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절리를 품고 있는 송대소영상 9도. 날씨가 참 야속하다. 대한이가 감기에 걸려 돌아간다는 소한이 지났는데, 기온이 영상이라니. 게다가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는 철원이 아닌가. 얼어붙은 강물과 그 위에 소복이 내려앉은 하얀 눈을 기대하고 떠나온 길이라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그러니까 철원 한탄강 얼음 트레킹 축제가 열리는 지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멋진 길을 걸어볼 수 있어 다행이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붙여본 이 길의 이름은 '한탄강 트레일'. 1년에 한 번 열리는 그 길을 따라 한탄강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나볼 참이다.
한탄강 트레일을 따라 트레킹을 즐기는 여행자들
철원군에서는 매년 1월 중순 '한탄강 얼음 트레킹 축제'를 개최한다. 5회째를 맞은 올해는 오는 1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에 걸쳐 축제가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얼어붙은 강 위를 걷는, 얼음 트레킹을 테마로 하는 축제이다 보니 마니아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다. 유리처럼 투명한 얼음 위를 걷는 재미만큼 송대소, 주상절리, 승일교, 고석정 등 걷는 동안 한탄강이 품은 철원의 비경을 두루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은 철원의 명소인 승일교와 고석정 등을 지난다.
한탄강 트레일은 출발지인 태봉대교에서 도착지인 고석정까지, 대부분의 구간이 얼음 트레킹 코스와 겹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길은 얼음 트레킹 코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무리 추운 철원의 날씨라도 거칠기로 유명한 한탄강 전체를, 그것도 사람이 딛고 걸을 수 있을 만큼 단단히 얼리는 건 역부족이다. 그래서 유속이 강하거나 수심이 깊은 구간에 한해 우회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 바로 한탄강 트레일이다. 그러니까 한탄강 트레일은 한탄강 얼음 트레킹 축제의 조연 정도가 되는 셈인데, 막상 이 길을 걸어보면 조연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솔직히 주연이라고까지 추켜세우기는 좀 그렇지만, 얼음 트레킹 축제의 또 다른 걷기 코스 정도로는 손색이 없다. 그만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얘기다.
한탄강이 빚어낸 기암의 모습
한탄강 트레일은 얼음 트레킹과 마찬가지로 태봉대교에서 시작한다. 짧은 계단을 내려서서 화장실과 나무의자 등 휴게시설이 있는 아담한 공원을 지나면 이내 한탄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릿한 민물 냄새가 맡아질 정도로 바짝 다가선 한탄강은 계절을 거스른 듯 옥빛으로 반짝인다. 강변으로 내려선 뒤에도 길의 흔적은 또렷하다. 본래 있던 길이 아니어서 거친 면이 없지 않지만, 턱 진 곳엔 모래주머니를 쌓아 높이를 맞추고, 진행 방향을 알리는 시그널 리본도 촘촘히 달아놓아 길 잃을 염려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다.
한탄강 트레일에는 부교와 섶다리가 곳곳에 설치됐다.
거침없이 흘러가던 강물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에 부교가 설치됐다. 강물이 얼었다면 굳이 건널 필요가 없었겠지만, 얼음의 'ㅇ'자도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은 도리가 없다. 사실 6km에 이르는 한탄강 트레일 구간 중 이곳을 지날 때 아쉬움이 가장 컸다. 왜 안 그렇겠는가. 눈앞에 보이는, 부챗살처럼 퍼지는 주상절리를 품고 크게 휘어 돌아가는 저곳이 그 유명한 송대소인데. 투명한 얼음 바닥 위에 우뚝 솟은 송대소의 주상절리는 한탄강, 아니 철원의 겨울을 대표하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이지 않은가. 송대소는 실 한 꾸러미가 모자랄 정도로 수심이 깊기 때문에 얼음 트레킹 시에는 주상절리 쪽으로 다가서는 것을 삼가고 지정된 코스로만 지나야 한다.
송대소와 주상절리
부교를 지나면 길은 잠시 한여울길 2코스와 몸을 섞는다. 짧은 비탈을 올라 산뜻한 데크길을 지나면 정말이지 불현듯, 자작나무숲이 펼쳐진다. 울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 좋아지는 풍경이다. 매끈한 몸매의 자작나무 숲을 지나면 송대소 전망대가 나온다. 나무에 가려 퍼즐조각처럼 흩어졌던 송대소의 모습은 이곳에서 온전히 하나가 된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는 여행자들 송대소 전망대에서 본 풍경
전망대에서 강변으로 잠시 내려선 길은 방향을 틀어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로 올라선 뒤에는 조금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다. 자칫 한눈을 팔면 길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길을 놓친다는 건, 길을 잃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한탄강 얼음 트레킹'이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색 리본을 놓치면, 한여울길을 따라 가게 된다. 그건 송대소 전망대 지나 만나는 구름다리에서 주행사장이 있는 승일교까지, 대략 3.5km, 그러니까 절반 이상을 엉뚱한 길을 따라 걷게 된다는 뜻이다. 강변으로 다시 내려서는 길은 구름다리 앞 한여울길 이정표에서 100여 m 전방 우측에 있다.
마당바위 너럭바위 구간
강변으로 내려선 뒤로는 승일교를 지나 고석정에 이르기까지 한탄강이 늘 곁을 지킨다.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 한때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누드 촬영지로 유명했던 마당바위를 지날 때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 위를 걸을 때도 큰 물길은 묵묵히 여행자의 옆을 따른다. 가끔은 거칠게 또 가끔은 잔잔하게. 시시각각 바뀌는 강물의 모습에 여행자도 지루할 틈이 없다. 송대소, 마당바위, 내대양수장 등 강변길 곳곳에 마련된 휴식공간에서는 축제 기간 동안 참가자들의 흥을 돋울 신명나는 버스킹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승일교와 한탄대교 승일교에서 고석정을 잇는 구간
승일교에 도착하면 이제 한탄강 트레일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승일교에서 고석정까지는 1km 남짓. 천천히 걸어도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고석정에 이르는 마지막 섶다리 섶다리에서 바라본 고석
승일교 아래 모래둔치는 한탄강 얼음 트레킹 축제 주행사장으로 활용될 공간이다. 메인 무대에서는 퓨전국악과 비보이 등 다양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고, 궁예 왕, 노동당사 등 철원을 상징하는 얼음 조각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겨울 축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개썰매, 유로번지 체험, 얼음봅슬레이, 눈썰매장 등 겨울을 즐기는 신나는 체험 행사도 마련된다. 철원군에서는 얼음 트레킹 축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고석정에서 승일교를 거쳐 태봉대교를 왕복 운행하는 2대의 셔틀버스를 상시 운영할 계획이다. 한탄강 트레일과 얼음 트레킹 코스는 축제가 끝난 뒤에도 1월 22일까지 개방된다.
고석정에서 한탄강을 바라보는 여행자들 [왼쪽/오른쪽]한탄강 트레일과 얼음 트레킹의 도착지인 고석정 / 바위 절벽에 거대한 고드름이 달렸다.
여행정보
- 장소 : 철원 한탄강 태봉대교~고석정
- 일시 : 2017년 1월 14(토)~15일(일)
- 문의 : 033-450-5255 (철원군청 관광문화과)
주변 음식점
- 대득봉 : 더덕비빔밥 / 갈말읍 텃골1길 45 / 033-452-2915
- 임꺽정가든 : 매운탕, 산채비빔밥 / 동송읍 태봉로 1825 / 033-455-8779
- 폭포가든 : 매운탕 / 동송읍 직탕길 86 / 033-455-3546
숙소
- 복주산자연휴양림 : 근남면 하오재로 818 / 033-458-9426
- 썬레저텔 : 동송읍 태봉로 1831 / 033-456-2120 / 굿스테이
- W모텔 : 갈말읍 명성로 114-1 / 033-452-5487
글, 사진 : 정철훈(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7년 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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