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과 비평양...두개의 북한
공산주의 국가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 특히 수도는 극소수의 통치 권력만 거주할 수 있다. 스탈린 시대 모스크바는 당원 800만 명만이 살 수 있었다.
마오쩌둥 시대 베이징은 진성 공산당원만 거주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로 이동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스크바 시민과 결혼하는 길이다. 수천 명의 외지인들이 거주를 위해 모스크바·레닌그라드 시민과 위장 결혼을 했다.
이러한 전통은 평양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2500만 명의 주민 가운데 200만여 명의 핵심 계층 노동당원만이 평양에 거주할 수 있다. 지방 거주자가 평양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 거주를 이전할 수 있지만 매우 예외적이다.
지하 100m의 방공호 지하철을 건설하고 시가지 중앙에 대형 광장을 만들면서 대로변에는 고층 아파트를 신축해 도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꾸몄다. 평양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왕궁이 됐다.
하지만 평양만 벗어나면 바로 ‘다른 나라’가 나타난다. 멀리 들판에는 식량 부족으로 ‘쌀은 공산주의다’라는 붉은색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궁색한 빈곤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협동 농장과 검은 연기를 내뿜는 허름한 공장이 평양 외곽부터 초라하게 서 있다. 도로는 90%가 비포장이고 철도는 지난해 함경남도 열차 사고 때처럼 헐떡거리며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지방의 생명선이었던 북중 국경이 3년 동안 봉쇄되고 그나마 먹고사는 데 숨통을 열어주었던 장마당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지방 인민들의 삶은 1995~1998년 고난의 행군 수준과 다르지 않게 됐다.
북한 인구 2500만 명 중에서 평양 주민과 핵심 당원 200만 명을 제외한 90%의 인민들이 살고 있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비루한 삶을 살고있다.
각종 미사일 발사에만 주력하다 보니 평양과 비평양의 격차는 심화될 수밖에 없으며 선군 정책 기조를 변경하지 않으면 지방의 삶은 10년은커녕 20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통일연구 소장
첫댓글
공산주의의 실체를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공산주의는 골고루 나누어 다같이 평등하게 샤는 사회가 아니라 당간부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임을 입증해 주는군요. 그들에게 굴종하는 자들은 사고 체계가 정상인과 다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