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알고 선생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했습니다. 또 그것이 불문율(不文律)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이초"에서 선생님이 극단 선택을 하는 걸
보고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구나 싶어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은 박ㅇㅇ 선생님이셨고 기계체조를
전문으로 하셨습니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와 나는 학교를 마치고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제목이 "울어라 열풍아"라는
영화인데 포스터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저 영화는 꼭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 시절에는 영화관에 학생은 들어갈 수 없는 규율이 있는지라
우리는 몰래 숨어 들어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비집고 서 있는데,
우리 앞에 턱 선생님이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선생님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놈들 봐라. 너희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라. 빨리!!"
선생님의 불호령 소리에 영화관을 나오다가 언뜻 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길래 그만 계단으로 올라가서
2층에 숨어 있다가 또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놈들이 선생님 말 안 듣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
선생님은 그 말 한마디 남기시고 그 자리를 떠나셨고
우리는 보고 싶던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조례시간에 이름을 호명하면서
"두 놈 앞으로 나와. 그리고 반장은 가서 몽둥이 좀
가져와라"
교실 뒤쪽이 대나무밭이라 반장이 대나무 몽둥이를
한아름 가져왔습니다.
"여기 엎드려"
내가 먼저 엎드렸습니다. 기계체조로 단련된 근육질 팔뚝으로
몽둥이를 후려치는데 순간 지옥으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대나무가 부러지면 또 다른 대나무로 후려치고~
내 생애에서 그렇게 많이 몽둥이 뜸질을 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입니다.
군대에서도 그렇게 맞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군대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빠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니까요.
맞으면서 옆에 친구를 살짝 보니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친구도 나와 똑 같이 맞았습니다.
다 맞고 엉금엉금 기어서 내 자리로 찾아갔습니다.
하루 종일 엉덩이가 쓰리고 아파서 바로 앉을 수가 없어서
이쪽저쪽 번갈아 가면서 겨우 수업을 다 마치고 친구의
자취방으로 갔습니다.
바깥 옷을 벗어보니 팬티가 피로 물들어 말라서 피부에
붙어 있는데 도저히 뗄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집 세숫대야에 물을 떠 와서 엉덩이를 담그고 불려서
떼냈습니다.
엉덩이는 살이 찢어져 형편이 없었습니다.
친구도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맞고도 이상하게 선생님이 원망스럽고
밉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내가 잘못했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 후 얼마되지 않아 선생님이 전근을 가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친구와 나는 전근 가기 하루 전날 시내에 가서 최고급
양과를 한 세트 사서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저녁에 선물을 들고 찾아가니 선생님은 외출하시고 없어서
사모님에게 이름을 쓴 쪽지를 선물과 함께 남기고 돌아
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학교 교정에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마산 모 여중에서
체조선수들을 데리고 우리 학교에 훈련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인사를 하니 선생님이 반가워하시며 내 손을 잡고 나무밑으로
가서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형옥아! 그때 너희들이 미워서 때린 것이 아니다. 너희들
사람 되라고 그런 것이다. 알것제?"
"네, 선생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니,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닭똥 같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나도 같이 한참을 울먹였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무슨 원망과 미움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존경과 사랑만 존재할 뿐입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순서를 보면, 임금이 맨 앞이고 다음이 스승입니다.
그리고 스승 다음이 부모입 니다.
은연중에 순서를 매겨놓았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열심히 일하고 재산을 모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다
자식을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 자식을 반듯하고
훌륭하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스승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거울은 될 수 있지만 절대로 교육시키지는
못합니다. 자식 농사를 잘 지어주는 사람은 바로 스승이란 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도 답답해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반장이 누구인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농담이지만 좀 서운했습니다.
몽둥이를 좀 작은 거 좀 적게 가져오지 않고
굵은 걸 한아름 가져왔다는 것이~ ㅎ
친구분들 더운 날씨에 건강하이소. 빠이
더나
첫댓글 박 봉제 선생님...겨울방학전 꿩사냥,몰이꾼...또,그립네.
날씨가 장난이 아니네요.한데 뽈뽈거리고 댕기지 말고 단디들 하이소.
박외식 선생님이 아이고???
그때 체육선생님이 두 분이 계셨는데,담임하신 분이 박 외식선생님이셨나요?
잘 모리고 아는체했네.죄만시럽십니더이.
@한인규 맞심더^^
ok^^
그렇게 맞고도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은 이형옥 학생은 참 훌륭한 제자네요.
근데 "울어라 열풍아"가 그리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던가베.
감동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당시로선 맞을 짓을 하긴 했네요.
요즘 같으면 오히려 선생님이 감옥 갈 일이고요.
격세지감과 감동을 동시에....
더위에 몸조심하소.
박봉재 체육선생. 우리를 "촌놈, 촌놈" 하면서 수시로 개패듯 하던 좀 더러운 선생!
난 1학년 가을 어느 오후 체육시간에 당시 나보다 좀 키가 컸던 P모가 날 자꾸 괴롭혀 조그만한 돌로 P 머리를 한방
찍어, P 머리에서 피가나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정말로 맞을 짓을 하긴 했다. 하지만 박봉재 선생은 내 빰때기를 수십대 때리고, 교무실 앞에 오후 내내 꿇어앉아 있었다.
선생들은 수시로 내 머리에 굴밤을 주고 지나갔다.
그날 저녁때 빰때기 맞을 때 싼 오줌으로 젖은 바지를 입고 거류면 용산까지 정말 더러운 기분으로 귀가하던 일을 나는 평생 잊지않고 있다.
명백한 '청소년 학대행위'였다. 당시로는 그걸 훈육이라고 했다.
좌흠이 친구는 공부도 잘했고 모범생이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훈육도 감정이 실리면 안 되겠지요
이해가 갑니다
더운 날씨에 아무쪼록 건강에 유의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