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구병모 | 니니코라치우푼타
약 사십 년 이후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니니코라치우푼타’라는 우리의 언어로는 알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의 우주인에 대한 상상을 구체화하면서도 단순한 언어유희에 그치지 않고 시종일관 우리 사회의 치매와 간병의 어두운 현실을 환기하는 날카로운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가더라도 결코 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모정이라는 정동이 둔중하게 우리를 강타하는 후반부의 몇몇 대목은 이 소설의 문제의식이 이 낡고 오래된 주제를 어떻게 새롭게 갱신해내는지 숨죽여 지켜보는 문학사적 시간이 되리라는 감상도 없지 않다. _심사평에서
수상 후보작
김혜진 | 축복을 비는 마음
인간의 마음은 언제 어디서 열리는 것일까. 「축복을 비는 마음」은 청소 대행업체의 하청을 받아 일하는, 세대를 격한 두 여성의 고단한 노동을 핍진하게 보여주는 가운데 고립된 마음이 열리는 미세한 관계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들의 삶은 사회적으로는 결정되었는지 모르지만, 삶의 시간에 관해서라면 ‘축복’의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소설은 기적처럼 보여준다. _정홍수(문학평론가)
박지영 |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현실을 소설화하는 상상력의 측면에서 우리 소설은 어떻게 봐도 다소 느슨하거나 성긴 감이 없지 않았다. 이 점에서 박지영의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는 우리 사회의 노년 문제와 청춘의 불안, 그리고 그것을 포괄하는 가족관계를 마침 도래했던 팬데믹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위에서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_김경수(문학평론가)
백수린 | 봄밤의 우리
어떤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는 경험은 특히. 백수린은 「봄밤의 우리」를 통해 그 슬픔에 동참하고 함께 애도하는 주체에 대하여, 그가 전해주는 따뜻한 온기에 대하여, 그리하여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한순간이 되어버리는 영원에 대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때 그 주체가 꼭 우리일 필요는 없다. 인간의 경계를 넘어 동식물과 사물, 우주와 함께 하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의 마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심아진 | 신의 한 수
소통의 어려움이나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많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흔히 소설가들이 삼인칭 전지적 시점의 주체로 상정하면서도 작품 안에 등장시키지는 않는 ‘신’을 일인칭 화자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심아진의 「신의 한 수」는 남다르다. 인간은 신의 ‘식견으로도 이해 불가능한’ 일을 하는 존재고, 신의 ‘말 따위에 귀 기울이지 않’는 존재라는 작가의 인식이 흥미롭다. 그렇다고 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신도 한 수를 두는데, 그것을 인간은 우연이라고 부른다고 이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_이승우(소설가)
이기호 |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자, 누구인가?
이기호의 최근작은 소설가의 역할과 존재론에 집중하고 있는 감이 있다. 이번 소설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글쟁이들이 저마다의 작은 문학(이야기)에 골몰하느라 세상을 전체적으로 보는 시야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는 의뭉스럽게 한 전직 대통령을 소설로 끌어들여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이기호는 다시금 우리 시대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가란 어떤 존재인지를 자문한다. _김경수(문학평론가)
장혜령 | 당신의 히로시마
장혜령의 「당신의 히로시마」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맞서온 소설의 오랜 책무를 감동적으로 환기한다. 망각의 인력과 싸우는 기억과 증언의 글쓰기는 살아남은 자의 탄식과 우울을 끌어안은 채로 켜켜이 쌓인 상실의 시간을 향한다. 침묵의 여백과 동행하는 단단하고 곡진한 언어들은 그 희미한 구원을 향한 작가의 뜨거운 노동과 상상을 짐작게 한다. _정홍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