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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발보리심파제마경(佛說發菩提心破諸魔經)
불설발보리심파제마경상권
서천(西天) 시호(施護) 한역
김진철 번역
김두재 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가란타(迦蘭陀)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는데, 큰 필추(苾芻:비구) 대중 1,250인과 아울러 여러 보살마하살 대중들과 함께 모임에 모여 있었다.
이때 왕사대성(王舍大城)에는 가섭(迦葉)이라는 성(姓)을 가진 바라문(婆羅門)이 살고 있었다. 어느 때 문득 꿈속에서 이 염부제(閻浮提) 세계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천 개의 잎을 가진 넓적하고 커다란 연꽃이 있었다. 이 연꽃은 7보(寶)로 장엄되었으며 맑고 깨끗하여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그 꽃 속에는 크게 둥근 달이 있었는데 깨끗하고 밝으며 원만한 광명에 둘러싸여 눈부시게 빛났다. 그 바라문은 꿈속에서 이 모습을 보고 마음이 대단히 기뻤으며
즐겁고 상쾌하였다. 꿈에서 깨어나자,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듣건대 사문 구담(瞿曇)은 크게 지혜 있는 분이라, 모든 지혜 있는 사람들로서 능히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훌륭한 방편[善巧方便]과 큰 지혜를 구족하였다 하니, 나는 당연히 그에게 가서 이 꿈의 내용에 대하여 여쭈어 보리라.’
바라문이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 이튿날 아침이 되자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가란타 죽림정사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머리를 숙여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합장하고 공경하며 꿈에서 본 것을 자세하게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때 세존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꿈꾼 것은 길상(吉祥)한 모습이다. 바라문아, 그대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사람이 꿈속에서 네 가지 모습을 본다면 이것은 가장 길상하고 수승(殊勝)한 모습이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흰 연꽃[白蓮華]이며, 둘째는 흰 일산[白傘蓋]이며, 셋째는 둥근 달[月輪]이며, 넷째는 부처님의 형상[佛像]이니라. 만약 이와 같은 네 가지 모양을 본 사람은 반드시 최상의 큰 이익[最上大利]을 얻을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꿈속에서 만약 연꽃의 모습이나
흰 일산(日傘)을 보면 다 길상한 것이니
혹 청정한 큰 둥근 달을 보아도
꿈을 꾼 이는 마땅히 최상의 이익을 얻으리라.
또다시 만약 부처님의 형상을 보면
이 모습은 최상 중에도 가장 수승한 것이니
이 사람은 일체가 사랑하고 공경하여서
마땅히 모든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그때 바라문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최상의 큰 이익이라 하며, 세존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伽陀]으로 바라문에게 대답하셨다.
내 이제 저 큰 이익을 말하리라.
그대 바라문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발하여서
이족존(二足尊:佛)을 이룬다면 큰 이익이니라.
전륜성왕의 지위는 높고 뛰어나서
4대주(大洲)를 마음대로 통솔하나니
만약 중생이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야 하네.
제석천은 하늘의 주인이며 훌륭한 복의 과보로
삼십삼천에 자재(自在)하나니
만약 중생이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욕계․색계․무색계 삼계(三界) 중에서
그들의 복의 과보는 다 수승하니
만약 중생이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중생계는 끝이 없으니
그들에 맞게 잘 교화 제도하여
널리 이롭고 즐겁게 하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세간에 있는 큰 의왕(醫王)께서는
널리 일체 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만약 중생이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큰 광명 만들어 세간에 나타내면
일체의 어둠을 다 밝게 비추리니
만약 중생이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비록 다시 삼계 중에 태어나더라도
일체의 전도된 행을 끊어 없애야 하니
만약 중생이 삼계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지니고 있는 번뇌 등 모든 장애와
다른 일체의 불선(不善)한 법을
만약 중생이 끊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삼계(三界)에 있는 모든 번뇌
지은 대로 마(魔)가 거두나니
만약 중생이 이를 끊어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만약 무명(無明)을 조복(調伏)시키고
일체 애욕의 그물[愛網]을 다 끊어야 하리니
모든 중생이 이를 여의고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저 탐애하는 법을 만약 끊어 없애면
일체의 번뇌 다 청정하리니
만약 중생이 여의고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태어난 가문[族氏]과 물리적인 힘[色力]을
얻으면 어리석은 사람은 교만을 일으키니
만약 중생이 이를 끊어 제거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어리석은 자가 아견(我見)과 수자견(壽者見)에 집착하고
스스로 생각한 좋은 이익[善利]에 교만이 생겨나니
만약 중생이 이를 끊어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모든 물질[色法]에서 교만이 생기고
정욕과 애착[染愛]이 생겨 허물이 커지니
만약 중생이 이를 끊어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많이 듣고 계율을 지키고 또 수행하면서도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하며 교만심을 일으키니
만약 중생이 끊어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아란야(阿蘭若:修行處)에 머물면서 걸식하면
이와 같은 일에서 교만이 생겨나니
만약 중생이 끊어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응공(應供)으로 자재로이 신통을 갖추면
자기의 높음을 믿어 교만이 생겨나니
만약 중생이 이를 끊어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어리석어 나[我]와 남[人]이란 상(相)에 집착하면
나와 남이란 상(相)을 믿어 교만이 생겨나니
만약 중생이 이를 끊어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현재와 미래의 불세존(佛世尊)을
공경하고 존중하면 복을 얻나니
만약 중생이 이런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모든 부처님 세간에 나타나시어
큰 법륜 굴리시어 널리 교화 제도하시니
만약 중생이 받아 듣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일체의 악법(惡法) 끊을 것은 끊고
일체의 선법(善法) 닦을 것은 닦아
만약 중생이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도를 닦는 모든 이 청정행[梵行]을 닦으면
이로 말미암아 무루도(無漏道)를 증득하나니
만약 중생이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내가 설하는 무상(無常)의 법으로
각각 자기 몸을 스스로 관찰하라.
만약 중생이 밝게 알고자[了知]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나는 유루행(有漏行)을 다 괴로움[苦]이라 설하니
지혜로운 자는 괴로움을 보고 싫은 마음을 낸다.
만약 중생이 이를 여의어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나는 중생[有情]을 위하여 널리 설하나니
마땅히 알라, 일체법은 무아(無我)이다.
만약 중생이 이를 통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열반의 적멸법(寂滅法)을 설하였으니
위없는 큰 보리심을 깨달아 증득하라.
만약 중생이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내가 칭찬한 보리심을
그대 바라문은 공경히 들으라.
듣고 깊이 믿어 발심할 수 있으면
이것을 보리를 수행한다[修行菩提] 말하리라.
그때 바라문이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이 게송[伽他]을 듣고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보리심을 내었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얼마나 되는 복을 쌓을 수 있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바라문에게 대답하셨다.
설사 일체의 중생들로 하여금
널리 이 부처님의 세계에 모여
낱낱이 청정한 계행(戒行)을 닦아 지니게 하고
모두 계율을 배우는 경지[戒學地]에 안주시킨다면
그 쌓은 복덕의 양은 끝이 없으며
모든 복 가운데 최상이 되나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발한다면
전자는 후자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설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이 부처님 세계에 모여
각기 청정한 신심을 내게 하고
다 믿고 행하는 경지[信行地]에 안주하게 하면
그 쌓은 복덕의 양은 끝이 없으며
모든 복 가운데 최상이나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낸다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설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이 부처님 세계에 모여
하나하나 미묘한 법문 닦아 익히게 하고
다 바르게 수행하는 경지[法行地]에 안주하게 하면
그 복이 쌓이는 양은 끝이 없으며
모든 복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나
사람이 보리심을 일으킨 것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설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이 부처님 세계에 모여
널리 수다원(須陀洹)의 수행법을 닦게 하고
다 수다원과(須陀洹果)의 자리에 머물게 하면
그 쌓은 복덕의 양은 끝이 없으며
모든 복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지만
사람이 보리심 발한 것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설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이 부처님 세계에 모여
널리 사다함(斯陀含)의 수행법 닦게 하고
다 사다함과의 자리에 머물게 하면
그 쌓은 복덕의 양은 헤아릴 수 없으며
모든 복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지만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낸 것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
설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이 부처님 세계에 모여
널리 아나함(阿那含)의 수행법 닦게 하여
다 아나함의 과위(果位)에 머물게 하면
그 쌓은 복덕의 양은 끝이 없으며
모든 복 중에 가장 으뜸이 되지만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발한 것에 비한다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
설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이 부처님 세계에 모여
널리 아라한(阿羅漢)의 수행법 닦게 하여
다 아라한의 과위에 머물게 하면
그 쌓은 복덕의 양은 끝이 없으며
모든 복 중에 최상이 되지만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내는 것에 비한다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
어떤 이가 이 부처님 세계에서
제일 미묘한 전단향을 널리 모아서
부처님 탑사(塔寺)를 훌륭하게 꾸미되
높이와 너비가 수미산과 같다면
이와 같은 복덕은 끝이 없으며
모든 복 중에 가장 으뜸이 되겠지만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발한 것에 비한다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또 만약 여러 불탑 만들어 세우되
그와 같은 분량으로 응당히 짓고
짓고 나서 두루 장엄하면
이 모든 중생의 훌륭한 과보와
그 행복과 이익은 넓고 그지없어
모든 복 중에 가장 으뜸이 되지만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발한 것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또 만약 일체 중생들이
가령 수명이 한 겁이 차도록 머물러서
모든 즐거움 갖추어 중생에게 베풀고
중생의 뜻에 따라 두루 만족하게 하면
이와 같이 쌓은 복덕의 양은 끝이 없으며
모든 복 중에 가장 으뜸이 되지만
만약 사람이 보리심을 발한 것에 비한다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내가 설한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하나 다 최상의 법이라
어떤 중생이 기뻐 즐거워한다면
마땅히 보리의 적정과(寂靜果:涅槃)를 구하되
이 과(果)에 머무는 자는 큰 이익을 얻어
견줄 자가 없고 같을 이가 없어 가장 훌륭하리라.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마땅히 바른 지혜의 행을 존중하라.
널리 이와 같이 닦아 복을 쌓는 이는
속히 위없는 큰 보리를 증득하리라.
그때 바라문이 불세존께서 이와 같이 보리심을 칭찬하시는 것을 듣고 나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리심 가운데에서는 어떠한 법도 설할 것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바라문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보리심을 발하였다면 실로 설할 법이 아무것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바라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보리에는 세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성문보리(聲聞菩提)․연각(緣覺)보리․무상(無上)보리이니라.
이 가운데 무엇을 성문보리라 하는가? 바라문이여,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비록 보리심을 발하였을지라도 다만 자기의 이로움만 좋아하고 남이 이롭게 되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며,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도 않고 닦아 지니지도 않으며, 나아가 그 경지에 들어가지도 않고 편안히 머물지도 않으며, 이 경법(經法)을 받아 듣지도 않고 또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지도 않으며, 후생(後生)에 몸이 없어지고[斷] 가고 오고 하는 생각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또 평등한 바른 지혜[平等正智]를 얻지도 않으며, 현생(現生) 중에 해탈만 구하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바라문이여, 이런 뜻이 있으므로 성문보리라 하는 것이니라.
또 무엇을 연각보리라 하는가? 말하자면 만약 어떤 사람이 비록 보리심을 발하였으나, 대승법(大乘法)을 닦아 익히기를 좋아하지 않고, 생각하거나 기억하지도 않으며, 또 자기의 이로움만 취하여 과(果)를 증득하기만을 바라며, 남을 이롭게 함을 좋아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능히 닦아 지니지도 않으며, 이에 나아가거나 들어가지도 않고 편안히 머물지도 않으며, 이 경법을 받아 듣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또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여 가르쳐 보이지도 않으며, 평등한 바른 지혜에 편안히 머물지도 않고, 다만 마음의 생각을 일으켜 모든 인연법을 관찰하고 관찰한 바에 따라 해탈을 얻을 뿐이니라. 바라문이여, 이런 뜻이 있으므로 연각보리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또 무엇을 무상보리라 하는가?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스스로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내고 나서, 다시 남에게 권하여 이와 같은 마음을 내게 한다면, 이 경법을 스스로 받아들여 닦고 익히고 생각하여 기억하며, 다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널리 그 뜻을 설하며, 몸이 윤회(輪廻)함을 싫어하지 않고 일체 중생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를 좋아하며, 평등한 지혜에 머물러 스스로 해탈하고 나서 일체 중생이 다 해탈을 얻게 하며,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편안한 즐거움을 얻으며, 자기의 깨달음의 뛰어난 이익[善利]을 모든 하늘과 사람 대중에게 널리 베푸는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무상보리(無上菩提)라 말하는 것이니라. 이것을 수행하는 이를 보살승(菩薩乘)의 사람이라 하느니라.
바라문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하여 거짓을 말하지 않느니라. 내가 설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바로 최상의 뜻이니라. 만약 이 큰 보리심을 여의고 성문과 연각의 마음을 내는 자는 남을 이롭게 할 수 없고, 끝내 대열반(大涅槃)의 경계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저 성문과 연각은 스스로 자기는 이롭게 하지만, 다시 남을 이롭게 하는 수승한 행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불법(佛法)의 부분을 구족하지 못하고, 비록 보리심을 발하여 스스로 해탈했다고 말하나, 저 보리심으로는 또한 남을 이롭게 하는 과보를 얻을 수 없느니라. 바라문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다면 자기나 남에게 다 평등하며, 자기의 이익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며, 곧 이런 마음으로 널리 세간의 일체 중생들을 거두면 곧 세간의 가장 큰 이익이 될 것이다. 또한 이를 세간을 잘 조복하여 인도하는 자[調御]라 하나니, 이와 같이 곧 평등지(平等智)에 머무르면, 가장 으뜸이 되고 가장 훌륭하며 불가사의하니라.
바라문이여, 이것을 큰 보리심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이와 같이 여실(如實)하게 깨달아 알아야 하느니라.”
그때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해탈(解脫)은 몇 가지의 모양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성문이나 연각이나 여래의 해탈법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없느니라. 바라문이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세 종류의 짐승을 타고 보배가 있는 곳에 가고자 하는데, 비록 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차별이 있으나, 그 향하는 목적지는 차이가 없는 것과 같다. 그 세 종류의 짐승이란 당나귀․말․코끼리이다.
저 당나귀가 끄는 수레는 그 힘이 약하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수레에 탄 사람은 비록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기는 하나, 그 보배를 가지고 널리 중생들에게 베풀지 못하고, 다만 자기만이 이로운 열반을 증득하여 지니고 즐거워할 뿐이다. 저 말이 끄는 수레는 가볍고 민첩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 수레에 탄 사람은 비록 보배 있는 곳에 이르기는 하나, 또한 그 보배를 가지고 널리 중생들에게 베풀지 못하고, 다만 중생들과 함께 청정한 복전[淨福田 ]만을 지을 뿐이다. 저 코끼리가 끄는 수레는 그 움직임이 바르면서도 날래고 강건하며 힘이 넘친다. 그 힘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은 일체의 보배덩이로 된 광대한 성 가운데 들어간다. 그 성에 이르러서는 곧 이런 생각을 한다.
‘세 수레[三乘]의 보배가 다 여기에서 나오는구나. 내가 마땅히 이 한량없이 많은 보배를 가지고 끝없는 일체 중생들에게 널리 베풀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큰 이익과 안락을 지으리라.’
바라문이여, 3승(乘)을 수행하는 사람이 3승의 법을 수행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저 당나귀를 타는 사람은 곧 성문승(聲聞乘)이고, 저 말을 타는 사람은 곧 연각승(緣覺乘)이며, 저 코끼리를 타는 사람은 바로 대승(大乘)이니라. 비록 저 3승의 길[道]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으나, 증득할 열반과 얻을 해탈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없고 또한 차별도 없다는 것을, 그대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또 세간에 세 남자가 같이 하나의 깊고 큰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저 첫 번째 사람은 하나의 작은 나뭇잎을 물에 띄우고 거기에 의지하여 건너가고, 저 두 번째 사람은 앞 사람보다 좀 나아서 판목(板木)을 물에 띄우고 거기에 의지하여 건너가려 하며, 저 세 번째 사람은 또 앞사람보다 좀 더 좋은 큰 배를 띄우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편안히 강을 건너서 저 언덕에 이르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다시 비유하면 마치 세간의 장자(長子) 가 그 부모들이 보호하여 주는 일체의 처소에서 모든 근심과 고뇌를 여의는 것과 같으니라.
저 첫 번째 나뭇잎에 의지하여 건너가려는 사람은 바로 성문승의 수행인 임을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요, 저 두 번째 판목에 의지하여 건너가려는 사람은 바로 연각승의 수행인임을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며, 그 세 번째 배를 타고 건너가려는 사람은 바로 보살승의 수행인으로서, 자기도 건너고 다른 사람도 또한 건네준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이런 까닭에 저 3승의 수행법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으나, 성문이나 연각이나 저 여래께서 증득한 열반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3승(乘)이 증득하는 열반은
동일한 열반법이니
도를 증득하는 방법엔 차별이 있으나
열반 자체엔 두 가지 모양이 없느니라[無二相].
3세(世)의 모든 부처님은
최상의 해탈을 얻으셨으니
이와 같은 법안(法眼)을 지니신
정각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
이러한 최상법의 지혜로
모든 방편을 내시나니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불설발보리심파제마경하권
서천 시호 한역
김진철 번역
김두재 개역
그때 대바라문(大婆羅門)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대승법을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어떤 수행을 실천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설한 바와 같이, 마땅히 이와 같이 행해야 할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만 하느니라. 만약 대승법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제 자신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여 이와 같은 마음을 내게 하며, 이 경법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널리 설하여 가르쳐 보여야 하느니라. 그리고 이와 같은 등의 사람을 마땅히 친근히 하고 존중하며 공경해야 할 것이다. 이 사람은 4섭법(攝法)으로 널리 중생들을 거두어 이끄니 ,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이른바 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사(同事) 이니라.
이 가운데에서 무엇을 보시(布施)라 하는가? 이른바 재물을 보시하는 것이니, 혹 많거나 혹 적거나 간에 자기의 능력에 따라 크고 넓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중생들의 간탐(慳貪)하는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대승을 수행하는 이가 보시로 거두어들인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애어(愛語)라 하는가? 이른바 일체의 곳에서 모든 중생들을 보면, 마땅히 기뻐하는 얼굴로 유순(柔順)하게 말을 하며,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잘 이끌어 편안하게 위로하는 것이다. 이러한 친애하는 말로 저 중생들의 거칠고 좋지 않은 말[麤惡]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대승을 수행하는 이가 애어(愛語)로 거두어들인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이행(利行)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모든 선한 법을 보면, 밤낮으로 부지런히 실천하여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청정한 믿음을 내어, 모든 믿음이 없는 중생들을 거두어들이며, 청정한 계율을 지켜서 모든 허물어진 계를 거두어들이며, 모든 곳에서 항상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대승을 수행하는 이가 이행(利行)으로 거두어들인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동사(同事)라고 하는가? 이른바 모든 곳에서 먼저 그 일을 함께하고, 다시 방편으로 정진(精進)을 가르쳐서 보리심(菩提心)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지혜 있는 이는 이와 같은 법에 대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실천해야 하니, 이와 같이 실천하는 것을 보살이 바른 행[正行]을 수행한다고 한다. 만약 이와 같이 용맹하면 곧 가장 뛰어나다[最勝]고 말하니, 저 언덕[彼岸]에 이르러 누구나 다 최상의 법문을 통달할 수 있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대승을 수행하는 이가 동사(同事)로 거두어들인다고 말하는 것이니라.”그때 바라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어떤 것에 의지하여 머물러야 곧 부처님의 지위[二足尊果]를 이룰 수 있으며, 그렇게 머물러야 할 곳은 몇 종류나 있습니까?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머물 수 있는 법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씀드리오니 곧 가장 희유한 보리(菩提)의 법문도 설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머무르는 것에는 세 종류가 있다는 것을 그대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이른바 천주(天住:欲界)․범주(梵住:色界와 無色界)․성주(聖住)이다.
이 가운데 무엇을 ‘천주에 머문다’고 하는가? 이른바 다만 자비행만 수행하는 것이니, 만약 사람이 먼저 동쪽에서 몸이 짓는 업[身業]으로 자비를 행하고, 입이 짓는 업[語業]으로 자비를 행하며, 뜻이 짓는 업[意業]으로 자비를 행하는 것이 광대하고 불길처럼 왕성하며, 남쪽․서쪽․북쪽과 사유(四維)․상하에도 또한 이와 같이 몸이 짓는 업으로 자비를 행하고, 입이 짓는 업으로 자비를 행하며, 뜻이 짓는 업으로 자비를 행하는 것이 광대하고 불길처럼 왕성하게 한다면, 이것을 ‘천주에 머문다’고 하느니라.
무엇을 ‘범주에 머문다’고 하는가? 이른바 4무량행(無量行)을 수행하는 것이니,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자(慈)․비(悲)․희(喜)․사(捨)이다. 이것을 ‘범주에 머문다’고 한다.
무엇을 ‘성주에 머문다’고 하는가? 이른바 3해탈문(解脫門)을 수행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공(空)이요, 모양이 없음[無相]이요, 원함이 없음[無願]이다. 이것을 ‘성주에 머문다’고 하는 것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성주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설한 세 가지 머무는 것
이는 용맹하고 수승한 법이니
모든 보살 대중을 위하여
근기에 맞추어 설하였노라.
만약 일체 어느 때든지
말한 것과 같이 수행한다면
내 마땅히 그를 칭찬하리니
그는 이 보리 구하는 자이기 때문이라.
천주(天住)와 범주(梵住),
성주(聖住)도 또한 그러하니
이 세 가지 머물러야 할 것 가운데
근기에 따라 편안히 머물지니
만약 이와 같이 머무는 자는
장차 멸함이 없는 구절[無滅句]을 얻으리라.
그때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리 법문(法門)은 그 뜻이 어떤 것입니까? 미래세(未來世) 에 만약 어떤 중생이 저에게 이 뜻을 물으면, 저는 아무 지혜도 없고 불법도 통달하지 못하였으니, 그때 어떻게 대답을 하오리까?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자세히 설명하여 주옵소서.”
그때 세존께서 바라문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내 그대 위하여 설명하리라.
이 광대하고 바른 법은
보리심을 권하여 일으키는 것이니라.
모든 지혜 없는 자도
이로 말미암아 획득하리니
만약 이 법문을 알면
이것이 곧 보리의 뜻이니라.
여기 설한 올바른 법은
보리심을 권하여 일으키나니
중생들이 질문함에 따라
하나하나 열어 보일 수 있느니라.
여기 설한 올바른 법은
보리심을 권하여 일으키나니
사견(邪見)과 모든 의혹(疑惑)
일체를 다 끊을 수 있느니라.
훗날 말법 세상 가운데
만약 어떤 이가 이 법을 얻어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이 사람이 만약 보시를 할 적에
광대한 재물 따위로
곧 원만히 보시를 행하여
그 보시를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피안(彼岸)에 이를 수 있으리.
또다시 말법 세상 중에
만약 어떤 이가 이 법을 얻어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이 사람이 만약 계를 지켜서
청정하여 결함이 없고
곧 계행이 원만하다면
계를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피안에 이를 수 있으리.
또다시 말법 세상 중에
만약 어떤 이가 이 법을 얻어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이 사람이 만약 인욕(忍辱)하여서
모든 번거로운 고뇌에 처한다 해도
곧 인욕행이 원만하다면
인욕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피안에 이를 수 있으리.
또다시 말법 세상 중에
만약 어떤 이가 이 법을 얻어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이 사람이 만약 정진(精進)하여서
용맹심을 일으키고
곧 정진행이 원만해지면
정진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피안에 이를 수 있으리.
또다시 말법 세상 중에
만약 어떤 이가 이 법을 얻어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이 사람이 만약 선정을 닦아서
삼마혜다(三摩呬多)에 머물러서
곧 원만히 선정행이 원만해지면
선정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피안에 이를 수 있으리.
또다시 말법 세상 중에
만약 어떤 이가 이 법을 얻어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이 사람이 만약 지혜 닦아서
가장 훌륭한 법을 통달[解了]하고
곧 뛰어난 지혜[勝慧]를 원만히 한다면
지혜를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피안에 이를 수 있으리.
또다시 말법 세상 중에
만약 어떤 이가 이 법을 얻어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능히 존중하며 공양하리니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사람은
보리를 구하는 자라 하나니
부처님의 보리를 가까이하여
반드시 성취하리라.
구지(俱胝) 부처님께서
이 바른 법을 가지(加持)하시니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최상의 법 덩어리[最上法聚] 획득하리라.
만약 현재 부처님 앞에서
이 바른 법을 들은 이는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사람
보살의 뜻을 깨달아 알리라.
부처님의 보리를 사랑하고 좋아하면
이와 같은 사람을 나는 알리라.
이와 같은 사람을 나는 보리라.
그의 이름을 나는 기억하리라.
나와 모든 부처님
또한 함께 칭찬하리니
만약 누구든 이 법을 듣고
남에게 설하여 옮기지 아니하면
그는 아만심이 생겨나
큰 과실(過失)을 지으리.
마땅히 알라. 이 같은 사람은
바른 법을 결코 존중하지 않느니라.
그때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을 훌륭하게 설명하여 주시니, 그것이
곧 보리의 진리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현세 중에서 이와 같은 진리를 사랑하고 좋아하여 깨달아 안다면,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이 세간에서 큰 용맹을 얻고, 미래 세상에서는 보리에 편안히 머물러 훌륭한 법을 설하여 널리 많은 사람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지금 이미 바른 지혜를 얻어서 이와 같이 이익이 될 만한 말을 하는구나.
바라문이여, 만약 어떤 이가 지금 내 앞에서 이 법을 듣고 나서, 내가 열반한 뒤 말법 세계에서 이 바른 법을 써서 지니거나 독송한다면, 이런 사람은 성인의 도를 사랑하고 좋아하여 보리심을 발할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지난 옛날 보리를 구할 때, 한 아란야(阿蘭若:修行處)에서 어느 비구[苾芻]가 이 법을 설하는 것을 잠시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 법을 들으면서 문득 눈물을 흘리며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宿世]에 어떤 업장(業障)으로 이런 바른 법을 일찍이 듣지 못하였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가지고 있던 음식을 그 비구에게 주고 뒤에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지금 들은 법을 저는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즐겁게 듣겠사오니, 부디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그 비구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위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바라문이여, 나는 그때 이 법을 듣고 나서 곧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바라건대 나는 미래 세상에서 이 바른 법을 가지고 말법 세계에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호념(護念)하여 버리지 않고 있다가 중생을 위하여 널리 연설하오리다.’
바라문이여, 나는 그때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바른 법을 나는 어느 때라도 중생을 위하여 마땅히 설할 것이며, 훗날 말법 세상에서 모든 중생들이 조금이라도 이 법을 사랑하여 즐겨 닦고 익히겠지만, 그러나 다음 그 다음 세상에 이 법은 비록 있으나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지 아니한다면, 나는 이 일로 매우 슬프고 마음 아플 것이다.’
바라문이여,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명호가 무량광(無量光)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부처님께서 나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원력 때문에 그 과보를 이룰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이런 뜻이 있었으므로 내가 일체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가련하게 여기나니, 어리석음과 어둠이 쌓이고 쌓여서 윤회의 두려움을 받기 때문이니라. 뒷날 말법 세상에서 어떤 비구가 이 바른 법에 대하여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금지하는 계율을 허물어 잘못된 율의(律儀)를 수행한다면, 이 인연 때문에 이와 같은 바른 법을 펴서 통하게 하지 못할 것이니라.
이런 까닭에 바라문이여, 나는 모든 중생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널리 이 경을 설하느니라.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지금 이 바른 법은 곧 광대한 법문(法門)이니, 모두 네 가지 아함(阿含)에 잘 거두어 둘 것이다. 어떤 것이 저 네 가지인가? 이른바 잡아함(雜阿含)․장아함(長阿含)․중아함(中阿含)․증일아함(增一阿含)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아함 등으로 일체 성문의 법장(法藏)을 다 거두어[摠攝] 수록하니, 모든 성문의 사람으로서 만약 이 가운데서 배우고 닦는 사람은 곧 성문의 법장을 행하여 능히 성문승의 과(果)를 출생시키며 또 성문보리의 분법(分法)을 거두리라. 또 이 경에는 저 일체 최상의 설법인 보살의 법장을 거두어 두었나니, 이런 까닭에 모든 법의 어머니[諸法之母]라 하며, 비나야장(毘奈耶藏)․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도 또한 이 경에 포섭되며, 나아가 8만 4천의 법문 하나하나가 다 이 경에서 나오느니라.
또한 이 경법(經法)은 곧 일체지지(一切智智:부처님의 지혜)로서 최상의 근본이며, 또한 성문과 연각의 지혜도 내느니라. 광대하고 매우 깊어 불가사의하니, 이 큰 광명이 널리 삼계[三有]를 비추리라. 이것은 곧 일체지의 근본을 따라 모든 부처님의 보리에 있는 보시 공덕을 출생시키며, 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와 저 가장 수승한 해탈(解脫), 이와 같은 등의 온갖 공덕이 들어있는 법장[藏]을 출생시키니, 이 경에서 그 진리를 다 설했느니라.
또 고(苦)․집(集)․멸(滅)․도(道)의 4성제법(聖諦法)도 이 경전 가운데 설했느니라. 요점을 말하자면 이 경은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열반적정(涅槃寂靜)이 다 설해져 있다. 이런 뜻이 있으므로 만약 성문승이나 연각승이나 혹은 대승법이나 그 근기를 따라서 이 가운데에서 자세히 설하였느니라. 또 이 경은 모든 법 가운데에서 저 보리심을 크게 칭찬하였으니, 이런 까닭에 이 경이 가장 으뜸이요, 가장 훌륭하니라.
바라문이여, 만약 어떤 이가 현재에 모든 부처님을 뵙고 직접 이 법을 듣는 자가 있으면, 이 사람은 이미 과거에 부처님을 따라서 마하연보엄경(寶嚴經)을 들었으며, 그 경에서 이미 이 법을 들었을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경법(經法)은 3세(世) 중에 일찍이 단절된 적이 없으며 그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듣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때 바라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법은 가장 으뜸이며 매우 심오합니다. 만약 모든 지혜 없는 중생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의 법장인 최상의 바른 법을 듣고서도 깊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마땅히 어떤 인연으로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세존이시여, 어떠한 인연으로 수많은 중생들이 이 대승 최상의 법에 대하여 마음에 의혹을 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중에 백 구지(俱胝) 천마(天魔)의 궁전과 백 구지 마왕 하나하나가 각각 백 구지 천마의 권속들을 두어서, 항상 이 최상법문을 엿보아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여서 여러 가지 방해할 일을 만들어 중생들로 하여금 써서 지니거나 독송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이 삼천대천세계에는 많은 중생들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였거나 또는 지금 이 대승의 법문을 듣고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다 면, 이 앞에서 말한 공덕을 무게로 달거나 그 양(量)을 헤아려 비교해 보더라도 이 보리심을 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니, 이런 까닭에 천마가 틈을 엿보면서 방해할 틈을 찾아 마군을 보내어 방해하는 것이니라. 그러하기 때문에 수많은 중생들이 이런 인연으로 마음에 의혹을 내느니라.
바라문이여, 또 이 경은 모든 법 중의 왕이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모든 어려운 일이 많으니라.”
그때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방편이 있어야 모든 마군들로 하여금 스스로 조복(調伏)하게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나에게 비밀총지법문(秘密摠持法門)이 있으니, ‘마를 깨뜨림[破魔]’이라고 이름한다. 내가 만약 이 법문을 설할 때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귀와 마귀의 무리들이 다 파괴되고 말 것이다.
바라문이여, 비유하면 태양의 광명이 나타나 이 세간을 비추면, 일체의 어둠이 다 사라지듯이 마귀를 깨뜨리는 법문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내가 만약 설할 때에는 모든 마귀의 무리가 다 파괴되고 마느니라.”
그때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비밀총지파마법문(袐密總持破魔法門)’인지, 바라옵건대 부디 부처님께서 설명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마땅히 마귀를 깨뜨리는 법문을 자세히 들어라. 그 이름이 이와 같으니라.”
세존께서 이 비밀총지파마법문을 설할 때 일체 마귀의 궁전이 크게 진동하고, 일체 마왕과 모든 마귀의 무리가 모두 놀라 벌벌 떨며 마음이 몹시 괴로워서 편히 앉아있지도 못하고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일체 중생들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유익함이 있게 하시고 편안하게 하시며, 자(慈)․비(悲)․희(喜)․사(捨)로 중생들을 풍요롭고 이롭게 하시는데, 무슨 까닭으로 지금 우리 모든 마귀들에게는 이로움을 베푸시지 않고 이런 고뇌를 주시어 편히 앉지도 못하게 하시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 바라문이여, 나는 이제 이 비밀총지의 장구(章句)로써 이 대승 경전에서 보리심을 내는 이를 가지(加持)하여, 훗날 말법 세계에 모든 곳에서 이 경전을 설할 때에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 사람이면서 사람 아닌 것[人非人] 등이 틈을 엿보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널리 펴서 유통하게 함으로써 온갖 어려운 일이 없게 하리라.
만약 어떤 이가 이 바른 법을 써서 지니고 다니거나 독송하면, 이 사람은 나라의 난리[王難]나 도적의 재난이나 물․불․벌레․짐승 등 일체의 어려운 일을 멀리 여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바른 법은 최상의 비밀법이니, 내가 모든 중생들을 불쌍하게 여겨 유익하게 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설하기 때문이다.
바라문이여, 부처님은 항상 자․비․희․사를 여의지 아니하고 중생들을 요익하게 하시느니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처럼 이치에 맞게 닦고 익히는 자는 마땅히 3업(業:身ㆍ口ㆍ意)의 선행을 얻어서 모든 죄를 없애고 항상 모든 고뇌를 여의리라.
바라문이여, 이러한 인연 때문에 지금 이 바른 법은 일체의 고통을 없애주고 일체의 죄를 없애주며, 일체의 마귀를 깨뜨리고 모든 법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설하셨다.
마군[魔]은 선을 닦는 사람을
항상 엿보면서 틈을 노리다가
모든 어려운 일을 일으켜서
저들의 선한 법을 파괴하려 하나니,
만약 이 경전의 한 구절이나
한 게송이라도 들으면
저 모든 악마의 무리
다 스스로 굴복하리라.
크게 놀라 두려워 떨면서
괴로워하여 편히 앉지 못하니
그 죄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과보를 얻음이 이와 같네.
일체 중생에게
항상 해칠 마음을 일으켜
모든 선업을 막기 때문이니
저 인과(因果)는 실수가 없네.
만약 그 누구라도 이 법을
써서 지니거나 독송하면
이 사람은 나라의 난리나
도적의 재난을 멀리 여의고
물․불․벌레․짐승 등
모든 재난이 침범하지 못하며
나아가 사람과 사람 아닌 자가
틈을 노려 제 맘대로 하지 못하리라.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지은 선한 행은
일체 죄를 끊어 없애어
일체 어느 때든지
고뇌가 생기지 않으리.
모든 마귀의 일 멀리 여의면
모든 마귀의 모습 보이지 않고
모든 번뇌도 다 여의리니
이 경을 지니기 때문이니라.
만약 이 경을 듣고 나서
들은 대로 잘 배우고 익혀
일체법에 대해 잘 이해하면
저 피안으로 나아가리라.
만약 이 법을 닦는 이가
보살행을 통달하면
보리도(菩提道)를 따라서
정등각(正等覺)을 이루리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가섭(迦葉) 성씨의 대바라문과 모든 보살ㆍ성문, 그리고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아수라ㆍ건달바 등 일체 대중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다 환희하며 믿고 받들어 실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