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첫째가 아팠습니다.
아이 뒤치다꺼리 하느라 출근길이 늦어졌습니다.
차를 몰고 읍내로 진입하는데 찻길 경계석에 풀썩 앉아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단번에 무슨 문제가 있구나 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매우 위험한데 넋나간 사람처럼 미동없이 앉아있었습니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였고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먼 산만 멍하게 바라봤습니다.
허름한 웃차림과 언제 씻었는지 모르는 더러운 몸, 때가 잔뜩 낀 손톱들.
뭐 하나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차를 세워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처음보는 사람이었고, 마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뭐해요?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아침밥은 먹었어요? 잠은 어디서 잤어요? 저는 목사에요. 무료급식 하는 목사. 있다가 식사하러 오세요. 꼭이요.”
“아, 목사님이셨구나. 나는 천안에서 왔어요.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요. 밥도 굶었어요. 잠은 PC방 쇼파에서 잤어요. 돈이 없어요. 부모님은 천안에 있고요. 정처없이 다니다가 돈 떨어지면 구걸하며 지내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격체로서 연민과 긍휼이 샘솟았습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지갑에 현금을 가지고 다닙니다. 길을 가다가 이런 사람 만나면 주려는 목적입니다.
2만원을 손에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밥은 무료급식소 오면 먹을 수 있어요. 이 돈으로 PC방 가지말고 천안집 가는 차비로 사용하세요. 다른 데 쓰면 안 돼요. 어서 약속하세요.”
평소 청결에 예민한데 이럴 땐 나도 모르게 덥썩덥썩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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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이전을 앞두니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봅니다.
이 자리에서 11년을 있었습니다.
처음 여기를 왔을 때 얼마나 신났는지 모릅니다.
무료급식을 노상에서 진행했다가 번듯한 실내로 들어오니 감개무량했었죠.
내 손때가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애정이 남다릅니다.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나와 봉사자들의 피와 땀이 그대로 녹아있는 곳입니다.
장마철만 되면 지붕에서 물이 줄줄 샜습니다.
또 지붕이 기울어져 공사장 지지대를 괴야했고요.
양념통 보관함이 없어 어디서 선반을 주어와 달았습니다.
원래부터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닦아도 닦아도, 치워도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곳,
정리정돈이 될 수 없었던 곳입니다.
이런 허름한 곳에서 11년을 무료급식 했습니다.
참 기가 막힙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형편없는 급식소네, 갖춰진 게 아무것도 없는 급식소잖아, 꼴값떤다. 진짜.”
그런데요.
이렇듯 다 허물어져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계속 찾아주는 봉사단체가 있었습니다.
한 번만 도와줘도 족했고, 1년만 봉사해줘도 감사했을 텐데,
몇 년을 꾸준히 찾아주는 봉사단체 선생님들이 참 보배롭습니다.
사실 보잘것 없는 곳에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난 셈입니다.
이들 때문에 우리 급식소가 복 받은 겁니다.
정말정말 복 많이많이 받고 이사갑니다.
변함없이 찾아주는 단체들. 참 고마운 사람들.
매주 월요일마다 크리스토퍼 남양반도 회원들이,
매주 화요일마다 남양의용소방대 대원들이,
매월 첫 주 금요일, 셋째 주 금요일마다 한국카네기CEO클럽 천사봉사단 단원들이,
매월 첫 주 수요일마다 송산로타리클럽 회원들이,
송파로그 회원들이,
난파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남양로타리클럽 회원들이,
(주)봉담송산고속도로 직원들이,
산본교회 바울청년부들이,
한전MCS 직원들이,
생명숲교회 여선교회 회원들이,
예수본교회, 영화로운교회, 구산교회 성도들이,
MG새마을금고 경기서부 직원들이 함께해주셨어요.
모두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무엇으로도 입에 담을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납니다.
진심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우리가 뭐라고 자꾸 도와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라고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혜 잊지 않으며 이 한 몸 부서져라 움직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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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이전에 도움을 주신 분 : 임광준 정미경 임시완 임정완 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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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둘째 아이가 모두 밤새 열이 났습니다. 급성 중이염이 왔습니다.
아내가 자고 있는 나를 깨우더니 빨리 병원에 가라했습니다.
대충 챙겨입고 비몽사몽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까치집 머리를 하고, 이도 닦지 않은 채 헐레벌떡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새벽에 대기를 걸어놓고 왔습니다.
잠도 깨지 않은 채 오픈런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병이 나에게까지 옮았습니다.
기진맥진하고 많이 아픕니다.
두통과 콧물, 재채기, 으슬으슬 오한까지, 하지만 최대한 빨리 회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