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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10월12일 월요일[(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수도회] 회개를 이루는 소통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로마 1,1-7
+ 복음 루카 11,29-32
◈ 오늘의 묵상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던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한 학기에 시험은 두 번
보았습니다. 중간고사를 기말고사보다 잘 보았으면 두 시험 점수의
평균이 그 학생의 성적이었지만, 만일 기말고사를 중간고사보다 잘
보았다면 실력이 향상된 것으로 인정하여 중간고사 점수는 넣지 않고
기말고사 점수만으로 성적을 주셨습니다.
회개한 죄인에 관한 문제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악하게 살다가
회심하여 하느님께 돌아왔다면, 그들의 삶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지 못하는 군중들에게,
불의와 폭력을 저질렀으나 요나의 설교에 회개하여 깨끗이 손을 씻은
니네베 사람들이 평생을 미지근하게 살아온 군중이나 신자들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공공연한 죄인이었다가 예수님께 용서를 받고 돌아와 그분을 깊이
사랑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우리는 어떤 눈으로 바라봅니까?
예수님께서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어떤 사람은, 커다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하겠지요.
신앙은 어떤 표징이나 기적을 눈으로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만남과 체험을 통하여 이르게 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최대의
표징이요 기적입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
2015년 나해 10월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제1독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시작입니다. 1,1-7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일이 많이 밀렸습니다. 라디오 방송
원고도 써야 하고, 강의를 위한 PPT 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또한 강의
때에 쓸 강의록도 만들어야 합니다. 분명히 제 계산으로는 별 차질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선가 일이 꼬였는지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 종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썼을까요?
막상 글을 쓰려고 폼을 잡고서 아침 일찍부터 책상에 앉았지만 생각보다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책을 좀 읽다보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들쳐보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글 쓸 생각은 잊어버리고 그
책에 푹 빠졌습니다. 한참을 봤을까요?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배에서도
밥 좀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찌개 만들고 밥을 해서 식사를
했습니다. 설거지까지 마친 뒤에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창문으로 햇빛이 비춰지면서 슬슬 졸음이
쏟아집니다.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렸습니다. 방 안에 커피의 은은한
향이 퍼집니다. 하지만 커피를 마셔도 졸음이 달아나지를 않습니다. 결국
‘딱 30분만 자자.’라는 결심을 하고 알람을 맞춰서 잠을 청합니다.
어느 순간, 너무 오래 자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알람소리도 듣지 못하고 한참을 더 잔 것입니다. 시간을 보니 이제 저녁
먹을 시간입니다. 주방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준비합니다. 무엇을 만들까
하다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간단히 파스타를 만들어 먹습니다. 그리고
소화도 시킬 겸 텔레비전을 조금 보자는 생각으로 전원을 켰습니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것입니다. 이 텔레비전에 푹 빠져서 또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잊습니다.
방송을 본 뒤에 저녁 식사를 하고 미루었던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 후,
다시 의자에 앉습니다. 그리고 들은 생각은 ‘오늘 뭐 했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 문 밖을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그저 결심일 뿐, 이룬 성과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생각만으로는 못할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나 이 세상은 자신의 생각과는 분명 다르게
흘러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다른 곳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따름이 분명히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곳에 관심을 두고,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려는 욕심에 정작
주님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으며, 주님의 뜻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이 오히려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요나를 믿고
그의 말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또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구원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이지요.
주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내 삶 안에서
제일순위에 올려야 하겠습니다.
가슴 깊은 신념에서 말하는 '아니오'는 그저 다른 이를 기쁘게 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말하는 '예'보다 더 낫고 위대하다(마하트마 간디).
축하할 일을 생각하면 참 많습니다. 작은 것도 많이 축하해주세요.
어떤 선택?
물이 반 정도 찬 컵이 있습니다. 이 컵을 보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요.
1) “물이 반밖에 없잖아. 마음에 안 들어.”(부정적 견해)
2) “반이 들어 있어서 기뻐.”(긍정적 견해)
3) “반이나 남아 있어 다행이다.”(감사하게 생각하는 견해)
어느 견해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정할 문제인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선택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기억하면 분명히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반 정도 찬 컵입니다.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0월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루카 11,29)
우리나라는 물부족 국가에 속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직 극심할 정도는 아니지만 물이 부족한 국가로
벌써 분류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1인당 물소비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답니다.
최근 가뭄이 계속되면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제한급수 이야기가 나오곤 있지만
아직도 그 심각성을 체감하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지구온난화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기후변화 문제는 심각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변화의 폭이 다른 나라들보다도 더 심하다고 하는데도
아직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최근 앓고 있는 "우리의 누이 지구"를 살리자고
호소하시면서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타이타닉호를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배를 탔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조금만 더 빨리
빙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대처하였더라면
그런 엄청난 비극은 없었을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엄청난 징표들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우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어떻하면 좋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요나가 되어 회개하라고 요청하십니다.
니느베가 멸망하듯이 이 아름다운 누이 지구도 멸망할 수 있다고...
니느베 사람들은 알아듣고 회개하여 멸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우리의 누이 지구를 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 곰곰히 고민해보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 봅시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회개합시다.
- 구속주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0월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29-32)
하느님 말씀으로 돌아서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말씀이 바탕이 되지않고서는 우리의 회개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듯이 우리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말씀을 향하고 말씀은 회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말씀 안에서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다시 풍요롭게 하는 것이 순종이며 회개입니다.
말씀으로 채워질 때 말씀으로 서로를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을 통하여 주님과의 일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은총이 진짜 회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회개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무엇보다도 선하지 못한 우리자신이
선하신 하느님과 결합하는 기쁨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의탁하는
회개의 시간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회개를 이루는 소통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나해 연중 제28주간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루카 11,29-32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2)
회개를 이루는 소통
순수한 본질을 지니고 창조된 인간은 생존의 몸부림 속에 그 순수함을
점차 잃어가면서 자신만의 관점과 사고의 틀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보니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하느님, 영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한 채 현세적인 즐거움과 행복에 집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신 표징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에 대해 강한 질책을 하셨습니다(루카 10,13). 그리고 벙어리
마귀에 든 사람이 말을 하도록 해주셨습니다(11,14). 군중들은 이런
그분의 능력과 사랑의 초대를 보고도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이
바라던 현세적 변화와 치유만을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군중들을 보시고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11,29) 하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예를 들어 눈에 보이는
현상과 결과에 집착하여 진정한 표징인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나무라신 것입니다.
이방인들이었던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요나 보다 더 큰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징을
보고도 눈에 보이는 표징만을 요구하며 회개하지 않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삐뚤어진 인식에 탄식을 하십니다. 종의 자녀가
되어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며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는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되므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그 가치는 복음적 진리에 대한 한없는 갈망이며, 사랑의 완성에
도달하려는 열정과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한 전적인 버림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며 세상 가운데서 하늘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꾾임없이 그분과 사랑의
소통을 하며 자신이 어둠 속에 있으며 병들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어둠 속에 있으며 병들어 있음을 인정하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자신만의 사고의 틀에 갇히고 현세적인
것들에 눈이 멀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둔함과 무감각에서
깨어나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안일하고 무감각하게 흘러가는 세대에 목소리 높여 경고하고
계십니다. 삶의 안일함에 빠져서 감각적인 것만을 추구하게 되는 세대를
일깨우시려는 것입니다. 삶의 안락은 비단 물질적인 풍요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지지 않더라도 물질만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는 세대, 하느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세대가 안일함에 빠진 소통이 불가능한 세대가 아닐까요?
더 나아가 하느님을 찾는다고 하지만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가치관에
얽매여 새로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려하기 보다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각적인 것은 사람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사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될 때 그 사람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소통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회개란 주님 앞에 자신을 두고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복음의 빛으로 다시
새롭게 바라보며 사랑의 주님께로 발걸음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현세적인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음을 상기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과 그분의 사랑을 목말라 하는 영(靈)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보이는 것들에 대한 애착을 버릴 용기를 주시고,
당신을 주님이요 행복의 근원으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소서!
당신과 깊은 사랑의 소통을 함으로써 참으로 행복한 제가 되도록 제
마음을 열어주소서! 아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청주] 마음을 바꾸어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0월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마음을 바꾸어라.
저는 빨래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뜻한 바가 있어서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고 짤순이를 이용 했습니다. 빨래하고 다림질 하고 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양말 한 짝도 빨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탁하던 시간만큼 시간이 남아야
할 텐데 그렇지를 않습니다. 더러움을 씻겨내면서 내 마음의 더러움도
깨끗이 정화되기를 소망 했습니다. 다림질을 하면서 내 마음이
반듯해지기를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도우미께서 다해주니까
그런 생각을 할 기회도 많이 놓쳤습니다.
분명한 것은 남이 나를 정화시켜 주지는 못합니다. 겉은 깨끗하게 해줄
수 있을지언정 속을 거룩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보다도 내 마음이 더 빨리 더러워지는데도 세탁하는 것에는
민감하면서도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에는 소홀합니다. 구두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하면서도 내 마음을 빛나게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간직합니다. 외적인 매무새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을 가꾸는 일에 다시금
정성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요구하는 군중을 보시고 “요나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가 11,30)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음의 쇄신을 갖지 않은 이상 어떤 것을 보여줘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열고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려는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신 표징을 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구원의 표징이 되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단죄의 표징이 됩니다.
요나 예언자가 회개의 삶을 가르쳤을 때 삶을 바꾼 사람은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살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거부하는 사람은 생명을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체가 벌이됩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벌입니다.
일상을 하느님의 손길이 주어지는 자리로 인정할 때 매 순간 접하게 되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마음의 변화
없이는 주님의 손길이 매 순간 주어져도 결코 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꾸십시오. 주어진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일이라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지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도구삼아 일하십니다.
그러니 감사하십시오.
성녀 줄리아르는 말합니다. “정력적으로 온 힘을 다해서 일하되 법석을
피우지 마십시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은 항상 일하시나 조용히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나 말이 많은가?” 조용한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삶의 자리를 표징의 자리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2015년 나해 10월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제1독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시작입니다. 1,1-7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성소후원회 임원들과 성지순례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나바위
성지를 가기로 했습니다. 성지에 계시는 수녀님과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성지를 보았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배를 타고
도착하신 곳입니다. 성지에는 100년이 넘은 성당이 있고, 성모 동산이
있었습니다. 성지를 감싸면서 십자가의 길이 있었고, 작은 동산 위에는
멀리 강이 보이는 정자가 있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는 당일에는 성지를
담당하시는 신부님께서 성지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실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가 유아세례를 받았던 전주의 전동성당엘 갔었고, 덤으로
한옥마을 구경도 하였습니다.
불교에는 ‘윤회도’가 있습니다. 불자들은 윤회도를 보면서 바른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금 열심히 살면 한 단계 높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지금 욕망과 욕심에 따라서 살면 더 낮은 단계의
삶으로 내려간다고 이야기 합니다. 패자부활전도 있을 것이고, 승자의
추락도 있을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그것을 ‘연기’라고 말을 합니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하느님 나라도 ‘답사’를 다녀올 수 있다면 어떨까?
지옥이라는 곳도 ‘답사’를 다녀올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삶은 변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런
것이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믿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표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솔로몬보다 더 큰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많은 보물을 남겨 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연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발견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성, 이성, 오성을 통해서 참된 진리의 길을
찾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보물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보면 잘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보물은 잠시 멈추어서 바라모면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보여 주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는 것도 큰 표징입니다. 우리는 밤에
잠을 자면서 죽음을 체험합니다. 자는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자는 동안 우리는 깊은 어둠을 체험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어쩌면 늘 새로운 부활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의 뜻으로
바라볼 때, 내가 만나는 이웃, 내가 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때, 교만함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서로를 이용하려하고, 모두가 경쟁의 상대로 보이게
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육의 눈으로 살면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면서
지내야 하겠습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세속 잡균에 강한 신앙인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말은 무력보다 매스컴이아니라 진리입니다.
국력도 권력도 존경도 모두 진리를 기초할 때 힘이 생기는 겁니다.
진리가 힘을 못 쓰는 사회는 속이 썩어가는 것이므로 곧 망합니다.
진리로 통치하는 지혜로운 솔로몬 왕보다 더 크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참 신앙인은 이 시대 시바의 여왕처럼 더 크신 주님을 찾아 나섭시다.
진리로 건강해진 사람은 세속 잡균에 강하며 하늘을 향해 매진합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31)”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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