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울엄마랑 빗길 드라이브를 즐겼습니다.
집 밖 출입이라고는 병원에 가는 것 말고는 방콕을 하고 계셔서 별 의욕도 없으시고, 당연히 밥맛이 있을 리가 없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분위기 전환겸, 형수님 휴식겸 주말에라도 저희 집에 계시도록 모시고 오는 길에 남산산성을 거쳐서 올까 했습니다.
하남시를 지나는데 팔당대교 이정표가 보여서 팔당댐도 구경하면 좋겠다 싶어서 코스를 조정했습니다.
그런데 팔당대교쪽으로 가는 길에 초짜처럼 차선을 잘못 잡아서 팔당대교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시간은 많겠다 내친김에 양수리까지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양수리는 울엄마가 텃밭 농사를 짓던 곳입니다.
북하과 남한강의 큰 물결과 큼지막한 연꽃들이 연신 감탄사를 유발하네요.
아는 곳이 나오니 울엄마가 얘기를 하시기 시작하네요.
친구분들과 수년간 전철을 타고 양수리역에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고 다니시던 길이라 나름 노년의 추억이 깃든 곳입니다.
울엄마의 텃밭이 있던 곳은 문호리입니다.
텃밭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버스 종점이 있던 곳이라 찾기가 엄청 쉬웠는데,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습니다.
불과 두어 해만인데 전원 주택단지로 뜨는 곳답게 전혀 몰라보게 바뀌었네요.
밭에 도착하니 비가 아주아주 가늘어졌습니다.
마침 눈앞에 뽕나무도 보이고요.
울엄마한테 얘기하니 쌍수를 들어 콜입니다.
올해는 뽕잎도 못 따고 그냥 가나 싶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아주 그냥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습니다.
언제 축 쳐져 있었나 싶게 왼 손은 뽕나무를 휘어지게 붙잡고 오른손은 달인의 손놀림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다란 마대자루라도 챙겨 오는 건데 그랬습니다.
더 이상 빈틈이 없도록 꽉꽉 채우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따 가자는 울엄마를 다시 오자는 말로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섰습니다.
울엄마가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울엄마랑 빗속의 드라이브와 뽕잎에 얽힌 추억 하나가 생겼습니다.
저녁은 갈치와 고등어구이 집에서 먹었는데 밥 한 공기를 다 드셨습니다.
이렇게 식욕을 보이신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조만간 다시 한 번 더 모시고 가야겠습니다.
주말 불청객 장맛비가 선사한 선물이었습니다. ~^.^~
♥짧은 글 속에 깃든 어머니의 삶♥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어릴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다.
자취생 시절 급성편도염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다.
혼자 끙끙대던 나를 발견한 주인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글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는 세 시간 넘는 거리를 물어물어 찾아왔다.
모성애 앞에 불가능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 때 김장용 무나 배추 씨앗을 이웃 동네에 팔러 다녔다.
당시 농부들은 씨앗을 외상으로 샀다가 가을에 갚아 외상 기록을 장부에 기록해야 했는데, 까막눈인 어머니에겐 어려운 일이기에 내가 따라다니며 서기 역할을 했다.
집집마다 방문하다 보니 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창피하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부끄럽진 않았다.
여든 둘의 어머니는 요즘 글공부를 시작했다.
얼마나 원하던 일이었을까?
나이 들어 힘들다면서도 무척 재미있어 하더니 백일장에서 장원까지 했다.
나는 장원을 거머쥔 짧은 글 속에 깃든 어머니 삶을 느끼며 가슴이 먹먹했다.
''콩나물 사시오.
내 손으로 거둔 콩, 내가 기른 콩나물이오.
빨리 팔아야 공부하러 간답니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공부하는 게 더 재미있지요.''
-고마워 좋은생각/최병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