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 김성춘
1
그는 탁월한 건축가, 타고난 사냥꾼
그의 생은 날마다 축제 날마다 전쟁 중
그가 만든 허공의 집 한 채
인간이 만든 어떤 집보다 견고하다
석면 공해도 쓰레기장도 필요 없는
무공해 허공의 집 한 채
누가
그에게 건축가 자격증 줬을까?
2
새벽 들길을 걷는다
누렇게 고개 숙인 벼와 벼 사이 허공에
누군가 은빛 그물 촘촘하게 펼쳐 놓았다
노련한 어부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투명한 허공 속 그가 보이지 않는다
3
모르겠다
누가 그에게 건축가 자격증을 줬는지
내일 아침 거미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
물어봐야겠다
― 계간 《시와 사상》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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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춘 시인
1942년 부산 출생. 부산사범대학교와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
1974년 《심상》 등단.
시집 『방어진 시편』 『물소리 천사』『온유』 『길 위의 피아노』 등 14권
시선집 『나는 가끔 빨간 입술이고 싶다』,
산문집 『경주에 말을 걸다』.
제1회 울산문학상, 경상남도 문화상. 제2회 월간문학 동리상 수상, 최계락 문학상 등
울산대 사회교육원 시 창작과 동리목월 문예창작대학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