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상징] 사순 전례의 상징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
대림절의 상징이 빛이라 한다면 사순절의 상징은 회색의 재다.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려고 오시는 참 빛인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대림절에 촛불을 켜거나 전지불로 장식을 하였고 항상 기쁨이 앞섰다. 반면 사순절의 첫 상징인 재는 허무를 나타낸다. 인간의 삶 속에서 누구나 거쳐야 할 운명의 표시이다. 고통과 죽음이 앞을 가리우고 있다. 누구나 아는 듯하면서도 실은 잊고 지낸다. 아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사순절이 시작될 때 교회에서 재를 축성하여 바치는 기도문은 인생의 허무와 사멸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가 바를 이 재에 강복하소서, 우리는 먼지이고 또 먼지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습니다.“ 회색의 재를 보며 꽃피는 인생의 불가피한 사멸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사제는 재의 십자표를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 기도에서 들려준 경구를 되풀이한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이 구절은 원래 구약의 창세기(3,19)에서 하느님이 범죄한 후의 아담에게 한 말씀이었다.
물론 교회는 그저 경고로써 끝내는 것이 아니다. 즉 다른 더 비참한 종말의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죄와 잘못에 묻힌 인간의 종말을 생각하도록 한다. 그래서 재는 하느님을 저버림, 그리고 생명의 원천에서 떨어져 나간 표시이기도 하다. 축복 기도의 시초에 ‘죽어 없어질 운명’이 죄인들에게 들린다. “하느님, 당신은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고 그가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어두움의 순간은 또한 희망을 준다. 원시적 인간은 경험을 통해 불과 재가 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재를 보속의 표시로 사용하고 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참회의 뜻으로 우리들 머리에 얹으려는 이 재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넘치는 은총으로 축성해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이 재의 축복 기도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확대된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어 재의 십
자표를 받기 위하여 여기에 나온 모든 이들을 축복하소서. 올바른 마음으로 40일에 들어가도록 도와주소서…” 지나친 허무를 삼가하기 위하여 사제는 ‘너는 먼지’란 표현보다 “회심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란 말씀을 택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새 축복을 마련해 주신 분이다. 성세를 받고 신앙을 가진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는 함께 계신다. 그리하여 이 재의 십자표는 보속 기간의 시작에서 또한 그 끝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 자신이 흙에서 왔으므로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사순절의 열심한 수련으로 죄의 용서를 받고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닮을 수 있게 하소서”(축복 기도 2에서).
사순절
사순(四句)은 40일의 뜻이다. 40이란 수와 관련된 성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쏟아…”(노아의 홍수. 창세 7,4).
“모세는 구름을 뚫고 산으로 올라가 사십 주야를 그 산에서 지냈다(십계명을 받기 전에 시나이 산상에서 머무름. 출애 24,18).
“그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사십일을 밤낮으로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하느님을 뵙기 전의 엘리야. 1열왕 19,8).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가 하룻 동안 돌아다니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고 외쳤다. 이 말에 니느웨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다”(요나 3,4).
“에집트에서 나올 때 군인 연령에 이른 층이 다 죽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 년 동안 광야를 헤매야 했다”(여호 5,6).
특히 예수의 광야 생활에 40일의 뜻이 담겨 있다.
“예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돌아오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셔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사십 일이 지났을 때에는 몹시 허기지셨다”(루가 4,1-2). 하느님의 계시, 구원, 구원의 선포를 위한 정화와 보속과 준비의 기간임을 표시하고 있다.
40일을 뜻하는 사순절은 처음부터 하루도 틀림없는 재계 40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 목요일부터 40일 이전의 주일이 사순절 첫 주일이었으나 주일에는 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5세기에는 성삼일 중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까지 합쳐 36일로 우선 정해 놓았다. 일년은 365일인데 십일조를 바치는 정신에서 일년의 10분의 1인 36일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에 사순 첫 주일 이전 나흘을 더 합산, 오늘처럼 재와 수요일부터 계산하여 40일이란 수를 맞추었다. 그러나 이것도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6세기에는 현 사순절 이전의 세 주일을 중요하게 보아, 십자리 수에 맞추어 오순, 육순, 칠순 주일이라 일컬었다.
40이란 수가 예비 신자 교리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으나 사순절 자체의 근원은 알 수 없다. 부활 준비 기간에 관한 초기의 여러 전례 기록에는 그 기일이 일정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말하여 40일이란 수는 수학적인 수치(數値)에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40이란 수는 하느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속죄 행위와 더불어 합당한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1969년의 새 교회력 규정은 사순절의 시작을 원래의 6주 전 주일로 환원시키지 않고 그간의 전통과 대중성을 고려하여 재의 수요일에 시작하여 성 목요일 주의 만찬미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로 정하였는데 그간의 주일까지 합하면 44일이 되고 주일을 빼면 38일뿐이다. 따라서 오늘의 사순절은 글자 그대로 40일을 뜻한다기보다 영신적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부활 단식은 2-3세기경 부활 전 금요일과 토요일에 맨처음 시도된 것으로 보인다. 즉 부활 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하루 중 절반 정도만 단식하고 금요일과 토요일, 부활 전야제까지는 온종일 단식하였다. 이틀간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뜻으로 행한 애통의 단식이었다.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당시 일정치 않지만 며칠간의 부활 전 단식 규정이 있었다. 로마에서는 4세기경에 부활 전 3주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여부에 대해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다.
전례헌장(110항)에 보면 “사순절의 보속은 다만 내적이고 개인적이어서는 아니 되며, 동시에 외적이요 사회적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극기 행위는 예비 신자들이 완전한 개종을 위하여 지난 삶을 반성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회개하는 내적 쇄신의 일부이다. 이런 내적 정신을 바탕으로 외적이며 사회적인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극기는 기도, 단식, 자선 행위를 포함한다. 현대에는 단식보다는 충실한 기도와 불우 이웃을 돕는 자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단식과 금육 규정은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단식과 금육재를 지키고 사순절 매 금요일마다 금육재를 지킨다. 극기의 정신으로 살며 사순절 동안 절약한 성금을 전국적으로 모아 가난한 나라와 지역으로 보낸다. 그리하여 환자, 극빈자, 죄수, 영세민에 대한 사회적 사랑을 실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