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더라도 제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 이유
[ 시민언론민들레 | 이봉수의 제주 이왁 mindle@mindlenews.com ] 2023.03.30 09:00
잊히는 게 두려운 이태원 유가족들
이봉수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바다 건너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미디어와 인문학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이봉수의 제주 이왁'은 제주인과 나의 일상에 인문학과 사회 ‘이야기’(제주어로는 ‘이왁’)를 덧실어 보내는 글이다.
지난해 12월 5일 제주도 성산읍 키아오라리조트 뒤에서 찍은 동백 울타리. © 이봉수
우리 부부를 홀린 200m 동백 울타리
제주의 겨울 풍경을 대표하는 꽃은 동백이다. 동백을 보러 겨울마다 제주에 오는 이도 많다. 5년 전부터 미디어리터러시스쿨을 설립하려고 우리 부부가 서울에서 두 시간 안쪽 거리의 폐교와 펜션을 50군데쯤 보고 다녔는데 딱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결국 2020년 겨울 제주 출신 제자의 소개로 성산읍의 키아오라리조트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데는 동백이 큰 구실을 했다. 200m쯤 되는 동백 울타리의 장관에 반한 것이다. 일단 리조트를 공동경영하다가 서울 집 등을 처분하는 대로 필요한 만큼 땅을 사서 스쿨을 짓기로 했다.
화성(수원) 신도시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다산 정약용도 후손들을 훈계하는 글에서 ‘우리나라는 도성(한양)과 시골의 수준 차이가 크다’며 ‘벼슬길이 끊어지더라도 도성에서 멀리 벗어나 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현대의 ‘시간거리’로는 서울에서 역시 두 시간이니 스쿨을 제주에 설립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화려하긴 한데 다산초당에서 본 동백은 아니네?
그러나 우리가 반한 제주의 동백은 화려하기 그지없는데도 어딘가 이상했다. 동백꽃이 이처럼 지저분하게 지는 꽃이었나? 22년 전 강진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에서 나에게 선명하게 각인된 토종 동백꽃의 인상과는 달랐다. 꽃은 대개 벚꽃처럼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집단자살’하듯 지거나 무궁화처럼 지저분하게 붙어 있다.
1주일 뒤 12월 12일 카아오라리조트 안쪽에서 찍은 동백 울타리. 위부터 겨울꽃 동백, 여름꽃 수국, 봄꽃 연산홍으로 이뤄진 3단 생울타리에 꽃이 필 때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토종이 아닌 동백은 질 때 지저분하다. © 이봉수
그런데 다산초당의 동백은 자기 의지로 자기 목을 뎅겅 자르고 죽는 것처럼 도도해 보였다. 꽃잎이 다 벌어지기도 전 한창 때 통꽃 그대로 땅이나 물 위에 떨어져 꽃방석을 이루었다. 수많은 종류의 꽃 가운데 땅이나 물 위에 떨어진 꽃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은 동백이 유일하지 않을까?
나만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 자신이 ‘낙화유수’(落花流水) 같은 처지였으니까. 삼성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불법증여와 자동차산업 진출 등을 줄기차게 비판하다가 <한겨레> 경제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사표를 던지고 실업자가 됐다. 가계를 책임진 사람의 ‘소신’은 가족의 고난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연봉이 줄어드는 곳으로 계속 직장을 옮겨 다니는 남편에게 마누라는 “당신의 연봉에는 반감기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때는 아예 ‘0원’이 됐다.
유학을 가려고 교보문고에서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을 사서 20년도 넘게 놓아버린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마흔일곱 중년의 듣기-말하기 실력은 좀처럼 오르지 않아 7번이나 어학시험을 봐야 했다. 이 무렵 강진에 간 목적이 18년이나 유배생활을 한 다산의 생애에서 용기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 떨어진 동백꽃이 예사롭게 보일 리가 없었다.
제주에 흔한 동백은 일본 원산 애기동백
제주에 흔한 동백이 토종 동백이 아니라 일본에서 건너온 애기동백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자생식물 연구가인 이새별 씨가 1월에 쓴 <오마이뉴스> 기사 ‘동백꽃 명소라고 해서 가보니… 솔직히 부끄럽습니다’를 보고 나서였다. 일제강점기 한국에 들어온 애기동백은 제주와 남해안 일대를 거의 점령해버렸는데 일제는 물러갔지만 애기동백은 남았다.
1월 21일 찍은 키아오라리조트의 토종 동백(맨 왼쪽)과 일본산 애기동백(오른쪽 두 그루). 애기동백은 꽃잎이 거의 다 떨어져 바닥에 쌓였는데 토종은 한 송이가 피기 시작했다. © 이봉수
1월 21일 근접촬영한 첫 토종 동백꽃. 토종 동백은 한꺼번에 피고지는 일본산 애기동백만큼 요란하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자태는 훨씬 더 곱다. © 이봉수
‘4.3의 상징’ 토종 동백이 왜 외면당할까?
동백이 4.3항쟁을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은 그럴듯하다. 토종 동백이 바람에 낙화하는 모습을 보면 억울하게 죽은 숱한 민중들, 특히 한창 때 스러진 청장년들의 이른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 극우 광풍에 목이 떨어졌지만 단아한 자태를 유지한 채 눈을 감지 못하고 가해자를 원망하듯 쳐다본다.
제주에서 애기동백은 1~2월에 다 졌지만 토종 동백은 4.3항쟁 추모기간까지 버틴다. 그럼에도 애기동백을 많이 심은 이유는 한꺼번에 피어나기 때문에 화려함을 좇는 관광객의 취향에 영합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오래 피고지는 토종 동백 한두 그루쯤은 집 울타리 안에 키우며 두고두고 감상한다.
3월 26일 비바람에 키아오라리조트의 토종 동백이 통꽃으로 툭툭 떨어지며 꽃방석을 만들었다. © 이봉수
이태원 희생자 이름 공개가 ‘패륜’?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을 때 시민언론 <민들레>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자, 보수언론은 ‘패륜’이라 비난했고, ‘진보’로 불리는 <한겨레>까지 비난에 가세했다. 정부가 명단을 감추려 했기에 피해자의 이름만이라도 밝힌 것이었지만, 과거에 가해자 가족의 신상까지 다 까발리던 기성언론이 적반하장으로 시비를 건 셈이다. 늦게나마 <오마이뉴스>와 <한겨레>가 개별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과 유가족의 처절한 삶을 조명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2007년 발생한 조승희 씨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예로 들면, 우리 보수언론은 외국 일류언론과 완전히 상반되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조 씨 누나의 명문대 학력과 이력까지 공개하며 조 씨와 비교했고, <중앙일보>는 “자신만의 내부적 악마를 키웠다”며 개인 문제로 몰고 갔다. 이에 견주어 미국에서는 보수신문인 <워싱턴포스트>도 ‘이방인 세계에서 고립된 소년’이라며 미국 사회의 문제로 부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