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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덕, 주거 26-10, 1박 2일 거제 여행
여행 떠나기 이틀 전, 예상 밖의 날씨에 난감했다.
요즘 통 비 소식이 없다가 하필이면 출발하는 날에 전국적으로 비가 예보되었다.
그래서 급하게 여행 일정을 바꾸었다.
유람선 관광은 날씨가 화창해야 하므로 뒷날 일정을 앞당기는 것으로 합의했다.
식물원은 실내 돔이라 날씨와 상관없기 때문이다.
숙소 가격과 방 구조, 편의시설, 이동 편리성 등을 고려해 세 곳을 알아보았고, 그중 소노캄 호텔 5인실로 예약했다.
방 2개에 거실, 화장실이 2개인 구조였다.
두 분의 여행 가방은 이틀 전에 의논하여 미리 챙겨두었다.
당일 아침, 예보된 대로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호 대표님 말처럼 날씨는 전혀 상관없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여행이 주는 설렘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염순홍 선생님 차로 준비한 짐을 옮겨 싣고 9시 20분에 출발했다.
입담 좋은 강석재 어르신은 오가는 내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잔기침을 두어 번 해가면서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마르지 않는 신비로운 샘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백춘덕 아저씨는 묻는 말에 드문드문 대답하고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거창은 비가 거의 안 왔다는데, 하행 길에는 마치 비를 몰고 가는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래도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따뜻한 차도 한 잔씩 마셨다.
고성과 통영을 지나 거제로 들어섰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곧장 거제식물원 쪽으로 향했다.
식물원 근처 맛집을 검색했고, 두 분 식성을 고려해 ‘숲소리식당’으로 예약했다.
강석재 어르신과 염순홍 선생님은 장어 추어탕을, 백춘덕 아저씨와 나는 해물된장찌개를 주문했다.
갖가지 밑반찬이며 주요리가 맛깔스러워 모두 그릇을 싹 비워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식물원으로 출발, 표를 예매하고 입장했다.
이때만 해도 빗줄기가 어마어마했다.
바람까지 불어 모자가 날아갈 정도였다.
어르신은 비바람이 부는 날씨인데도 식물원 안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오는지 모를 정도로 안락해서 “그 참, 신기하다. 밖에는 저리 비가 오는데, 여기는 비가 한 방울도 안 떨어지네.” 하며 몇 번이나 신기해했다.
계단으로 걷는 곳이 꽤 있었지만, 다행히 가는 곳마다 승강기가 있어 이동에 불편함은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신비한 나무들, 화려하고 예쁜 꽃들, 동굴 속에서 바라본 폭포수, 어마어마한 높이의 유리 돔, 어여쁜 외양으로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들, 식물원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들에 다들 눈길을 빼앗겼다.
두 분이 힘들지는 않은지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관람을 마치고 나온 시각이 오후 3시가 채 되지 않아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3시 이후에 숙소 입실이 가능했다.
멀리 가진 않았고, 숙소와 10분 거리에 있는 와현해수욕장에 들렀다.
그곳에 도착할 무렵 다행히 빗방울이 덜었다.
거제 대부분의 해변이 몽돌인 반면, 이곳 와현은 부드러운 모래 해변이었다.
철썩이는 파도와 기러기 소리를 들으며 해변을 걸었다.
바닥에 그려진 물고기 그림을 보고 “어르신, 바다에서 물고기가 튀어 올랐나 봅니다. 두 마리나 있네요.” 했더니, “그럼, 잡아서 튀겨 먹을까? 아니면 구워 먹을까?” 해서 또 한바탕 웃었다.
아저씨는 “그라만 빨리 잡아요.” 하며 그림을 지나치는 어르신을 채근했다.
다음에 오면 꼭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어보겠노라 다짐하고 숙소로 향했다.
1층 로비에서 예약한 방의 카드를 받아 10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애초 생각했던 펜션형이 아니었다.
예약이 잘못된 것을 알고 다시 방 배정을 요청했다.
추가금을 더 결제하고 나서야 다른 동의 21층 숙소를 배정받았다.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어르신을 보고 아저씨가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어르신보다 아저씨가 더 ‘길치’이면서 오늘 유독 어르신을 탓하는 모습을 보니 평소 맺힌 게 있긴 있었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힘든 숙소 배정을 끝내고 드디어 짐을 풀었다.
냉장고와 싱크대 서랍에 음식을 넣어 정리하고, 각자 자겠다고 정한 방에 이불을 깔고 잠깐 누웠다.
두 분은 “아구구, 좋다. 이래 누우니 잠이 저절로 오겠네.” 했다.
화장실과 샤워실, 이불장과 옷장 사용 등을 두 분에게 알려드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과일을 깎아 먹었다.
전 객실이 ‘오션뷰’여서 숙소 안에만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좋았다.
두 분은 번갈아 가며 베란다로 나가서 광활한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오후 6시에 숙소 근처 일운면 식당가를 찾았다.
의논 끝에 어르신 좋아하는 고등어조림과 아저씨 좋아하는 수육이 한상차림으로 나오는 ‘고풍쌈밥’ 집으로 향했다.
음식이 푸짐했다.
“아따, 고놈 맛있다. 고등어가 통통하니 참 맛있네.”
“아저씨는 생선을 못 드시니 수육을 많이 드세요.”
“고기를 잘 삶았네. 참 부드럽고 맛있다.”
여기서도 다들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식당에서 나와 일운하나로마트에서 막걸리와 안주, 생수를 샀다.
“바로 숙소로 들어가지 말고 바다 야경 보면서 산책하면 어떨까요?”
“좋지요. 배 좀 꺼지거들랑 들어가지요.”
넷이 느림보 거북이 마냥 느릿느릿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고, 이게 무슨 일이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이 신은 운동화 밑창이 곧 떨어질 것처럼 덜렁거렸다.
그 순간, 모두 당황했다.
“7시가 넘었는데 문 열린 신발 가게가 있을까요?”
“그래도 내일 유람선 타고 외도 관광하려면 신발을 새로 사야 하지 않을까요?”
신발 가게를 검색하니 차로 15분 거리의 ABC마트가 10시까지 영업한단다.
그곳에 전화로 문의하고 어르신 카드가 든 가방을 가지러 숙소로 급히 올라가는데, 염순홍 선생님이 차 트렁크에 여분의 운동화가 한 켤레 있다며 그것을 신으면 된다고 했다.
마침 그 운동화가 어르신 발에 맞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집을 나서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직면할 때가 있다.
그래도 여럿이 머리를 맞대니 화낼 일이 없었고, 웃어가며 기분 좋게 일이 해결되었다.
어르신 신발 탓에 조금만 걷다가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각자 샤워하고 준비해 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두 분, 좋은 데 오셨는데 그냥 주무시면 허전하잖아요. 술 한잔하고 오늘 밤에는 편안하게 주무시고 내일 또 즐겁게 여행합시다.”
과일과 과자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따라 건배했다.
어르신은 평소 술을 안 드신다며 막걸리 두 잔에 홍조를 띠었다.
알딸딸해진 어르신이 “우리 집에도 이런 소파가 있으만 참 좋겠다. 와 이리 편하노?” 하며 소파 위에 벌렁 누웠다.
“좋으만 하나 사만 돼지.” 하며 소파에 앉았던 아저씨도 따라 누웠다.
나란히 누운 두 분의 모습이 참 정겹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8시면 자리에 눕는 분들이 밤 11시가 되어도 주무실 기미가 없었다.
내일 여행을 기약하면서 인사하고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역시나 이른 시각부터 두 분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아침은 햇반과 미역국, 김치와 장조림으로 식사했다.
식사 후에는 과일과 커피로 여유를 즐겼다.
유람선 출항이 10시 30분이라 10시쯤 지세포 선착장에 도착하면 되기에 아침 시간이 분주하지는 않았다.
문화누리카드를 미처 챙기지 않은 아저씨를 위해 어르신이 자신의 카드로 아저씨의 유람선 비용을 계산했다.
아저씨는 가판대에 놓인 샌들이 가볍고 편하다며 어르신 것까지 하나 더 샀다.
고맙다며 서로에게 인사했다.
“어제 신발 때문에 걱정했는데, 갑자기 신발이 두 켤레나 생겨버렸네. 춘덕 씨, 신발 사 줘서 고맙네. 아이고, 고놈 참 가볍고 편하다.”
“그러네. 신발이 편하고 좋네요.”
승선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두 분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표를 확인하던 선원은 어르신이 눈이 불편한 분이란 것을 눈치채고는 채근하지 않았고, 오히려 넘어지지 않게 어르신의 손을 잡아주었다.
“바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천천히 오르세요, 천천히!”
무사히 유람선에 올라 출입문과 가까운 쪽에 자리를 잡았다.
안내원은 출발과 함께 구명조끼 사용법을 알렸고 거제 홍보를 시작했다.
두 분은 그 설명에 귀 기울이며 아름다운 거제섬과 넓디넓은 남해의 광경에 몰입했다.
바깥으로 나가 갈매기와 바다를 구경해도 좋다는 방송을 듣고 두 분을 모시고 후미로 나가 파도치는 바다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새우깡을 던지는 사람들 곁으로 갈매기 떼가 몰려들었다.
장관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바람이 거세어 오래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돌고래 출몰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지만, 반짝이는 등판을 잠깐 본 게 다여서 아쉬움이 컸다.
안내원은 내도와 외도, 해금강을 지나며 나타나는 바위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려주며 설명했다.
무덤덤한 아저씨와는 달리 어르신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40분 후에 도착한 곳은 외도 보타니아였다.
이곳은 원래 척박한 땅이었는데 한 부부가 조금씩 땅을 사들이면서 섬 전체가 개인 소유의 땅이 되었고, 수십 년에 걸친 부부의 노력으로 척박했던 섬이 식물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외도 전체를 걸어 관람하는 데 족히 2시간이 걸릴 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어르신 걸음에 맞추다 보니 다 둘러보지는 못하고, 선인장 공원을 지나 비너스 광장까지 걸으며 보타니아를 구경했다.
다시 승선해야 하는 시각이 있으니 돌아가는 시간을 고려해야만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는 화장실에 들르고 준비해 간 간식을 먹었다.
선착장에 도착해 5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가 타고 왔던 유람선이 들어왔다.
승선하여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선착장에 도착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고, 잘 와서 다행이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했다.
배를 타는 일이 신나면서도 조금은 불안하셨나 보다.
유람선 관광을 마친 시각이 오후 2시였다.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하고 중간에 새참을 먹어서 그렇게 허기지진 않았다.
어제저녁, 잠들기 전에 봐둔 중식당 ‘화연’으로 곧장 향했다.
일운면에는 중식당 맛집이 여럿 있었지만, 거의 수요일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곳도 문이 닫혔다.
점심시간이 지나다 보니 브레이크타임인 것 같았다.
“어쩌지요?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두 분 생각은 어떠세요?”
“아직은 배가 안 고파요. 고만, 다른 데로 가요.”
의논 끝에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으로 의견이 모였다.
거창으로 출발했다.
30분 정도 후에 ‘공룡 나라 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 한 번 다녀온 후 한식을 먹기로 했다.
어르신과 아저씨, 염순홍 선생님은 곰탕을 주문했다.
담백한 맛을 즐기는 어르신은 본연의 맛으로 드시는데,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아저씨는 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국물까지 싹 부어서 말아 드셨다.
다들 배를 채우고 차도 한 잔씩 마셨다.
아저씨는 휴게소 선물 코너에서 숲속에사과 대표님 자녀들에게 줄 과자를 샀다.
어린이날을 그냥 넘긴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거창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여행 이야기들이 오갔다.
“어르신은 이번 여행에서 뭐가 가장 좋으셨나요?”
“유람선 탄 기 좋았고, 식물원 폭포가 또 좋더라꼬요.”
“다른 것은요?”
“고등어조림 그기 참 맛있데요. 나는 섬이 그렇게나 크고 식물을 잘 가까 놓은 줄 진짜 몰랐지요. 아, 참 신기하데.”
“아저씨는요?”
“나도요. 배 타고 여행한 거 다 좋아요.”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또 가실 건가요?”
“시간 맞으만 또 가보지요.”
두 분 말씀을 듣고 염순홍 선생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어르신, 우리 가을에 또 한 번 갑시다. 이렇게 다녀오니까 정말 좋네요.”
“그라지요.”
다들 이번 여행이 만족스러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두 분이 처음으로 함께한 여행인 만큼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피곤하면 좀 주무시라 해도 거창에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두 분은 짐 정리로 바빴다.
냉장고 정리를 돕고 저녁에는 여독을 풀 겸 푹 주무시라 인사하고 돌아섰다.
“잘 가요. 고생했어요.”
“아이고, 애썼소. 선생님도 어서 가서 좀 쉬어야지요.”
‘고생했어요.’라는 아저씨의 말씀에, ‘애썼소, 쉬어야지요.’하는 어르신의 말씀에 이틀간의 피로가 단번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2026년 5월 13일 수요일, 김향
1박 2일을 알뜰하게 보내셨네요. 강석재 어르신, 백춘덕 아저씨, 두 분 다 즐거워 보입니다. 이 코스 따라서 거제도 여행 다녀오고 싶네요. 신아름
1박 2일 함께한 듯합니다. 두 분 즐거우셨을 것 같습니다. 여행의 즐거움과 갑작스러움을 다 겪으신 듯하고요. 김향 선생님, 염순홍 선새님, 애쓰셨습니다. 월평
첫댓글 선생님 기록을 읽으니 제가 함께 여행한 듯 합니다. 여행의 순간마다 어르신과 아저씨의 모습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김향 선생님, 염순홍 선생님, 여행준비하고 함께 동행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