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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여권(與圈) 핵심부 내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을 놓고 잠시 혼란이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무인정찰기 침투의 심각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 군 당국이 관련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건 방공망 및 지상 정찰 (감시)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우리 군을 직접적으로 질타한 부분은 이 한 줄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군 수뇌부의 인적 책임론까지 염두에 둔 발언으로 봐야 할 지, 단순히 군의 분발을 요구한 메시지로만 봐야 할 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던 겁니다.
결
국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측근들이 나서서 “그동안 군 수뇌부에 대한 신뢰를 보여온 점을 감안하면 인적 책임까지 묻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군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던 박 대통령이 비록 짧게나마 따로 언급한 걸 보면 군을 강하게 질타를 한 것으로는
봐야 한다”고 해석의 교통정리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표현을 보면서 ‘화 난’ 정도를 감지하기도
이처럼 박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따로 해석해야 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평소 말을 하면서 자신이 어떤 감정상태인지를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가 났을 때도 평상시 어투와 큰 차이가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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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주요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오랜 기간을 함께 한 친박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이 화가 났을 때 사용하는 일정한 표현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의 감정상태를 ‘감지’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특
히 최근에 거의 사용된 적이 없지만, “아니, 이러시면 제가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기겠어요?”라는 표현은 박 대통령이 측근이나
주변을 가장 심하게 질타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한 친박 핵심 인사는 “박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면 지진으로 치면 강도가 최고
등급인 8~9도에 달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강도가 규모 9였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때만 해도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전국 곳곳에서 만난 국민들의 민원
사항이나 자신이 했던 약속들이 당 차원에서 처리되고 있는지를 자주 체크하곤 했는데, 이를 소홀히 한 당관계자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당 사무처에서 일했던 한 인사의 설명입니다.“그
때 몇 번 박 대통령이 진척 상황을 물었지만, 워낙 야당 시절에 인력도 없어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안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물어보는 게 경고라는 걸 미처 몰랐다. 나중에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기겠느냐’라는 말을 듣고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다. 이후 며칠 밤을 새워가며 일을 했다.”
(※위의 ‘지진강도 표’는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여러 친박 인사들의 평가를 종합해 임의로 만든 것입니다. 8~9도는 박
대통령이 가장 화가 났을 것으로 친박들이 느낀 경우이며, 숫자가 낮을수록 분노의 정도는 약한 것입니다.)
“아이, 참…” 또는 무응답은 불만 표출의 전조 이 ‘최고등급’으로 가기 전, 몇 차례에 걸친 전조가 먼저 나타납니다. 이는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가
령, 박 대통령이 어떤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이 지시했던 것과 다를 땐 작은 목소리로 “아이, 참…”이라고 한다던지,
아예 응답이 없다는 겁니다. 이럴 땐 “뭐가 잘못됐구나!”라는 생각을 빨리 해야 한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입니다. 한나라당 시절 핵심 당직자로서 박 대통령을 당 대표로 모셨던 한 친박 의원은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한
번은 무슨 보고서를 들고 당 대표실로 갔었는데 박 대통령이 잠깐 보고서를 보더니 계속 아무 말도 않더라.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건 없던 걸로 하시죠. 다른 건을 보고드리겠습니다’라며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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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2005년 12월 폭설 피해 현장에서 피해농민을 위로하고 있다. /조선일보DB
이보다 한 단계 높은 건 박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해 ‘이제 그만’ ‘더이상
언급하지 마세요’라는 의미에서 경고를 던질 때입니다. 이 경우엔 “지금 저한테 그 얘기 하시려고 보자고(또는 전화를) 하신
건가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초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2012
년 대선 직후 한 친박 중진은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 대통령에게 “누구 누구는 반드시 챙겨줘야 합니다. 정말 우리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했다가 “지금 저한테 그 얘기 하시려고 연락하신 건가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사청탁을 하거나, 자신의 원칙에 반하는 행동을 주변에서 권유할 때 나오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친박 인사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처럼 전해집니다. 현재 그 중진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적지만 직접 분노를 표출한 사례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박 대통령도 원칙을 가끔 깰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공격하거나 신뢰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그런 반응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때는 딱히 정해진 표현이 없고 그때그때 다른 표현으로 화를 냅니다. 지
난 2008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장악한 친이(親李)계가 당시 친박(親朴) 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을 때 박 대통령이
했던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이들이 공정한 공천심사를 한다고 해놓고 속였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 당에서 친박 성향의 당 사무처 직원들을 한직(閑職)으로 발령냈을 때 박 대통령이 했던 “나를 도운 게 무슨 죄냐”라는 말도 유명합니다. 지
난 2004년 한나라당 총선 승리 후 열린 의원 연찬회에서 이재오 의원이 박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공격했을 땐 “그럼 왜
나한테 (총선때) 선거 지원을 와달라고 했나”, “(우리 당이) 3공, 5공에 뿌리를 둔 당인지 모르고 들어왔느냐”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간 뒤 이렇게까지 직접 표현을 한 적은 거의 없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애매한 상황에서 나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해석 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