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의 성모님
산타마리아 델 로사리오 바실리카 중앙 제대
(오늘 상록수에서의 미사 강론을 여기 올립니다.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미사에서의 말투라서 이해하시기를... 하하.)
여러분들, 폼페이라는 곳 아시지요? 어느 나라에 있어요? 폼페이는 뭐로 유명하지요? 아마 어머니들 중에 어렸을 적에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책 읽어보신 분 계실 거예요. 폼페이는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스비우스 산 근처에 있어요. 사르누스 강, 영어 표기로는 사르노라고 부르는 강어귀 북쪽으로 흘러든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돌출부 위에 건설된 고대도시이지요.
폼페이는 79년 베스비우스 (영어 표기로 베수비오) 화산의 격렬한 폭발에 의해 매몰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현대에 와서 발굴되어 이 고대도시들의 유적들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독특한 자료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유명하고,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폼페이 유적
폼페이에 또 하나의 유명한 것이 있어요. 무엇인지 아시는 분에게 상이 있어요. 자, 힌트 드려요. 묵주 기도와 상관이 있어요. 예, 바로 ‘폼페이의 성모’, 순례성지로 유명해요. 고대도시의 유적이 있는 동쪽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 로사리오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성당이 있어요.
저는 어떻게 폼페이에 산타마리아 델 로사리오 바실리카라는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 세우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140년 전이니까 옛날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 옛날 이야기하니까 잘 들으세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폼페이는 로마 제국 시대의 아주 크고 번성한 도시였지만 그만 화산 폭발로 폐허가 되었어요. 그래도 폼페이는 지난 수 세기 동안 폐허 옆에 작은 도시로 남아 있었고,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1872년 10월 바르톨로 론고라는 사람이 자기 아내인 푸스코 백작부인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이 폐허가 된 곳 옆에 세워진 작은 도시, 폼페이에 갔어요. 당시 그 도시는 아주 인심이 흉흉하고 고약한 곳으로 공식 문서에 ‘대담하고 파렴치한 강도들의 소굴’이라고 기재되어 있을 만큼 악명 높은 소도시였다고 해요.
바르톨로 론고는 원래 천주교 교우 가정에 태어나 천주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요. 그런데 그는 공부를 많이 하면서 근대 철학의 유심론 등의 영향으로 거의 신앙의 회의 상태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별로 신심이 깊지 않은 평범한 신자인 것이지요. 그가 폼페이에 도착해 보니 모든 것이 너무 놀라왔어요. 그래도 신자니까 성당을 찾아보니, 보잘 것 없는 성당 하나에 신부님은 한 분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주일 미사 참례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그 당시 대부분의 폼페이 주민들은 신앙을 버리고 미신을 믿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악신들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있었던 거예요.
바르톨로 론고는 10월의 맑은 어느 날 폼페이에서도 아주 황폐한 어느 길을 걷고 있었어요. 그는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어릴 적에 배운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교리가 모두가 사실일까? 아무해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성당 다니는 일은 이제 아주 그만두어 버릴까?”
바로 그때였어요. 홀연히 들리는 소리가 있었어요.
“바르톨로야, 만일 네가 진정 구원을 얻기 원한다면 묵주 기도를 전파하라. 이것은 어머니로서 나의 약속이다.”
바르톨로 론고는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만일 당신이 누구나 묵주의 기도를 전파하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성 도미니코에게 약속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저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제 이 순간에 결심을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묵주의 기도를 전파하기 전에는 이 도시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말입니다.”
때마침 멀리 떨어진 성당에서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이 은은하게 들려왔다고 해요. 바르톨로 론고는 땅에 무릎을 꿇고 삼종 기도를 드린 다음 자기의 약속을 다시 한 번 다짐했어요. 바르톨로 론고는 우선 폼페이에 매괴회를 설립하려고 마음먹고 일을 시작했어요.
여러분들, 매괴회가 무엇인지 알아요?
매괴, 조금 생소한 분들도 있지요? ‘매괴’란 원래는 중국에서 나는 붉고 아름다운 돌이예요. 옛날에 이 돌로 묵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묵주를 ‘매괴’라고 했어요. 매괴회는 묵주기도를 하면서 마리아께 공경을 드리고 특별한 도움을 청할 목적으로 설립된 신심회를 말해요. 이 회는 공식적으로는 1470년에 도미니코 수도회의 알랑 드 라 로슈 (Alan de la Roche, ?∼1475) 수사가 창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성 도미니코가 만든 것으로 되어 있어요. 이회는 회원의 성명을 명부에 올리고 또 회원들이 묵주기도를 성실히 바치는 것이 중요한 규칙으로 되어 있어요.
한국 교회에 매괴회가 언제 도입되어 설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매괴회에 대한 첫 기록은 다블뤼 안 주교님의 1846년 2월 말 서한에 “교우들을 매괴회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해요.
1924년에 나온〈서울 교구 지도서〉에도 회원이 대사를 얻기 위해 묵주기도 15단을 매주일 바쳐야 하며 그것을 나누어 바칠 수도 있다고 하였고, 10월에는 공적으로 바치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그래서 10월이 묵주 기도의 달이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 교우들은 이런 신심회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박해시대에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바르톨로 론고가 시작한 매괴회는 처음에는 별로 신통한 결과를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는 1875년 노라의 주교님을 설득시키게 돼요. 그 후에 아주 활발하게 되지요. 노라의 주교님은 폼페이를 방문하고 바르톨로 론고의 계획을 들은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여기다가 제대를 세운다고요? 제대가 아니고 아주 성당을 하나 세웠으면 좋겠어요.” 주교는 손가락으로 맞은 편 들을 가리키면서 “저기가 바로 폼페이를 위한 성당을 세울 곳이요.”
폼페이의 신자들은 주로 농부들이었어요. 바르톨로 론고는 농부들이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서 그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 폭의 성화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농부들에게 자기가 3일 안으로 마음에 드는 성모 상본을 구해 오겠다고 약속한 후 시내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대요. 마침 어느 상점에서 대단히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했으나 그는 곧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 그림은 당시 교회법상 성당에 모실 수 없는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나폴리 시로 가서 여러 상점을 둘러보았어요. 좋은 그림이 있었지만 너무 비쌌어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4백 프랑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림은 마땅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 나폴리에 사는 그의 친구가 어느 고물상에서 3프랑에 샀다고 하면서 한 폭의 그림을 내 주었어요. 그 그림은 교회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낡은 것이었어요. 그 그림은 곰팡이가 먹었을 뿐 아니라, 성모님의 얼굴은 꼭 아무렇게나 생긴 촌 부인처럼 생겼고, 입고 있는 만또는 금이 가 있었어요. 게다가 그림 한쪽은 찢어져 떨어져 나가고 없었어요. 성화의 성모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모양새도 어찌나 이상하게 생겼든지 매괴회의 창립자로 알려진 성 도미니코는 마치 길가에 떠돌아다니는 부랑자 같은 모습이었어요.
바르톨로 론고는 그 그림을 받아야 좋을지 안 받아야 좋을지 한참 망설이다가 그날이 그가 약속한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원래 그림의 성모님의 왼쪽에는 성녀 로사가 그려져 있었는데 후에 바르톨로 론고는 성녀 로사 대신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를 그려 넣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성녀 카타리나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거든요.
바르톨로 론고로는 그 그림이 너무나 커서 자기가 직접 운반하지 못하고 폼페이의 나폴리 사이를 매일 정기적으로 왕복하는 짐꾼에게 맡겼어요. 짐꾼은 그 그림을 종이에다 싼 후 이웃 마을에 갈 퇴비 위에다가 얹고서 폼페이까지 운반했다고 해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오늘날 ‘폼페이의 성모’라고 불리는 성화는 성모님께서 택하신 조그만 성당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이 성화는 이후 이 조그만 본당 교우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역할을 하게 되고, 조금씩 알려지면서 오늘날 그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폼페이의 성모’ 성화가 된 거예요.
바르톨로 론고가 그 성화를 구한 것은 1875년 11월이었는데, 그 다음 해 1월 폼페이에 매괴회가 정식으로 설립됩니다. 그때쯤에 이 성화는 부분적으로 손질을 마쳤어요.
산타마리아 델 로사리오 바실리카 외부 모습
한편, 나폴리에서는 12세의 소녀 코로린다 루카레리가 죽음의 문턱에서 병상에 누워 있었어요. 그녀는 심한 간질병을 앓고 있었어요. 병이 너무 악화되어 의사들도 모두 포기한 상태에 있었어요. 그런데 크로린다의 보호자인 그녀의 숙모는 우연히 폼페이의 매괴회에 관한 얘기를 들었어요. 그는 마음속으로 만일 성모님께서 가엾은 조카 크로린다를 고쳐 주시면 폼페이에 새 성당을 짓도록 희사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놀랍게도 그 어린 소녀는 폼페이에서 성모님의 성화가 제막되던 바로 그날 완전히 건강한 몸이 되었어요. 그 소녀를 치료하던 의사들은 소녀의 건강 회복은 의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정말 놀라운 기적이라고 말했어요.
그 외에 여러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꼰세따 바스떼리라는 사람도 병으로 거의 다 죽어가는 절망의 상태에 있었는데, 그의 가족들도 그와 비슷한 약속을 폼페이의 성모께 하였고, 놀랍게도 그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어요.
신부님 중에도 기적을 체험한 분이 있어요. 안토니 바로네 신부는 회저병을 앓고 있었어요. 그는 폼페이의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성모님께 자신 자신을 완전히 의탁하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날 무서운 회저병이 씻은 듯이 없어졌어요. 모든 증상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다음 날부터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예를 든 모든 일은 1876년 초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해요. 새 성당의 초석이 놓인 것은 그해 5월 8일이었어요.
정확하게 한 달 후인 6월8일, 폐병 3기에서 허덕이던 죠반니와 무따 부인은 폼페이의 성모님께 호소했어요. 그런데 병상에 누워있던 부인에게 홀연히 성당 안에 모신 성모님의 그림과 똑같이 생긴 그림이 나타났어요. 무따 부인은 늘 병상에 누워 있어 성당의 그림을 본 일은 없었어요. 성모님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신 후 일종의 흰 리본을 그녀에게 던지셨어요. 리본 위에는 “폼페이의 동정녀는 너의 소원을 들어 준다. 죠반니나 무따야.”라고 씌어 있었어요. 그녀는 즉시 나았어요.
이후 폼페이의 성모의 은혜로 병을 고친 사람들은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지요. 아주 중요한 기적이거든요. 기적 자체보다는 기적을 통해 성모님의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나폴리에 사는 소녀 포르뚜나 아그렐리는 일 년 넘게 병으로 누워 있었어요. 소녀가 앓고 이는 병은 너무나 고통이 커서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고 해요. 그녀의 아버지는 나폴리 시내에서 유명하다는 의사는 모두 데려다가 자기 딸의 병을 고쳐주려 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절망적인 말만 남기고 돌아갔어요. 이제 가망이 없다는 말이지요.
1884년 2월16일 소녀의 가족들은 매괴의 9일기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3월 3일 성모님은 ‘폼페이의 성모’ 성화 안에서의 모습으로 포르뚜나에게 나타나셨어요. 성모님은 높은 옥좌 안에 앉아 있었으며 그 무릎 위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었다고 해요. 성모님의 손에는 묵주가 있었으며 양 옆에는 성 도미니꼬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가 동석해 있었다고 해요. 성모님이 앉아 있는 옥좌는 수많은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성모님의 아름다움은 황홀했다고 해요. 성모님은 어머니 같이 부드러운 얼굴로 포르뚜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포르뚜나는 입을 열어 말했어요.
“거룩한 매괴의 여왕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저에게 건강을 도로 주소서. 저는 당신에게 9일 기도를 바쳤으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나이다. 병을 고치려는 저의 간절한 소망을 돌보소서.”
복되신 동정녀 성모님은 말씀하셨어요.
“아가야, 너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나를 불러 내 마음을 즐겁게 했다. 이제 너는 나를 내가 가장 즐겨하는 ‘거룩한 매괴의 여왕’이라 불렀으니, 나는 더 이상 네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구나. 9일기도 세 번을 바쳐라. 그러면 너는 무엇이든 얻을 것이다.”
포르뚜나는 성모님의 말대로 하였어요. 어떻게 되었겠어요? 당연히 그는 병이 나았지요.
그런 후 곧 성모님이 다시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어요.
“누구나 나에게 은혜를 입기 원하는 사람은 간청의 뜻으로 세 번의 9일기도, 그리고 감사의 뜻으로 세 번의 9일기도를 묵주의 기도로써 바쳐야 한다.”
바로 이 사건을 통해 성모님께 대한 매괴 9일기도의 시작되지요. 이 매괴 9일기도는 또한 ‘아니 들어 줄 수 없는 9일기도’라고도 불려요.
이 9일기도는 매일 묵주 신공 5단씩 27일 동안은 간청의 뜻으로, 그리고 그 후 27일 동안은 감사의 뜻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모두 합해 54일이 걸리는 이 기도는 성모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신 아주 위력 있는 기도예요. 여러분들, 54일 기도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지요. 아니, 54 일 기도를 드리고 계시다고요. 이제 54일 기도의 의미를 바로 알았지요?
‘폼페이의 성모’에 대한 기적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했겠어요? 많은 희사를 했겠지요. 그래서 오래지 않아 산타마리아 델 로사리오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폼페이의 새 성당은 완성되었어요. 그리고 1891년 5월, 교황 레오 13세의 특사로 온 라 바레따 추기경에 의해 축성되었어요. 이어서 근처에는 큰 고아원과 순례자들의 숙소가 세워졌어요.
'폼페이의 성모' 성화
처음에 고물상에서 나온 그 성화, ‘폼페이의 성모’는 오늘날 ‘산타마리아 델 로사리오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성당의 중앙 제대 위에 걸려 있어요. 이제는 황금의 액자 속에 담겨져 있으며, 성모님과 아기 예수 그리고 성인들의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다이아몬드와 기타 보석으로 수놓아져 있어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은 그 앞에서 기도하며 성모님께 은총을 구해요. 제 2차 세계대전과 그 후 시련의 해를 통해서 순례자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고 해요. 폼페이의 성모는 특히 이태리 사람들에게 특별한 위안이 되었어요.
1830년 이래의 성모님의 주요 발현들과 마찬가지로 ‘폼페이의 성모’와 그의 포르뚜나에게의 발현은 파티마 발현의 전주였던 것 같아요. 묵주의 기도는 폼페이의 핵심적인 신심이며 성모님이 파티마에 오셔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도 “매일 묵주의 기도를 바치라.”는 것이었으니까요.
묵주의 기도는 이 세계를 그리스도께 돌아가게 하는 데에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요. 우리 모두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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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