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콘도르 파사, 바람이 머무는 초원에서
― 안데스가 들려준 삶의 노래
비행기 창밖으로 안데스산맥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들은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 같았고, 능선을 따라 흘러가는 바람은 오래된 신화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수많은 풍경을 만났지만, 안데스는 처음부터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높이 때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온 깊이 때문이었다.
공항을 벗어나 고원을 향해 달리자 창밖 풍경이 서서히 달라졌다. 나무보다 풀이 많았고, 초원은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졌다. 흰 구름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고, 멀리 눈 덮인 봉우리들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길가에서는 라마와 알파카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원색의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들은 등에 아이를 업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관광객을 위한 연출이 아니라 수백 년 이어져 온 일상의 풍경이었다.
안데스의 바람은 특별했다. 세차게 몰아치는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얼굴을 쓰다듬듯 부드러워졌다. 현지 가이드는 “이곳 사람들은 바람을 친구처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바람이 계절을 알려 주고, 비를 데려오며, 먼 마을의 소식까지 전해 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한 마을 광장에서는 작은 장이 열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직물과 손으로 빚은 도자기, 은세공 장신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대나무와 갈대로 만든 팬플루트였다. 크기도 음색도 저마다 달랐다. 한 노인이 팬플루트를 입에 대자 낮고 깊은 선율이 광장에 번져 나갔다. 낯익은 멜로디였다.
‘엘 콘도르 파사.’
오랫동안 귀에 익었던 그 음악이 바로 이 땅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음악은 높고 낮은 산등성이를 따라 흘러가며 바람과 하나가 되었다. 관광객들도 발걸음을 멈추었고, 아이들은 장난을 멈춘 채 노인을 바라보았다. 연주가 끝난 뒤 노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오랫동안 연주하셨습니까?”
노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팬플루트는 악기가 아니라 숨을 나누는 친구랍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흔히 음악을 잘 연주하는 기술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에게 음악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풍년을 기원할 때도, 가족을 떠나보낼 때도 팬플루트는 사람들 곁에 있었다.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들꽃이 끝없이 피어 있는 초원이 펼쳐졌다. 노란 꽃, 보랏빛 꽃, 이름 모를 작은 야생화들이 바람결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있었다. 누구 하나 돌보지 않아도 계절이 오면 피고, 때가 되면 씨앗을 남긴다. 자연은 늘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소녀가 꽃을 꺾지 않고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왜 꽃을 따지 않느냐고 묻자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꽃은 여기 있어야 가장 아름다워요.”
순간 마음이 뜨끔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유하려 한다. 사진으로 담고, 손에 쥐고, 집으로 가져가려 한다. 그러나 자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 어린 소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고원 마을을 걷다 보면 사람들의 얼굴에서 공통된 표정을 발견하게 된다. 서두르지 않는 여유였다. 빠르게 걷는 사람도, 큰 소리로 다투는 사람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높은 산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의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배워 왔는지도 모른다.
해 질 무렵 전망대에 올랐다. 붉게 물든 하늘 위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원을 그리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콘도르였다. 넓은 날개를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상승기류를 타고 유유히 떠오르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콘도르는 힘으로 날기보다 바람을 믿고 난다고 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흐름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몸으로 보여 주는 셈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우리의 삶도 떠올랐다.
우리는 늘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 애쓰며 살아간다. 때로는 바람을 거슬러 날갯짓을 하느라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콘도르는 바람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바람과 함께할 때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행은 낯선 풍경을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안데스에서 만난 것은 웅장한 산맥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기다려 주는 바람,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 함께 나누는 음악,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삶의 태도였다.
돌아오는 길, 팬플루트의 선율이 다시 귓가를 스쳤다. 바람은 여전히 초원을 넘어 산과 계곡을 지나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안데스의 바람은 아직도 내 마음속을 천천히 걷고 있다. 그 바람은 서두르지 말라고, 자연과 사람의 숨결을 함께 느끼며 살아가라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엘 콘도르 파사’를 들을 때마다 먼 고원의 푸른 하늘과 끝없이 이어진 초원, 그리고 바람을 친구처럼 품고 살아가던 사람들의 미소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 기억은 오래된 여행의 추억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삶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