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송수권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 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 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 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 주고 있지 않으냐.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향토적, 서정적, 교훈적
◆ 특성
① 시적 대상(청자)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함.
②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함께 그 이유를 제시함.
③ 설의적 표현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유도함.
④ 동일한 시행을 반복하여 의미를 강조함.
⑤ 명령형을 통해 화자의 단호한 의지를 강조함.
⑥ 선인들의 삶과 현대인들의 삶을 대조하여 주제를 부각시킴.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 공중을 오가는 하찮은 미물인 날짐승에게까지 인정을 베푸는 공간을 인식하지도
못한다는 의미로, 이러한 고향의 인정을 알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대인에 대한
비판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 서울 조카아이들 → 시적 대상(청자)로, 화자와 달리 고향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는
존재다. 시적 대상을 아이로 설정한 것은 순수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철없음(인식의 부족)을 부각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지명을 굳이 사용한 것은
도시적 이미지를 강조해 도시의 보편적 모습인 각박함과 이기심을 부각시켜 작품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고향의 배려와 공존의 가치와 대비하기 위함이다.
* 따뜻한 등불 → 타인의 배려와 희생으로 얻는 삶의 위안, 따뜻한 인정과 배려와
공존의 가치
* (할아버지께서 남겨 놓으신) 짚신 한 죽(10켤레)
→ 외로운 길손의 길 보시(배려, 위로, 베풂의 의미)로, 날짐승을 위해 남겨 놓은
'까치밥'과 의미가 유사
* 말쿠지 → '말코지(물건을 걸기 위하여 벽 따위에 달아 두는 나무 갈고리)'의 평안도 방언
*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 놓고 /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 할아버지는 곧 죽게 될 처지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짚신을 남겼다는
의미이다.
* 아이들아 → 날짐승처럼 연약해서 배려가 필요한 대상임.
* 눈 → 결핍과 시련을 상징
* 머나먼 길 → 앞으로의 험난한 인생길
◆ 제재 : 까치밥 → 날짐승(타인)을 위한 희생과 배려의 의미가 담김.
등불, 짚신, 길 보시와 유사한 의미임.
◆ 화자 : 까치밥을 통해 공존과 배려의 가치를 일깨워주고자 하는 '나'
◆ 주제 : 타인을 배려하는 인정의 소중함. 선인들이 보여준 공존의 가치
[시상의 흐름(짜임)]
◆ 1~10행 : 고향의 빈 하늘을 풍요롭게 채워주고,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까치밥
◆ 11~17행 : 조상들의 배려를 실천하는 삶
◆ 18~23행 : 현대인의 각성 촉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까치밥'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삶의 가치의 중요성을 그리고 있다.
고향 사람들은 배를 주릴 때에도 까치밥을 따지 않았다. 이는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을 배려한 것이다. 이렇게 고향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하찮은
미물에게도 인정을 베풀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도 짚신을 남기셨는데,
이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이다. 이렇듯 고향은 타인을 배려하는
인정이 있었지만, 이런 것들이 없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작품은 특히 짚신을 남기시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까치밥을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을 대비시켜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소개]
송수권 : 시인
출생-사망 : 1940년 3월 15일, 전라남도 고흥 - 2016년 4월 4일
학력 : 서라벌예술학원 문예창작학 학사
데뷔 : 1975년 시 '산문에 기대어'
수상 : 2013년 제5회 구상문학상 본상, 2012년 제8회 김삿갓문학상
경력 : 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
~2005.08 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1940년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에서 태어났다.
1959년 순천사범학교와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산문에 기대어〉 등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같은 해 문화공보부 예술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 첫 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와 1982년 두 번째 시집
《꿈꾸는 섬》을 출간하였고, 이후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30년간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 및 광주학생교육원 연구사, 연구관을 지낸 뒤
1995년 명예퇴직하였다. 1999년부터는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7년 전라남도 문화상, 1988년 제2회 소월시문학상, 1993년 서라벌문학상,
1996년 제7회 김달진문학상, 1999년 제11회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시집 《아도(啞陶)》(1984), 《새야 새야 파랑새야》(1986),
《우리들의 땅》(1988), 《별밤지기》(1992), 《바람에 지는 아픈 꽃처럼》(1994),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1998)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다시 산문(山門)에 기대어》(1986), 역사기행집으로 《남도기행》(1991) 등이 있다.
2016년 4월 4일 폐암으로 인해 76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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