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기독교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기독교적인 믿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바이블에 제시된 윤리에 절대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즉 복음의 절대성이다. 이 복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런 모순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인신공희라는 추악하고 정신병적인 종교 제의를 복된 소식이라고 높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야만스런 인신공희 제의가 자신에게로 향하여 행해지면 피학증이 되고, 타인에게로 향하여 행해지면 가학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정서는 마녀사냥 처럼 구체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예수에 속한 사람이라고 천명함으로서 이런 사악한 정서에 원천적으로 매여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아래에 그런 사례를 소개했다.
기독교인들에게 성찰의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I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줄거리는 대단히 흥미롭다. 16세기 초 프랑스 남부 지방 농촌의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한 청년이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집을 떠난지 약 1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오랜 객지 생활에 성격도 바뀐듯 그는 전과 달리 자상한 남편, 충실한 농부로서 마을에서 환영을 받는다.--유산 상속을 둘러싼 친척 사이의 갈등이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어 그의 신원 자체가 의문시되기 전까지는. 재판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계속되는 반전은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며, 그 소재의 기이함에서 비롯되는 흥미는 <써머스비>라는 같은 내용의 영화가 배경만 미국으로 바뀌어 만들어졌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흥미를 준다. 그 이유란 이 영화가 재판관의 기록에 근거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커다란 흐름이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주는 재미 이외에도 유럽의 중세나 근세 초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여분의 잔재미를 이 영화에서 맛볼 수 있다. 그러한 잔재미들 중의 하나로서,"마녀 사냥"이라는 특이한 역사적 현상에 눈길을 돌리려는 사람이면 여느 관객마냥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이제 우리의 사냥 이야기의 출발점은 그 몇 장면들에 대한 설명에서 찾도록 하자.
젊은 마르탱 게르가 가출을 결행한 이유 중의 하나는 성불능으로 인하여 신혼 초 부터 남성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일종의 무당에 의한 일종의 푸닥거리와 교구 신부에 의한 악령 축출 의식이 순차적으로 거행되는 장면이 보인다. 무당의 영험 때문인지 신부의 축복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마르탱은 부부의 관계를 성사시키고 아버지가 된다. 우리의 이야기와 관련되는 또 다른 장면은 돌아온 마르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밝히려는 법정에서 일어난다. 까마득한 옛날에 일어났던 일들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기억함으로써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하려는 (가짜) 마르탱 게르에 대하여 교구 신부는 그러한 능력은 악마의 힘을 빌지 않은 한 불가능하다고, 따라서 마르탱은 마법사라고 기소한다. 우리의 주인공은 대단한 기지를 발휘하여 이 "치명적인" 곤경으로 부터는 벗어난다. 이 장면들은 오늘날의 우리와 시간적, 공간적으로 달랐던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이 느꼈던 종교와 마법 사이의, 바꾸어 말하면 신과 악마 사이의, 더 바꾸어 말하면 성직자와 무당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시사해준다. 그 관계란 대립이랄 수도 아니랄 수도, 공존이랄 수도 아니랄 수도 없는 것인데,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 무당들은 대체로 15세기와 17세기 사이에 마녀로 둔갑되어 대규모로 처형당하였다. 따라서 마녀의 정체를 밝히려는 시도에는 무당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던 그 사람들이 중세의 마을 속에서 지니던 위치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II
실지로 이 사람들은 중세의 유럽뿐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낯설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마술사', '마법사', '교활한 사람', '약삭빠른 사람', '현명한 사람', '요술장이', '마녀' 등등은 물론 우리 말로는 그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전달하기 어려운 그 밖의 많은 이름으로 불리우던 이 사람들은 병을 낫게 해주거나 잃은 물건을 찾아 주거나 점을 쳐주는 일과 같은 것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던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도와주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전염병이나 기근같은 일이 발생하거나 불구가 되어 자식을 낳지 못하거나 가축이 새끼를 낳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이들에게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이들은 찾아온 사람들을 위로해 주면서 그들의 불행은 마법을 통해서 사라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즉, 이들은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마을 공동체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마법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람은 마을내에서 중요한 인물로 부각된다. 이러한 능력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생활의 안정이나 마을 내에서의 영향력을 가장 필요로 하던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면 늙고 가난하거나, 독신, 그 중에서도 특히 과부인 경우가 많았으며 그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 내에서의 마법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의 법과 제도를 지방에 부과시키려는 도시 사회의 시도와 맞부딪치게 된다.
1400년경 부터 약 300년에 걸쳐 50만 정도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악의적인 마법(malificium)을 행한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던 근본적인 이유는 대중들이 마법의 힘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어떤 천부의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마법적인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든가 해칠 수 있다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믿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런 이유로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마녀 사냥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여야 할 일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학식있는 자들이 마녀 사냥을 조장시켰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의 성직자들은 여러가지 성사를 통하여 일종의 마법을 행하고 있다. 이것은 공인된 마법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영화 속에서 교구 신부가 하듯이 악령을 제거한다는 일은 당시의 사회 내에서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었다. 악령이나 악마에 대한 공포심이란 실로 성직자들이 적극적으로 조장하였던 것으로서,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에 대한 도덕적 권위를 행사하면서 종교적 규율과 복종을 강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13세기 말부터 교회에서는 오로지 성직자들만이 정당한 초자연적인--따라서 마법적인--권능을 지닌다고 단정하였다. 신학자들이 추론한 바에 따르면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같은 결론이겠지만) 이러한 초자연적인 능력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고 따라서 신에게서가 아니면 악마에게서 도출된 것이다. 만일 이것이 신으로 부터 왔다면, 그 능력은 교회에 한정되어 교회를 위하여 행사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리를 연장시킨다면 교회의 담벽 바깥에서 마법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그 능력을 악마로부터 받아왔을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논지를 바탕으로 하여 기독교도가 아닌 마녀 또는 마법사와 악마 또는 사탄과의 사이에 어떤 "동맹"이 맺어졌으리라는 비난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마녀 사냥은 기독교 사회의 역사상 최악의 이단이자 적인 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에게는 생사를 건 투쟁이 되었던 것이다.
교회가 그 울타리 밖의 세계의 마법에 관용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악마가 실재한다고 믿었고 그에 대해 두려움을 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한다면 마녀들을 공격한다는 것은 기성의 기독교 사회가 새로운 지역에 그 세력과 영향력을 확장시킨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마녀를 기소, 재판, 처형한다는 것은 마을에 대해, 그리고 마을에서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선언한다는 것이었다. 그 '약삭빠른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존경을 받으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들이었으므로 그들을 제거한다는 것은 마을 공동체에서 기독교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중요한 단계였던 것이다.
마녀 사냥의 희생자의 약 80%는 여자였고 따라서 "마법사 사냥"이 아니라 "마녀 사냥"이라고 일컬어지며, 그중 대부분은 45세 이상의 과부들이었다. 역사가들 중에서 페미니즘을 논리의 기저에 깔고 설명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여성 혐오가 마녀 사냥의 동인이 되었다고 논하기도 한다. 그 논리에 의하면 마녀 사냥이란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증오와 성에 대한 공포 때문에 여성들이 남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던 시대에 발생했다는 것으로서 그 목표는 단지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이가 든 여성들은 근본적인 사회적 이유 때문에 더욱 더 공격의 목표가 되기 쉬웠다는 것이다. 즉, 대체적으로 비생산적이고 타인의 노동력에 의존하던 사회 집단으로서 공공의 지원을 많이 필요로 하던 나이든 과부들은 자연적으로 공격 목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은 여기에서 순수히 상황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경제적 곤궁이 더 심했기 때문에 더 많은 숫자의 여성들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녔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교회가 교회의 축복을 받지 않고 마법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전쟁을 선포했을 때 불균형적으로 많은 숫자의 여성들이 희생을 당했던 것이지, 여성을 목표 그 자체로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러한 여성들은 산파의 역할을 담당한 경우가 많았는데, 위생조건이 열악했던 당시 사랑하는 부인이나 신생아가 출산 도중 사망할 경우 이들은 쉽게 분노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회와 이웃 모두가 이런 여성들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고 나쁘게 말했을 때 이러한 결합은 치명적이었다.
III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마녀 사냥"에 대한 통상적인 설명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것이건 완벽한 설명이란 있을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하지만, 최소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통상적인 설명이 지니고 있는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보고 숨겨져 있는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야 한다. 마을 공동체 내에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교회의 노력이 이웃의 증오와 맞물릴 때 희생자가 마녀로 바뀌어 처형되었으리라는 개연성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공동체 내에서 같이 생활하던 이웃으로서 그 이유로 희생된 숫자가 50만에 이를 때 그 통상적인 설명만으로는 무엇인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역사가 휴 트레버-로퍼는 어찌하여 유럽처럼 선진 개화된 사회에서 과학 혁명이 싹트던 바로 그 시기에 이처럼 이상하고 야만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물은 바 있다. 그가 찾은 해답이란 미신과 여성적인 히스테리아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역사상의 독특한 이례에 불과하다는 불만족스러운 것이지만, 그가 제기한 질문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해 준다.
마녀들은 통칭 '사바트'라고 알려져 있는 악마의 연회에 참석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 향연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고 한다. 마녀나 마법사들은 들이나 산의 외딴 장소에서 밤중에 만난다. 때로 이들은 몸에 특수한 연고를 바르고 막대기나 빗자루에 빗겨 앉아서 날아온다. 때로는 짐승을 타고 오기도 하고, 그들이 짐승으로 바뀌어서 오기도 한다. 처음으로 이곳에 오는 자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한다는 선서를 하고 성사를 모독하는 행사를 한 뒤 악마에게 충성을 서약한다. 악마는 이 모임에 동물의 형상으로, 특히 숫염소의 모습으로 참석하거나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참석한다. 충성 서약 이후에 향연이 벌어지고 무도회, 난잡한 혼교 의식이 뒤따른다. 이들은 사람의 살을 먹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기독교도 어린이의 살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들은 어린이의 기름과 창자로 만든 사악한 연고를 나누어 갖는다.
이러한 악마와 마녀의 향연은 지방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그 이름의 숫자는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름만 다양할 뿐,그 향연의 기본적인 구조는 대단히 흡사하다. 트레버-로퍼가 지적하듯 과학 혁명이 결실을 맺어가던 바로 그 시기에 이렇듯 비이성적인 믿음이 유럽의 전역에 걸쳐 퍼져 있었다면, 그리고 이러한 믿음에 근거하여 마녀 사냥이 자행될 수 있었다면, 마녀 사냥의 배후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단순한 추론만이 아니다. 1000년경,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란 악마가 조작해낸 환영에 불과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1480년부터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가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악마와 손잡은 사람들이라고 공개적으로 언명하면서 태도를 바꾸었다. 즉, 마녀가 실재한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함으로써 마녀를 만들어낸, 그리고는 죽인, 것은 바로 교회 자체라는 말이다.
교회가 앞장서서 마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많이 있다. 마녀는 악마와 손을 잡은 사람이기 때문에 마녀 재판은 종교 재판소에서 벌어진다.< 마녀가 그토록 사회에 해로운 존재라면 마녀 사냥꾼의 본분이란 마녀를 없앰으로써 사회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마녀를 심문하는 성직자들은 오히려 마녀의 공급을 원활하게 유지시키려고 노력하였고,어느 곳에나 실지로 존재하고 있는 마녀들은 아주 위험스러운 자들이라는 믿음을 퍼뜨리려고 힘을 썼던 것이다. 실로 마녀를 수사하던 성직자들은 남의 죄를 용서할 도량은 조금도 지니지 않은채 주께서 자신들의 죄를 사해주기를 원하던 사람들로서, 마녀들은 말 그대로 이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들 심문관들에게는 마녀의 존재 속에서만 자신들의 존립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마녀들의 탄생지는 심문관들의 고문실이었다. 스스로가 마녀라고 자인한 고백서는 대부분이 마녀 피의자들에 대한 가혹한 고문 끝에 작성된 것이었다. 피의자들은 악마의 향연에 참석했다는 자백을 할 때까지 며칠이고 고문을 받았다. 그 고문은 너무도 악랄한 것이어서 많은 피의자들은 고문을 받느니 오히려 화형장에서 잿더미가 되기를 택할 정도였다. 더구나 그러한 '행운'은 고문에 협조적이었던 피의자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다. 자백을 한다고 고문이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그 연회에 참석했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라는 고문이 시작된다. 다른 무고한 사람을 같은 곤경에 빠뜨리기를 거부하며 처음에는 그 모임에서 본 사람이 없다고 부인하나, "인간의 육체가 얼마만큼 폭행당할 수 있는가"하는 한계까지 고문을 당한 뒤에는 어느 누구라도 그 순간 자신의 머리 속에 떠오른 인물들을 그 연회에서 보았노라고 '실토'하게 된다. 이리하여 또다른 마녀들이 만들어지고, 고문당하고, 다른 참석자를 불어낸 뒤 처형당한다.
어떤 방식으로건 한번 마녀라는 의심을 사게된 피의자는 그 거미줄에서 결코 빠져 나오지 못한다. 사실에 근거한 현장 부재 증명도 여기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악마의 연회에 어떤 여자가 참석했다고 다른 사람이 증언을 하자, 그 여자의 남편이 그 시간에 그녀는 자기와 잠을 자고 있었다고 맹세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그 남편이 만졌던 여자는 그의 아내가 아니고 연회에 참석한 아내 대신에 그 자리를 메꾸고 있던 악마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꿈 속에서 악마의 연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 보여도 안된다. "다른 사람이 꿈 속에서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면, 당신은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금 트레버-로퍼의 주제로 되돌아가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어찌하여 과학 혁명을 선도한 선진 유럽 사회에서 이처럼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더군다나 교회와 정부의 비호 아래. 그 해답은 오히려 간단하다. 트레버-로퍼가 보았던 과학 혁명의 발아, 성장기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엄청난 혼란기였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천년을 지탱해온 중세의 세계관이 붕괴되고 새로운 사상이 꿈틀거리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흑사병에 의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이후에 사회의 재편성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봉건 체제가 붕괴되며 지방 분권이 중앙 집권 체제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종교 개혁 이래로 오랜 종교 전쟁과 왕조 전쟁에 의해 프랑스와 독일의 국토가 황폐화되었던 시기였다.
혼란기란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무엇인가 신분 상승을 위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적기이다. 교회와 국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시기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더욱 큰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위기이다. 마녀 사냥이란 교회와 국가가 찾아낸 손쉽고도 효과적인 위기 해결책이었다. 마녀 사냥이 초래한 가장 중요한 결과는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가 영주나 주교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은채, 자기들이 마녀나 악마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믿도록 유도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녀 사냥의 근본적인 목적이었던 바 이것을 고안해낸 사람들은 그 목적에 있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1562년부터 1684년까지 독일의 남서부 지역에서 있었던 1,258건의 마녀 처형에 대한 에릭 미델포르트의 독특한 연구의 결과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었음을 웅변한다. 귀족들이 마법사로 기소된 경우는 단 세번 밖에 없었고 그중 어느 누구도 처형되지 않았다.
한발이 닥치거나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아들이 죽거나, 가축이 병들거나, 세금이 오르거나 이제 교회나 국가는 자신들의 책임을 마녀나 악마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당국은 그 악마를 퇴치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니 백성들은 믿고 협조하기 바란다." 이리하여 백성들은 부패한 성직자나 탐욕에 찬 귀족들을 탓하는 대신에 악마와 마녀를 저주하게 되었다. 마녀 사냥은 빈자와 무산자의 저항 능력을 분산시켜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고,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시켜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마녀 사냥은 부의 재분배와 사회 계급의 혁파를 교회와 국가에 요구할 능력을 빈자로부터 박탈하였다. 이것이 마녀 사냥이 지니는 진정한 마법적 효능이었다.
IV
마녀 사냥은 17세기에 끝나게 된다. 왜 이것이 17세기에 끝나게 되었을까? 많은 요인들이 여기에 작용하였다. 보다 과학적인 새로운 세계관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마녀의 실체를 점차 믿지 않게 되었다. 17세기에 정신과 물질이 두개의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이 인식되면서 사람들은 말이나 생각이 사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차츰 버리게 되었다. 즉, 마녀의 저주란 단지 말에 불과한 것으로서 이것이 실제 사물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는 것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마녀 사냥 자체가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소된 마녀들이 때로는 마을의 중요 인물들이 악마의 모임에 참석한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고, 재판관들까지도 지목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이럴 경우 재판은 기능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무정부 상태로까지 이를 위험이 있다. 어떤 이유였건 엄청나게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사회를 광란의 상태로 몰고갔던 마녀 사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17세기에 사라졌다.
미국의 극작가 아더 밀러는 냉전기의 미국을 휩쓸었던 붉은 색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매카시즘을 풍자하기 위한 소재를 마녀 사냥에서 찾았다. 그의 희곡<도가니> The Crucible는 1692년 보스턴 근교의 샐렘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녀 사냥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 두 사태가 빚어낸 비이성적 광란 상태에 비추어 볼 때 밀러의 비유는 적절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가 암시하는 바는 그렇듯 위험한 광란 상태가 언제 어느 곳에선가 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경고일 것이다. 미국의 펜실바니아 식민지를 건설하여 퀘이커 교도들의 도피처를 만들면서 종교적 관용의 모범을 보여 박해를 받던 모든 종파에도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거룩한 실험"을 실천하였던 인물인 윌리엄 펜에게 어느 누군가가 한 여자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기소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펜은 "펜실바니아의 법에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고 일축하였다. 이렇듯 폭넓은 관용의 정신이 지배하고 건전한 상식이 통용되는 성숙한 사회에서는 마녀 사냥과 같은 몽매주의가 발을 붙일 곳이 없다. 그러나 아집, 독선, 탐욕이 맹목적인 체제 수호 의지와 결합될 때 마녀 사냥은 다시 일어난다. 물론 다른 이름으로.
첫댓글마녀사냥이 뭔지 이제 알았다..어떤 여성비하의식이 결합된..이상한의식 떠올리기도 생강하기도 힘든일이죠..기독교인들중에 마녀사냥에 대해 알고 있는사람이 도대체 몇이나되나..그옛날얘기를 물론 정말 잘못된 일이지만 이걸 도대체 어디서 끌어오셨는지 정말 대단하세요...지금은 여성선교사 목사 전도사들이 얼마나 많은데..여성이 교회네에서 위상이 높아져가고 있다는거 모르시나요? 그렇게 비판하면 기분이 그렇게 좋으세요?
첫댓글 마녀사냥이 뭔지 이제 알았다..어떤 여성비하의식이 결합된..이상한의식 떠올리기도 생강하기도 힘든일이죠..기독교인들중에 마녀사냥에 대해 알고 있는사람이 도대체 몇이나되나..그옛날얘기를 물론 정말 잘못된 일이지만 이걸 도대체 어디서 끌어오셨는지 정말 대단하세요...지금은 여성선교사 목사 전도사들이 얼마나 많은데..여성이 교회네에서 위상이 높아져가고 있다는거 모르시나요? 그렇게 비판하면 기분이 그렇게 좋으세요?
위의 글을 잘 살펴보면 기독교가 빠지기쉬운 함정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집과 독선 그리고 탐욕이 맹목적인 체제 수호 의지와 결합 될 때 그런 위험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바꾸어 이해하면 기독교가 마녀사냥과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위의 글은 여성의 위상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거듭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면 기분이 좋으냐?고 묻는 분들이 이젠 제법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좋은 점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이 아닐까요? 바로 그것이 독선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