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자존심’ 한석진(韓錫晉) 목사
자유무역
한석진 목사는 1868년 평북 의주에서 출생했다.
청주 한씨, 몰락 양반의 후예로 태어나
그 시절 양반 집 아이들처럼 9세부터 한문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10년 동안 유교 경전과 중국 사서를 공부했는데,
철이 들면서 훈장한테 “왜 한국 사람이, 우리 역사보다 중국 역사를 배워야 합니까?” 하고 질문했다가 호통을 맞기도 했다.
한 때는 정치적 출세도 생각했으나 당시 상황에서 어려운 것을 알고
15세 되던 무렵부터 종교 문제에 심취하여 불교나 선도를 수행했으나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만주에서 세례받고 교인이 되어 돌아온
같은 고향의 백홍준과 서상륜 등의 전도를 받고 처음 크리스토교를 알게 되었으며
1891년 의주를 방문한 마펫을 만나 대화를 나눈 후에
개종을 결심하고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마펫은 1893년 평양 선교를 개척하면서 한석진을 조사(助事)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수구적인 평양 관찰사와 주민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성공적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선교사와 짝이 되어 일하는 초기부터 선교사가 주는 봉급을 거절하였다.
“내가 크리스토를 알고, 감격하여 그 진리를 내 동족에게 전하는데 외국인에게 돈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논리였다.
그는 처음부터 동등한 관계에서 선교사와 한국 교회의 관계를 설정하고자 했다.
마펫 선교사가 안식년 휴가를 얻어 본국으로 휴가를 떠나자
그도 노회 허락과 관계없이 평양 근교 ‘소우물’로 내려가 1년 동안 쉬었다.
이 같은 ‘자주 의식’은 그가 1896년 독립협회 관서지부장을 역임할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안창호와 이승훈 같은 민족운동가들을 발굴하였으며
이들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당시 평양 독립협회 회원 중에 부자관계였던 방기창과 방화중이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서기로 선출된 아들 방화중이 회원 점명을 하다가 자기 아버지에 이르러,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버님” 하자 사회를 보던 한석진이
“규칙이오! 이 자리는 독립협회 공공한 자리이지 방기창씨 가족회의가 아니오.” 하고
일갈하자 겁에 질린 아들이 “방기창! 방기창! 방기창!” 하고 세 번이나 호명한 일이 있었다. 그만큼 한석진은 ‘원칙’을 중요시하였다.
또한 그는 평양 장대현교회를 비롯하여
서울 안동교회, 마산 문창교회, 신의주 제일교회 예배당을 건축할 때
“한국인의 힘으로 건축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선교사들이 지원하겠다고 해도 거절하였다.
“남의 힘을 빌려 지으면 크고 화려하게 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자주 의식이 없어지고, 외국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생각을 고집하였다. 1910년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 신문인 <예수교회보> 사장으로 선임되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신문사를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여
한국인들의 헌금으로 신문을 발행한 것이다.
그 때까지 교회 신문은 선교부 자금으로 발행되었고
편집권도 당연히 선교사들이 갖고 있었다.
1925년 12월, 서울 조선호텔에서 모트(J.R. Mott) 초청 기독교 지도자 간담회가 열렸다.
세계적인 에큐메니칼운동과 선교운동 지도자였던 모트는
선교지역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아시아 선교 현장을 순방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한국인 대표 31명, 선교사 대표 31명이 참석하였는데 양측 모두 ‘원로급’ 인사들이었다.
한석진도 이 모임에 참석했다.
이 모음에서 나온 ‘선교상 문제점’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선교사 문제였다.
그 무렵 일부 인종 차별주의, 문화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선교사들의 행태로 인해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 ‘반’(反) 선교사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선교사는 자기 과수원에 들어와 사과를 따 간
한국인 아이를 붙잡아 뺨에 염산으로 “도적”이라고 새긴 일까지 있었다.
이런 선교사들의 ‘야만적’ 행위로 교회 위상이 더욱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석진이 일어나, “지금까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이룩한 업적은 높이 평가될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교회도 스스로 설만큼 되었으니
이제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는 한국인들에게 맡기고, 아직 선교사들이 들어가지 않은 다른 나라로 가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그의 발언을 듣고 있던 마펫이 발끈해서 일어났다.
그러자 한석진은 그를 향해, “마 목사, 당신도 속히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금후에는 유해무익한 존재가 됩니다.
마 목사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일한 친구요,
동지로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니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