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아린 청첩장
나는 모 대학원을 마치고 간신이 조교로 자리를 잡았다. 인기 있는 학과여서 그런지 학생 수가 많았고 여학생들도 쾌 있었다. 학기 말이 되면 학생들은 리포트 작성과 시험공부 등 할 일이 많아진다. 여학생들은 조교인 나에게 접근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조교님 제 리포트 좀 봐주세요"
그중에 키는 작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한 여학생이 열심히 다가왔다. 점심 도시락을 싸다 주고 커피도 끓여오곤 했다. 두번 째 데이트가 시작됐다. 주말이면 극장 구경을 하고 가을이면 도봉산으로 단풍 구경을 자주 갔다. 빨간 단풍잎처럼 우리의 만남도 물들어 가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마침내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발길이 뜸해지지 시작했다. 졸업생들의 얘기로는 모 재벌의 아들과 사귀고 있다고 했다.
" 나 결혼해요"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수은주마저 얼어 터지는 것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뼛속까지 추위가 파고드는 날이 이어졌다. 그런 어느 날, 그녀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조교님 한테 이걸 주고 싶었어요"
청첩장이었다.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청첩장 신부 자리에 그 여자 이름이 적혀있을 테니까.
"차 한잔 할래요"
"아니요 바빠서 그냥 갈게요"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 서 있었다. 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뒤의 겨울도 무서운 한파가 넘쳤다. 코트 깃을 여미며 하숙집에 돌아왔을 때 문앞에 누군가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오늘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그녀는 파랗게 질려있었다.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날 기다렸나요?."
"날씨가 추워. 어서 들어와."
졸업생들로부터 그녀의 소식을 듣곤 했다. "안쓰럽다"는 사람도 있었고."그래서 분에 넘치는 신분 상승은 버거운 것"이라고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