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호기作號記]황의찬(3학년 2반) 친구의 호는 휴암休岩
입학(1973년)한 지 50년, 졸업한 지 47년만에 3학년 같은 반 친구황의찬을 최근 자주 만나고 있다. 사실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재경6회동문회(회장 최규록) 쌍육절 설악산-하조대 소풍때였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의찬 형수를 ‘Mrs Hwang’으로 부른 게 아니고 본명인 ‘박미라’로 호명을 하니까 “몇 십년만에 내 이름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다”며 약간 울컥했던 것같다. 의찬 친구는 1982년 군대를 제대하고 전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40년째 재미교포인 셈이다. 처음에 정착한 곳이 LA였다. 6회 친구중 현역으로 ‘서울대’를 들어간 것은 아마도 의찬친구가 유일했던 것같다. 체육학과를 2년 동안 다녔는데, 이민을 가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명문대를 중퇴한 셈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는데, 한인교회에서 한국에서 유학을 온 미모의 형수(송탄 출신)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은 미국에 주저앉혔다고 한다. 텍사스로 이사를 한 부부는 의류소매업에 종사, 체인점을 여러 곳에 낼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고 한다. 1992년 휴스턴에서 주택건축으로 사업을 전환, 잘 되고 있다.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된 셈인가? 몇 년 전부터 사업을 아들내외과 딸부부에게 물려줄 생각을 굳혔다. 부부가 캠핑카로 미주대륙(알래스카에서부터 멕시코까지)를 종단하면서, 문득문득 고국이 그리웠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고국에서 ‘인생2막’을 살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임실 옥정호 부근에 있는 아파트를 10여년 전에 우연히 사놓았다. 1년에 6개월은 한국에서 친구도 만나고 고국여행도 하며 살기로 했다. 나머지 6개월은 휴스턴에서 자녀, 손주들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끄제 아침 친구로부터 남원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좋은 일이다. 그제 새벽, 이 친구에게 무엇을 줄까? 생각하다 호를 지어주기로 했다. 퍼뜩 떠오른 두 글자가 ‘쉴 休’ ‘바위 암岩’, 휴암이었다. 지어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인생2막은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의 거주지가 마침 휴스턴HUSTON이고, 한국의 거주지가 임실군 운암면雲巖面이어서 더 잘 됐다. 뜻도 좋지 않은가. 친구는 말수도 적은 편이고 바위처럼 진중한 성격이다. ‘바위 암巖’자는 쓰기가 복잡하니까, 약자격인 암岩자로 쓰면 좋겠다.
우리가 ‘쉴 휴’자로 흔히 알고 있는 휴休는 ‘아름다울 휴’‘기쁠 휴’ ‘겨를(暇, 한가할) 휴’‘물러갈 휴’ ‘훌륭할 유’ ‘넉넉할 휴’ ‘검소할 휴’로도 쓰이니, 어쩌면 그렇게 뜻마다 그 친구의 성품에 잘 어울릴까, 나도 놀랐다. 흐흐. 나무(木)는 말이 없으므로 사람이 힘들 때 나무에 기대어 힐링을 마음껏 해도 되리라. '사람 인人'자부터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람끼리 기대어 산다는 뜻이어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바위 암’의 운암의 뜻은 더 깊다. 운암면이라는 땅이름은 조선조 인조때 문신 이흥발李興浡(1600-1673)의 호 ‘운암’에서 유래됐다. 그가 이조참의를 지낼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가 화친을 요구하자 척화斥和 상소를 올린 후 벼슬을 사직, 고향에서 은거하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 전라북도 유학의 맥을 이었다고 한다. 옥정호에서 강태공처럼 낚시를 하는데, 물고기를 낚은 게 아니고 인삼을 낚아 아픈 어머니께 달여먹여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하여 그가 낚시하던 곳에 ‘이흥발선생 효행 조삼비釣蔘碑’가 세워져 있다. 비문을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수항金壽恒(1629-1689, 병자호란 척사파 김상헌의 손자)이 썼다.
작호기를 쓰지 못한 채, 그제 점심에 호를 구두로 선사하니 형수와 함께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 작호자도 친구에게 좋은 선물을 한 것같아 기뻤다. 몇 년만읨 작호기라 글이 길어졌다. 황의찬 형에게 호 ‘휴암’을 바친다. 쌍육절에 꼭 참석하고 싶어했으나 5월말 출국이라니, 아쉽다. 내년 2월이면 반드시 또 온다. 형수와 함께 하는 두 나라 6개월살이, 멋있고 부럽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