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자 안젤로의 네 살 생일잔치에 초대 받았다.
아침 7시부터 둘째손자를 돌보는 날이었기에
사돈을 만날 줄 알면서도 꾸미지도 못하고 식사자리에 갔다.
남편이 축하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아들 내외는 사돈내외와 우리 부부를 초대했는데
언제나처럼 안사돈끼리 반가운 하이파이브를 하고
손자자랑을 서로에게 쏟아놓는다.
아무도
"손자자랑 하려면 돈 내고 해!"
하고 타박하는 이의 눈치 볼 일이 없으니
사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건 참 감사할 일이구나 싶다.
아기 돌보기를 함께 해 주시는 바깥사돈도 질세라
지훈이와 지호가 귀하게 자라는 얘기를 나누며 공감을 했다.
사돈들과 함께 손자를 돌보는 게 대화의 주제가 되니 왁자지껄 손자자랑이 그치지 않는다.
아들은 예쁜 그림이 있는 케잌을 사왔고
미리 선물을 사다두고 개봉을 기다려왔던 손자가 오랫동안 참아왔던 만큼
기뻐하는 모습에
심리학자들까지 소환되어 나왔다.
"사탕을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먹으면 그것만 주고
기다렸다 먹으면 두 개를 보상으로 준다고 했을 때
기다렸다 먹는 아이가 공부를 잘한대요."
하고 손자가 유창하게 하는 영어발음과 아이의 절제력까지 칭찬하고 나서야
사돈이 식탁에 준비한 후식을 먹었다.
지난 13일에 아들은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전에 병원 옆의 집을 사서 병원 주차장을 넓히고
결혼 한 지 5년 만에 29평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47평으로 넓혔으니
아들 부부의 성실한 살림살이 칭찬해주고 싶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던데 자식이 집을 넓히니 절로 배가 부르다.
남편도 좋아라 하며 손자생일잔치 비용을 기꺼이 내 주고
사돈들은 선물을 사들고 오셨다.
집은 전망이 좋았다.
붉고 노란 단풍이 들면 그림같을 창도 시원하게 있었고
주차장도 넓어 마음에 쏙 들었다.
작은 집에서 복작거려 마음 무거웠다는 얘기도 털어 놓았다.
아직 겨울이 안와서 잘은 모르겠지만
전망 좋은 집인 건 분명하다.
학교가 바로 내려다 보여 그도 좋았다.
며느리는 이사를 하자마자
집과 현관의 비밀번호를 적어 보내왔다.
한 때 시어머니가 못찾아 오도록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졌다는 농담이 유행이었는데
우리 며느리는 시집 오자마자
"언제라도 오세요."
하며 외우기 쉬운 비밀번호를 정하고 알려줬었다.
물론 청하지 않으면 안가려고 하고
갈땐 미리 연락을 하고 가긴 하지만...
뭐 현대 사회 고부간의 에티켓이 아닌가!
나이가 들었으니 머리를 좀 조신하게 핀을 꽂아야겠다고 했더니
며칠 전 며느리가 에쁜 핀을 사서 선물을 했다.
고맙다는 편지를 하고 싶었지만 천성이 게으른 나인지라
얼른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플로라!
예쁜 핀을 사줘서 고마워.
우리 며느리가 있어서 난 너무 좋다.
내 맘도 알아주고 같이 남자들 흉도 보고~~
딸 안낳아서 아쉽다고 다들 말했는데
난 착한 아들 둘 주신 것만으로도 늘 감사하고 살았었어,
그런데 며느리 들어오고 난 서른 살짜리 딸을 낳았다고 생각하기로 했거든.
근데 오늘 머리핀을 받으니 딸가진 사람 하나도 안부럽다.
이런 예쁜 며느리를 내게 주셨네.
더 하느님께 감사하고 살거야.
내가 아들 배우자를 잘 보내주십사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기도 다 들어주신 하느님과 그 기도의 열매인 우리 며느리~
최고다!!
잘 꽂고 다닐께. 꼭 필요했었다.
편지로 쓰고 싶었는데 미루면 맘을 못전할 것 같아 썼어,
사랑한다."
"어머님! 자려고 누워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이 카톡을 읽으니 엄청 행복해요,
어머님께서 처음부터 예쁘게 뵈주셔서 제가 훨씬 감사하죠.
저는 어머님을 보면서 시어머니가 되면 나도 본받아서 저렇게 해줘야지하고 생각해요.
어머님께서 제가 사랑 많은 엄마라고 해주시지만
제가 제 자식에게 충분히 사랑을 줄 수 있는 건
부모님께서 조건없이 주신 사랑을 충분히 받은 덕분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답장이 왔다.
사랑의 모범은 하느님이심을 교회에서 배웠다.
문득 며칠 전 며느리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어머님! 어머님은 어떻게 그렇게 사랑이 많으세요?"
"난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컸어.
그러다가 하느님을 만났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시더라.
난 바로 그분께 매료되었단다.
내 사랑의 모범은 하느님이야.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분.
사랑은 죽기까지 하는 거라고 가르치셨잖아.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하거든.
내 아버지의 유전자가 있으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모로 살기는 만만치 않았어.
난 무척 욕심많은 사람이어서 자식이 내뜻대로 안될 땐 죽고 싶기까지 했었어.
그러나 인내했지.
그분은 죽기까지 했는데 난 아직 살아 있잖아 하면서.
그러면 절제도 되고 내 능력 이상으로 노력도 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사랑이신 그분이 분명 노력에 상응하는 열매를 주실거라 믿으면 견딜만했어. "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사랑하게 되나요?"
"누구를 사랑하건 죽기까지 하는거지.
사랑한다면~~~"
아기가 울어서 긴 얘길 나눌 수 없었지만
이건 나의 신앙고백이며 선교다.
우리 며느리는
"우리 가족은 식사전에 기도를 하고 먹는데
너만 안하고 있으면 뻘쭘하잖아.
열심한 신자가 되기를 요구하진 않을거야.
그러나 식사전후에 가족이 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네게 세례를 권하는 거야."
해서 세례를 받았다.
하느님 사랑으로 내 삶은 사랑이 충만해졌다.
누구라도 가장 좋은 것을 자녀에게 주는데
내가 사랑하는 며느리에게 전하고 싶은 건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
그분이 항상 너와 함께 계신다는 것.
언제든 네 마음을 아시고 네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
........"
이런 행복하고 은총 가득한 신앙을 유산으로 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