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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s Et Fortitudo 모드는 1308년에서부터
진행되는 모드입니다. 저는 길더의 백작령을 골라 진행했습니다.
1444년까지 진행한 김에
여태까지 있었던 일과 세계의 모습을 시나리오 소개의 모습을 빌려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44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실제로 유로파 유니버살리스는 폴란드의 왕 브와디스와프 3세가 오스만에 대항하는 바르나 전투에서 사망하고
카지미에시 4세가 1447년 즉위할때까지의 대공위시대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시작하기에
1월 1일이 아니라 11월 10일에 시작합니다만
여기서는 폴란드가 튜튼의 북방십자군으로 박살나버렸기에 1월 1일을 기준으로 삼겠습니다.
자 그럼 시나리오 소개를 시작합니다.
1.라이즈 오브 세르비아
동로마제국은 그의 형제 서로마제국이 야만인 훈족들에게 정복당할 때도 무사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로마제국은 또 다른 1000년간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는 법.
성군 스테반 3세가 이끄는 네마니치 왕조의 세르비아는
1345년 헝가리의 앙주 왕조가 단절되자 앙주의 샤를과 결혼한 상태였던
아나(Anna)를 헝가리의 여왕으로 삼으며 네마니치를 헝가리까지 확장하는데 성공하였다.
두 강력한 왕국은 불가리아와 튀르크족들과의 전쟁으로 피폐해져있던 비잔티움을
그들이 자랑하는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으로 밀어넣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두샨 (세르비아말로 대왕)은 이제 콘스탄티노플을 코앞에서 보게되었다.
비록 1407년에 시작된 내전의 상처가 남아있지만
세르비아 왕국이 진정한 로마의 계승자가 되는 순간
콘스탄티노플은 차르를 위한 차리그라드로 세상에 알려지게될 것이다.
한편 작은 튀르크의 부족장이었던 오스만의 후손들은
비잔티움이 안팎으로 혼란에 빠진 사이 소아시아를 통일했으며
카라만과 둘카디르를 제외한 모든 베이(아나톨리아의 이슬람지도자)들을 속국으로 삼았다.
구호기사단들의 로도스 섬 요새는 10년간의 포위 끝에 함락되었으며
교황이 여러번 외친 대 오스만 십자군은 3번 모두 참패했다.
이제 그들 앞에는 미약한 비잔틴의 마지막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들에게 콘스탄티니예는 술탄을 위한 이슬람의 성지가 되야할 곳이다.
한편 북쪽에서는 세르비아에게 붕괴당한 불가리아의 잔당들을 정리하기 위해
칸의 유목민 군대가 몰려와 왈라키아를 속국으로 삼기까지 했다.
칸들은 눈 앞에 놓여진 세계의 진주를 보면서 그들의 입맛을 다시였다.
아니면 어쩌면 칸 중의 칸, 징기스칸이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말을 위한 목초지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로마는 여기서 멸망하고 마는것인가?
흥미로운 국가들
1. 세르비아
1444년의 세르비아는 헝가리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20년 가까이 계속되던 내전을 진압한 상태였다.
수 없이 무능한 왕이 집권을 했으며, 또 정당하지도 않은 출신들이었다.
지금 왕 페트리쟈 (Petrija) 또한 무능함으로는 세르비아의 역사서에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세자 스테반 5세는 그 누구보다 총명하고
야망에 가득찬 사람으로 비잔티움을 완벽히 계승하고자 하고있다.
동일한 동방정교회를 믿는 신민들로서도 그리스인들은 세르비아의 지배를
튀르크의 지배보다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2. 오스만
오스만은 크리스트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튀르크족은 로마를 계승하는 룸 술탄국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었으며
이제는 콘스탄티니예를 알라에게 봉헌하고 로마의 계승자이자 카이세리가 되길 원했다.
비록 또다른 이교도 경쟁자인 카라만과 맘루크 그리고 안티오크의 유목민들이 존재하지만
15세기야말로 오스만의 시기가 될 것이며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써내려가지는 지에 따라서 남유럽,
아니 전 유럽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3. 둘카디르
아르메니아와 둘카디르는 14세기 중반에 외부로 확장을 하였다.
결국 네스토리우스교를 믿는 아르메니아는
시아파 반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시아파 국가가 되었으며
수니를 믿던 둘카디르는 네스토리우스 반란군에의하여 네스토리우스교 국가가 되었다.
이 튀르크족 프레스터 존은 키프로스와 함께
중동에 남은 마지막 크리스트교의 보루이다.
과연 둘카디르의 크리스천들은 중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4. 트레비존드
콤네노스 왕조는 제 4차 십자군 이후부터 트레비존드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때 룸 술탄국을 전부 흡수하고 오스만을 위협했던 그들이지만
오스만은 그들을 피해 다른 튀르크족들을 흡수했고
이제는 킵차크 칸국의 계속된 공격에 의해 군대는 황폐해졌으며
국민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다.
하지만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에 갖히게 된 동로마보다는 더 나은 조건에 있다.
저번 4차 십자군 때도 한때 비잔틴이었던 모든 곳이 적이 되었던 가운데서도
트레비존드는 위엄을 지킬 수 있었다.
한번 더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5. 맘루크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는 1444년 그 어느 때보다 강했으며
튀니지의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영향권을 행사하며
알레포를 포함한 시리아를 직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메카, 예맨 맘루크가 향할 수 있는 진출방향은 무궁무진했다.
아니면 그들은 같은 무슬림에게 전쟁을 진행하는 것을 멈추고
수단으로 내려가 이교도 콥트들에게 진정한 알라의 말씀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일에 주위가 분산되기엔 콘스탄티노플의 침략이 가져올 것이 너무나도 컸다.
과연 누가 지배하게 될 것인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과연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의 이집트인들은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6. 베니스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엔리코 단돌로의 제 4차 십자군으로
비잔티움을 빈사 위기에 몰아넣었으며
세기의 배신이자 악마라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뿌린 씨에서 나온 손들은
비잔틴의 목줄기를 붙잡고 비틀기 일보직전이다.
그럼 어떤가? 이미 크레타 섬을 포함한 에게해의 거점들은 우월한 라틴인들의 요새로 무장되어있고
야만적인 튀르크인들은 제대로된 서구세력과 대전투를 한적도 없다.
제노아 공화국이 쇠퇴를 거듭한 끝에
사보이 공국에게 정복당하고 사보이 왕국이 성립하면서
조그마한 피사 공화국 말고는 경쟁자 조차도 사라졌다.
또한 저번 전쟁에서처럼 콘스탄티노플을 직접 함락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잘못 될리가 없다.'
하지만 도제들은 다음 차례가 올 수록
그들의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7. 나폴리
시칠리아 왕국과 나폴리 왕국은 계속하여 경쟁하였고
최종적인 승자는 나폴리 왕국이었다.
지중해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
아라곤과도 경쟁하던 그들은
에피루스와 테살로니 공국들을 가지고 세르비아와 경쟁했다.
비록 세르비아의 강력한 육군 때문에
테살로니는 세르비아에게 양도해야 했었지만
비잔틴의 황세자들이 지배하던 모레아를 확보하고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홍보할 수는 있었다.
마침 세르비아를 견제하려던 시점에서 베네치아와의 동맹도 성사가 되었다.
그리스 강자는 가톨릭 세력이 될 수 있을까?
8. 비잔티움
팔라이올로고스 왕조는 배신자의 핏줄, 촌뜨기 포카스(Phokas) 가문이 일으킨 궁정쿠데타로
단절됬으며 왕가의 정당성까지 잃어버린 비잔티움은 정말로 위기에 닥쳐있다.
오스만과의 전쟁에서도 누구보다 그들을 패배하게 한것은
불가리아의 왕위를 얻고는 비잔티움으로 바로 정복전쟁을 선포한 두카스 가문이었다.
천년을 이상을 버텨왔던 비잔티움의 최대 재앙은 바로 내부에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한들 부질없으리.
동쪽으로는 오스만, 서쪽으로는 세르비아가 있다.
이 둘은 비잔티움의 멸망과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원했지만
서로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이젤 앞에서 물감만 섞고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신이시여 유럽의 진정한 황제를 구해주시옵소서!
2. 금인칙서의 붕괴
룩셈부르크의 황제가 신성로마제국의 법을 정비한 금인칙서를 1356년 발표했으나
14세기가 끝 마쳐지기도 전, 그가 왕으로 있는 보헤미아가 이단적인 후스파를 인정했다는 명분으로
길더 왕국의 공격에 의해 룩셈부르크의 영지가 모두 빼앗기면서 신성로마제국엔 혼란의 시대가 오게되었다.
4명의 신성한 선제후들과 3명의 세속적 선제후가 급히 투표를 한끝에
길더 1표, 브란덴부르크 1표, 헤센 1표, 바이에른 2표, 오스트리아 2표라는 결과가 나왔으며
오스트리아가 보헤미아의 왕관을 이어받는 조건으로 양보하면서
일개 고지 바이에른 (Upper-Bavaria/Oberbayern)의 백작가문이었던
폰 안덱스 (Von Andechs)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목록에 더해질 영광을 누리게되었다.
하지만 심지어 바이에른조차 이것이 권위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개 왕국에 의한 황제국의 붕괴와, 전통없는 가문의 황제추대는
더 큰 폭풍을 향한 전주곡에 불과하였다.
과연 신성로마제국은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흥미로운 국가들
1. 길더
저지대의 일개 백작령에 불과했던 길더는
레지날드 바센버그 백작이 전쟁터에서 사망함으로써 위기에 처했으나
덴마크의 에스트리드센 가문의 남성들이 대를 이음으로서 강한 동맹을 얻고
저지대를 하나씩 정복해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발전되고 부유한 동네인 저지대와 라인란트로 확장한 그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됬으며
그 부는 다시 엄청난 숫자의 군대로 전환되어
수많은 정복전쟁과 방어전쟁을 치루었다.
백작령에서 공작령 그리고 왕국까지 격상된 길더는
비록 프랑스 문화권이지만 전통적인 프랑스 지역으로 취급받지 않던
왈롱과 알자스로 진출하려는 프랑스와 계속해서 전쟁을 해왔고
프랑스를 방어하기 위해 주변 지역을 빠르게 선점하려는 그들의 정책은
제국 내부에서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헤센과 황제국 룩셈부르크와는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중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왕 아놀드 3세는 갑자기 룩셈부르크를 공격하여 영토를 빼았았고
제국의 구성원들이 놀랄 틈도 없이 6년 이후 룩셈부르크를 멸망시켜버렸다.
길더는 왈롱인들에 대한 문화종주권을 위해 황제국을 멸망시킨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제국의 중심은 전통적인 서부에서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의 남부로 이동해버렸다.
마침 1414년 아라곤의 왕이 갑작스럽게 후사없이 죽으면서
아라곤과의 동군연합이 진행중이기도 하다.
2. 프랑스
프랑스의 카페왕조는 14세기에도 그들의 전통에 걸맞은 중앙집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통일된 프랑스 왕국은 1340년대에 이미 등장했으며
왈롱지방을 가지고 길더와 전쟁을 했으나
길더-카스티야-아라곤-룩셈부르크의 동맹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프랑스 내부를 정리하여
지금의 국경선을 확정지었고
브르타뉴(브리타니)의 켈트족들을 향해 파란지도색을 퍼트리고 있다.
전쟁을 통해 분리시켜냈던 독립 샹파뉴 공국과 독립 알랑송 백국이 붕괴하면서
일드프랑스를 포위하고자했던 길더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오히려 코 (Caux)까지 길게 이어진 프랑스인 지역은
길더의 외교와 행정에 걸림돌이 되고있다.
제국의 소속국이 서로 전쟁을 하기 시작한 지금이야 말로
프랑스가 다시 오각형의 전통적인 영토, 아니 그 이상을 회복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3. 브란덴부르크
브란덴부르크 변방 선제후국은 포메라니아와 폴란드, 실레지아, 마이센, 메클렌부르크, 튀링겐 등
수 없이 많은 곳을 정복했으며
헤센을 집어삼키려는 1420년대의 정복전쟁에서
길더-덴마크-튜튼-헝가리 동맹국에 패배하여
일부 영토를 독립시킨 뒤에야 그들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브란덴부르크는 아직도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동맹국인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역시 강국에 속한다.
브란덴부르크는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전쟁을 할것이고
그 전쟁에서는 승리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이 전쟁기계에게 황제국의 자리라도 쥐어진다면....
4.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비록 전 유럽에 자신의 가문을 뿌리내리는데 실패했고
1444년이 된 지금도 오스트리아의 영지를 모두 통일하지 못했지만,
스위스의 준가우에 가지고 있던 영지를 바탕으로 많은 스위스 지방들을
흡수한 상태이다.
따라서 바덴-워템부르크를 통해 남쪽으로 프랑스 국경을 닫으려고하는 길더와는
국경마찰을 통해 앙숙관계가 되어있다.
또한 룩셈부르크가 사라지자 그들은 보헤미아의 왕위를 얻었는데
이로서 보헤미아는 강력한 왕국의 지붕 아래 내려옴으로서
이단 후스파를 유지하면서도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보헤미아가 가지고 있는 땅과 군사가 상당하기에
룩셈부르크때도 그랬지만 합스부르크에게 큰 장점이 되어줬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선제후들을 설득해 나약한 바이에른 대신 자신들의 합스부르크를
황제 자리에 올릴 평판을 확보해두었다.
15세기에는 합스부르크의 시대가 열릴 것인가.
5. 바이에른(바바리아)
바이에른은 고지 바이에른과 저지대 바이에른, 두개의 공작령으로 나뉘어서 계속해서 경쟁하였고
고지 바이에른이 승리하면서 바이에른 왕국이 1420년대에 성립되었다.
그리고 뜻 밖의 황제위가 그들에게 넘어온 것이었다.
바이에른은 비록 가장 약한 세력은 아니지만
제국 내부에서 왕국을 자칭하는 세력중에서는 가장 미약하다.
비록 지금은 오스트리아가 다음 황제관을 가져갈 것이 분명하지만
다른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이 그러했듯 예상을 깨고 앞으로 수백년갈 강력한 황제국을 만들지도 모른다.
6.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침략에 맞서 스코틀랜드는 북아일랜드를 병합하는 선택지를 취했다.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대리전들은 결국 브리튼 본토섬에서의 대전쟁으로 커졌고,
그때마다 프랑스는 함대를 구성해 잉글랜드 남부에 상륙하고는 했으며
이는 길더가 코를 정복할때까지 길더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원인이 되고는 했다.
비록 이렇게 단점을 먼저 서술했지만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의 도움에 힘입어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는 항상 우위를 접하고 있었다.
하지만 1444년의 상황은 힘든 상태이다.
비록 내부 독립세력들을 정복하여 프랑스가 항구를 확보해둔 상황이었지만
불과 30년전만해도 프랑스의 항구가 단 2개였던 상황이었기에
프랑스의 해군이 무력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변수는 스코틀랜드의 왕이 카페 왕조에서 온 왕으로서
후손이 없는 상태로 40대라는 것이다.
7. 카스티야
카스티야의 부르봉 가문이 단절되자 길더의 에스트리드센 가문은 카스티야의 왕족이 되었다.
아라곤의 계승권 문제는 길더와 카스티야 사이 계승전쟁으로 이어질뻔 했으나
새로운 엔리크 에스트리드센이 모로코에게 전쟁을 선포하면서 길더와의 동군연합으로 귀결되었다.
카스티야는 길더와 연합하여 팽창해나가는 프랑스를 견제해 왔으며
잉글랜드가 반환한 가스코뉴(Gascogne)와 푸아투(Poitou) 지방을 얻어
대서양으로 향하는 서부 항구들을 모두 틀어막으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포르투갈과 함께 대서양의 작은 섬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한 소항해시대의 개막
아직은 작은 섬들의 연속이지만
이웃 포르투갈의 몇몇 항해자들은 그들이 거대한 땅을 찾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프레스터존의 땅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인도라고도한다.
과연 카스티야의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3. 북방십자군
튜튼기사단과 폴란드 왕국 사이 전쟁은 프워츠크 전투에서
기사단이 왕국군을 거의 전멸시키면서 폴란드 왕국의 붕괴로 이어졌다.
한편 스웨덴은 핀란드인에 대한 종주권을 목표로
노보고로드를 공격하여 한때 노보고로드를 포위하기까지 했다.
동방에서 거대한 타타르의 칸이 모스크바 대공국을 통해 세금을 루스인들에게서 걷어가는 동안
서방에서도 동방정교의 패배는 계속되었으며,
우랄 산맥까지의 기독교화를 외치는 튜튼기사단은 아무도 멈출 수 없었다.
흥미로운 국가들
1. 튜튼기사단
독일기사단은 프워츠크에서 폴란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어 끝내 붕괴시켜버렸으며
리투아니아 대공국을 속국으로 삼았다.
리보니아 기사단을 완벽히 인수인계한 그들은
덴마크령 에스토니아와
러시아의 프스코프 상인공화국을 점령하여
무역거점들을 통해 성전을 위한 자금을 확보했으며
스웨덴과 발트해의 세력권을 경쟁하고 있다.
과연 이들은 가톨릭 레벤스라움을 우랄 산맥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것인가.
2. 라티보르
피아스트 가문의 배신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라티보르의 공작 가문은 그들의 불운한 폴란드 왕가를 공격하는데 크게 공헌을 하였다.
아무리 같은 피아스트라지만 그들이 왕 아래 있을때보다 더 넓은 땅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폴란드 문화가 아니라 실레지아 문화에 지지세력을 두고있는 그들은 튜튼기사단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며
다른 실레지아의 세력들과 투테니아 세력들과의 경쟁에
기사단을 동원하여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서유럽과 동유럽을 잇는 실레지아의 무역적, 공업적 이점과
크라코우라는 거대 무역지점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공화국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부유한 가톨릭 세력 중 하나이다.
3. 헝가리
세르비아의 네마니치와 같은 지배 가문을 가지게된 헝가리는
온갖 세력들이 군웅할거하던 판노니아를 통일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보스니아를 정복하여 달마치아를 통해 지중해로 가는 발판을 얻었으며
교황 조종자의 자리에도 몇번이나 오르는 등 유럽의 강국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 오스트리아의 참칭자인 스티리아 왕국을 정복하면서 오스트리아와의 친분을 쌓았으며
라구사와 이스트리아에 대한 클레임을 가지고
베니스의 미약한 공화정을 박살낼 계획이다.
4.덴마크-노르웨이
덴마크의 에스트리드센 가문은 길더 왕국이 저지대와 라인란트를 정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막상 본거지인 덴마크를 수호하는 것에는 취약했다.
특히 스카니아 지방과 홀슈타인 지방이라는 두 분쟁지역을 두고 있던 덴마크는
잦은 전쟁에 노출되었으며 강력히 유지되던 해군과는 달리
육군은 전쟁때마다 해산되는 것이 일이었다.
스웨덴의 벨보 왕가는 라프란드와의 개척지를 경쟁하던
노르웨이의 마그누손 가문과 반복해서 전쟁을 했으며,
결국 마지막 에릭 마그누손을 전장에서 죽이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덴마크와의 동군연합이 노르웨이에게 일어나게되는 결과가 되었으며
그들은 강력한 덴마크 해군에 의해 많은 땅을 노보고로드에게 돌려주는 평화협정을 맺게된다.
1444년은 1441년 시작된 스카니아 재정복 전쟁은 덴마크 군이 이번에도 힘없이 무너내리면서
스웨덴의 승리로 향하고 있다. 과연 덴마크의 에스트리드센 가문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결국 몇몇 가문이 그러했듯 시작지에서는 명맥이 끊길 것인가.
5.스웨덴
벨보 왕가는 계속하여 핀란드로 개척자를 보냈으며
이 과정에서 노보고르드와 많은 마찰을 빚었다. 노보고로드가 모스크바 대공국에게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순간에, 잉그리아와 네바 지방을 점령하여 동서로 한번더 분단한것이
스웨덴의 역활이었다. 슬라브 인들의 국가는 동쪽일 수록 킵차크 칸국에게 노출되었으며
서쪽일 수록 스웨덴의 힘에 노출되었다. 비록 지금은 덴마크에게 패배하여 영토를 많이 돌려준 상태이지만
슬라브인들이 통합되지않고 내분하는 것을 반복한다면
스웨덴의 정예군들이 칸국의 유목민들과 국경을 지킬것이다.
4. 칸의 귀환
명나라의 한족들은 홍건적의 반란으로 원나라 오랑캐들의 압제에서 벗어나
다시 한족들의 중화를 세웠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른 칸이 이번에는 서쪽에서 오고 있음 알아차리지 못했다.
킵차크 칸국은 비록 튀르크화가 이루어져 이제는 타타르 혈통으로 몽골고원의
기존 몽골인과는 완전히 달라져있지만
그들의 고향을 정복하여 다시 한번 몽골 제국을 세울 수 것이라는 목표를 바꾸진 않았다.
명나라는 건국 직후, 북원이 서방에서온 흰피부의 오랑캐들에게 정복당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스텝지역에는 수많은 유목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크게 신비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사신은 이렇게 전했다고 한다.
"칸 중의 칸, 대칸이 태어났던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케타이를 포함한 전 세상을 호령하기 위함이노라!"
명나라 황제는 사신의 보고에 이렇게 코웃음쳤다고한다.
'하! 잘만든 소설이군!'
흥미로운 국가들
1. 킵차크 칸국 (금장한국)
원나라는 매우 강력한 칸국이었으며
한때 킵차크와의 국경분쟁에서는 킵차크군을 도륙해버린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부패와 홍건적의 난은 그 위대한 제국을
한 때의 유목민들의 집합으로 되돌려버렸으며,
남은 일은 초원길을 타고 징기스칸이 왔던 걸음을 거꾸로 밟으며 오는 것이었다.
킵차크 칸국은 수많은 현지화의 과정에서 수니파 이슬람을 받아들여
진주(眞主, 알라의 한자식 표기)의 이름으로 케타이(중국)을 봉헌할것이다.
이미 그들은 고원에 도달해있다.
2. 티무르
킵차크의 보르지긴 혈통들은 부계로 징기스칸과 연결되지 않는 티무르의 혈통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히바의 칸들과 차가타이의 칸들은 절음발이 티무르의 후손을 대칸으로 받아들였으며
칸 중의 칸이 지배하려고 했으나 지배하지 못했던 인도를 정복하고자 했으며
동시에 차가타이 칸들의 목표였던 원나라 황제 자리 또한 노리고자 했다.
1444년에 이러한 티무르 칸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듯 보인다.
그들은 델리 앞까지 진격했으나 델리를 정복하진 못했으며
킵차크 칸국이 더 빠른 속도로 몽골고원을 정복해 나섰으며
심지어 티무르의 지배에 동의하지않는 지역 군주들은 킵차크 칸국에 반란을 일으켜 합류했다.
그들은 트란스옥시아나의 실크로드 입구와 중국으로 가는 입구인 위구르를 지배하고 있으나
반란에 의해 마침에 도달한 명나라와의 연결구까지 잃어버리고 말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무르는 비록 킵차크 보다는 약하지만 강한 칸국을 구성하고있다.
어쩌면 계획을 바꾸어 춘추전국시대인 인도를 공격하여 현지화를 해
킵차크의 유목민들을 이기는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3. 명나라
한족들은 오랑캐들의 지배를 이겨내고 진정한 중화의 나라 '중국'을 재건했다.
그러나 서부에서 초원길을 거꾸로 타고온 이방인들의 무력방문은
새로운 명나라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를
하지만 명나라에게는 세계 제일의 땅이 있다.
이 땅에서는 수많은 농작물이 수확되며 화약들로 포탄이 만들어지고있었다.
조선의 왕족, 김씨
과연 중국의 역사는 정주민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유목민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4. 아프간
아프간의 수니파 군주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인더스-갠지스 지역을 바라보고 자랐으며
그들은 그것을 힘으로 빼앗아갈 힘이 있었다.
싱드(Sindh) 지방을 정복한 이들은 이제 점점 남부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유럽인들이 그토록 바라던 인도에 도착해 향료를 사기위해 써야할 말은 파슈툰어일지도 모른다.
5.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티베트는 이교도 칸들의 전쟁에서 미묘한 역활을 수행중이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험란한 곳에 있었으며
이미 네팔과 아삼지방에 충분한 경쟁자와 골칫덩어리들이 있었다.
6.만주
유목민은 서방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을 만주라고 부르는, 통합된 여진족들이 원나라의 붕괴와 함께 출현한 것이다.
이들은 이미 명나라의 영토를 어느정도 잠식해왔으며
명나라의 동맹인 조선의 영토 또한 빼았아냈다.
이들은 아직 킵차크의 황금 군단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
오히려 중국이 위험에 처한 지금이야말로
금나라를 재건할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7.조선
원나라의 간섭끝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한반도는
원나라가 붕괴하자 독립을 되찾았으며
가장 강력한 군신 이성계를 주축으로 정권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원나라와의 전쟁에서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었고
결국 김씨 조선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3대왕 김연이 만주족과의 싸움에서 죽음으로서
지금의 왕은 문석이다.
수 없이 왕들이 바뀌었지만, 아직 조선은 살아있으며
중국의 중요한 동맹국으로서 전쟁의 일부가 될것이다.
과연 조선의 미래는 어느것이 될것인가?
5. 향신료 제도의 붕괴
마자피힛의 조공제도는 14세기에 그 전성기를 맞이했었고
한때는 말라카 해협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하이난 섬과, 인도의 실론 섬까지 영향력을 펼쳤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외교속국관계와 동남아시아의 패자 크메르의 등장은
마자피힛이 지배하던 향신료 제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1444년, 마자피힛은 본토인 수마트라 섬에서도 쫓겨나
아체(Aceh) 지방과 몇몇 거점에서 가까스로 버티고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질문이 발생한다,
과연 누가 마자피힛을 대채할 수 있을 것인가?
흥미로운 국가들
1.크메르
수코타이와 다이비엣, 참파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친 불교 국가로서
마자피힛과의 경쟁끝에 그들을 말레이 반도에서 몰아내고
불교를 전파하고 있다.
2. 마자피힛
이제는 쇠퇴한 제국의 껍데기로서 존재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크메르는 힌두화된 지역을 불교화시키는데 고전하고 있으며
마타람은 지나치게 많은 영토를 빼앗아가 반란군의 위험이있다.
어쩌면 마자피힛의 부흥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3. 마타람
수마트라 섬의 일부에서 마자피힛의 이웃국이었던 마타람은 여러번 존속을 마자피힛에게 위협당했고
그들이 붕괴될려고 하는 순간에 피의 복수를 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영혼이 없어진 마자피힛을 계속해서 공격했으며
마자피힛을 대처하기 직전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크메르 또한 해군이 있기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4. 쿠타이
쿠타이는 보르네오섬의 부족국가로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으나
마자피힛이 보르네오를 통합함으로서 그들만의 수니 이슬람 무역대국을 만들 수 있는 기틀이
한번에 만들어졌다.
알라는 향신료 제도에도 존재하는가?
6.이른 전국시대
가마쿠라 막부는 원나라의 성공적인 홋카이도 침공을 막지못해
권위가 바닥까지 떨어지게되었고, 결국 일본 각지의 반막부 세력이 연합한
겐무 신정으로 막부는 1356년 멸망했다. 하지만 어떤 세력이 앞으로 일본을 다스릴지는
군사력을 가지고 모인 모든 세력의 생각이 각자 달랐다.
결국 일본은 1360년을 앞두고 전국시대를 열게되었다.
흥미로운 국가들
1.오다
에치젠의 오다 세력은 다이묘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지고 시작했으며
교토를 영향권에 두고 남조에 대한 강한 정당성을 발휘하고 있다.
순수 군사력으로는 다이묘 중 최강이다.
2. 하타케야마
막부에서 기존에 임명받은 슈고 다이묘였던 하타케야마 가문은 해군력과 외교력을 바탕으로
일본 각지에 지배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아시카가 가문의 영토를 상속받기도 하였기에
북조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3. 사타케
센다이 지방의 강자로서 원나라가 물러간 홋카이도를 정벌했다.
아직 작은 세력이지만 북부를 통일해 나가는 중이다.
4. 아마고
세토 내해의 지배자로서 비록 오다에게 많은 영지를 빼았겼지만
조선과 동맹인 상태로, 유일하게 외부 원군이 가능한 세력이다.
5. 아이누
원나라가 붕괴되자 홋카이도에 남아있던 원나라 영토에서 형성된 아이누족 세력
사타케와 적대관계이지만 어쩌면 외교의 흐름에 따라 북부 일본의 강자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첫댓글 사진 안 뜸 ;;;
흠..노보고르드 소개가 있을법 한데 없네요.
러시아 국가들중 조명받는 국가가 없다니 ㅠㅠ..
그래도 설명은 잘 돼있으니 좋기는 좋기만요..
러시아쪽 저 골든 호드가 강해서 그런거 같네요
러시아쪽 국가들은 아직 별로 흥미롭거나 주목할 국가가 없습니다 ㅠㅠ.
짧게 소개하자면 모스크바에게 영혼까지 털리다가 모스크바가 영혼까지 킵차크 칸국에게 털리면서 예토전생한 노보고로드, 승천했다가 박살난 스몰렌스크, 성장형 RPG 찍고있는 투로프-핀스크가 있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땅 몇 칸들끼리 투닥투닥거리다가, 어쩌다 칸 형님오면 속국되고 사라지고 그래요.
엌, 이제 뜨네 ㅋ
와 필력 ㄷㄷ 이분 유롶문학상 받으셔야할듯
유롶문학상 추천!!!
엌ㅋ진짜인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