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2019-01-18)
< 고개를 숙이다 >
- 鄭永仁 -
아주 오래 전에, 내기를 좋아하는 노부부가 있었다. 어리버리한 할아버지는 약삭빠른 할머니한테 번번이 내기에서 졌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내기를 하지 않기로 작심을 했다. 그러던 차에 심심하던 할머니가 내기를 걸었다.
“할방구, 내가 한번 할까요?”
“이 할망구야, 번번이 지는 내기를 내가 왜 해?”
“이번 내기는 할방구가 이길 확률이 아마 100%일걸.”
“무슨 내기인데?”
“누가 오줌이 멀리 가게 누기유!”
할아버지는 짐짓 내키지 않는 내색을 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거라면 내가 이길 수 있지. 자신감이 넘쳐 내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보 할방구, 오줌 눌 때 거시기를 손으로 잡지 않고 보기우!”
할아버지는 또다시 내기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사람도 늙으면 고개를 숙인다. 특히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고개 숙인 남자가 되기 십상이다. 하기사 지금은 사방천지, 남녀노소 고개 숙인 사람 천지다. 핸드폰을 보느라고…….
열매는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다. 겸손하고 겸허하게 철을 마감하고, 생을 마무리하는 자세를 가진다. 결국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채비이기도 하다. 잎이나 열매가 땅에 떨어지듯이…….
신(神)이 인간을 창조할 때, 사람이 세월에 따라 잘 적응하게 시간의 단계를 설정하였다. 어림, 젊음, 늙음이 있듯이…. 항상 젊음만 있으면 무슨 재민겨!
늙으면 눈은 침침하게 된다. 이젠 안 볼 것, 못 볼 것, 더러운 것들을 그만 보라는 것이다.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으로 보면 될 것이다. 쪼글쪼글한 할망구의 얼굴 주름도 흐릿하게 보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귀도 어두워진다.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 다 듣지 않아도 된다. 이젠 그런 소리는 그만 들어도 된다는 신의 축복이다. 더러운 소리를 못 들으니 귀를 안 씻어도 된다. 이도 시원찮으니 이젠 가려서 먹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간 먹을 것, 안 먹을 것 다 먹다가 탈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가려서 천천히 먹으라는 신의 섭리다. 다리가 부실하니 너무 빨빨 거리며 쏘다니지 말고 이젠 인생을 관조하고 되새김질하며 살라는 이치가 아닌가.
늙음이 오면 저절로 고개 숙고, 허리 굽어지고, 거시기가 고개를 숙인다. 아무리 ‘~그라’니 하는 것들이나 신문에 도배하는 불끈 솟는다는 광고에 현혹한들 다 땜빵 처방이다. 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겸허한 결실이다. 하기야 임플란트라는 것도 잇몸의 뼈가 시원찮으면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신문에 거시가 숙인 남자들의 희소식이라는 기사가 호들갑을 떤다. 연어는 물길을 역류하여 자기 본향으로 회귀하여 알을 낳고 죽는다지만, 회춘이 물길을 거슬리면 역습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저 노자가 말한 곡신불사(谷神不死)처럼 물 흐르듯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리라. 물의 지혜를 터득하면서 늙음의 지혜를 늙은 말처럼 써 먹는 것이다. 그나저나 살아가다 보면 세월의 천덕꾸러기가 안 되면 천만다행이 아닐지 모르겠다.
아무리 젊음과 늙음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늙음은 온고(溫故)만을, 젊음은 지신(知新)만을 적폐청산(積弊淸算) 하듯이 이분법(二分法)으로 갈라놓지만, 온고지신은 세월의 한 축이라는 것.
걱정은 나이가 들어도 고개를 숙이는 커녕 코브라처럼 고개 곧추 세우고 촛불 혁명이라는 것을 빌미 삼아 법에 대드는 인사들이 자꾸만 늘어만 간다는 것이다.
늙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면 부정적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보다 7.5년을 산다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 기해년 벽두에 @@@
올해는 '횡금돼지해'라고 합니다. 돈복(豚福)과 돈복(錢福)이 함께 하시고
황돈몽(黃豚夢)을 꾸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