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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추도
추도는 통영에서 남서쪽으로 약 21km 떨어져 있는 면적 1.652km2, 최고점 193m의 섬이다. 인구는 83가구 157명(2015)이다. 섬의 생김새가 가래를 가지고 곡식을 파헤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추도(楸島)’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 지명은 가래섬이었다. 추도에 최초로 사람이 입도한 것은 120년 전이다. 욕지도로 사슴 사냥을 갔던 뭍사람들이 풍랑을 만나 추도에 피신했다가 그대로 정착한 것이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섬 전체가 ‘추도리’지만 실제로는 섬 안에 희망봉이라고 불리는 큰 산과 작은 산을 중심으로 북서쪽의 미조마을, 남서쪽의 대항마을과 샛개, 어둥구리 등 네 개 마을이 있었다. 지금 샛개에 서너 채가 있고, 주민들은 주로 대항과 미조마을에 살고 있다.
최초 입도 당시에 대항마을에는 공씨가, 미조마을에는 최씨가 정착하였다. 추도의 최초의 주민이었던 공씨와 최씨는 추도의 높은 산을 중심으로 이쪽저쪽에 살면서도 오랫동안 반대편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관계로 서로 간에 왕래가 없었다. 지금은 일주도로가 생겨서 두 마을의 경계가 허물어졌으며 길이 좋아서 차가 다닌다.
추도의 자랑거리는 다른 섬에 비교하여 물이 대단히 좋다는 것이다. 산에서 솟아나는 추도의 물은 위장병에 효과가 있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추도는 우물마다 물이 펑펑 솟아나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고 한다. 물이 풍족하여 논농사도 짓는다. 그래서 보릿고개 시절에도 쌀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했다고 한다.
추도는 통영의 욕지도나 비진도, 매물도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없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다정한 사람들이 있고 섬의 남쪽에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 볼 만하다. 샛개마을부터 펼쳐지는 풍경을 보려면 샛개 아래로 내려가 낭떠러지 해안절벽과 만날 수 있다. 샛개는 해돋이 풍경이 아름답고, 미조마을 용두암은 일몰 풍경이 멋진 곳이다.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미조마을의 용머리는 수려한 자태를 하고 있다.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용머리는 본섬과 엉켜 붙은 듯하면서도 물이 빠지면 떨어져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용머리에 있는 섬을 용두도라고 하는데 사실상 미조마을의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용머리 섬에는 전설이 있다. 추도는 주위의 섬 중에서 유일하게 물이 마르지 않는 섬이다. 섬에는 예전에 용이 날아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있다. 그곳에 명당자리가 있고 거기에 묘를 쓰면 마을 전체에 가뭄이 든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곳에 묘를 만들었고 그러자 마을에 가뭄이 들었다. 그래서 도력이 깊은 스님을 모시고 찾아가, 묘를 이장하였다. 그러자 묘 안에 웅크리고 있던 하얀 학이 날아가고 그날로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왔다고 한다. 그 뒤로 섬에 땔감이 부족해도 용머리섬 나무는 손을 대지 못하는 등 마을 주민들 사이에 규약이 생겼다고 한다.
추도 대항마을
섬 특유의 지명들이 많은데 가매솥(가마솥), 가매바우, 수리바우, 북바우, 흔들바우가 그 이름에 걸맞게 바다 곳곳에 서 있다. 해안에서 부르는 이름도 있다. 개바우끝, 농바우끝, 물센치끝, 큰개, 작은개, 후리끝이 그것이다. 그 외에 깃대먼당, 구들빼기봉, 산태골, 어둔골, 물개가 있다.
통영여객터미널에서 한려페리호가 오전 7시, 오후 2시 30분 추도까지 오간다. 오전에 출발하는 배는 미조마을을 먼저 대고, 대항마을로 온다. 오후 배는 대항마을을 먼저 들르고 미조마을을 거쳐서 다시 통영으로 돌아온다. 차도선을 타고 미조마을 선착장에 내린다. 미조라는 이름은 추도 바로 건너편에 있는 남해의 미조마을과 같다. 예전에 남해의 미조마을 사람들이 추도를 처음 개척할 당시에 이름을 자기네 마을과 똑같이 했다는 것이다.
섬의 서쪽 끝 미조마을 앞 바닷가 오른쪽으로 붙을락말락 조그마한 섬을 끼고 있는 이 선착장에는 왼쪽에 짧은 방파제가 있다. 외방파제는 이것 하나뿐이고 안으로 세 개의 방파제가 있다. 세 개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방파제가 객선이 닿을 수 있는 경사제를 갖고 있고, 외방파제 옆으로 잔교가 있다.
짧은 내방파제 앞에 건물이 있는데 마을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자연석에 새마을운동 마크와 함께 ‘미조마을’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방파제를 벗어나면 가운데 방파제 앞에는 ‘미조마을노인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으로 대형 상수도시설이 있다. 그 옆에는 아주 깨끗한 조립식 건물이 있다. 이곳이 마을로 가는 길의 시작점이자 ‘추도일주도로’다. 해안도로를 따라 연결되는 섬 일주도로는 약 8km로 주변 관광을 하면서 걸으면 약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추도 미조마을
여기서 여객선이 닿는 선착장까지 가면 그 앞에 여객선승강장이 있다. 그 앞 왼쪽 나무 아래에는 정자쉼터가 있다. 포장길은 계속 남쪽으로 이어진다. 어느 쪽으로 가나 다 연결된다. 서쪽에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용두암은 본 섬과 아주 가까운 곳으로 감성돔과 볼락 자원이 풍부해서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어종을 달리하면서 낚시꾼들이 찾아든다.
경로회관 앞에서 길은 시작되는데 바로 좌우로 갈린다. 왼쪽은 큰 길이고 오른쪽이 작은 길이다. 왼쪽 큰 길 역시 바로 다시 갈린다. 왼쪽은 ‘미조길’이지만 오른쪽은 일주도로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평상이 있고 별도의 쉼터가 있는 지점에 닿는다. 그 뒤로 후박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345호로 지정된 수령 3백년의 후박나무 한 그루가 진한 초록색을 하고 민가의 담장을 등지고 서 있다. 나무와 가장 근접한 집이 있는데 한여름에 마당에 나오면 나무가 주는 그늘이 더위를 가시게 해 줄 것 같다.
이 후박나무는 키가 10m, 둘레가 4m나 되는 거목으로서 나무 전체가 우산 모양을 하고 있어서 TV에도 방영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사철 푸르고 여름에는 넓은 그늘을 드리워주는 이 후박나무를 ‘사대나무’, ‘사대부나무’라고 부르며 신성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오면 왼쪽으로 밭이 있다. 이 밭을 사이로 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그리고 바로 연결되어 하나의 길이 된다. 이 길을 걸으며 맞은편을 바라보면 집들이 띄엄띄엄 있다. 그것도 돌 축대 위에 지은 집들이 상당하다. 그만큼 이곳은 경사진 곳을 평평하게 해서 집과 밭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곳 새마을회관은 마을 끝자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회관 마당에 서면 바다를 볼 수 있다. 미조마을은 낮은 언덕 비탈에 스무 채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 연두색 등으로 칠해진 지붕이 주변의 지형과 잘 어울린다.
조금 더 가면 내리막이 이어지면서 오른쪽으로 돌담이 보인다. 이 부근에도 예전에는 집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 이어 5분 정도 가면 선착장이 보인다. 두 개의 방파제가 있는데 위쪽은 길고 T자형으로 되어 있다. 아래쪽은 짧은 방파제로 테트라포드가 제법 쌓여 있다. 그래서 방파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바로 보이는 섬이 통영에 붙은 미륵도다.
또 다른 선착장 앞에 있는 해안도로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마을의 일부가 보이고 왼쪽은 선착장이다. 일주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지점 오른쪽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여기서 더 가면 약간 넓은 공간이 있고 큰 소나무 아래에 정자쉼터가 있다. 이곳 선착장 안 계류장에는 작은 고깃배 서너 척이 정박해 있다. 해안은 거의 자갈밭이었다. T자형 방파제에는 두 개의 잔교가 있다. 긴 방파제 가기 전에 아주 짧은 방파제 하나가 있다.
여객선이 닿는 선착장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추도대항길’이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길이 갈린다. 왼쪽으로 가는 길은 ‘추도일주로’다. 직진은 대항길. 이곳에도 집들이 드문드문 있다. 그리고 주변에 밭이 많다. 미조마을보다 밭이 더 많은 편이다. 게다가 밭의 대부분이 평지이다. 이곳 역시 고구마 밭이 제법 있다.
추도 대항마을 선착장
추도는 고구마가 주업종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듯싶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고구마를 수확 즉시 절간한다고 한다. 5mm 정도로 얇게 썰어서 말리는 것이다. 수확한 밭에서 썰어 그곳에다 말리면 좋을 텐데 일부러 동네 가까운 곳까지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면서 날라야 한다. 섬 자체가 워낙 산림이 우거진 곳이라 밭 근처에서는 해가 빨리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일주로와 대항길 사이 공간에는 밭이 있는데 잡초들로 가득하다. 일주로는 제법 넓은 편이다. 주변 잡초더미 사이에 숨겨진 폐가들이 몇 채 있다. 이어 보건진료소 건물이 아주 깨끗하다. 단층의 하얀색 건물로 이곳 마당에는 제법 큰 태양열집열판이 있다. 삼거리에서 조금 더 가면 왼쪽으로 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단층짜리 슬라브집이다. 마을회관을 지나면 길 끝에 학교가 있다. 큰 산 아래 언덕배기에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추도초등학교’가 그것. 물론 지금은 폐교가 된 상태다. 추도초등학교란 명칭을 정식으로 갖게 된 것은 1944년이었다. 교적비에 의하면 해방 이전인 1944년 4월 24일에 개교하여 졸업생 856명을 배출하고 1997년 3월 1일에 폐교되었다. 이 학교는 원래 1922년에 ‘추도대화강습회’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양쪽 기둥을 지나면 운동장이다. 상당히 넓은 편인 운동장은 무성한 잡초들로 가득해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 교사, 그리고 넓디넓은 운동장에 있는 것들, 한쪽 구석에 있는 시소, 그네 등 놀이기구가 주인을 잃은 채 텅 비어 있다.
바로 직진 방향으로 내려가면 해안이 나온다. 이곳 역시 해안은 모래밭으로 되어 있다. 그다지 넓지 않은 해안이다. 오른쪽에는 갯바위들이 제법 많다. 추도는 남해의 어느 섬보다도 어종이 풍부하고 낚시가 잘되어 낚시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갯바위나 부둣가에서 할 수 있는데 물 때와 장소에 따라 어종만 차이가 날 뿐 어느 곳이든지 낚싯대를 드리우기만 하면 감성돔, 노래미, 볼락 등 많은 고기를 낚을 수 있다.
왼쪽의 선착장 가는 길로 간다. 이쪽 해안에 안내판이 있다. 양식장이라는 표지다. 추도의 볼만한 것으로는 전복 양식장을 들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전복은 미역과 다시마 등 해산물을 먹이로 하여 자연산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맛이 있다. 이쪽 해안은 모래와 자갈들이 혼재된 상태다. 물이 제법 깨끗한 편이다. 이 해안 맞은편에도 돌담들이 제법 보인다. 뒤로는 소나무 숲인데 이곳에도 예전에는 집들이 제법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착장 끝에 밧줄로 연결된 하나의 잔교가 있고 그 뒤로 제법 높은 방파제가 있다. 방파제로 건너가면 방파제 일부가 파손되어 있고 배를 타기에는 또 너무 높다.
물메기의 고향, 추도
추도는 바다 한가운데 위치하여 남해의 어떤 섬보다도 어종이 풍부하다. 그래서 낚시 마니아와 일반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추도의 갯바위에 낚싯대를 내리면 감성돔, 볼락, 노래미 등 많은 고기가 올라온다. 특히 서쪽에는 용두암이라는 조그만 무인도가 있는데 사철 낚시꾼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외톨이 섬 추도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관계로 바닷물의 막힘이 없다. 바다 밑에는 개펄이 잘 형성되어 유독 이곳 바다에서 바다메기가 잘 잡힌다. 아직도 추도를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주민들은 메기잡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메기의 고향이 추도라고 할 정도로 잘 잡힌다. 물메기는 여름을 동중국해상에서 나고 겨울이면 산란을 위해 우리나라의 남해안으로 올라온다. 보통 수명은 1년이며 산란을 하기 위해 살을 찌우다가 산란 후에는 죽는다.
11월부터 1월까지 추도 근해에서 통발을 이용하여 70-80% 정도를 잡는다. 서민들의 입맛을 돋우는 ‘통영 물메기’는 날씨가 서서히 추워지는 입동부터 시작하여 동지까지 산양읍 추도와 사량도에서 주로 잡힌다. 물메기는 1마리를 가지고 4식구가 끓여 먹을 수 있다. 살이 무르기에 대개 끓여 먹는다. 맛이 시원하여 겨울철 일등 메뉴로 자리매김하였다. 통영의 물메기는 애주가들과 미식가들로부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커다란 통발을 이용하여 잡는 메기는 여름철에 얼마나 비가 왔느냐에 따라 어획 생산량이 결정난다고 한다. 3개월 기간 동안 잡는 메기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수도권에서는 거의 맛 볼 수 없는 귀한 물고기이다.
겨울철 추도에 오면 이방인의 시선을 끄는 것이 하나 있는데 물메기 덕장이다. 강원도 대관령에는 겨울만 되면 황태 덕장으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추도마을에도 황태 덕장처럼, 마을마다 물메기를 말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한곳에 몰려 있는 강원도 황태 덕장과 다른 모습으로 추도의 물메기 덕장은 마을의 여기저기에 퍼져 있다. 조금만 공간이 있다면 어디든지 물메기 덕장으로 이용된다. 비탈진 언덕도, 폐교 마당도, 길가와 담벼락 그리고 빈집 마당까지 물메기 건조장이 되는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아침에 조업을 나갔다가 점심 시간에 어선들이 돌아온다. 남자들이 배에서 잡아온 물메기를 내리면 여자들은 우물가에 모여 물메기의 등을 갈라 내장을 꺼내고 깨끗하게 손질한다. 물메기 알과 아가미는 젓갈로 담고, 살이 찐 몸뚱이는 여러 번 민물에 씻은 다음에 덕장으로 가서 말린다.
조기는 손질한 뒤 천일염으로 간을 해서 말린다. 그런데 물메기는 소금을 넣지 않고 민물에 씻어서 그냥 말린다. 메기는 바닷물에 씻으면 맛도 없고 짜서 못 먹는다. 그래서 물이 좋은 추도에서 민물로 씻는다. 한겨울에 동네 사람들은 물메기를 손질해 매단 후에 품삯은 현금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물메기로 대신 받는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추도에서 이어져온 전통이다. 아마도 고기가 현금으로 통용될 수 있는 물건이기에 대대로 전승된 풍습인가 싶다. 추운 겨울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손질하고 널기까지 힘들지만, 덕장에 걸어 놓으면 말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햇볕과 바람이 알아서 저절로 말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예전에 뭍사람들은 이 물메기를 생선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잡아도 그냥 버리는 고기로 평가절하했다. 그때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돈이 안 되었다. 요즈음은 경매도 하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물메기는 말려서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설날 전까지 말려서 팔면 품은 좀 많이 들어도 차례상에 올라가기 때문에 값이 월등하게 올라간다. 설날이 지나면 마른 메기는 수요가 감소되어 대부분 생선으로 내보낸다. 해마다 변동이 심하지만 물메기 생선이 한 마리 6-7천 원이라면, 마른 메기는 2만원 정도 호가한다. 말린 물메기는 한 축(10마리)을 4등급으로 나누어 15만원부터 20만원 정도에 팔린다. 현지에서 사면 훨씬 싸다. 하품은 10만원 정도 한다. 말리는 기간은 보통 5일에서 7일 정도 걸린다. 햇빛과 바다의 찬바람을 맞으면서 말리면 보통 5일 정도 걸리고, 바람이 없으면 일주일은 말려야 한다.
추도는 이제 물메기의 고향에서 해삼의 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3년 4월 추도가 해삼 양식섬으로 확정되어 찾아가고 싶은 섬 일환으로 사업비 55억 원이 투입되었다. 추도는 해삼의 서식 환경이 좋아 종묘를 방류하면 고소득이 기대된다. 추도가 해삼 섬 단지로 부상한 이유가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심층적인 조사결과를 보면, 통영지역의 섬에서 해삼이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조사한 결과 3위에 해당될 정도로 해삼이 살아가는 환경이 좋다. 청정해역이며 해삼의 먹이인 미역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씨 해삼 방류는 친환경 전문 용기에 넣고 해조류가 풍부한 바위의 은신처에 잠수부와 해녀들이 직접 넣어준다. 어린 해삼이 바다 환경에서 적응을 잘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야행성인 해삼은 여름에는 깊은 바다에서 살고 겨울에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 해삼은 가을이 적당하다. 뿌려 놓은 해삼은 1년 정도 자라면 수확할 수 있게 된다.
추도는 찾아가고 싶은 섬으로 물메기의 고장과 해삼 섬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통인데 여행객들이 손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여객선이 삼덕항에서 출발하면 30분 정도로 단축될 것 같다. 장단점이 있지만 고려해 볼 만하다.
이제 해삼 사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면 중국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해삼을 전량 중국으로 수출하게 된다. 그동안 해삼은 생산량이 부족해 수출을 하지 못하였다. 이번에 대단위 해삼 양식장을 조성해 대량으로 생산하여 중화권에 수출하면 추도 주민들의 소득이 높아짐은 물론, 기존 물메기 명성과 함께 해삼의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추도 관광명소추도의 후박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후박나무의 자생지는 통영시 산양읍 추도리 508 일대이며 녹나무과 상록활엽수이다. 추도 미조마을 바닷가 언덕에 있는 이 후박나무는 키가 10m, 둘레가 4m나 되는 거목으로 나무 전체가 우산 모양을 하고 있어서 TV에도 방영되었다. 마을사람들은 사철 푸르고 여름에는 넓은 그늘을 드리워주는 이 후박나무를 ‘사대나무’, ‘사대부나무’라고 부르며 신성시하고 있다.
심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