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승리입니다.
(고린도전서 15 : 50-58)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는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로서 인도에서 선교를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 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설교 중간에 나서서 외쳤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한 가지를 가졌소." 선교사가 ‘그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이슬람 교도가 대답했다.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 있는 관이 있어서 정말 마호메트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하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그의 말에 “고맙습니다.”고 답한 뒤, 계속 이야기를 했다. "당신의 말이 그대로 사실인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다른 점이오. 우리의 주님은 부활하셨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빈 무덤밖에 없는 것이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는 바로 이 부활절입니다. 부활이 있고 나서야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나 사건이 하나의 줄로 연결됩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생애는 단순히 한 위대한 위인의 삶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외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빈 무덤은 부활의 상징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는 주장의 최종적인 표현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입이다. 사도 바울은 부활은 신앙의 핵심이어서 부활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부활 신앙을 견고히 지키고 변호했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폴리갑 (AD 69~165)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요, 십자가의 증거를 고백하지 않으면 적그리스도요, 부활도 심판도 없다는 자는 사탄의 장자(長子)다”고 강변했습니다. 신학자 제럴드 오 콜린스 (Gerald O’ Collins)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단지 미완성의 기독교가 아니다. 그것은 전혀 기독교가 아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그분을 따르는 신자들도 부활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부활은 신자들의 소망의 근거이며 기적 중의 최상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2,000년 전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 말씀이 본문 55-57절에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 죽음을 이기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54절)
본문 54절에 “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4대 성인이 있지요...공자, 석가모니, 소크라데스, 예수중에서 사람의 죽음문제를 해결하신 분은 예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부활절은 교회의 가장 큰 기쁨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문제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음을 3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 멸망받을 원수 2) 썩는 것 3) 쏘는 것입니다.
죽음은 고린도전서 15장 26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는 말씀처럼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왜 죽음을 원수라고 하였습니까?
죽음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죽음은 단절시켜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형제와 부부와 친구와 이웃과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죽음입니다. 모든 삶의 의미를 파괴시며 소망과 우리의 꿈을 깨뜨려 버립니다.
죽음은 ‘썩는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53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썩는다’ 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인간은 본래 흙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본래의 것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썩는 것입니다. 천천히 썩으나 급하게 불에 태우나 결국 남는 것은 뼈만 남는 것입니다. 무덤에 썩어서 장사지내는 것이나 화장하여 장사를 지내는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허물어져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까운 사람들이 아무리 좋아도 죽으면 관에 넣어서 빨리 무덤에 묻어야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은 ‘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우리의 감성과 지성을 찔러서 파괴시킵니다. 그런데 쏘는 것의 본질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죄 때문에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햇빛을 보고 삽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햇빛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햇빛을 볼 수 없으며 캄캄한 곳으로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무덤은 어둠의 세계요. 그곳은 빛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은 우리를 애통하게 만들고 비참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분명한 사실은 인류역사 이래로 아무도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능력을 입게 되었습니다.
2.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됩니다.(57절)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능력을 입게 되어서 그 분의 축복에 참여하게 된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삽니다. 물고기의 생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공기로 호흡을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공기에 있습니다. 공기가 끊어지면 우리는 죽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성도의 생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살아도 그 분 안에 있고, 죽어도 그 분 안에 있습니다. 부활도 그 분 안에서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은 바로 부활의 축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회개하고 천국을 믿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포의 내용에는 항상 회개와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처음 교회의 선포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디엘 가든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곧 부활의 증인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선포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단순한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고 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선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었고, 이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죄를 이길수 있는 승리가 있습니다.
질병에서 고침받을 수 있는 승리가 있습니다.
가난과 저주가 떠나가는 승리가 있습니다.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얻는 승리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헌신하며 생활의 기쁨이 넘치는 승리가 있습니다.
3. 부활을 믿는 사람은 새생명 사명으로 달려 갑니다.(58절)
본문 58절에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예배 자리를 지킵니다. 항상 기도하는 자리를 지킵니다. 항상 전도하는 자리를 지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생명의 주인이며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새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은 다른 길을 통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수 있습니다. 새 생명은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김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새생명을 얻는 사람이기에 우리는 사망을 이기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망을 향하여 물러가라고 강하게 선포하는 능력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미 사망을 이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이김을 허락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감사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새생명을 얻음에 감사하는 사람은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다 도망간 제자들을 만나서 “너희들이 어떻게 나를 배신하고 도망갈 수 있느냐? 그럴 수 있느냐? 섭섭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 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를 보시고는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내가 잘못해도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격려를 해주시는 분이신 줄을 우리도 그렇게 살고자 하는 것이 것이 바로 부활의 신앙인 줄을 믿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에 감사가 있고 기쁨의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가치관이 전환됩니다.
내 중심의 삶이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바뀌어 집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죄와 질병과 가난과 저주가 다 끊어 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과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평강과 성령이 주어집니다.
용서를 받습니다. 화목합니다. 기뻐 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