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35]도올 김용옥의 『반야심경』 주해註解
참으로 오랜 벗에게.
달포 전, 우리 같이 읽어보자던 도올 김용옥의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라는 책 기억하겠지? 너는 읽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최근 베트남여행때 통독했는데, 두 번째 읽는데도 참 재밌더라. 어제는 불기佛紀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너는 범주梵舟( 「달마도」로 유명한 스님)의 유산인 선원 관리에 아주 바빴겠구나. 새벽에 눈을 뜨면서, 네가 선물한 범주 스님의 「한산습득도」(사진)를 바라보면서, 너를 자극하는 의미에서라도 도올의 주해註解를 내 나름대로 정리해 너에게 보낼 '기특한' 생각을 했다. 화제畫題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니,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이라할 ‘공空의 사상’과 맞춤이겠다 싶었다.
247쪽 중 주해부분은 맨 마지막 38쪽에 불과하다. 앞부분은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과 <싯달타에서 대승불교까지> 등 한국불교의 전반을 아우르는, 그 양반의 해박한 지식과 견해의 너스레(잘난 체?)이다. 반야심경을 9강으로 나눠 주해를 했는데, 무엇보다 원문에 '표점標點'(한문 문장을 읽거나 해석할 때 쉼표, 마침표 등 구두점을 찍어놓는 것)을 해놓아 큰 도움이 되더라. 띄어쓰기와 현토懸吐가 없는 게 흠인데, 괄호 안에 내가 넣었으니 참고해라. 제법 장황한데, 그 양반이 만든 표를 곳곳에 배치해 이해를 돕겠다. 인내하기 바란다.
제1강. 觀自在菩薩(이), 行 深 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 皆空(하고), 度 一切苦厄(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께서 심원한 반야의 완성을 실천할 때에 <오온>이 다<공>이라는 것을 비추어 깨닫고, 일체의 고액을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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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이며, 사리자舍利子에게 말씀한 법이다. 사리자는 성문聲聞(부처의 설법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이 된 10대 제자중 한 명) 중의 성문. ‘오온’은 바로 이어서 나오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을 말한다<표1 참조>. 색→수→상→행→식은 저차원의 물질에서 고차원의 의식에까지 진화되는 조합과정을 나타내지만, 어디까지나 조합현상이므로, 그 자체로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갖지 않는다는구나. 말하자면 ‘과정’이다. 고액은 고통과 재액, 이 오온이 ‘공’이라는 것을 알고, 일체의 고액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제2강. 舍利子(여)!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니); 受想行識(도), 亦復如是(이니라)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오온개공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이겠느냐? 색이 공에 다르지 않고, 공이 색에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나머지 수, 상, 행, 식도 이와 같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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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부여시亦復如是’는 색의 사례처럼 수상행식도 모두 같다는 뜻이다. 표2, 표3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터. 불교의 핵심사상을 ‘연기緣起’라 하는데, 연기는 이 우주의 모든 사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무수한 원인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한 관계망 속에서만 이벤트나 해프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인연因緣의 인은 주원이고, 연은 그 주변에 묻어있는 많은 보조원인을 말하며, 이런 인연이 사라지면 소리없이 사라지는 존재가 공空이라는 것이다.
제3강. 舍利子(여)! 是 諸法(은) 空相(하여), 不生 不滅(하며), 不垢 不淨(하며), 不增 不減(한다).
<사리자 제시법 공상 불생불멸 불후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지금 내가 깨달은 세계, 반야의 완성을 통해 조견한 세계, 제법이 공한 이 모습의 세계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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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은 모든 다르마darma, 즉, 존재하는 모든 것, 사건, 이벤트, 사태를 가르킨다. ‘공상’은 공의 모습이다. 불생, 불멸, 불후, 부정, 부증, 불멸을 ‘6불不’이라 한다.
제4강. 是故(로) 空中(에는) 無 色, 無 受想行識(하며), 無 眼耳鼻舌身意, 無 色聲香味觸法(하며), 無 眼界 乃至 無 意識界(이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그러므로 공의 모습 속에는 색도 없고, 수도 없고, 상도 없고, 행도 없고, 식도 없다. 따라서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으며,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다. 또한 안식계에서 의식계에 이르는 모든 식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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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표4를 찬찬히 보자. 우리는 여기에서 <18계>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으로 만지며, 마음으로 아는 안, 이, 비, 설, 신, 의를 불교에서는 ‘육근6根’이라 하는데, 이런 감각기관을 주관이라 하고, 감각의 대상세계인 색, 성, 향, 미, 촉, 법을 ‘육경6境’‘이라 하여 객관이라 한다. 육근과 육경 사이에서 성립하는 것을 ‘육식6識’이라 하고, 이 3그룹을 합쳐 부르는 말이 ‘십팔계’라는 것이다. 내가 ‘백팔번뇌’를 떠올리는 숫자 108에 집착하는 것을 너도 알겠지만, 6근×6경×좋고 나쁨, 그리고 평등 3를 곱한 36에, ‘삼세三世’를 뜻하는 과거, 현재, 미래 3를 곱한 숫자라고 한다. 끝부분의 ‘내지乃至’도 ‘역부여시亦復如是’와 똑같이 기능이니, 무안계, 무이계, 무비계, 무설계, 무신계, 무의계을 줄인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장에 나오는 ‘내지’역시 마찬가지임을 표5을 보면 확연하다.
제5강. 無 無明 亦無 無明 盡, 乃至 無 老死, 亦無 老死 盡(이고). 無 苦集滅道(이다).
<무무명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뿐만이냐! 싯달타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는 12연기의 무명도 없고 또한 무영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12연기의 부정은 노사의 현실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니 노사도 없고, 노사가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러한 12연기를 요약적으로 표현한 고-집-멸-도 또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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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5를 보면, 부처가 깨달은 12연기의 항목이 ‘내지乃至’라는 두 글자로 축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5온도 사라지고, 18계도 다 사라졌는데, 12연기도 당연히 사라질 것이므로,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도 없다. 아라한의 팔정도八正道 역시 사라지는 것.
제6강. 無 智 亦 無 得(이다), 以 無所得 故,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앎도 없고 얻음 또한 없다. 반야 그 자체가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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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주해에 의하면, 이 구문이야말로 ‘오온개공’이래의 기존 불교이론을 부정해 버리는 ‘무無의 철학’을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은 ‘공空의 철학’이 아닌 ‘무의 철학’이라고 단언한다. 대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말인지, 내가 알겠냐? 네가 알겠냐만, 끝까지 한번 읽어보자.
제7강. 菩提薩唾(는), 依 般若波羅蜜多 故, 心 無 罫碍(며), 無 罫碍 故, 無 有 恐怖(이니), 遠離 顚倒夢想(하여) 究竟 涅槃(하며), 三世 諸佛(도) 依 般若波羅蜜多 故, 得 阿耨多羅 三藐 三菩提(한다).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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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살타, 즉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마음에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는 고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전도된 의식과 꿈같은 생각들을 멀리 벗어나 버리고, 끝내 열반에 도달한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무상의 정등각을 얻는다.
가애罫碍의 ‘가’는 걸그적거리다는 뜻으로 ‘괘’로도 읽는다. ‘애碍’는 장애를 뜻하는데, 애礙로도 쓴다. ‘삼세제불’은 과거-현재-미래와 더불어 영속하는 모든 각자覺者을 말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범어의 음역으로 ‘위가 없는 완전한 깨달음’이란 뜻이다. 이를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의역했는데, 더 이상이 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란 뜻이란다.
제8강. 故知 般若波羅蜜多(는) 是 大 神呪(며), 是 大 明呪(며), 是 無上呪(며), 是 無等等呪(이니). 能(히) 除 一切苦(하고), 眞實 不虛 故(다).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고.>
그러므로 그대들은 다음의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야말로 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더 이상 없는 주문이며, 비견할 바 없는 뛰어난 주문이라는 것을! 이 주문이야말로 일체의 고를 제거할 수 있다. 진실한 것이요,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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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첫 문장이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일체의 고액을 넘어버리다)’로 끝나더니, 끝부분이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로 끝나는 것도 의미가 깊다.
제9강. 說 般若波羅蜜多 呪(를) 卽說 呪曰(해야 한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마지막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곧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집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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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역에 불과하므로 한자상 의미는 없는 이 주문의 뜻은 마지막 표를 보면 알겠이고, 원래의 발음은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라고 한다더라.
아무튼, 도올의 9강에 걸친 주해를 간략히 정리했는데, ‘건너간 자’즉,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자는 관세음보살(관자재보살)인데, 도올은 단언한다. 관세음보살이야말로 바로 여러분(나와 너) 자신이라고 말이다. 가장 웃긴 것은, 도올이 20살때 반야심경 260자를 어느 절의 똥간에서 접하고 "나는 좆도 아니다"라는 우리말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는 것 아니냐. 정말, 너나 나도 마찬가지로 '좆도 아닌' 것을. 내가 재가불자도 아니고, 불교에 조예도 있지 않으니, 대체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천도교 주문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이나 밀교의 <옴마니 밧메홈>처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명상하듯이 외운들 나쁠 것이 무에 있으랴 싶다. 글이 길었다.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흐흐. 네가 끝까지 읽을지는 의문이지만, 너를 사랑하는 흔적인 줄만 알면 된다. 그 옛날 중국의 거지스님들, 한산과 습득처럼 살다 가는 것도 어차피 ‘한 판의 인생’ 아니더냐. 늘 건강해라.
고향 우거에서 친구가 쓰다
첫댓글 도올의 기독교 강의를 듣다보면 신학대학을 수료한 모태 신앙과 인문학자로서의 합리적 사고 사이의 갈등을 (스스로) 어떻게든 좁혀 볼려는 느낌을 받는다.
도올의 불교나 노장 강의를 듣다보면 한문에 정통한 학자답게 명쾌하다가도 뭔지 모를 2% 아쉬움이 있다.
너무 字句에 매이는 느낌이랄까?
여기에서 無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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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도올'이란 호를 듣자마자 그 의미가 궁금했었는데 돌(石)을 破字한 것이란다.
뭐랄까? 비유하자면 '있는 자의 여유'같은 시니컬한 작호다.
그렇게 破字한 '도올'에 한자 檮杌을 찾아 입힌 것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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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옛 생각 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