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어린이’와 ‘어린이책’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외국 번역물과 전집류가 주류를 이루던 출판 시장에서 국내 작가의 단행본 어린이책이 본격적으로 출간되기 시작했고, 어린이 독서 관련 단체가 생겨났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는 어린이 서비스 및 독서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IMF 사태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출판시장은 오히려 확장되었으며, 어린이 전문 서점과 어린이 전문 도서관의 탄생, 공공도서관의 확대, 학교도서관의 재정립으로 한국 어린이 독서문화의 기반이 이 시기에 굳건히 마련되었다.
외국에서는 60년~100년 동안에 이룬 성과를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20~30년이라는 단기간에 이룬 힘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그 원류는 1923년 방정환으로부터 시작된 어린이문학과 소년운동에 있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다소 침체되었던 어린이 운동은 1980년대에 다시 시작되었다. 이 시기 어린이 독서운동의 발원이 된 단체가 바로 어린이도서연구회로, 《한국 어린이 독서운동사》는 이 단체의 탄생과 활동에 주목해 한국에서 ‘어린이’와 ‘어린이책’이 문화운동에 중요하게 등장한 과정과 성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저자 김은옥은 1994년부터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2019년 현재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자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어린이 독서운동의 현장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동시에,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활동을 학술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과제를 가지고 2006년부터 대구 계명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서 연구를 해왔다. 《한국 어린이 독서운동사》는 저자의 2016년 박사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어린이 독서운동사에 남긴 발자취
어린이도서연구회는 1980년대 초 교사 중심의 모임으로 시작해 1990년대 학부모 중심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모임이 생긴다고 할 만큼의 놀라운 속도로 전국 5,0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조직으로 영향력과 조직력이 확장되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활동 시기를 구분해보면, 현대 어린이 독서운동 형성기 / 확장기 / 발전 방향 모색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인 형성기는 서울양서협동조합 내 어린이독서연구모임이 만들어진 1979년부터 1992년까지라 할 수 있다. 이때까지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전문가 혹은 교사 중심의 소규모 조직에 불과했다. 두 번째 확장기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라 할 수 있는데, 교사 중심의 연구 활동에서 학부모 중심의 교육문화 운동으로 활동이 확장ㆍ전환되면서 조직이 급격히 성장했다. 마지막 발전 방향 모색기는 2004년 이후 시기로, 활동상과 이에 대한 평가는 현재 진행형이다.
1980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어린이 독서운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우선 어린이 출판 환경 측면에서는 전집 형태의 출판을 단행본 중심의 출판으로 바꾸었고, 세계명작 중심에서 우리 창작물 중심으로 어린이문학의 내용을 바꾸었다. 어린이문학 환경에서는 권장도서 목록을 통해 어린이책의 비평을 공론화하고 선정 기준을 제시했으며, 어린이문학을 직업으로 하는 작가군의 형성에 기여하기도 했다. 현재, 많은 국내 작가들의 창작동화가 어린이 문학, 어린이도서 출판계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데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활동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어린이 독서문화 환경에서는 낙도·벽지 지역 학교, 공부방에 책 보내 주기 운동과 민간도서관·공공도서관 어린이 열람실 및 학교도서관의 개선을 위해 여전히 활동하면서 지역의 다양한 어린이 문화의 형성과 보급에 큰 몫을 담당했다.
어린이가 독서의 주체가 되는 날까지
우리나라의 독서교육은 책과 문학의 즐거움을 알려주기보다 책을 읽도록 ‘강요’한다. 독서인증제, 독서이력철로 대표되는 책읽기는 숱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단계로 자리잡고 있다. 독서교육이 입시교육에 편입되면서 초등학교에서부터 필독도서, 권장도서로 책읽기를 강요하고 독후감이나 독후 활동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강제성을 띠면서라도 어린이에게 책을 읽혀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어린이들로 하여금 평생 책을 즐기는 생애 독자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책의 즐거움, 문학의 즐거움을 알기 위해서는 어린이책을 선택하는 어른이 먼저 책을 읽고 어린이와 감동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어린이와 함께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동화읽는어른’이라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지부ㆍ지회 명칭은 이러한 지향을 정확하게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어린이가 진정한 독서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독후 활동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책읽기, 독서문화로서의 감동을 어린이가 스스로 알고 생애 독자가 되는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 어린이도서연구회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중이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태동부터 활동 내용, 앞으로의 과제 등을 정리한 《한국 어린이 독서운동사》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도약과 새로운 방향 정립은 물론, 곳곳에서 다양한 어린이 문화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차례
책머리에
제1부 들어가며: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
제2부 어린이 독서운동의 형성(1979~92년)
1. 사회적 배경과 계기
2. 정신적 기반
3. 단체 출범과 조직화
제3부 어린이 독서운동 형성기의 활동과 의의
1. 주요 활동
2. 의의와 한계
제4부 어린이 독서운동의 확장과 주체의 변화(1993~2002년)
1. 독서문화의 변화와 운동 주체의 변화
2. 운동 조직의 전국화와 조직 정비
제5부 어린이 독서운동 확장기의 활동과 의의
1. 독서문화 활동
2. 출판문화 활동
3. 도서관 문화 활동
4. 의의와 한계
제6부 책을 마치며: 어린이가 주체가 되는 독서운동을 꿈꾸다
참고문헌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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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옥
1994년 대전동화읽는모임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하여 거창동화읽는어른모임 회장, 경남 동화읽는어른모임 협의회장, 2004년 동화읽는어른모임 전국협의회 의장, 2006년 어린이도서연구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거창 샛별초등학교 학교도서관을 만들고, 거창 군립 한마음도서관 건립준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계명대학교 문헌정보학과와 사서교육원, 경상대 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 문헌정보학과 과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서 계속 어린이 책을 공부하고 어린이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려 한다.
《어린이책으로 배운 인생》을 출간한 단비는 청소년, 교육, 인문학 분야에서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고루 펴내고 있습니다. ‘단비’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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