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를 알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2005년《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언덕 위 가르멜봉쇄수도원 / 이영옥
수도원 표지판이 보이고 축축한 꽃향기가 그 다음 길을 안내했다 흰 깃털을 떨구며 선회하는 햇살 사제관 창문이 울고 난 눈처럼 붉다 저기일까 당신이 머문다는 그 방이 비틀린 길도 걷다보면 몸을 바로 편다고 하던 그 말 축 늘어진 침묵이 앞발을 내민다 삼킬 수 없었던 질문은 목구멍에 걸려있고 굳게 닫힌 철문 옆으로 쇠뜨기들이 엉켜 푸른 저녁을 공연히 부스럭거렸다 가파른 곳을 좋아하는 물살이 짙은 멍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잘 아프고 곧잘 낫는 병 별 하나가 문득 시계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덜그럭거리던 당신의 모서리는 이제 알맞은 몸을 받은 걸까 밤의 순교와 낮의 환란이 같은 독방에서 무릎을 꿇는 시간 바다의 끝자락이 하얀 안감처럼 돌돌 말려갔다 촛불이 어둠을 파내고 몸 하나가 들어갈 구덩이를 준비한다 아늑하다 기도가 방랑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