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安重根 (1879. 09. 02 ~ 1910. 03. 26)
(사진은 사형 집행 전, 어미니인 조마리아께서 직접 짜주신 하얀 수의를 입은 안중근의 모습)
1. 태어날 때 검은 점이 7개가 있어 어렸을 때 응칠(應七)이라 불렸다.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응하여 태어남)
- 해외에서 이 이름을 자주 사용하였다.
2. 어렸을 때부터 사격(활/총)에 재능이 있었다.
3. 김구와 안중근은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 (정확히는 안중근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음)
- 안중근이 동학 농민운동군의 진압병으로 참여를 했을 때, 김구는 동학 농민군으로 참여를 하였다. (3살 차이난다.)
4. 안중근 의사의 아들과 딸인 안준생, 안현생은 매국노다라는 설이 있다.
- 안준생은 이토 히로부미 아들에게 "아버지를 대신하여 진심으로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 것이 신문에 실려있다.
- 김구가 암살 리스트에 안준생을 올렸다.
- 그러나 이 사실이 조작되었다는 말이 나왔다. "네 아버지는 잘못했고, 우리 아버지는 희생된 것이다. 이 세상 일은 이 세상 일이니 저 세상가서 모두 평화롭게 지내시길 빈다" 라 영어로 이야기 한 것이 그렇게 보도 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안준생은 태어나서 자신의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 안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을 만났다는 것은 사실이다.
* 조작일 가능성과 정확한 정보가 없는 점을 생각하여, 설로 가정한다.
5. 안중군 의사의 딸 안현생은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6. 안중근의 친동생 안공근은 안중군 의사의 의거 이후 안중근 기념사진 엽서를 발간하고, 첩자인 김정국을 처단하였다. (2008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7. 안중근의 아들 안문생은 어렸을 때 일제에게 독살당한다.
- 7살 때 먹었던 과자를 먹고 사망하였다.
8. 아내에게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편지를 자주 써 보냈다.
9. 이승만은 안중근의 의거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의거 후 한국인들은 무섭다라는 인식이 박혀 자신과 만나주지 않았다라는 것)
10. 일본에서는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소개하기도, 독립 운동가로도 소개하고도 있긴 하다.
11. 일본의 관방장관은 안중근은 범죄자라 하였고, 관방부 장관은 "우리는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인물이라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다."라는 말을 하였다.
12. 당시 재판을 담당하였던 검사, 변호사, 뤼순 감옥의 간수들은 안중근을 존경하였다.
- 판사가 안중근이 집필하는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사형을 몇 달 뒤에 집행하려 하였으나 명령으로 미루지 못하였다.
13. 하얼빈 의거 장소인 하얼빈역에 2014년 1월 19일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되었다.
14. 북한에서 안중근 의사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영화도 제작되었고, 신문에서도 애국열사라 평가받는다.
15.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말은 안중근이 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명언으로 전해지던 말을 썼을 뿐이다.
16. 대한민국 보물 568호~569호는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것이다.
(시계, 화폐, 손수건, 일기, 서체 등)
17. 하얼빈 의거 당시 이토 히로부미를 알아볼 수 없어 쏘지 못하는 순간, 이토 히로부미가 손을 흔들며 환영을 했고 그 틈을 쏴 저격을 했다.
18. 총 8발 중 7발을 명중하였고, 나머지 한 발은 쏘지 못한 채 체포가 되었다.
19. 7발 중 3발은 이토 히로부미의 급소에 맞췄다.
20. 안중근의 총알을 맞은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않고, 기차로 급히 옮겨진 뒤 사망한다.
21. 총은 FN M1900, 탄은 32ACP을 사용하였다.
- FN M1900은 자동권총 중에서 최초로 슬라이드를 장착한 권총이다.
- 슬라이드가 있으면 탄창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2. 원래 사형 집행일은 3월 25일이었으나 순종의 탄생일이여서 하루 늦춰진 3월 26일에 교수형으로 하늘로 떠났다.
23. 유언 중에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공언에 묻었다 독립이 된다면 고국에 묻어달라 부탁을 하였으나, 일본이 막으면서 아직도 고국에 묻혀지지 않았다.
24. 사형이 비밀리에 진행이 되어 어디있을 지 추정만 될 뿐, 아직까지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 김구도, 북한도, 대한민국도 유해를 찾으려 노력하였지만 흐지부지 끝나거나 실패하였다.
- 효창공원의 묘역에 허묘로 모셔져있다.
25. 특히 뤼순 감옥 주변에 있다고 추정되나, 뤼순은 여라차례 개간되어 발견되거나 찾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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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붙여지는 TMI에 대해 저의 입장을 말하려 합니다. TMI는 Too Much Information의 약자로 너무 과한 정보를 말한다는 뜻입니다. 허나 제가 글을 쓰는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역사적인 사건은 절대적으로 TMI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는 되돌아보아야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다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성해야하는 것과 다시 이러한 일들을 현대에 적용하여 더 나은 나라의 도약을 위해 되돌아보야하는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의미에 글을 쓰는 것이고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를 말하려 제목을 TMI로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 글을 읽는 동안 역사를 TMI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전혀 부정적인 의미로 제목을 붙이려 하지 않는 것을 알아주셨습니다. 예전부터 스스로 제목에 TMI를 붙이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왔고, 올리는 글들 중에 사족을 붙여 게시하려 하였습니다. 혹여나 제목 수정을 해야할 것같단 생각이 드시면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유익한 티엠아이야...
글 잘 읽었어 !! 총은 저런놈들 쏘라고 만들어진듯.뤼순감옥에서 일본인들이 안중근이 사형되고 울었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만큼 대단한 사람같음
덧붙인 사족도 의미있다 잘 읽었어~!!!
7번 너무 안타깝다 7살에 독살당하고..,
글 너무 유익하다 잘읽었어
정말 PMI야....Please More Information.......
아직도 시신 못찾은 거 안타까워
제목보고 ‘tmi?;;;;;;;’이랬는데..사족 잘읽었어!!👍🏻
고마워 덕분에 유익한 글 잘 읽었어 👏
시신 못 찾은거 진짜 안타깝다 ㅠㅠㅠ
글 잘읽었어 고마워🤗 하얼빈에 있는 기념관 갔다 왔었는데 유익하고 좋았어ㅎㅎ