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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의 시선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다윗과 사울 모두 왕이었다. 모두 하나님의 왕국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그분의 부르심을 입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왕이 되었다. 한 사람은 폭군으로 전락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성군으로 추앙받는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얼까. 무엇을 묵상했는가가 다르다. 사울은 다윗만 생각했다. 다윗에 대한 경쟁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정적 제거를 사명인양 여겼다. 반면 다윗은 주야로 하나님을 묵상했다. 자신을 죽이려는 죽이도록 미운 원수가 아니라 즐겁고 복된 말씀을 밤낮 읊조리는 것이 낙이었다. 하여, 사울은 원수를 묵상하다 웬수 같은 인생을 살았고, 다윗은 성경을 묵상하다 복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생각한 대로 산다. 생각 없이 살아도 문제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더욱더 중요하다. 오늘 나는 무엇을 제일 많이 생각하는가. 어떤 것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하나님인가 원수인가. 말씀인가 빵인가. 분노인가 용서인가. 그것이 나를 사울로 만들고 다윗으로도 만든다.
[시 1:1-2]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좋은 것을 포기한 사람들 (히11:23-26)
왜 좋은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1. 미래 때문에 2. 현재 때문에 3. 예수 때문에
(예화) 중력을 발견한 물리학자 아이잭 뉴턴은 세상을 떠날 때에 그만 건망증이 생겨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나이도 생일도 잊어버렸습니다. 친구나 후배들이 찾아와 인사를 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천재가 일생을 통해 가깝게 지내온 사람들한테조차 “자네 누군가 ?” 하고 물었다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 한번은 누가 하도 답답해서 뉴턴에게 물었답니다. “선생님,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두 가지가 있어요” 하고 뉴턴이 대답한 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것, 이 두 가지는 기억하고 있어요”. 사람이 인위적으로 습득한 지식과 성령님의 임제로 인한 구원의 진리의 믿음은 이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귀한 신앙의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성경은 좋은 것을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은 더욱 그러합니다. 바울은 아담부터 바울까지 믿음의 사람 16명을 뽑아서 본장에 담아 놓았습니다. 이들은 믿음의 기라성 같은 사람들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믿음의 거목들입니다. 별로 말하면 신앙의 거성들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생활의 거인들입니다. 돌로 말하면 신조의 거석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좋은 것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1)아벨(히 11:4)은 항상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자기에게 좋은 것은 포기한 사람입니다. 2)에녹(11:5)은 962년간 이 땅에서 살면서 언제나 하나님과만 동행하며(창 5:24) 좋은 것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3)노아(11:7)는 의로웠기에 멸망되지 아니 하였습니다. 세상과 짝하지 않고 120년동안 방주를 만들고 세상의 멸망이 온다는 것을 알리고자 자신의 인생을 희생한 사람 4)아브라함(11:8)은 하나님을 위해 모두를 떠났던 사람입니다. 5)이삭(11:9)은 가장 좋은 생명까지 포기하며 아버지의 믿음의 거사에 순종했던 이였습니다. 6)야곱(11:9)은 하나님을 뜻을 찾으려고 기도하다가 병신까지 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7)사라(11:11)는 남편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으로 세상을 포기하였던 여인입니다. 8)요셉(11:22)은 보디발의 집에서 적당한 타협을 버리고 감옥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9)모세(11:23-29)는 본문이므로 나중에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10)라합(11:31)은 정말 모두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민족이 망했습니다. (11)기드온(11:32)은 모두를 포기하고 전쟁에 앞장서 이스라엘을 구한 사람입니다. (12)바락(11:32)은 드보라 선지와 하나가 되어 원수 시스라를 죽이고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때 생명까지 걸었던 이였습니다(삿 4:6-5:31). (13)삼손(11:32)은 마지막 순간 생명까지 바쳐 원수 3,000명을 죽이며 자기도 죽었습니다. (14)입다(11:32)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입니다. (15)다윗(11:32)도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이스라엘 재건과 성전 건축 준비에 온통 바친 위대한 왕입니다. (16)사무엘(11:32)은 어머니의 젖 떨어지자마자 성막속에서 지내며 오직 하나님만 붙잡았던 선지자였습니다.
이같이 바울은 16명의 믿음의 사람을 등장시키며 9번째로 모세를 등장시켰습니다. 모세야말로 세상적으로 좋은 것을 다 포기하였습니다. 4가지를 포기하였습니다.
1)궁중을 포기 모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궁중을 포기하였습니다. 2)왕을 포기 모세는 가만히 있으면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세상적으로 최고의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3)인간의 정을 포기 모세는 바로 공주가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생명의 은인을 배반하는 순간 그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4)부귀영화를 포기
한 마디로 모세는 남이 못 가져서 한인 모두를 지녔는데 모두 포기하였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모세는 좋은 것을 포기할 수가 있었을까요?
1. 미래 때문에
(1)모세의 인생관을 보십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11:26). (2)바울의 인생관을 보십시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3)베드로의 인생관을 보십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2-14).
모세도, 바울도, 베드로도 모두 현재보다는 미래, 미래보다는 영원을 중요시 여긴 사람들입니다. 가치관이 분명하였습니다.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를 즐기는 이들이 아닙니다.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바라본 이들이었습니다.
(예 화) 장미를 아름답다고 말할 때는, 장미의 가시를 보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평가할 때 가시만 보고 좌절한다. 꽃송이를 보는 시야, 그것이 '소망'이다.
밀러(Herb Miller) 박사는 <아스팔트에서의 낚시질(Fishing on the Asphalt>란 저서에서 기독교인들이 평균 6천 번 설교를 듣고, 8천 번 기도를 드리며, 2만 번 찬송을 부르는데, 자기가 믿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세주로 소개하고 전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런 실천성 없는 믿음에 대해 '죽은 소망'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나는 중국을 돌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하면서 1966. 6. 25. 드디어 교회를 폐쇄하고 교회지도자를 체포하고 성경책을 모두 불살랐습니다. 1949년 당시 개신교인이 180만명, 6,200명의 선교사, 19,800개의 교회, 48개의 신학교, 180개의 성경학교, 262개의 기독병원, 180개의 기독교 학교가 있었는데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의 참 소망을 지니고 사는 지하교회가 6만여개가 생겨났습니다. 약 5,000만명의 기독교인이 생겼습니다. 우리 한국사람만 모이는 지하교회도 약 3,000여개에 달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나는 실제로 몇몇 교회를 다녀보며 미래 때문에 현재를 포기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며 감동에 감격이 넘쳤습니다. 미래를 보면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2. 현재 때문에 좋은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두번째 근거는 현재 때문입니다. 고난 그 자체가 죄악속의 평안한 생활보다 나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1)바울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라는 고백을 했고 (2)모세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4-25)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 바울도 모세도 고난 그 자체를 행복보다 더 좋아했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고난 그 자체가 죄악속에 평안한 생활보다 나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실 예1) 버스를 타서 자리를 잡아 앉았을 때 노인이 탑니다. 앉아 있자니 마음이 아프고, 서자니 다리가 아픕니다. 그러나 자리를 내드리고 고생하며 평안한 노인을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서있는 것이 고난과 힘 듬이 될 수 있지만 의미 있는 고난이기에 마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실 예2) 1,000원이 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내가 음식을 사먹으면 내가 즐겁습니다. 그러나 앞에 배고픈 거지가 있어 그에게 주든지 먹을 것을 사주며 나는 굶주린 배를 붙들고 힘들 수 있겠지만 즐거워하는 거지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 그것은 즐거운 고난입니다.
(실 예3) 이제 중국에서는 자유롭게 예수를 믿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게 되면 공산당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온갖 특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온갖 사회적인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 현재 그 고난 자체를 기뻐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 때문에 좋은 것을 포기할 수가 있습니다.
3. 예수 때문에 3번째로 우리가 좋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1)모세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6).
모세는 예수를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전 1,500년 전 부터 믿음의 눈으로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를 위하여 능욕을 받으며 예수의 길을 모세는 닦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기에 능히 고난을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2)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다. "내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가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가 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5-9).
모세도 바울도 예수 때문에 좋은 것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만 좋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좋은 것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1. 미래 때문에 2. 현재 때문에 3. 예수 때문에 모두를 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은혜 롭지 만은 않다 "옹"이라는 젊은 변호사가 죄 없이 살인자로 기소된 사람을 변호하기 위해서 법정에 나갔다. 그의 명석한 변호로 그 사람은 무 죄 석방되었다. 법정을 떠나면서 그는 그 변호 의뢰인에게 앞으로 다시는 싸움에 관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년이 지났다. 변호사 옹씨는 그가 쌓은 훌륭한 공적으로 최고재판소의 판사로 임명 되었다. 어느 날 제1심에서 살인자로 기소된 한 중년 남자의 재판을 맡게 되었다. 판사는 수년 전에 성공적으로 변호하여 석방시켰던 바로 그 사람임을 알아보고 매우 슬퍼했다. 공판은 19일 동안이나 끌었다. 판결은 "유죄"였다. "수년 전에 그는 변호사로서 그의 구원자였으나 지금은 그의 심판자가 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당신의 구주로서 자신을 내어 주신다. 그러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느 날에 가서 당신의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 그때 우리를 위해 변호해 줄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좋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한 헌신을 다짐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할 줄로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가진 것 중 무엇이 가장 소중한 무엇입니까 ? 장래의 꿈, 결혼, 젊음, 배우신 기술이나 학문, 장래가 보장되는 직장, 여러분을 사회 속에서 세우 줄 수 있는 배경을 가진 사람, 결혼을 약속한 배우자나 교제 중인 이성, 부모, 친구, 등등
이중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믿음의 성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위해서 포기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님은 오늘날 심히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밝힐 사명 자들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충성된 종들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주님과 고난을 같이 할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일어서셔서 이 어둠의 세상을 밝히는 주인공들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으십니까 ? 이 빛을 밝히기 위해서 마산시민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여러분의 개인을 희생하고 포기하면서 동참하셔서 믿음의 선진들과 같은 믿음의 큰일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경주 최씨 이야기) 경주최씨가 300년 12대 가장 존경받는 부자로 산 이유? “ 사방 백리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 일제시대: 만주에 독립자금, 6.25때 만석꾼 창고 개방 , 1050-1960년대 어려운 시절에 마지막 창고를 열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림 그의 후손이 안강제일교회에서 3110명 전도한 분이 계시다고 한다.
영적인 적용- 나는 사방 백리에 죄로 말미암아 지옥가는 영혼이 없도록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