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 31,1-7
1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칼을 피해 살아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이스라엘이 제 안식처를 찾아 나섰을 때
3 주님께서 먼 곳에서 와 그에게 나타나셨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다시 세우면 네가 일어서리라.
네가 다시 손북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나오리라.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밭을 만들리니 포도를 심은 이들이 그 열매를 따 먹으리라.
6 에프라임 산에서 파수꾼들이 이렇게 외칠 날이 오리라.
‘일어나 시온으로 올라가 주 하느님께 나아가자! ’”
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에게 기쁨으로 환호하고, 민족들의 으뜸에게 환성을 올려라.
이렇게 외치며 찬양하여라.
‘주님, 당신 백성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소서!’”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5,2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침묵하고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오늘 복음은 ‘가나안 부인의 마귀 들린 딸의 치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의 침묵에 대해서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마귀 들린 딸의 어머니인 가나안 여인은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쳐댔습니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에 들렸습니다.”
(마태 15,2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 15,23).
그 제자들마저도 그녀를 돌려보낼 것을 재촉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입니다.
우리 역시 때로는 침묵하고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아니 거부당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참으로 착잡해지기도 합니다.
더구나 꼬인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꼬여갈 때는 하느님의 침묵이 참으로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이 당신께서 우리를 한 발짝 더 가까이 부르시는 순간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바로 이때에 당신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더 깊이 끌어들이고자 하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나안 여인은 바로 이 순간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한 걸음 더 예수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마태 15,25)
그야말로 예수님의 침묵과 냉대와 무시에도 불구하고, 또 그를 둘러싼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더 가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태 15,26) 하시며 또 다시 냉혹하게 거절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욕과 냉혹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겸손과 끈기와 믿음은 참으로 속이 저미도록 눈물겹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마태 15,27)
여인은 진정 자신의 자격 없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을 '강아지'로 고백하고 낮춥니다.
마땅한 권리로서의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자비에 의탁하고 믿을 뿐입니다.
비록 이방인이라도 주인의 상 아래서 자녀들과 함께 빵부스러기를 먹게 되는 구원의 섭리를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인의 겸손과 믿음, 구원의 섭리에 대한 확신은 드디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마태 15,28)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결코 단순히 거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침묵’은 가나안 여인의 갈망을 깊게 하였고(아우구스티누스), 여인의 믿음을 굳세게 하였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야말로 그분의 침묵과 냉대 속에는 당신의 놀라운 경륜과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말없이 ‘침묵’으로 풍랑 속에서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셨지만 끝내 바람과 바다를 잠재우셨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침묵’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골고다로 끌려가시지만 끝내 십자가 위에서 사랑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말합니다.
“침묵 안에 완성되어 있는 하느님 사랑의 외침을 들으십시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마태 15,23)
주님!
당신의 침묵 앞에서 견고해지게 하소서!
거부당함 속에서도 새로워지게 하소서!
더 큰 소망을 품고 끝없이 간구하게 하소서.
침묵 안에 완성되어 있는 놀라운 사랑의 외침을 듣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이영근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