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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세력들은 말하기를 김영삼 정부는 IMF 사태를 발생하게 하였고,
김대중 정부가 IMF 사태를 극복였다고 우긴다.
정말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알기위해 과거로 돌아가 보자.
내가 단연컨데 좌파의 머리로는 절대로 경제를 살릴수 없다.
과거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세계 경제 7위 대부국이었지만,
그후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경제가 몰락하여 지금은 나라부도
직전에 와있다.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우리나라의 IMF 사태 과거로 돌아가보자.
올해는 우리나라가 IMF(1997년 11월 21일)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17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로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치욕의 그 날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어서 우리나라의 IMF 사태원인을 다시 한번 짚어볼까 한다.
우리나라는 1997년 11월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다.
외환위기는 6.25 동란 이후 최대의 국란이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우리 선배들이 피땀흘려 일궈놓은 경제발전이 잘못된 위정자들에 의해 한순간에 나라가
부도를 맞게 되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IMF라는 외세에 힘을 빌리게 되었다.
외환위기로 인해 수많은 우리 기업들이 무너져 갔고, 수많은 국민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 몰렸다.
외환위기는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이러한 환란에 대해 누구하나도 책임을 진 자가 없고, 진실은 역사속으로 묻혀져 갔다.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 하겠기에 여기에 글을 올린다.
우리가 겪게된 1997년 치욕의 외환위기는 왜 발생 하였을까?
세계는 동서냉전 시대가 끝나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세계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중국의 대량 저가 상품공세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되기 시작 하였다.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외자를 유입하고자 자국화폐의 인위적인 고평가 정책을 취했다.
이것은 급속한 국가경쟁력 상실로 이어지면서 동남아시아 경제권은 금융, 외환위기로 치닷고 있었다.
1997년 7월에 발생한 태국, 인도네시아의 외환위기가 10월에는 홍콩, 대만으로 파급된 후 11월에는 한국으로 전파 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는 90년대 중반쯤에 이미 감지 되었었다.
이처럼 동남아 외환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김영삼 정부는 어떠한 조치들을 취하였는지 살펴보자.
한 나라의 위정자로 인해 잘못된 정책이 나라를 망하게 하면서
온 국민을 고통속에 빠져들게 함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겪게된 외환위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여기서는 중요한 몇가지만 기술하고자 한다.
첫째가 8% 단일 관세율 적용이다.
김영삼 정부 집권초인 1993년에 우리나라는 2,188개 품목에 대해 일률적으로 똑같이 8%의 단일 관세율을 채택 하였다.
당시 정부는 흑자관리, 물가안정, 통상마찰 예방이 주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일 관세율은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도 채택하지 않은 제도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실시 하였다.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은 주요품목에 대해 차등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었다.
우니라나는 복수 관세율에서 단일 관세율로 전환함으로써 우리의 대외 경쟁력은 일시에 붕괴되어 갔다.
기업은 수익을 쫓아가기 마련이다.
우리 기업은 경쟁력을 키우면서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기 보다는 수익이 훨씬 좋은 수입쪽으로 치중하기 시작
하였다.
우리나라는 단일 관세율이 채택된 1993년부터 고가 소비재의 수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 하였다.
주요 소비재인 모피의류, 승용차, 골프용품 등이 해마다 100% 이상씩 수입이 증가 하였다.
우리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당시 우리의 경상수지 추이를 살펴보면,
1993년에 3.9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이후 1994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기 시작 하였다.
우리의 경상수지 적자는 1994년에 45억 달러, 1995년에 89억 달러, 1996년에 237억 달러로 폭증하면서 외환위기로 치닷고 있었다.
8% 단일 관세율 채택은 우리 경제의 너무나 큰 치명타를 가하였다.
둘째가 잘못된 환율정책 이었다.
90년대 중반에 동남아시아에는 외환위기가 감지 되었다.
이에 중국은 재빠르게 1994년에 위안화를 일시에 30% 평가절하 하였다.
이로써 중국은 수출 증가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외환보유고를 1,400억 달러를 비축해 놓았다.
일본도 1995년부터 1996년 사이에 엔화를 30.9% 평가절하 하였다.
당시 일본은 연간 1,000억 달러 이상 흑자를 기록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94년과 1995년에 오히려 원화가치가 평가절상 되었고,
1995년부터 1996년 사이에 9.1% 평가절하 하였다.
우리의 원화는 일본 엔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21.8%나 고평가 되었다.
이로써 우리의 수출품인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등이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다.
원화가치의 고평가로 인해 우리는 수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우리 기업들의 수출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되어 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폭발적인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 망국의 길로 치닷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전해인 1996년에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 경상수지 적자는 310억 달러를 기록 하였다.
망국의 길은 우리 코앞에 닥친 상태였다.
우리나라는 1996년까지 과거 3년간 경상수지 누적적자 규모가 372억 달러를 기록 하였다.
1996년 말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332억 달러인 점을 감안할때,
우리나라는 이미 사실상 부도 위험 상태였다.
정설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경상지급의 3개월분을 최소 적정 외환보유고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월 경상지급이 당시 120억 달러인 점으로 볼때,
당시 3개월 분도 안된 최소 적정 외환보유고에 미달한 상태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는 1996년에 이미 외환위기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가 있다.
더욱이 외환위기 년도인 1997년 11월에 우리의 가용 외환보유고는 150억 달러로 급격히 추락 하였다.
우리도 최소한 일본처럼 원화가치를 시기적절하게 평가절하를
단행 하였다면 우리는 치욕의 외환위기를 충분히 피해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정책 당국자들의 잘못된 환율정책이 우리나라를 결국 외환위기로 내 몰았다.
셋째가 기업과 은행이 부실화 되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들어 임금, 금리, 지가 등 요소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고질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악화되어 갔다.
임금은 1996년까지 과거 10년 동안 연평균 9.1% 인상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이 급속히 상실 되었다.
동일기간인 선진국의 임금 상승률은 보면,
일본의 경우 1.4% 상승, 미국은 1% 이하에 제자리 걸음을 하였다.
금리는 1996년 기준으로 일본에 비해서 4배. 대만에 비해서는 2배나 높았다.
공장용지 지가는 1995년 기준으로 미국과 일본의 4배에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8%의 단일 관세율과 고평가된 원화가치로 인해 수출은 위축되었고, 수입은 급격히 증가 하였다.
우리 기업은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도산하거나 해외로 이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은 과다한 차입에 의존하게 되었고,
확대지향적 경영을 함으로써 재무구조가 악화 되어 갔다.
1997년 우리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333%로 미국 159%, 일본 206%와 비교하면 크게 높았다.
우리 기업은 부실화되어 갔고, 대기업의 부도사태가 이어졌다.
한보철강, 가아자동차, 삼미, 진로, 뉴코아, 해태, 한라 등 우리의 대기업들이 줄을 이어 부도를 맞게 되었다.
특히, 기아그룹의 부도는 외환위기 도화선에 불을 놓았다.
우리 기업들의 연이은 부도사태는 곧바로 금융권의 위기로 이어졌다.
당시 우리 금융권은 관치금융이 대표적이었다.
금융기관장들은 대통령의 사람으로 채워졌다.
금융전문성이 전혀없는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이루어졌었다.
당연히 금융기관장들이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고 실적위주의 부풀리기식 경영을 하게 되었다.
금융기관의 수익성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금융기관은 여신심사 능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부실 대출이 만연 하였다.
이것은 기업의 부실이 곧바로 은행의 부실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또한 당시 국내 금융기관들은 국제금융업무에 문외한이면서,
경쟁적으로 국제외환업무에 뛰어 들었다.
1997년 12월 우리나라의 대외부채는 1,53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이중에 52.4%인 802억 달러가 단기 차입금이었고,
단기 차입금의 24.5%인 374억 달러가 국내 금융기관의 단기 치입금이었다.
이처럼 높은 단기 차입금은 우리나라의 유동성 위기를 낳게된 원인이 되었다.
연이은 기업부도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눈덩이처럼 증가하게 만들었다.
1997년 11월말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38조 2,000억원을 기록 하였다.
부실채권의 누적은 대외신용도를 급락하게 만들었고,
대외신용도의 급속한 하락은 해외차입의 중단을 낳게 되었고,
이것은 외국 금융기관의 급속한 자금 회수를 초래 하였다.
1997년에 일본은 130억 달러를 회수했고,
11월과 12월에 집중적으로 83억 달러를 회수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결정적으로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더 이상 일본은 우리의 이웃나라가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룩한 우리의 "한강의 기적"은 사라지게 되었고, 우리 산업은 무너지게 되었다.
넷째가 종합금융회사(종금사)가 외환위기에 불을 놓다.
우리나라는 종전 단지회사들이 1995년에 무더기로 24개의 종함금융회사로 전환 되었다.
당시 종금사 임원들은 전문성이 결여된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이루어졌었다.
이들 종금사들은 외환업무에 경험이 없으면서 방만한 외환업무를 취급 하였다.
이들은 단기차입 자금으로 태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의 정크본드까지 사들이고서는 동남아에 외환위기가 닥치자
돈을 고스란히 떼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들 종금사들은 수익성이 높은 단기차입 자금에 치중 하였다.
1997년 10월에 종금사의 총외채 차입금이 200억 달러까지 이르렀고,
그 중 1년 미만 단기차입이 64%인 120억 달러를 차지 하였다.
당시 종금사들은 무분별하게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무리한 지급보증, 대출업무을 취급하면서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종금사들은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되었고,
외환위기와 함께 모두 퇴출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들의 몰락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신용도를 하락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국제 신용도가 추락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더 이상의 외화차입이 불가능 상태로 내 몰렸다.
우리는 당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금융감독체계가 부재한 상태였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위와같은 총체적 원인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결국 외화부족으로 인한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서 1997년 11월 21일 IMF에
유동성 조절자금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다.
IMF사태는 대외적으로 우리의 치욕이었고,
대내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이 너무나 가혹한 고통이 되었다.
우리는 IMF 사태의 원인이 재벌, 대기업의 과잉 설비투자와
문어발식 확장경영으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들어왔다.
물론 당시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 차입경영으로 인해 부실화된 탓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IMF사태의 근본책임을 재벌, 대기업으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당시 우리 대기업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로 기업영역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세계를 제패하고 싶은 웅장한 기업가 정신이 활발하던 때였다.
우리나라가 IMF 사태를 맞게될 것이라고 우리 대기업들은 생각치도 못하였다.
더욱이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잘못된 경제정책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원인이 되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39억 달러까지 바닥났다.
이러던 것이 IMF 체제를 맞이한 1998년에 IMF라는 외세에 힘의 의해 우리의 원화 환율을 대폭 평가절하 단행 하였다.
결과 우리는 1998년에 403억 달러라는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외환위기를 쉽게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이것은 바로 당시 정부가 시기적절히 우리의 원화 환율을
평가절하 하였다면 우리는 충분히 IMF 사태를 피해갈 수 있었던 상황임을 증명해 준다.
더욱이 일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말하기를,
"집권 시절에 금융개혁, 노동개혁을 입법 추진하려 했으나,
김대중씨가 이를 적극 반대하여 결국 입법 추진이 실패해서
우리나라가 IMF 사태를 맞게 되었다"
사실 그랬다.
당시 우리나라가 금융, 노동개혁을 시기적절히 개혁하고,
잘못된 환율정책을 시기적절히 바로 잡았다면,
우리는 충분히 IMF사태를 피해갈 수 있었던 상황으로 아쉬움이 크다.
우리는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다음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을 보기로 하자.
김대중 정부는 IMF로부터의 지원자금 195억 달러를 2년반만에
조기 전액 상환하고 외환위기를 조기 극복하였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외환보유액을 1000억 달러 달성하였다고 자랑하고 있다.
어리석은 국민은 이말에 현혹되어 있다.
김대중 정부는 IMF가 권장한 것보다도 더 빠르게 우리의
자본시장을 급속히 개방하여 무차별적으로 외국투기 자본을 끌어 들였다.
이것이 1998년에 시행된 외국인 주식투자 전면허용,
외국인 적대적 인수합병(M&A) 전면허용 등이다.
당시 IMF 기구는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26%-50%-55%로
점차적으로 확대하도록 권고 하였다.
이유는 외국투기자본은 헤지펀드 등 투기 자본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자본시장을 교란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IMF의 권고사항을 무시하고
우리의 자본시장을 외국투기세력앞에 무방비 상태로 전면 개방을 단행 하였다.
당시 우리의 국내증시를 상상해 보아라.
당시 우리의 국내증시는 똥값이었다.
외국인이 보기에 얼마나 먹이감 좋은 사냥터이더냐.
이로써 우리기업들은 상당수 외국인 투기세력에게 경영권을 박탈 당했고,
더욱이 우리 국내은행은 이미 외국인이 싹쓸이 하였다.
결국 외국인이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는 꼴이되고 말았다.
더구나 김대중 정부는 부실자산을 매각하면서
우리의 국내자본에게는 입찰 참가자격 조차도 제한 하였고,
외국인 투기세력에게만 입찰 참가허용 하였다.
대표적인것이 제일은행 매각건이다.
어디 제일은행 뿐이겠는가.
부지기수이다.
또한 김대중 정부는 반기업 정서로 대기업군 출자총액제한
제도 등을 실시하여 우리기업의 손발을 묵어 놓았다.
결국 우리 대기업은 손발을 짤라야만 했다.
이로써 우리의 알토란 자산이 외국인에게 헐값으로 팔려 나갔다.
작금의 외국인들이 우리의 국내 금융시장을 지배케 만들었다.
이러한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었고,
실질 국민소득이 감소 하였으며,
외환시장, 자본시장을 외국인이 점령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안정과 성장 잠재력이 추락하게 되었다.
특히, 국내자산의 해외매각과 관련하여 정경유착, 부정부패, 불공정 의혹이 끓이질 않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조기 졸업과 외환보유고 증가는 상당부분 우리의 국내자산을 외국인에게 헐값으로 매각한
결과이다.
더욱이 당시 국제수지 흑자도 실물경제 축소로 인한 수입감소에 기인한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김대중 정부의 IMF사태 극복은 우리의 경제체질
개선을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알토란 자산을 외국인에게 헐값으로 팔아버린 결과이다.
더욱이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하였다.
총 공적자금 투입규모는 무려 17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적자금 회수율은 7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회수 불가능으로 추정되는 공적자금 원리금 규모가
이해찬 전 총리는 70조원이라고 밝힌바 있다
이것은 결국 국가채무 급증을 야기하면서 재정악화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IMF 사태의 원흉은 우리 대기업, 재벌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이것은 국민을 향한 새빨간 거짓말임을 우리 국민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 우리더 기도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김대중 정부들어서 외국 자본이 무차별 들어 올때
앞으로 일어날 씨앗 전쟁
이미 미국이 다 사가버렸다는것
고유의 우리나라 것은 무엇이 있나요????
이를 위해 더욱 기도하며 엔타임을 바라봐야 하나봅니다.
김하중 전 중국대사님이 쓴 글을 보면 참 우리사회가 하나님뜻에 얼마나 무지한지 알 수 있죠 우리의 위정자들이 나라를 잘 다스릴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며 우리 기독교인 즉 저부터 변해서 주님의 축복받는 나라되도록 기도해봅니다 어른들의 불륜 돈섬김 아이들의 왕따등 기도거리가 무척 많네요
인간이란게 참 사악한것이 물에 빠진 사람도 건져 놓으면 보따리 내 놓으라고 성낸다 하죠.
당시 언론에선 남미 사례를 거론하며 보통 20~30년 내지 그 이상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기 힘들걸로 내다 봣습니다.
국가가 부도가 된 상태에서 경제 주권이 외국 자본에 빼앗겼는데 님 말처럼 경제 정책을 우리 마음대로 추진하는게 가능하리라 봅니까?
교과서적인 내용만 나열하지 마시고 imf 라는 국제 금융 마피아 세력들을 뒤져 보시길 바랍니다.
imf을 유발했던 당시 경제 수뇌부들이 이명박때 재임용되었고 다시 금융위기를 맞이한게 우연은 아닐 겁니다.
로마 카톨릭 산하 로스차일드 국제 금융 유대 자본에 그 답이 있습니다.
역사를 바로알아야죠 글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대기업 과도하게 규제하고 그때 억울하게 공중분해된 기업, 억울하게 자살한 기업인, 시장님 등도 계셨죠.. 주님께서 공정하게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