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기 제 4장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규례와 법도
모세의 첫 번째 설교의 마무리와 두 번째 설교에 들어가는 부분이다. 모세는 지나온 세월 동안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이 마땅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함을 감동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모세는 두 번째 설교를 하기에 앞서 다시 한 번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오직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 밖에 없음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1. 첫 번째 설교의 맺는 말 (4:1-40절)
첫 번째 설교의 목적은 백성들의 순종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모세는 출애굽부터 함께 하신 하나님의 큰 권능의 역사를 증거하고 이에 반하여 불순종한 백성들로 하여금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깨달아 어느 길이 현명한 길인지 판단하게 해준 것이다.
1) 율법이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4:1-8절)
이 율법은 반드시 준행되어야 하며 절대로 변경되거나 가감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규례와 법도를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규례’는 ‘후카’라는 말인데 종교법,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 사회법 등과 같이 세부적으로 규정된 법규를 가리킨다. ‘법도’라는 말 ‘미쉬파트’는 규례로부터 파생된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나님 간의 모든 공적 사적 권리와 의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율법은 듣고 배우고 아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실천해야 할 원리이다.
*약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너희가 살 것이라는 말은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 지난 40년간 광야에서 죽어간 이스라엘의 구세대의 뼈저린 비극을 경험과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기로가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며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가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가시로 울타리를 치라.’는 말인데 여호와의 명령 곧 하나님의 법도 밖으로는 절대로 나가지 말고 삼가 그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라는 것이다.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 이방인의 술사 발람의 올무에 걸려 모압 여인들과 행음하며 그들의 신 바알브올을 섬기다가 24,000명이 죽은 비극적인 사건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을 ‘따랐다’는 말은 ‘아하르’인데 적극적으로 따르다. 의지적으로 추구하다. 라는 말로 단순히 참가한 것이 아니라 제의에 깊이 개입한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 ‘붙어’라는 말은 ‘다바크’인데 ‘굳게 결합하다.’ 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바알브올의 사건 가운데서도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성경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 참 지혜요 지식이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를 강조하셨다,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이를 행하지 않는 자는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눅12: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열방이 보기에 이스라엘이 큰 나라로 비친 까닭은 그들의 영토가 광활해서가 아니며, 군사력이 막강해서도 아니며, 경제력이 풍부해서도 아니라 오직 그들에게 참 지혜와 지식인 여호와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이 함께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며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능히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먼저 조건도 없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하여 주시고 그의 백성을 삼으시고 그와 언약해 주셨기 때문에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것이다. 이는 목석으로 만든 우상과 차별화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가까이 계시고 그들의 마음의 소원과 간구에 응답하시며 언제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신다. 모세는 이런 큰 나라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2)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때의 상황을 회고하는 부분이다. (4:9-14절)
이는 출애굽 신세대들에게 율법의 신적 권위를 생생하게 인식시켜 주기 위한 목적이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직역하면 ‘네 생명 즉 영혼을 힘써 지키라.’는 말이다. 우리의 마음은 악에 미혹당하기 쉽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다.
모세는 마음을 지킨 후에 할 일들을 명령하고 있는데 첫째, 이스라엘이 눈으로 목도한 일을 잊지 말라는 것, 둘째, 그 일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 셋째 그 일들을 자식과 손자에게 알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도 이와 비슷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신 것은 그들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거듭되고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은 하나님의 현현의 가견적 현상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고, 충천하는 화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표징이 되며, 하나님의 대적자들에는 심판의 표징이 된다.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할 때에 어둠과 구름이 흑암을 덮었다는 것은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신다.
*시104:2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현시하실 때는 그 눈부신 영광의 광채를 반드시 구름과 흑암으로 가려야 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 모세조차도 정작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와 말씀만 들었을 뿐 그 형상을 직접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반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라 명령하셨는데 그것은 곧 십계명이었으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었다. 십계명의 ‘1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계명의 완전성을 나타내며, 두 돌판이라는 ‘2’라는 숫자는 하나님 계명의 증언성을 나타낸다.
3) 율법의 수여자인 하나님의 거룩성과 유일성을 강조하고 있다. (4:15-24절)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가견적인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기를 바라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조차 어떤 형상으로 대치시켜 만들어 섬길 우려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이유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자의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철저히 금지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부패한 행위이며 인간이 만든 우상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살았기 때문에 애굽인들의 각종 동물숭배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시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동물숭배의 무가치성에 대해서는 이미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에서 분명히 드러났지만 저들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성과 유일성은 자신과 비견된 그 어떤 형상도 단호히 배격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나약한 심성을 가진 인간은 현실적이고 가견적인 것만 믿기 때문에 신들을 만들고 우상을 깎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고대인들은 해와 별들, 우주에 거하는 모든 것을 보고 숭배하였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편익을 위하여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물체에 불과하다. 그런 것들을 섬기는 인간의 행위는 비천하고 패역한 것이 되는 것이다.
‘너희를 쇠풀무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직역하면 ‘쇠를 녹이는 용광로’라는 말인데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쇠풀무 같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노역과 학대가 얼마나 심했던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들을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는데 이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은 열국 중에 제사장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이들의 지도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그것이 억울하여 그 이유를 거듭거듭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신세대가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순종하여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모세가 거듭 역설하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은 호렙 산에서 맺은 언약을 잊지 말고 절대로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죄와 불의에 대해서는 맹렬히 타오르는 불처럼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실제로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불로 심판하셨는데 결국 종말에는 모든 죄인이 불로 심판을 당할 것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기거나 그들에게 헌신과 애정을 돌리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과 동일하게 감정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4) 우상숭배가 초래할 엄청난 죄의 대가에 대한 경고이다. (4:25-31절)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 곧 십계명 중 제2계명을 깨뜨린 결과가 된다. 따라서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이스라엘이 우상을 조각하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것이며 그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를 불러 증거하게 했다.
이는 곧 우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증거한다는 뜻으로 모세의 말이 지니고 있는 말씀의 권위를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천지는 불변하는 것이므로 이 경고 역시 불변한다는 것이다.
첫째, 가나안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다.
이 경고는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파란만장한 앞날을 예언한 전주곡이 되고 말았다.
둘째, 이스라엘을 여러 민족 중에 흩어버린다.
이 예언대로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이방인 중에 흩어지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 후로 이스라엘은 세계 각지에 흩어지고 말았는데, 그들의 후손이 남은 자가 많지 못하며 지금도 고토로 귀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셋째, 거기서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길 것이다.
이 예언적 경고는 큰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만들어 섬긴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 흩어져서도 다시 우상을 섬긴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소욕대로 내버려 두시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만약 이스라엘이 그러한 죄에 빠져 징계를 당하더라도 결코 여호와의 자비하심을 잊지 말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철저히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언제, 어느 곳에서나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목적이 그들을 멸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하나님은 ‘끝날’을 예비하셨다.
문자적으로 ‘날들의 끝에’ 라는 이 말은 1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것, 혹은 오늘 날의 이스라엘 건국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의 재림의 때를 가리키는데 이 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며 멸하지 아니하신다. 그 이유는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잊지 않고 준행하시기 때문이다.
5) 출애굽의 대사건을 회상시켜 주는 부분이다. (4:32-40절)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도록 촉구하는 것인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만이 약속의 땅에서 오래도록 축복받을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해준다.
이는 모압 평지에서 행한 모세의 첫 번째 설교의 결론 부분이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신세대에게 회상시켜 줌으로써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훈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지난날을 상고하는 것은 신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이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신앙을 더욱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환난을 당했을 때 지난날을 기억하며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베풀어 주실 은혜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첫째,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생존한 것이다.
이는 호렙 산에 친히 강림하시고 백성들에게 실제로 생생한 음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계시하신 율법 수여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도 못하는 우상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 즉 하나님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두 번째는 시험과 이적과 기사로 전쟁하여 출애굽 시킨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시험, 이적, 기사는 인간 역사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타 민족의 독립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첫째, 400년이나 종살이 했던 노예 민족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일순간에 세계 최대의 강국 애굽으로부터 전쟁이나 전투가 없이 평화 상태에서 당당하게 나왔다는 점.
둘째,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을 광야에서 무사히 생활했다는 점.
셋째, 군사 무기나 전투의 경험이 없는 노예 민족이 강력한 토착민족을 몰아내고 요새화된 가나안 땅을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정착하고 안주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면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초자연적 사건이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신적 경륜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 유일신 사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경우이다. 이 말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믿고 있던 다신론 사상, 범신론 사상, 지역신론 사상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으며 이는 십계명 중 제 1계명으로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많은 권능으로 역사하신 이유는 오직 그들의 열조를 먼저 사랑하시고 그들과 맺은 당신의 무한한 언약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후손을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애굽에서 불러내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보다 강한 민족들을 다 쫓아내시고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그 징조로 최근에 자신보다 강한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정복하여 가나안 전쟁의 성공을 보장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늘 기억하고 명심하여 그 언약 안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명심하라’는 말은 ‘되돌아가라’는 말 ‘슈브’와 마음이라는 말 ‘레바브’가 합쳐진 말로 ‘항상 마음을 돌이켜 되새기라.’는 의미이다.
저들이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킬 때 이스라엘은 복을 받아 자신과 후손들의 생명의 날이 길 것이며 여호와께서 주시는 가나안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게 될 것이다.
2. 요단 동편의 세 도피성 (4:41-43절)
모세가 요단 동편에 설정한 세 개의 도피성에 대한 기록이다. 도피성은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에 각각 세 개씩 선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첫 번째 설교가 끝난 후 아모리 족속으로부터 탈취한 동편에 세 개의 도피성을 정한 것이다.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도피성 제도는 일종의 성역 제도로서 오직 과실 치사죄 등과 같은 오살죄를 지은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따라서 이방의 성역과 같이 그 자체를 신성시하여 무조건 그리로 피신한 자를 보호하던 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는 부지중에 오살한 자가 피의 복수자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피난하는 피난처이며 복수가 복수를 낳는 무모한 피흘림을 방지하는 일종의 사회적 중재 제도인 것이다. 르우벤 지파를 위하여 베셀 성읍을 택하고, 갓 지파를 위하여 길르앗 라못을 택하였으며,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바산 골란을 선정하였다.
3. 모세의 제 2설교의 전언 (4:44-49절)
모세의 두 번째 설교로서 본서 전체의 본론에 해당한다. 본문은 이의 도입부로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선포했는지 알려 주고 있다. 모세는 요단 동편을 정복한 사실을 간략하게 회고하면서 그의 두 번째 설교가 행해진 시기와 장소, 그리고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 율법은 이미 시내 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였으며 하나님의 신실성에 근거하여 선포되었기 때문에 변경이 불가하다. 모세는 이 설교를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서 행하였다.
이는 이 설교가 역사적 기록물임을 증거해 주는데 참으로 백성들이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마음 판에 새기면서 기억하여 지켜야 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