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2월을 시작하는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한 달도 힘 있게 주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되게 하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5.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본문 주해)
1절 : 언약궤가 블레셋에 7개월을 있는 동안 재앙이 연속됨으로 하나님의 손이 블레셋을 엄중히 다루심을 보여주신다.
2~5절 :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제사장과 복술자들을 불러 여호와의 언약궤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대책 회의를 하여, 여호와의 궤를 그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돌려보내되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한다.
속건제는 허물을 속하기 위한 제사로서, 이는 그들은 자신의 허물을 인정한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속건제를 드리는 방법은, 독종의 형상 다섯 개와 땅을 해롭게 하는 쥐 모양 다섯 개를 금으로 만들어 언약궤와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다. 다섯 개를 만든 것은 블레셋 다섯 방백의 수효이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면 혹시 그들에 대한 엄중한 손을 거두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절 : “왜 여러분은 이집트 백성과 이집트의 왕 바로처럼 고집을 부리려고 합니까? 이집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가게 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온갖 재앙을 내리신 뒤가 아니었습니까?”(새번역)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들고 있다가 10가지 재앙을 만난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7~9절 :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자세한 방법을 말한다.
먼저 새 수레를 만들어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 이 수레를 끌게 하는 것이다. 그 새 수레에 여호와의 언약궤와 속건제의 금 물건들을 실어 보내자는 것이다. 그리고 젖 먹는 송아지는 떼어 집에 두게 한다.
멍에를 처음 메는 소들은 그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온 몸을 다 흔들 뿐만 아니라, 젖 먹이는 소라면 새끼를 두고 가려하지 않는 것이다. 설령 한 마리가 길을 가고 싶어도 다른 한 마리가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다. 그런 소들이 길을 똑바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블레셋의 제사장들과 복술가들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정말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자신들에게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10~12절 : 블레셋의 제사장과 복술자들의 말대로 언약궤와 속건제물을 젖 나는 소 둘이 끄는 새 수레에 실어 벧세메스를 향하게 했는데 그 암소들이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갈 때에 울며 간다. 그러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까지 가는 것이었다. 이것을 블레셋의 방백들이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가서 확인하고 돌아간다.
(나의 묵상)
블레셋인들은 암소들이 곧장 벧세메스를 향할 수 없는 모든 조건-처음 메는 멍에,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 젖 먹여야 하는 송아지, 여러 갈래의 길 등-의 현실 속에서, 곧장 가면 하나님의 뜻, 아니면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암소들은 벧스메스를 향해 갈 수 없는 그 많은 상황 속에서 놀랍게도 곧장 벧세메스를 향해 간다.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소들이 언약궤를 알아서 모신 것이 아니다.
그 언약궤가 암소들을 그 땅으로 인도한 것이다!
나는 말씀 묵상을 할 때 ‘십자가를 붙잡는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표현은 그렇게 하였지만 내가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나를 붙들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는다’라고 말은 하지만, 내가 말씀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것처럼......
본문의 상황은 암소들이 벧세메스 땅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번도 메어 보지 못한 멍에를 메었으니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하다.
두고 온 송아지 때문에 너무 슬플 것이다.
또 어느 길을 가야할 지 암소 두 마리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장 길을 가는 암소들을 인도하는 언약궤를 보며, 이 땅을 살아가는 나를 생각해 본다.
블레셋 땅에서 벧세메스로 넘어가는 길은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이다.
내가 그 길을 가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와 상황은 너무도 많다.
특히 두고 온 새끼에게 젖 먹이고자 하는 어미의 본능이 나를 괴롭힌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사랑과 미련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길을 두고, 척박한 길을 가는 자를 어리석다고 말하겠지만 험한 십자가가 주는 참 평안을 맛본 자는 이 길을 가게 되어 있다.
수레에 실린 하나님의 언약궤, 내 마음에 실린 주님의 십자가가 그 길을 가게 한다.
내 삶의 수레에 실렸던 모든 탐심-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을 내려놓고, 그것들을 못 박을 수 있는 주님의 십자가만을 싣는 것이다.
매일의 말씀을 통해 내 인생 수레에, 내 심령에 십자가가 잘 실렸는가를 늘 확인한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온전히 연합될 수 있기를 성령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이 암소들을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울며불며 가지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은길로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십자가에 연합되어 사는 길은
울며불며 가는 길이 될 수 있지만
그곳이 곧 하나님의 품인 것을 알게 됩니다.
몸으로 이 세상을 살지만
아버지 품속의 평강을 누리게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참으로
저의 생각 중에 옳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
오늘 암소들을 이끌어 가는 언약궤를 기쁨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저를 아버지 품속으로 이끌어 가시는 십자가만을 힘있게 의지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