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환대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
blog.naver.com/changss0312
얼마 전에 모임의 일행과 함께 베트남 다낭이라는 곳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은 예전에 한 차례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로 다시 갔다.
목적지에 도착해 처음으로 방문한 데는 바구니 배를 타는 곳이었다. 인솔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 여행안내자가 아이디어를 내어 개발한 상품이 바로 바구니 배 타기 체험이란다.
그곳에 당도하니까 바짝 마른 작달막한 베트남 남자들이 몸을 비틀며 2002년 월드컵 응원가로 전국을 강타한 ‘대~한민국’,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그러다가 ‘남행열차’를 비롯해 귀에 익은 온갖 우리의 유행가를 불러댔다.
나는 그들이 목이 터지라 불러대는 우리의 가락을 듣고 즐겁다기보다 민망함을 넘어 가슴이 쓰렸다. 내가 아는 바로는 오랫동안 프랑스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인들은 월남전으로 인해 또다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게릴라전이니 땅굴이니 하는 그들 특유의 전술로 미국을 물리친 독한 민족성을 지닌 자들이 바로 베트남인들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들이 민간인 학살을 서슴지 않았다는 한국 병사를 그리 좋아할 리 없었으련만, 한국에서 왔다는 우리를 엄청나게 환대해주었다.
모든 것을 지난 일이라고 치부한다지만, 용서는 할 수 있어도 잊지는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를 반기는 그들 중에는 월남전에서 피붙이를 잃은 사람들도 상당히 있을 텐데, 오늘날 그들은 요란을 떨며 우리를 환대하니 그만 현기증이 일었다. 나아가 그들은 우리를 태우고 배를 빙글빙글 돌리며 온갖 묘기를 떨어 팁을 내놓게 했다. 특히 어떤 남자가 목이 터지라고 열창하며 춤솜씨를 보이는데 나는 그만 울컥하는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가슴 깊이 쟁여두었을 응어리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겉모습 간의 괴리에서 짙은 애환을 느꼈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고달픔이라더니 정말 그렇지 싶었다. 때마침 누군가가 옆에서 “저런 게 영혼 없는 환대지!” 하고 중얼거렸다.
다음 날 바나힐이라는 관광명소로 향했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는 비가 내려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제법 날씨가 받쳐주어 구석구석을 누빌 수 있었다.
그런데 첫날 가졌던 비릿한 감정 때문인지 1,600m 고지에 세워진 유럽풍의 중세마을을 둘러보면서도 썩 즐겁지 않았다. 휴양지로 그 높은 곳에 건물을 지었던 프랑스인들의 횡포가 오히려 강하게 느껴졌다. 오죽했으면 해방을 맞은 베트남 사람이 그곳에 올라가 건물을 다 때려 부쉈겠는가.
하지만 그 후 관광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규모로 유럽풍의 마을을 조성했고, 지금도 여전히 확장해가고 있다. 이 모든 게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니 돌고 도는 역사 앞에서 야릇한 심정이 들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날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에는 적이 되는 게 바로 그런 것이지 싶었다.
귀국길에 오르면서 앞으로는 좀 더 마음 편할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정비된 유럽 같은 곳으로 가면 돈을 쓰면서도 행여 실수할까 봐 조심스럽다. 내 돈을 쓰면서 그렇게 조심하는 게 자존심 상하고 약 오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못 사는 나라로 가면 측은한 마음이 들어 불편하다. 이번 여행에서처럼 독성을 지녔을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보이는 과장된 환대는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잘살지도 않고 못 살지도 않는 곳, 그런 데로 여행을 가면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서로 동등할 때 자유로울 수 있지 않나 해서다.
다른 한 편 피식 웃었다. 여행을 떠났으면 그저 여행이나 즐길 것이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는가 해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단순하게 지나치지 못하고 괜스레 이 생각 저 생각하는 게 자신의 수준이니.
첫댓글
다낭에 가서 본 불상입니다. 엄청 나게 크다고 여겼습니다.
한파를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장성숙 선생님!
2024년 새해 더욱
활기찬 해가 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베 트.남 시림들은
수 세기 동안 외세에 너무
많이 시달리다 보니
영혼이
사라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닥하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지독한 끈기를 지닌 국민이라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