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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월
이 안
나뭇잎 벗겨지자
노랗고 향긋한 냄새를 품은 산의
무덤 하나 둘
깨어나 마을로 들어선다
저, 잘 익은 발걸음 소리 들으며
오래 묵어 기운 집 뜰에
몇 알 모과가 빛난다
민학수필
지금 우리 농촌에서는 보리도 거둬 들여야겠고 모내기도 해야 하는데 지방선거다 뭐다 해서 일손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모양이다. 어쩌다 일손을 구한다해도 품삯이 5∼8만원이나 되니 타산이 맞지 않아
속을 태운단다. 급기야 정부가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서 급한데부터
돕겠다고 나설 계획인 듯 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군인과 경찰이 할 일이 없어서 농촌 일손 돕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만한
방법이 없어서 생각해낸 조처이겠지만 씁스레한 맛이다.
농부가 봄에 하루를 놀면 겨울에 열흘을 굶는다 하였다. 그만큼 봄에는 바쁘다. 오죽하면 강아지나 부지깽이도 부려 먹을 형편이라 하였겠는가. 그런데 이런 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농사일은 우리네 성정을
부지런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부지런한 백성!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1900년대 초에 척박하기만 했던 멕시코 선인장 농장에서의 우리 한국인들의 잡초보다 더 질긴 생명력, 타시켄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언 땅과 싸워 이긴 우리 민족. 독일에 파견되어 민족적 차별과 수모를 견뎌내고 오늘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광부와 간호사들, 사막을 옥토로 바꾼 대역사에 참여했던 중동의 우리 근로자들, 이런 것들이 우리민족의 근면함을 전세계에 알린 사례들이다.
그런데 요즈음에 부의 편중 현상이 드러나면서 게으른 한국인이 많아지고 있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를 '공부 잘해서 돈 많이 벌어서 편히( ? ) 살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곧 '게으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닐까? 공부
열심히 해서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도와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봄이 어떨까?
불과 100년 전에는 '아는 것이 힘이다. 알아야 산다'라고 교육의 가치를 강조했는데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서, 편히 살기 위해서 공부한다면 인생이 너무 가볍고 쓸쓸하지 않을까?
누구를 지배하기 위해서, 또는 군림하기 위해서, 편히 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생각은 매우 철학적이어서 설명이 첨가되어야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평등한 대우를 받고 부와 교육과
의료등 사회 경제적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 받아야 한다. 그런데 평등하게 대우 받고 공정하게 분배받는 것이 무엇인가? 같은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들은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높은 지위에 있다하여 그를
달리 대우한다면 이것은 평등한 처사가 아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바쁜 일로 시내를 과속으로 달리다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운전수가 이 분이 누군질 아시오? 처칠 수상이시오.
바쁜 일로 가고 있으니 부내 주시오. 경찰이 말하기를 처칠을 닮긴 했소만 내가 아는 처칠은 그런 분이 아니오. 처칠은 나중에 그 교통경찰을 상 주려 했다. 근무를 성실히 잘했다고―. 그런데 그 경찰, 내가 한
일은 상 받을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일을 규정에 따라 했을 뿐이다.고
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집안이, 신체조건이, 재능이 서로
다르다. 누구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 나고, 누구는 음치일 수 있고, 누구는 수학적 재능이 탁월할 수 있다.
이들을 같은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이 이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인가? 이들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어긋나는 것일까?
사철 꽃이 피어있는 곳에서는 벌이 꿀을 모으지 않는다 한다. 언제 어느 때나 꿀을 얻을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꿀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유나 경제적 재화가 모든 사람이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면 이것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
이 정의로운가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부를 정의롭게 분배하는 문제는 항상 사회적 관심이
되어 왔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똑같은 혜택을 받는다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기계적 평등주의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전대사대부고에 가면 나무란 나무는 다 있고, 야생화란 야생화는
다 있지요. 회장님의 손길이 닿아서 서로 어울려 참 평화롭게 보입니다. 교육문화의 위험에 맞서는 회장님의 덕성은 우리 민학회에도 끝없이 꽃피우고 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길요.
민요야그 ⑫
천석 갈면 만석되고
몇 년 전 문화부에서 이미 사라졌거나 없어진 5대 전통 생활 용품으로 맷돌, 골무, 떡살, 뒤주, 제기 등을 꼽았다고 한다. 잃어버린 용품들
중 그런 대로 이름이 남아 있는 맷돌. 이름은 남아 있고, 장식용으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맷돌. 우리네 여성들이 갖가지 애환과 정서를 둘레둘레 지니고 있는 맷돌. 맷돌이든 맷돌방아든 실제로 사용되는 것보다는 장식용으로 많이 쓰이는 까닭은 맷돌 자체의 생김새가
보기에 참 좋다는 것이다. 밑에 받침대가 있어 갈라진 내용물이 저절로 흘러 나오게 생긴 건(보통 풀매라 부른다)말할 것도 없고, 그냥 저냥 생긴 크고 작은 맷돌은 웃짝, 아래짝의 두 개의 동그라한 생김새가
실내이든 마당이든 상관없이 그저 그곳에 놓여 있으면 예쁘게 보이기
때문인 것이다. 장식용 맷돌의 극치는 아마도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에 있는 '맷돌탑'이 아닌가 한다. 한풀선사가 하루 20톤의 돌을 져 날라 세웠다는 솟대는 상섬궁의 상징이지만 이곳에는 맷돌이 1만 2000여 개나 있다.
한풀선사는 요즘도 『 삼일신고』의 정신에 따라 3333개의 솟대를 세우고 있고 전국에 흩어진 맷돌를 수집하고 있다. "솟대는 환웅이 나라를 다스릴 때 제천을 지내던 소도(蘇塗)를 의미하며 움얌의 이치로 만들어진 맷돌은 우리 선조들의 정기를 대변한다"고 설명한다.
맷돌이 여성용 도구인 것은 콩이나 팥, 녹두 등의 곡식을 갈아 음식을
만드는 첫 단계의 작업. 이 맷돌 작업은 혼자하기는 조금 싱겁고 힘이
들기도 해서 두 셋이 어울려 갈아야 재미도 나고 힘도 덜드는 법이다.
알곡을 가루로 변하게 하는 그 '변화'에 맞춘 표현들이나, 신나게 돌리는 재미라면 재미랄 수 있는 맛을 표현하는 가사도 있다. 따라서 아주
다양한 내용은 그 노동 속에 풀어 담을 수 있다.
이어도러라 이어 도러라
이어도가면 나 눈물 난다.
이 허말은 마라서 가라
元의 아들 원자랑 말라
臣의 아들 신자랑 말라
선분 같은 내 父母계시면
元도 臣도 무섭지 않다.
元臣任도 외나무 다리
길은 무삼 한길이런고
맷돌이 여성의 도구였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아랫돌 복판에 쇠로 만든 '중쇠'를 박아 윗돌 밑에 뚫린 구멍에 짝을 맞춰 끼워야 되는데, 어지간히 큰 맷돌일 경우엔 이걸 끼워 맞추는게 '누워서 떡 먹기' 식의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어떻든 간에 맷돌에는 '남매혼인 설화' 라는
어찌보면 근친상간이랄 두 있는 오래된 설화도 있고 맷돌을 돌리는
행위를 성행위에 비유한 '맷돌치기' 따위의 상소리 속담들도 꽤나 성하지만 이런 해학을 너무 천박하다고 타박함께 아니라 맷돌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노동의 지겨움을 거꾸로 즐거운 마음으로 견뎌낸
'풀이'가 더욱 값진 것이다.
'맷돌로 갈아야' 제맛이 나는 법이다. 믹서로 간 두부나 녹두 지짐보다는 맷돌로 간 게 훨씬 맛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 되어 있다.
참고로 맷돌로는 현무암이 가장 많이 쓰인다. 다공질인 현무암은 규산무수물 SiO2를 비롯한 다양한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소중한 곡식을 빻는 작업을 하면서 거의 모든 민요, 특히 부녀노동요가 그렇듯이 쉼없이 계속되는 단순노동의 어려움을 주거니 받거니 흥얼거리며
부르는 노랫가사로 상쇄시키던 지혜. 그 지혜는 저절로 우러나온 지혜이자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서 굳어진, '온몸뚱아리 感'으로 뭉쳐진
지혜가 아닌가. 이 곡식들은 그 다음 단계에 근사한 곡식이 되어 풍성하게 불어나 가족친지들을 살찌우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조금은 풍부하게 하는 그런 모습들을 머리 속에 그리며 서로의 피곤을 풀어 주었던게 아닌가.
들러주소 들러주소
엄금심심 거석매매
우리기원 일심받이
화수봉산 대추같은 밀을
천석 갈면 만석되고
이밀갈아 누룩디져
술을 하면 수만석이 퇴가나네
(황해도 봉산민요)
10월 답사후기
마법의 城, 서해안을 찾아서
김양근(민학회원 / 전대사대부고 교사)
올 여름은 내 개인적인 일로 때문에 마음이 여유가 없어서 여름 민학회 행사에도 참가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이번 답사 일정을 보고
가기 전부터 자못 기대가 되어서 며칠 전부터 자꾸 달력을 보고 10월
19일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마치 어렸을 때 소풍 전날 마음
설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정스런 회원님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민학회 사무실로 갔을 때 먼저 오신 회원님들께서 반갑게 맞아 주셔 너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약속 시간에(2시) 광주를 출발하여 호남고속도를 달려가는 중에 회장님께서 준비하신 설위설경(設位說經)테이프를 보고
조청일 회장님의 안면도 대하 축제에 대한 말씀과 곁들여 대하에 대한 여러 가지 상식을 말씀해 주시고 강현구 부회장님께서 일정을 배성자 사무국장이 먹을거리 안내를 안내해 주시는 동안 어느덧 군산휴게소(4시 10분)에 들려 잠시 쉰 다음 금강대교를 지나면서 미리 준비한 머리고기와 묵은 김치에 약간의 술이 분위기를 더욱 화기애애(和氣靄靄)하게 하였습니다. 해미IC(5시15분)를 통과해 29번 국도를 타고 서산(5시30분)을 거쳐 32국도를 이용하여 5시 55분에 태안 문화원에 도착하여 1시간 30분 동안 설위설경을 관람하였습니다. 충청도 일대에서 널리 설행(設行)되어온 무속 행위의 하나인 설위설경(設位說經)은 삼국시기 무렵에 중국의 도교와 불교의 영향아래 들어온 것이
고려내지는 조선시기를 거치면서 토착의 '무 신앙'과 어우러져 오늘에 전승되는 것이라 합니다. 설위설경이란 글자 그대로 설위(設位)를
하고 그 자리에서 설경(設經)을 한다는 것으로 그 까닭은 넓은 의미에서 병(病)을 치료하기 위함이며 뜻이 깊으면서도 다양한 경문(經文),
경청을 장엄하게 장식하는 팔문팔진(八門八陣) 금쇄진(金鎖陣)의 법도 있는 꾸밈새, 여기에서 펼쳐지는 낭랑한 독경(獨經)의 음률과 의식절차 또한 돋보이며 특히 다양한 종이 오리기(일명 종이 바수기)로 이루어 내는 경청의 무늬들은 기원 부적(符籍)이면서 전통예술의 보고라 할 만 합니다. 태안문화원에서 시연한 설위설경은 충남무형문화재
설위설경24호인 장세일 법사의 시작으로 정해남, 김종일, 조부원, 임연지, 심갑순, 정종호님들이 부정경, 축사경, 검무를 하고 잡신을 옹기에 가두고 수배신이 퇴신함으로써 모든 것을 맺고 장세일 법사의 종이 바수기 시연이 있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구별과 배타심을 버린 회원님들의 전통 문화 사랑의 순수한 마음이 설위설경(設位說經)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설위설경을 끝으로 태안관광농원 내 오리촌닭마을(상호명) 집에서 대하에 "얼씨구∼절씨구∼지화자∼좋다." 외치며 술을 한잔 할 때는 하루의 모든 피곤도 다 가시고 민학회원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10월 20일 일요일) 어제 저녁 모닥불을 피워놓고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운 회원님들, 태안마애삼존불을 만나 뵙고 온 분들 모두 피곤함을 말끔히 떨쳐버리고 아침 꽃게탕에 식사를 하고 숙소를
떠나 안면도를 가는 중에 언제 들어도 새롭고 구수한 조청일 회장님의 소나무 강의가 있었죠! - 적송, 곰솔의 잎은 2개, 잣나무 잎은 5개,
리키다소나무는 잎이 3개, 일본인 오자끼와 이상재선생의 일화 등을
들으면서 안면대교(9시)를 지나 안면도에 들어서자 쭉쭉 뻗은 적송들이 민학회원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듯 했습니다. 방포해수욕장, 할아비, 할미바위를 보면서 얼마전 꽃박람회가 열렸던 곳을 지나 빨간 철다리(일명 꽃다리 57.5m) 건너 모감주나무 군락을 보러 갔습니다. 승언리 방포 해변에는 모감주나무 4백여그루가 방풍림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 모감주나무는 야생식물로 무환자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이고 잎은 난형 또는 타원형이다. 7월중에 황색꽃이 피며 그 열매는 9 10월에 익는데 옛날에는 염주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황해도 초도, 경기도의 덕적도, 충남도의 안흥과 안면도,
전라남도 완도와 경상남도 거제도, 경상북도 영일만등에 자생하고 있는데 중국이 원산지이며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된
(1962. 12. 3)안면 모감주나무 군락을 살펴보면 밑둥 둘레가 약130㎝
되고 직경은 40여㎝나 되며 가슴높이 둘레가 56㎝에 직경이 18㎝가
되는 나무도 있습니다.
이 모감주나무 군락은 씨의 껍질이 콜크질로 되어 있어 해류에 멀리
떠내려가 발아할 수 있는 성질과 해류를 따라 중국의 내륙에 군생하는 모감주나무 종자가 유동되어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꽃다리를(9시
50분) 출발하여 자연휴양림에(10시) 도착하였습니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은(야영장, 산림전시관, 수목원, 숲속의 집, 체력단련장, 전망대)은 세계원예생산자협회(AIPH)가 공인한 2002년 안면도 국제꽃박람회가 열렸던 지역으로 천연산림과 함께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녹음이 짙은 숲에 들어가면 특별한 향기가 나는데 이것은 나무들이 각종 해충과 병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방향성물질을 끊임없이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피톤치드를 마시거나 피부에 접촉하면 마음과 몸의 긴장을 풀어주거나 피로에 지친 사람들의 건강을 새롭게 하여 본래의 생체리듬을
되찾게 해준답니다. 안면대교, 천수만B, A 방조제를 지나 홍성IC(12시30분)를 통과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대전 톨게이트(12시 50분)를
뒤로하고 용천가든에서(1시∼2시) 맛있는 점심을 먹었는데 삼겹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겠죠? 성주터널을 지나 부여방향으로 40번
국도를 따라 가자 많은 회원들께서 버스 창 밖을 내다보면서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산자락을 보면서 모두 탄성을 내뿜었으며 국도 옆을
흐르는 개울은 그 운치를 더 한 것 같았습니다. 무량사로 들어가는 입구도로는 노랗게 단풍이 든 은행나무, 빨갛게 익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감나무가 가을의 정취를 한껏 물들게 했습니다. 충남 부여에 위치한 만수산 골짜기 터에 위치한 無量寺 백제 때 창건했다고 하지만
현재의 극락전은 조선왕조 때의 귀중한 건축물로 유명합니다.
일직선상의 가람배치로 극락전 앞에는 고려 초에 세운 5층석탑이 기품있게 서 있고, 조선 왕조 때의 생육신 중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화를
모신 산신각과 부도가 있습니다. 석탄산업의 산 교육장인 석탄박물관은 관람 안내 및 기념품을 판매하는 안내의 장, 석탄의 생성과정을 보여주는 탐구의 장, 석탄 및 암석의 종류와 석탄이용의 역사를 설명하는 발견의 장, 그리고 참여의 장은 탄광 및 갱도의 모션이 전시되어 있는데 실제 탄광에 와있는 듯 사실적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석탄 박물관에 들어서면 우선 모의갱도 입구가 나타나는데, 그 입구는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서 스위치를 누르면 엘리베이터는 급강하를 시작하여 지하100m, 200m.... 불과 1분만에 엘리베이터는 지하 400m 까지 하강합니다. 사실은 2층에서 1층으로 하강하는 것일 뿐인데, 누구나 착각이 될 정도로 정교하게 시설을 조작해 놓았으며 처음 타는 사람은 그 실감성으로 공포를 느낄 정도였죠.
충남 보령시 성주면(聖住面) 성주리 성주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인 聖住寺址(사적 제307호)는 여느 廢寺址처럼 유한의 시점에서
무한이 주는 정취가 묻어납니다.
1960년에 발견되어 모으기 시작한 비석의 파편을 통해, 원래 백제 법왕의 명에 의해 616년 오합사(烏合寺)라는 국찰(國刹)이 창건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 오합사가 성주사(聖住寺)이며, 신라 제46대 문성왕 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朗慧)화상을 맞아 더욱 크게 중창(重)된
사실도 밝혀졌으며 절터 입구로 보이는 곳에 계단석이 있고, 그 뒤쪽에 석등과 5층석탑 1기, 다시 그 뒤쪽에 금당(金堂)터인 듯한 단이 있으며, 그 뒤에 최치원(崔致遠)이 찬(撰)하고 최인연(崔仁)이 글씨를 쓴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月光塔碑) 등이 있습니다. 성주사지를 떠나면서 아쉬움을 다음 답사에서 채우길 기약하고
광주를 향해 오는 도중 회원님들의 즐거운 여흥은 신출내기 회원인
나를 포근하게 해주었습니다. 둔필승총(鈍筆勝聰)이란 말이 있죠! 서툴더라도 글로 남기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아 메모한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미리 가본 답사
가을과 겨울 사이의 마이산 풍경을 찾아
구비구비 산길따라 소태정 고개를 넘으며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 아담하고 작은 읍, 진안이 있다. 산따라 물따라 오르다가 흐르다가 보면
저만치 서있는 진안 속에 우리가 잠겨있다.
우리들의 태를 묻고 조상의 뼈를 묻은 영혼의 땅. 삶의 터전은 이제 굴뚝에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고, 개 짓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수몰지역.
용담댐 완성으로 전주, 군산, 익산에 깨끗한 물 콸콸 보내주면서 우리는 고향을 물에 묻고, 가슴에 묻고. 쑥부쟁이, 구절초, 들국화 떠나가고 호미질 소리 두레 소리 잃었지만 우리들의 고향 하늘만은 영원할
것이니. 추억의 구름을 띄워 마이산, 은수사, 천지탑과 석탑들, 위풍당당한 사냥꾼 '매'의 메아리를 한 군데로 모아본다.
우리나라 산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산은 뭐니뭐니 해도 진안 마이산이다. 마이산은 말의 두 귀를 닮은 모습이 신비스럽다. 동서남북 어디서 보더라도 자연의 조화라는게 참으로 별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분명히 무슨 의도가 없고서야 산봉우리가 저렇게 생겼으랴.
종교적 분위기를 체감하게 된다.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왼쪽으로 돌다
산 입구로 이어지는 길 중간쯤에서 마이산을 한 번 쳐다보면 수마이봉 옆쪽에 영락없이 말의 귀만한 크기와 모양으로 귓구멍까지 뚫려있다. 봄이면 돛대봉, 여름이면 용각봉, 가을이면 마이봉, 겨울엔 문필봉으로 불리고 있어 말의 귀처럼 생긴 두 덩어리가 덜렁 전부인 작은 산이 계절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곳 자연의 호흡이 무척 활발하다는 증거이다. 에베레스트 산은 정복되었어도 수마이산의
정상은 아직도 처녀지로 남아 있으니 물에 잠긴 고향을 들여다 볼 양으로 암마이산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청설모의
낙원인 마이산의 풍경 중에 수마이봉 아래에 있는 은수사에 우리나라에서 한 그루밖에 없는 청실배 나무에 가을이 오면 신비감은 덧씌워진다.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은수사엔 여느 때보다 사람이 붐빈다. 해소, 천식에 특효약인 청실차를 마시고, 암수 마이봉 사이의 특이한 대류현상 때문에 겨울에 거꾸리 고드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리 고드름이 신기하다 보니 기도 주문이 쇄도한다 그런데 아무
물로나 얼려서는 안된다. 청실배나무 아래 돌샘 물로만 거꾸리 고드름을 얼린다. 자연이 만든 신비의 극치가 마이산이라면 인간이 만든
신비의 절정은 자연석을 쌓아 만든 천지탑과 석탑들이다. 암마이봉
남쪽 절벽 아래 위치한 천지탑과 석탑들은 음양오행의 조화에 맞춰
송곳처럼 정교하고 태산처럼 위엄있게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천지탑을 정정점로 줄줄이 도열되어 있다. 음양의 산에 음양의 탑이 축조되었음은 결코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는 신비스런 베일을 담고 있다. 세한 비바람에 흔들리리언정 돌 하나 까딱하지 않는 마이산 석탑의 신비는 과연 어떤 것인가? 대부분의 동식물들이 이파리를 떨구거나 겨울잠에 들어가 생명이 움츠러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공으로 생명력을 키우고 있다. 겨울을 자연과 더불어 활력있게 보냈던 조상들의 토종 겨울나기 중 '매사냥'이 있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의 전영태(87세)옹은 이제 매사냥도 힘에 부쳐 일 년에 한 두 번 매를 부리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매는 천연기념물이라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1960년대까지 살충제 디디티를 많이 썼다. 이 살충제에 오염된
새나 동물을 잡아 먹은 매가 산란기에 낳은 알의 껍질이 약해져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디디티 사용이 금지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서해안, 남해안,
그리고 제주도 주변 무인도에서 번식하는 쌍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반가운 일이다. 버렁(매잡는 장갑)에 수진이(손으로 키운 매)를 앉혔다. '해동청'으로 불리던 보라매(참매)가 사냥에는 제격이란다. 50년
넘게 패각방울을 직접 제작하고 '시치미'(매의 꽁지에 매어두는 꼬리표)를 알맞게 붙이는 기술가지 보유하고 있다. 가장 경험이 많은 봉받이인 전영태옹이 매를 잡고 있다가 꿩이나 토끼를 발견하면 "매나간다"하고 고함을 지르며 끈을 풀어준다. 열아홉 살때부터 65년 넘게 봉받이로 살아온 인생. 이제 그는 매사냥도 힘에 부친다. 그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수천 년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매사냥 역사가 지금에
와서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매를 받아 부리는 마지막 매사냥꾼도 물에 잠길 듯 위태롭지만, 가르쳐 주니 않아도 자연에 순응하면서 그 이치를 깨달아 살던 진안 사람들, 지금은 떠나고 이름만 전하는 진안 사람들, 흩어져서 강건너, 산너머에 살다가 뚝배기
우러나던 그 장맛을 오래 간직하여 다시 모여 보세나.
2002년 11월 답사 안내
-토종문화를 찾아서⑦
가을과 겨울 사이의 마이산 풍경을 찾아
·언제 : 11월 17일(일)
오전 9시 (약속한 시간에 출발)
·어디서 : 민학회 사무실 앞 (계림동)
·찾아가는 곳 : 마이산, 은수사, 천지탑과 석탑들,
봉받이 전영태옹, 전주 술박물관
( 형편에 따라 일정이 다소 변경될 수도 있답니다.)
·인원 : 45명
·참가 방법 : 먼저 전화 신청 후 온라인 입금
·답사비 : 30,000원
·온라인 : 광주은행 072-122-304522 조청일
※ 옷 따듯하게 입고 오시길요.
※ 편한 신발 신고 오세요.
민학사람들
10월 3일 세상이 열리는 날
홍익인간의 정신을 폈던 날을 기렸습니다. 무등산 천제단에서天·地·人의 합일로 우리 민족의 강한 힘을 북돋는데 큰 뜻을 새겼습니다.
광주광역시, 동구청(유태명청장), 경주신라문화동인회, 연진회, 의재문화재단, 최기영 회장, 전대사대부고 자원봉사자 50명, 박정지 회원,강필성 회원, 심재하 회원, 시도민 400여명, 민학회원이 빛과 그림자로 개천제 행사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닥불 피워 놓고 ♩♪♬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장세일 법사님의 설위설경에 몰입하며, 밤 12시에 으스름 달빛에 의지하여 태안 마애삼존불 앞에 삼배를 드리며, 쭉쭉빵빵 안면松의 기상에 가슴 밝히며, 낙엽이 흩날리는 무량사에서는 일상의 시간표를
잠시 덮어두고, 성주사지는 세속의 혼란과 욕심도 얼마쯤은 수그러들게 만들었다. 까만 것이 오히려 하얗다는 석탄의 신비를 석탄박물관에서나마 알 수 있었으며.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박선홍 이사장님께서는
다양한 색상을 지닌 회원이 모인 민학회가 섬세한 균형을 느낄 수 있도록 빛과 그림자로 도와 주시지요. 이사장님이 쓰신『무등산』을 일본어판으로 번역하시는데 정열을 쏟고 계십니다. 저희 민학회원들은
올곧고 가치있는 삶의 실마리를 이사장님의 면모에서 찾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보이지 않은 것이, 들리지 않은 것이
보일 때까지, 들릴 때까지 충청도 답사 내내 까다로운 주문을 외웠습니다.
올케 시누이 사이인 정남규, 류승희 회원이 돼지고기와 홍어찜을 살며시 해 오셔서 막혔던 주문이 술술 풀리고, 사진작가 송혜자 회원(헬레나스튜디오 / 011-624-7766)이 또로록 노란 귤을 두 박스 꼬옥 쥐어 주어서 깊어가는 가을 풍경에 취했습니다. 신장용 회원(016-681-0977)이 소주 세 박스를 마련해 온 정성을 향기로 맡다보니 마법의 성에서 맴돌았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달마가 전대사대부고로 간 까닭은?
김양근 샌님 계시지요. 꼭 달마를 닮았다고들 해요. 눈 한 번 크게 뜨면 한방에 녹아버릴 것같아 민학회원들 모두 샌님에게 매료되었답니다. "그냥 김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요! 그냥김이 10월 답사후기를
자잘한 정황에 상상력의 살을 붙여 달마의 게송처럼 숨이 멎을 정도로 잘 써 주셨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Cafe(카페)를 개업했습니다.
카페주소 : http://cafe.daum.net/kjminhak
멜 주 소 : kjminhak@hanmail.net
사이버 공간에서 <광주민학회> 집 하나 만들었습니다. 카페의 키워드는 정겨움입니다.
목소리 듣고 싶고, 얼굴을 보고 싶어도 도시의 문명기호에서는 응시하는 것만이 유일한 버팀목이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를 카페에서 듣고 싶습니다.
실명으로 회원 가입하시며, 자주 찾아와 차 한 잔 따듯하게 드시고 가시길요.
약속된 미래의 땅 진안의 마이산은
정적인 생명체로만 보이지만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이 숨겨진 동적인
생명체임을 느껴보시지 바랍니다. 수몰된 마을이 물안개처럼 세상을
뒤덮던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기다리지 않아도
도착한 세월을 견디기보다 한 켜 한 켜 깨달음의 돌멩이를 이룬 가을
서정에 작은 발자국을 떼어 보기로 하지요. 답사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