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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rie Eleison
끝나지 않은 전쟁, 정전을 체결한 파주에서 같이 노래를 한다. “Kyrie Eleison~”. 6월 25일. 이 날은 민족상잔의 아픔과 고통이 기억되는 날,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시작된 날이다. “Kyrie Eleison~”.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6.25를 맞아 모단체에서 평화순례길에 아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버스 2대에 꽉차서 이동한 것을 보니, 모인 인원이 얼추 80명은 넘은 것 같다. 코스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통일촌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후 장산전망대를 오른다. 북한을 바라보며 걷는 시간 2시간, 납북자기념관에 들렀다가 북한군묘소 방문, 다시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 모이게 된다. 한나절을 바쁘게 다녀와 모두 둘러볼 수 있음직하다.
“오늘 이동을 위해서 신청하신분들의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여기저기에 수녀복장을 한 자매들이 보이고, 예전에 사역했던 교회사람들도 보인다. 적어도 2개 그룹 이상의 종교의 색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것 같다. 가나다순으로 출석을 부르니, 내 이름의 호명은 항상 뒷부분에 위치한다. 앞의 이름들을 들으며, 참석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 곳에 왔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들리는 이름, “정혁구 님”, “네!”대답과 함께 내가 여기 있노라고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혹시, 자기 이름이 빠지신 분은 없지요? 호명된 분들은 성당앞에 주차된 버스 2대에 오르시면 됩니다.”
“정혁구 목사님!”, “네!”, “맞네, 맞아! 아는 이름이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목사님 맞으시군요! 반갑습니다. 저 기억하세요? 송**예요.”, “아! 송쌤, 선생님 어떻게 여길 오셨어요?”송쌤은 나와 함께 수련중인 글벗이다. 그는 어디를 소개하는 글을 잘쓴다. 전시관, 기념관, 자연이 좋은 곳, 그의 글을 보면 그곳에 마치 내가 있는듯 하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한 이야기를 잘 쓰는데, 이번 기행에도 두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참여하였다.
“아이들에게 들려줘야할 이야기가 있는 듯 해서요.”, “저도 아들과 함께 왔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아이들이 많이 참석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보여주고픈,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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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바라는 마음 / 신의주성당
우리가 모인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통일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도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으로 평안북도 신의주에 있었던 진사동 성당의 옛모습을 복원한 공간이다. 성당은 한옥으로 되어 있다. 그 앞에 서 있노라면 고풍스런 한옥성당의 자태에 심취되어 버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멋진 건물을 독일과 미국의 사진 자료에 의존하여 복원을 했다고 하니, 그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부모습은 함경남도 덕원에 위치했던 베네딕도 수도원 대성전의 모습으로 꾸며졌다고 한다. 고즈넉한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저 멀리 천장위로 예수님이 강림하는 그림 유리모자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그 손에 펼쳐진 큰 책에는 두 글자가 써 있다. ‘평화’ 큰 그림에 한번 압도당하고, 너무나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에 또 한번 압도당하고.
‘평화’수명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평화의 책 주위에 모여 서서 그의 강림을 맞이하고 있다. 이들은 순교자들이다. 분단 이전의 시대, 일제강점기 전, 혼란한 조선의 시대에 믿음을 지켜 순교한 사람들, 이들에게 평화란 무엇이었을까? 조선말 탐관오리가 판을 치고, 왕은 힘이 없고, 정치인들은 나라를 팔아먹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갈곳을 잃은 상황에서 만민평등이라는 서양학문을 만났다.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는 그러한 시대를 간절히 바랬던 그 시절, 이것이 또 풍기물란이고 사회를 어지럽힌다하여 선동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잡고, 죽이고. 그런 시절의 순교자들. 그들에게 ‘평화’란 무엇일까?
이 유리 모자이크는 남북한 작가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평양 만수대 창작사의 벽화창작단 소속의 공훈 작가 등 7명이 중국 단동에서 40일간 밤잠을 설치며 조각조각 제작한 것들을 가져와 남한 미술가들이 5달에 걸쳐 부착하였다고 한다. 남한의 한 성당에서 남북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종교의 존재를 부정하는 북한 작가들이 기독교의 성자의 모습을 조각했다고 하니 유리모자이크가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유리모자이크 밑으로 16개의 성인들의 이콘이 나열되어 있다. 이 이콘 또한 동서방 교회의 분열 이전의 교회 미술의 전통기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서방카톨릭과 동방정교회의 분열까지도 고려하여 생각하고 만들어진 성당과 작품의 배치. 이 곳에서의 기도는 특별하다. 매일 이 곳에서는 참회와 속죄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미사가 진행되지만, 오늘은 떼제의 예배로 카톨릭과 개신교도들이 함께 기도한다. 여기에 아들과 함께.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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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 이야기
파주에는 전시 납북자 및 그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전시 납북자란 이산가족을 말한다. 지금은 분단으로 헤어진 가족들을 모두 이산가족으로 호명하지만 처음에는 전시 납북자만을 이산가족이라 불렀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이산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이 징용과 징병을 하며 발생한 이산가족은 6.25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그 수가 늘어났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며 많은 인텔리, 지식인층을 납치한 것이다. 1952년에 납북자들의 전체 명부가 발견되었는데 납북된 수가 무려 8만 2,959명에 이른다고 한다.
마침 이곳에서 특별전시회로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어린 손주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소개하는 이야기로 구성한 작품 전시이다. 51명의 납북자가족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가정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어린 손주는 자신의 아버지가 6세때 이산의 슬픔을 맞이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나이 29세, 할머니는 고작 스물 넷.
“아빠, 여기 할아아버지가 29세에 북한에 끌려갔나봐! 아빠보다도 훨씬 어리다. 아빠의 외할아버지도 이렇게 젊은 나이에 납치된 거야?”, “은찬아! 아빠의 외할아버지는 더 젊은 나이에 납치되셨어! 여기 할머니는 스물 넷이지? 은찬이 왕할머니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날 얼마나 이뻐해 줬는데!”, “왕할머니도 여기 할머니와 같이 1살짜리 애기를 데리고 있었어 바로 너의 할머니가 그때 1살짜리 아기였고, 그때 왕할머니의 나이가 스물 하나였다고 해!”, “스물 하나? 내가 지금 열 네살이니까 7년뒤의 내 나이네! 북한 진짜 못됐다. 왕할머니는 …”
아들이 말을 잇지 못한다. 왕할머니가 기억나는가 보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작은 사람 얼마나 컸나?”라며 늘 반겨주셨던 왕할머니가 기억나는가 보다. 할머니는 내게도 특별한 분이셨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에 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나의 주양육자셨고, 난 그분의 첫 번째 손주였다. 너무나도 그리운 할머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아들, 우리 저 그리움의 벽에 가서 왕할아버지에게 할머니 잘 가셨다고 편지 쓸까?”
‘왕할아버지! 이름도 얼굴도 모릅니다. 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는데도 힘든데 할머니는 할아버지 없이 어떻게 사셨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못해드린 말을 하려 합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정은찬 올림’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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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건너 북녘땅이 보이는 장산전망대
“송쌤, 우리 만난 기념으로 같이 사진 하나 찍어요!”
송쌤과 찍은 사진의 뒷 배경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장산전망대에 올라 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여기 저기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는다. 누구는 가족과 함께 누구는 이 곳을 찾은 친구들과 함께. 뒷 배경은 어느덧 붉은색으로 물들고 있다. 저 석양 너머의 북녁 하늘,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그 곳은 갈 수가 없는 곳이다. 분단 너머의 땅.
“혁구쌤, 아들과 갔던 납북자 기념관은 어떠셨어요?”, “네, 저는 잘 온 것 같습니다. 아들이 잘 따라왔다고 하더라구요. 할아버지의 이름도 찾아 봤고 편지도 썼어요. 오늘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아들에게 많이 다가왔나봐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것 같아 저도 좋구요. 송쌤은 어떠셨어요?”, “저희도 좋았어요. 매번 6.25가 되면 집에서 TV로 기념행사를 하는 것만 봤는데, 오늘 이 곳에 와 보니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것이 확 와닿네요. 아이아빠와 두 아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많이 느꼈습니다.”, “그렇죠? 참 잘 온것 같습니다.”
아직 한반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었고, 그 세대가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다음세대는 이 아픔을 역사를 어떻게 보고 느끼고 있을까? 잠시 전쟁을 멈추자고 협정을 맺은 이곳 파주에서 남북이 다시 만나 전쟁을 종료하고 하나되는 다음세대를 위한 문을 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Kyrie Ele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