔복산에서 산상수훈을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주시는 말씀은 출애굽기 1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슴을 듣고 읽을 때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시고,
성도들에게는 사명을 되찾는 사건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보게 됩니다.
애굽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남에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명을 망각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면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그들은 오랫동안 애굽에
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보다는 애굽의 고센에 머물기를 좋아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속적인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왕을
통하여 성민이 거하는 고센의 둥지를 어지럽힌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해서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가 당하는 고통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인생에게 참된 행복이 없는가?
첫째: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행과 비극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남으로부터 시작되었습
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빛되신 하나님 과 등을 돌리는 순간 당신은 칠흑같은 어두움에 헤매게 됩니다.
공중권세를 잡은 사단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합니다.
(창세기3:15,에베소서2:2).
당신의 삶에 뜻하지 않는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서 당신을 찌르고 얽어맵니다
(창세기3:18,마태복음13:22).
당신은 탐욕의 포로가 되어 욕망의 노예로 이마에 끝없는 땀을 흘려야 하며,
수고해도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3:19, 야고보서1:15).
그러다가 종국에 가서는 멸망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비극이 왜 왔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8절)라고 했습니다.
이 왕을 아모시스 (Amosis)왕이라고 합니다. 그가 요셉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단순히 역대 명총리로 활약한 역사적인 인물 요셉을 몰랐다는 말이 아닙니
다.
그러면 요셉에 대하여 무엇을 몰랐다는 말인가?
① 새왕은 요셉이 믿는 하나님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믿는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신가?
우주를 창조하시고, 애굽과 세계를 통치하시고, 후일에 자신과 온 인류를 심판하실
하나님입니다.
② 새왕은 요셉이 속한 히브리 민족이 어떠한 민족인지를 몰랐습니다.
당시 애굽에는 많은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그 민족들 가운데 특별히 두 민족이 강했습니다.
하나는 힉소스(Hiksos)민족이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 민족입니다.
그 중에서 히브리민족은 타민족에 비하여 아주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시스 왕이 특별리 히브리 민족을 박해한 것입니다. 이 민족은 언약을 따라
강을 건너온 복의 근원을 소유한 민족입니다. 이 민족을 해하면 하나님의 진노
를 받을 것을 몰랐습니다(창세기12:1-3).
③ 새왕은 요셉의 꿈을 몰랐습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창세기37:19). 요셉속에 있었던 꿈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
르는 왕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모르니 내일과 내세와 영원한 세계가 없는
불신앙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왕이 애굽을 치리하니 애굽에
행복이 있을 리가 없으며, 이러한 왕의 박해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안
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고통을 치유할 길은 무었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을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출애굽기12:1-14).
하나님은 당신을 세상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유월절 어린양 되신 주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3:16)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11:28)고 했습니다.
그 주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게 됩니다.(요한복음1:12)
둘째: 인간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재목적이 무엇인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누려 보았던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그가 인간 노년에 생을 회고하면서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12:13)고 했습니다.
당신이 솔로몬이 고백한 이 말씀을 삼가 조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더욱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10:31)고 했습니다.
신이 먹는 일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즐기는 낙을 위하여 무었이든지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가지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상실하면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수백년 동안 애굽에서 거하면서 완전히 세속화되어 이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거처할 곳이 어디인가?
성민의 처소는 애굽의 고센이 아니라
약속의 땅 가나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명이라면 고센의 둥지를 털고 일
어나 가나안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댓가라도 치루고 지불해
야 합니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10)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거해야 함을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애굽의 바로가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속의 새왕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고센에서 지금까지 누려왔던 세속적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가나안으로 갈 수 없으며, 당신의 고통은 끝날이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감당할 사명이 무엇인가? 생명을 가진 인간은 다 사명자입니
다. 당신이 지금 소유하고 있는 생명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당신속에
있지만 그 생명이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 생명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입
니다(창세기2:7). 그가 내게 얼마를 살도록 명령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生
命)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 나라와 그의 의(義) (마태복음6:33)를
위하여 살도록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임의대로 살아서 될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말씀을 좇아 사는 것이 사명자의 삶입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
라 (사도행전20:24)고 했습니다.
그는 인생 노년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 할 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
게니라 (디모데후서4:7-8)고 했습니다. 당신은 생을 마감할 때 이러한 고백을 할
주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크고 무서운 죄악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안믿고 성령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그것의 조종자가 사단입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등지게 하고 세상을 좇게 합니다. 그 구체적인 행위가 우상 숭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광야로 부르시고 시내산에서
성문계시 십계명을 주실 때에 제일 계명에서 너는 나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애굽기20:2)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로마서1:23)바꾸게 됩니다.
인류역사상 우상숭배한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망하지 않은 사례가 없었습니나.
사단은 언제나 성민을 괴롭힙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고통
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했다
가 나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남아를 낳으면 죽이는 남아 멸종책을 내렸다가
마지막에는 애굽의 수호신인 나일강에 제물로 드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언약을 배반하는 우상숭배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 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출애굽끼1:22)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이 죄악의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당신이 살길은
이를 거부하고 출애굽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의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기로 하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중요한 것
은 당신에게 바로의 명령보다는 하나님의 계명을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신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은 당신 곁에서
보혜사로 당신을 도우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
에게로 오리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
복음14:18,26)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민의 고통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의미를 깨달으면 고난은 축복의 기회로 승
화됩니다. 수영을 할 때 파도 타는 법을 알면 파도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성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받는 고통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아가라는 신호입니다.
당신이 지금 사는 길은 세속의 애굽을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서만이 가능합니다.
당신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로 그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예수의 영인 성령이 당신의 보혜사가 되어 모든 상황에서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여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출처: 은혜로운 향기 글쓴이: 기드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