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 주차장에서 여화촬영장 주차장으로 가는데 30여분 결린다..
24개의 눈동자 영화 포스트
간카카이에서서 승합차를 타고 24개의 눈동자 라는 영화를 촬영한 곳에 도착을 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24개의 눈동자’라는 영화는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 惠介)라는 감독이 1954년에 만든 영화로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든 영화
라고 한다.
오이시 선생과 12명의 아이들...영화의 한 장면
간단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1928년. 쇼도지마의 분교에 젊은 여선생이 부임한다. 서양복을 입고 자전거로 통근을 하는 오이시 (小石, Oishi )선생(다카미네 히
데코)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점점 섬의 생활에 융화되며 12명에 불과한 학생들은 선생님께 가능한의 애정을 표한
다.
섬의 생활은 가난하여 학생 중 한 명인 마츠에는 우동집에서 일을 하고 고토에는 집에 혼자 남겨진 채 폐병으로 죽어간다. 전쟁이
시작되며 오이시 선생의 남편도 학생들도 차례차례 전쟁 나가 죽어가고, 오이시 선생의 딸마저도 나무에서 떨어져 죽어버린다.
패전 다음 해, 오이시 선생은 다시 섬의 분교로 돌아와 옛 제자의 아이들의 담임이 된다. 부모, 형제들과 꼭 닮은 그들 앞에서 옛날
을 회상하며 그만 눈물을 흘리는 오이시 선생. 옛날 제자들이 열어 준 환영회에서 전쟁에서 시력을 읽은 옛 제자가 보이지 않는 눈
으로 옛날 사진을 보며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그들에게 선물로 주었던 자전거에 걸터앉아 오이시 선생은 다시 분교로 출근한다.
주차장에서...담벼락에는 24개의 눈동자 만이 아닌 기노시타 감독의 영화의 사진들이 붙여져 있다.
이곳에 24개의 눈동자 기념관겸 기노시타 감독의 기념관도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담벼락에 영화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이번 시코쿠에 오는 것에 대해서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왔기 때
문에 24개의 눈동자라는 영화를 알지도 못했고 따라서 영화를 보는 것은 고사하고 영화의 줄거리도 알지 못하고 왔다.
와서 설명을 주변을 둘러보면서 설명을 듣다가 보니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에 영화를 봤더라면 나무 한 그루 건물 하나를 보더라도 더 의미를 두고 보았을 것인데....
주차장 주변
지붕 위에는 감시탑인 듯
기념관 앞에는 이런 바다가 있다.
24개의 눈동자 영화 네용
안에 들어오고....
다리 간판이 석강교라고 ...석(汐)자는 조수 라는 의미로 이 도랑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듯...도랑에는 해삼도 있다.
도랑에 고기도 있는데 생선사료가 한 접시에 천 앤이라고...
해삼이 보인다.
천존궁이라는 사당이???
기념품 가게도
세토내해가 보이고...
영화 셋트인지 아니면 실제로 살았던 집인지...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있다.
점심 식사 전에 주변을 돌아 본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교실이었던 곳이고 지금은 기념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육지는 시코쿠이다.
자갈이 깔린 해변
교실...안에 들어가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고....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1928년도부터 1946년까지가 이 영화의 배경이기 때문에 학교는 그 때의 모습으로 건물과 교실 그리고 책걸상 교탁 등이 어렸을
때 우리가 보았던 모습들이다. 해방후 우리의 교육체계는 일본의 것을 그대로 답습을 하였기 우리나라의 학교도 이곳의 모습과 같
을 수밖에 없고 그런 곳에서 초등학교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더 친근한 느낌이 난다.
물론 셋트장이겠지만 교실과 운동장 그리고 마을의 집들을 둘러보면서 어렸을 때를 회상해 보기도 한다.
점심을 먹기 전에 구경도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아마도 쇼도시마 관광의 중심이 되는 곳인 듯
하다.
기노시타 감독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교실
영화 촬영장비도 있고...학생들 처럼 앉아서 사진도 찍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누군지 모르지만 내 프레임 속으로 끌여 들였다.
그림같이 잔잔한 바다....
일행들이 선생과 학생놀이를 한다.
키네마의 암자라...아마도 영화를 상영하는 곳인 듯
내부...영화관련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떤 영화에 대한 설명서...옆에 불륜이라는 관계가 몇 군데 나오네...
24개의 눈동자 셋트장
나는 패키지를 가거나 자유여행을 가더라도 혼자 다니는 편인데 여자들은 보는 것보다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찍는데 목숨
을 걸기 때문에 결국은 같이 다닐 수가 없게 된다.
점심 준비가 되었다고 하여 식사를 하러 간다.
******
누군가의 영화 감상평
영화는 1928년부터 1946년까지, 작은 섬마을 여교사와 12명의 학생이 함께 한 아름다운 추억과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그린다. 일
본인에겐 소화 3년부터 소화 21년의 기간으로, ‘그리운’ 쇼와시대에 해당된다. 시대 배경만 그리운 게 아니라, 사제 간 진심어린 교
류가 감동적으로 그려졌기에, ‘24개의 눈동자 영화 마을’은 교육의 원점 장소로서 전국의 교직원을 비롯한 방문객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28년, 세토나이가이에서 두 번째로 큰 섬 쇼도지마의 미사키노 분교에 이제 막 대학을 마친 오이시(다카미네 히데코) 선생이 부
임한다. 양장을 하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선생은 이제 막 입학한 열두 명 제자의 이름과 별명을 외우며, 벚꽃 아래
서 기차놀이도 하고, 아름다운 동요도 가르쳐 준다. 그러나 개구쟁이 학생이 파 놓은 모래 구덩이에 빠져 다리를 삔 선생은 치료 차
학교를 떠나게 된다. 아이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며 “본교에서 너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라며 선생과 제자들은 이별을
맞이한다.
마침내 4학년이 된 학생들은 본교로 가서 오이시 선생의 반이 되고, 다카마쓰시로 수학여행을 가는 등, 행복한 추억을 쌓는다. 그
러나 가난과 전쟁은 다감한 선생님과 천진한 제자를 평화롭게 공부할 수 없게 만든다. 식당으로 일하러 가는 여학생들과 징집되어
나가는 남학생들. 오이시 선생은 군군주의를 강요하는 학교에서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며 학교를 떠난다.
‘24의 눈동자’는 섬마을의 평온한 삶을 파괴하는 가난과 전쟁의 상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회복되는 인간성을 담백하면서
도 눈물겹게 그린다.
다리를 다친 선생을 위문하러 집에 간 아이들에게 오이시의 어머니는 우동을 내어준다. 다카마쓰시엔 사누키 우동 순례 버스가 운
행될 정도니 말해 무엇 하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우동을 먹어본 아이들, 학부모들은 고맙다며 농산물로 보답한다.
오이시 선생은 항구 우동 집에서 일하는 아마츠를 우연히 만나 눈물짓는다. 아마츠가 작별 인사를 하러 달려 나오다 급우들에 둘
러싸인 선생을 보고 골목에 숨어 운다. “수학여행 가는 대신, 학교를 그만두고 일하기로 했어요”라던 고토에는 식구들마저 외면하
는 가운데 폐병으로 죽어간다. 오이시 선생은 “내 앞에서 실컷 울어라”라고 말할 뿐이다.
패전 이듬해, 오이시 선생은 다시 분교로 돌아와 옛 제자의 아이들 담임이 된다. 부모, 형제들과 꼭 닮은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감
회에 젖는 오이시. 세상 떠난 제자들 무덤을 찾아 꽃을 놓는다. 살아남은 옛 제자들은 환영회를 연다. 전쟁으로 눈을 잃은 제자가
선생과 찍었던 단체 사진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다 보여요” 한다. 오이시 선생은 옛 제자들이 선물한 자전거를 타고 씩씩하게 분
교로 출근한다.
미모와 연기력이 빛나던 29세에 ‘24개의 눈동자’에 출연한 다카미네 히데코. 대학을 막 졸업한 초임 여교사에서 세 아이를 둔 미망
인까지를 연기하며 당시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물론 영화는 지금 보아도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명작이다.
1929년 데뷔한 아역 배우 출신으로 셜리 템플과 비교되며 일본 영화 팬을 울린 이래, 쉼 없이 영화에 출연한 다카미네 히데코. 나
루세 미키오, 오즈 야스지로, 기노시타 게이스케와 같은 일본 영화계 거장들 대표작의 히로인이었던 연기력 빼어난 배우. 하라 세
츠코, 다나카 키누요, 쿄 마치코와 함께 일본 영화 황금기를 대표했던 여배우. 1979년 은퇴 후 수필가로 활동하다, 2010년 12월 28
일 86세에 도쿄 병원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영화 속 오이시 선생과 섬마을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매를 들기 일쑤였던 엄혹한 교사만 겪었던 시니어에겐 낙원의 나날과 다름
없다. 정말 저렇게 다정하고 생각 바른 스승이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나는 왜 스승의 날에 찾아뵙고픈 선생님이 없는 것일까, 저
런 선생님이 단 한 분만 계셨어도 내 인생은 따뜻했을 텐데, 설움에 겨워 자문하게 된다. 한 분의 선생님과 열두 명 학생은 예수님
과 열두 제자에 빗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