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에서 한반도를 엄청나게 요동을 치게 만들고 한반도 역사를 송두리채 바꾸게 만든 사건이 두개가 있습니다. 1950년 초 미국의 국무장관인 애치슨이 내세운 애치슨라인 즉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남한을 제외하고 일본-오키나와- 필리핀으로 책정한 사건입니다. 이는 1950년 한반도에서 세계적 내전인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하는 중대한 계기로 작용합니다. 또 하나는 바로 1905년 7월 29일 한반도를 일본에게 그냥 넘겨버린 바로 그 사건 카스라-테프트 밀약입니다.
미국은 당시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국제사회 열강들로부터도 필리핀 지배를 인정받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다른 아시아국가들을 많이 식민지화했기에 필리핀은 그다지 관심거리가 아니였습니다.하지만 미국은 당시 동남아시아로의 무력침공에 혈안이 돼 있던 일본이 마음에 걸립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러일전쟁에서 예상치 못한 극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군사적 강국 러시아를 침몰시킨 일본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미국은 시오도르 루즈벨트 (뉴딜 정책의 루즈벨트와 다른 인물) 대통령의 팽창주의에 의해 태평양 장악에 골몰하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미국은 일본에 손을 내밉니다. 일본도 청나라를 격파하고 러시아까지 함몰시킨데 이어 한반도를 장악한 뒤 아시아전역을 수중에 넣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태평양으로 밀고 들어오는 미국이 불편한 상대로 여겨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밀약을 제안하니 일본은 당연히 받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미국 육군장관인 태프트와 일본 총리 카스라가 만나 그야말로 밀약을 체결합니다.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이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반도를 편하게 요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한반도는 미국입장에서 그다지 관심이 가는 장소가 아니였습니다. 위로는 러시아가 옆으로는 중국이 위치해 있고 아래로는 일본이 버티고 있으니 미국입장에서는 한반도는 그냥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그런 국가였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인 테오도르 루즈벨트는 43살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젊은 대통령인 루즈벨트는 식민지화하기도 불편한 한반도를 일본에 넘기는 대신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는 필리핀을 택한 것입니다. 땅놓고 땅먹기식 국제적 흥정에 한반도는 희생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변국들의 횡포만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국제정세에 어두운 당시 조선의 조정에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할 역량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습니다. 주변국들이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드리고 국제정세와 국제적 외교에 나설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지만 조선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또한 당시 조선과 미국사이는 지금과는 전혀 다릅니다. 조선은 당시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와 외교아닌 외교를 진행하고 있었을 뿐입니다.고종과 민비는 러시아 청나라 일본의 간섭과 견제속에 갈피를 잡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바로 그 시절입니다. 당연히 조선과 미국 사이에 외교적 관계는 거의 없었던 상황입니다. 아마도 미국은 일본에 한반도를 건네면서 일말의 양심적 죄책감은 정말 1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2024년 7월 29일)은 그 악명높은 카스라-테프트 밀약이 있은 날입니다. 119년전 바로 오늘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다시 되새겨보는 것은 그날의 악몽을 떠올리며 분개하자는 것이 아니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교훈을 얻자는 목적 아니겠습니까.단지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흥분하고 해당국들을 미워하자는 의도가 아니고 그때 그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고 다시는 그런 말도 안되는 밀약에 나라를 빼앗기면 안된다는 뜻이 담긴 것이라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지금도 카스라-테프트 밀약은 진행형입니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이 없을 경우에는 그 밀약은 현실화되기 마련입니다. 지금 미국 대선에서는 한반도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캠프에서는 주한 미군 철수론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해리스 캠프는 트럼프의 전략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가 격렬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카스라 -테프트 밀약이 아주 먼 과거의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4년 7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