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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이 우리 인생을 만든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남긴 유명한 철학적 명제입니다.
데카르트는 철저하게 모든 것을 의심해 보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절대 변하지 않는 확실한 진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과 사유야말로 존재의 가장 확실한 근거이자 지식의 출발점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우리의 생각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우리가 꼴지워집니다.
생각이 운명을 다스립니다.
어떤 생각, 어떤 주제들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느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의 것들을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1-3)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근심하고 고민해도 하늘의 것들로 고민하고 근심하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할 최고의 것이 무엇일까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히브리 기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를 생각하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러면 어떤 예수를 생각해야할까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 신앙고백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라.”(히 3:1, 바른)
우리가 믿는 도리의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자는 본 절에서 예수를 두 가지 칭호를 통해 소개하면서 그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믿는 도리’의 헬라어 ‘ὁμολογίας 호몰로기아스’는 ‘고백’(confession)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믿음의 응답으로써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을 뜻한다(4:14,Lane). 이 ‘호몰로기아스’는 ‘사도’와 ‘대제사장’ 모두를 수식하며, 본 구절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와 대제사장’(the Apostle and High Priest of the religion we profess, NEB)을 의미한다(Bruce).
우리의 모든 신앙고백의 중심,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서 예수를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직접 보내심을 받아 우리가 믿는 신앙의 핵심(도리)을 전하고 성취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Apostle)'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인데, 이는 '보냄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이 명칭이 예수에게 적용된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권위 있는 대리자
일반적인 사도들(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에게 보냄을 받았지만,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직접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최고의 사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온전히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 위임받아 오신 분입니다.
2. 복음과 신앙의 제정자 (믿는 도리의 본체)
'믿는 도리'는 우리가 고백하고 신뢰하는 신앙의 내용(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는 단순히 종교적 가르침을 전한 대변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의 기초와 내용을 직접 완성하고 보여주신 분입니다.
3. 구약의 모세를 뛰어넘는 권위자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보냄을 받아 율법을 전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라면, 신약 시대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더 완전한 계시와 구원을 들고 오셨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가 우리가 믿는 모든 신앙 고백의 출발점이자, 하나님이 인류에게 보내신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구원의 메신저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예수가 믿는 이들의 구원과 신앙생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예수가 아니라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실까요?
제사장도 성소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대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1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욤 키푸르)에 성전의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에 들어가 모든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것입니다.
이날 대제사장은 자신과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씻기 위해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 법궤 위(속죄소)에 뿌리며,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중보자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지금이 어느때인지를 알게 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하늘에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 지를 알게 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지금 무엇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제사의 제물, 우리를 위해 희생양이 되신 분이십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최종적 중보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우리가 해야할 일은 주님의 은혜의 문이 열린 때에, 구원의 문이 열린 때에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합시다.
그럴 때 참된 회개와 새롭게 됨을 주실 것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슥 12:10-11)
오늘 우리는 매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옛날 백성들이 했던 것처럼,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날마다 가지셔야 합니다. 주님의 움직임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시편 95편 7절에 기록하기를,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복잡한 소리들이 많아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시편 말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들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목사인 저에게도 주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아서 "하나님, 도대체 왜 주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까? " 하고 기도하며 고민하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둥빈둥 노는 20대 청년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시장에 다녀오겠다며 아들에게 집에 있으라고 말하고 장을 잔뜩 봐서 낑낑거리며 돌아왔습니다.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든채로 밖에서 "아무개야, 문 열어라!" 하고 힘차게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결국 어찌어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 아들은 귀에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채 한쪽 눈으로는 TV 스포츠 경기를 보고, 다른 쪽으로는 컴퓨터 게임을 하며 과자를 먹고 있었습니다. 바깥에서 엄마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겠습니까? 들리지 않았겠습니까? 절대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왜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다른 소리를 너무 많이, 너무 크게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와 함께하시며 말씀으로, 그리고 실제 세미한 음성으로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하고 부르시는데, 우리가 세상의 소리에 너무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보니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목회자일지라도 세상 사람들의 소리와 관심사에 마음을 빼앗기면 주님의 소리가 안 들리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기록하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대속죄일 기간에,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기 위해서는 세상 소리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정치가 어떻고, 누가 사기를 쳤고 하는 복잡한 이야기들에 너무 큰 관심을 두지 마십시오. 세상일들에 완전히 무관심하게 살자는 뜻이 아니라, 그런 소리에 휩쓸려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그런 것들은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을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으로서 이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잔잔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순간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우리의 삶을 이끄실 줄 믿습니다.
옛날 백성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처럼, 우리는 더 큰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과 움직임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첫날에도 말씀드렸듯이, 오늘날 재림 교인들 중에서조차 대속죄일이나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주 적어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대속죄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대제사장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의 삶을 굳게 붙드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3절에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 우리 믿음의 가족들은 절대로 이런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내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돈을 번다거나 주식이 오르내린다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아버지 하나님, 제가 온전히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하니 저에게 사명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히 주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일곱 교회에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우리가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면, 주님 안에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